나는 맥아더장군에게 인사를 건낸 후, UN군 반격에 따른 서울시 수복전략에 대해 의견을 말씀드리러 왔다고 전제하고 서울시 공략에 있어서는 비록 시일이 걸리고 어느 정도 희생이 나더라도 전면 폭격 같은 것은 하지 않도록 해 달라고 강조했다.


맥아더장군은 성급한 내 말에 선뜻 납득이 안 가는 모양인지 도리어 이렇게 반문을 했다.


맥아더: "왜요? 폭격에 의해 서울 거리가 잿더미로 화하는 것이 안타깝다는 뜻인가요?"


김용주 공사: “네. 한 마디로 말해서 그렇습니다."


맥아더: “그렇다면 김 공사, 그 점은 걱정 마시오. 원래 도시란 첫재 또는 전화 등을 한번 겪고 나면 그전에 비해 몇 갑절 더 크고 좋은 새 도시로 부흥되게 마련이오. 


더욱이 이번 한국의 경우에 있어서는 전후 우리 미국이 책임을 지고 재건을 도울 것이니 서울은 앞으로 이상적인 현대도시로 탈바꿈할 것이오."


김용주 공사: "그것은 나도 짐작합니다. 물론 서울시가 전후에 훌륭한 신도시로 복구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만. 그러나 나는 서울에 있는 우리 문화재와 사적이 타 없어지는 것을 가장 가슴 아프게 생각합니다....전후에 생길 이상적 신도시도 좋습니다만, 해석 여하에 따라서는 우리의 민족감정과 염원은 몇 개의 신도시보다 여기에 비중을 더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 뜻에서 서울 폭격계획을 철회하실 수는 없겠습니까?"



내 말을 다 듣고 나서, 맥아더장군은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양 묵묵히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그러나 옆자리의 히키 참모장은 그것은 그것이고 작전은 작전이란 듯이,


히키 참모장: "하지만 전략상 서울폭격을 안 할 수 없는 일이 아니겠소"


하고 약간 통명스럽게 대표했다.


맥아더 잡근은 그 말을 가로막듯.


맥아더: “아니오. 김 공사는 매우 뜻깊은 말씀을 했소"


하고, 히키 참모장에게 김 공사의 의사를 신중히 검토해 보라고 분부했다. 히키 참모장은 벽에 붙어 있는 지도 중에서 정밀한 서울시가 지도 한 장을 떼어 테이블 위에 펼쳐 놓고 나로 하여  문화재와 사적보존을 위해 파괴해서는 안 될 지점을 차례차레 색연필로 표시하라 했다.


나는 처음엔 덕수궁•경복궁• 창경궁 남대문-동대문 등 몇 군데를 중점적으로 가려 붉은 칠을 하다가 대략 정동을 기점으로 남대문을 거쳐 퇴계로에 이르는 반월형의 지형을 따라 광범위하게 선을 긋고 그 선의 동남 서를 모두 폭격대상에서 제외해 달라고 말소리에 힘을 주었다.


이에 대해 참모들은 전략상 도저히 따를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범위를 좁혀 정동에서 을지로-왕십리에 이르는 선을 그어 보였다. 그것도 용납할 수 없었던지 히키 참모장은 이번엔 아예 나를 제쳐 놓고 손수 색연필을 들었다.


그는 정동에서 구부스름하게 청계천으로 선을 그어 보이며, 이 정도로 최선을 다해 보겠지만 그렇다고 절대보장은 다짐할 수 없으니 양해하라고 덧붙였다.


나는 다시 히키 참모장이 그어 보인 그 선에서 자칫 밖으로 밀려 나갈 위험성이 내다보이는 덕수궁 대과 처음부터 선 밖에 놓이게 된 남대문 등의 두 지점에 대해서는 특별 배려를 잊지 말아 달라고 거듭 부탁했다.


- 김용주, [풍설시대 80년) 나의 최고육 : 1984) 중에서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no=3230887



잘못하면 서울이 도쿄꼴 날뻔 했네; 그래도 맥아더가 아시아짬밥이 있어서 그런지 흔쾌히 서울 폭격 자제 요청을 들어줘서 다행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