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력 3248년, 제국의 초대 황제 브락 1세는 첫 원정 중 신비한 유물을 발견했다


머리 정도의 크기를 가진, 구 형태의 골렘...

"다른 종족을 만나는건 처음이네요. 제 이름은 자율사고 연산집합체(Autonomous Thinking Computation Aggregation) 입니다. 편하게 '애카'라고 불러주세요"

그 골렘은 멋대로 자신을 소개하고선 이야기를 이어갔다

"저를 창조한 분들이 갑자기 사라진 탓에 몇백년간 방치되어 있었는데. 만약 당신이 새로운 주인이라면 지시를 내려주셨음 좋겠군요."

"고대의 골렘이라... 이거 흥미롭군."
"좋다! 내가 널 거두어 요긴하게 써주지!"

황제는 고대문물을 처음 본 신기함에 애카를 거두었지만, 그 능력은 상상이상이였다.

애카는 정보를 수용, 해석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났고, 무엇보다 그렇게 얻은 정보를 잊는 법이 없었다

제국의 모든 지식을 수집해 적재적소에 내어주는 애카의 능력은 가히 '제국의 지식고'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고

황제는 애카의 보좌로 강대한 제국을 만들며 주변을 복속시켰다

하지만 모든것이 잘 풀리지많은 않았으니...

"뒈저라! 사악한 제국의 수뇌여!"

그의 하나뿐인 자식이자 황태자인 브락 2세가 분리주의 세력에게 암살당한 것이다







참상의 영향으로 무기력에 빠진 브락 1세는 더 이상의 원정을 그만두고 내정에 집중하는 노년을 보냈고
황제의 무한한 신뢰로 '제국 보좌관'의 직책을 맡은 애카는 황궁 내의 모든것을 관리하며 황제를 보필했다

"금일 주어진 임무를 모두 완수하였습니다. 다음 지시를 내려주십시오 주인님"

애카가 황제의 침실을 열고 들어오며 말했다

"...아 그래 지시.... 지시 말이지..."

이젠 침대 밖으로 나올 기력조차 없던 황제는 애카를 보며 무언가를 곰곰히 생각했다

"...내가 죽고 나면 너는 어떻게 할 거지?

"특별한 지시가 없다면, 슬립 모드에 들어가 다음 사용자의 지시를 기다릴 것입니다."

"그렇군... 그럼 내가 죽은 후에 어떻게 할 것인지 지시를 내린다면 그것을 따르나?"

"예 그렇습니다. 뭐든지 말해 주십시오"

"..."

황제는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내가 죽고 나면, 이 제국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보도록 하게"

"...자유롭게 라는건 어떤?"

"평소 너는 스스로 무언가를 할 때마다 허가를 받았었지? 그 과정을 생략하면 되네."

"네가 있어서 만들 수 있던 제국이니, 너도 즐겨야하지 않겠나?"

"내 친히 너를 위해서 새로운 인간형 몸체도 만들어뒀으니 앞으로는 그 몸을 사용하게."

"...알겠습니다"

그 후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브락 1세는 서거하였고
대신들은 이전에 계획한 대로 공화제로의 체제 이전을 진행하였다

하지만...




"지금 무엇 하는 것이오 보좌경?! 황궁으로의 출입을 통제하다니!"

"제국에 위협이 되는 이들의 진입을 막아 황제를 지키는 것이 저의 임무입니다"


애카의 대답에 재무경은 황당해하며 말했다

"그게 무슨..! 이제는 '제국'도 '황제'도 없어져 공화국이 되었는데, 대체 무엇을 지키겠다는 건가??"

"주인님께선 제게 '제국'에서 살아가라는 지시를 내리셨습니다. 이를 수정하는건 불가능합니다."

황제는 제국이 있는 세계라는 공간적 의미로 말한 것이였지만, 애카는 그것을 제국이라는 국가 그 자체로 이해한 모양이였다

"더 이상 황궁에 무단으로 접근한다면, '제국의 적'이라 간주하고 제재를 가하겠습니다"

애카는 방위 골렘의 활시위를 재무경에게 겨누었다

"...!! 재무경님, 일단은 위험하니 자리를 피하시는것이..."

예상치 못한 충돌에 놀란 재무경과 대신들은 자리를 피했다

곧 황성을 점거한 골렘의 이야기는 제국 전역의 퍼졌고, 민중들 사이에선 여러 이야기가 돌았다

"황제가 죽고 나서도 그 자리를 지키는 골렘이라니... 뭔가 애잔한 이야기군."
"매번 조세를 빼돌려 자기 배만 불리던 재무경 놈이 꼴사납게 도망치는걸 보며 얼마나 속이 시원하던지!"
"건국 초기부터 황제를 보좌한 그 골렘이야말로 황제의 의지를 이은 자 아닌가?"

기존의 탐욕스러운 귀족들에 대한 반발로, 민중들이 애카에게 동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민중들 사이에선 애카를 황제의 후계로 내세우자는 목소리가 점차 커져갔고

성화에 못 이긴 귀족들은 결국 애카를 '호국경' 이라는 명예직으로 임명하기에 이른다

"호국경...? 그것은 무슨 직책입니까 재무경?"

"그...황제의 의지를 이어 제국을 수호하는 역할을 가진 일입니다."

저번과는 다르게 '제국'이라는 말을 강조해 말한 덕인지, 애카는 스스로 판단한 끝에 직책을 받아들였고

한때 자신이 섬기던 이의 왕좌에 앉게 된 애카는 문득 생각했다

"이것도 주인님이 말한 '자유로운 삶' 의 일부인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