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수명으로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


너무 오랜 세월을 살아온 탓일까, 강호가 무너지는 걸 이 눈으로 보았으나 실감이 가지 않았다.


오랑캐들이 서로 중화를 자처하며 천명을 받고 새 질서를 세우는 걸 여러 차례 보았으나, 나라가 무너지고 천명이 지워지더라도 강호만은 영원할 거라 생각하였다.


하여, 소림의 무승들이 총화기란 것들로 무장한 서역의 군인들에게 패배하였을 때에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 여겼다.


군인의 강함이란 무기의 강함인즉, 무기를 다루는 일이야 무인들의 일이라 여겼다. 하여, 결국 강호는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일어설 거라 여겼다.


칼이 총보다 약하다면 총을 든 무인이 등장할 테다. 사람이 포탄을 이길 수 없다면 사람의 한계를 뛰어넘는 일이 무인의 과제라 하겠다.


결국 강호는 어떤 형태로든 살아남아, 무의 역사를 이으리라.


그리 여겼다.


핵이라는 이름의 폭탄이 왜놈들의 도시를 날려버렸을 때, 그제서야, 어쩌면 무라는 것이 그저 과거의 유산으로만 남게 될 수도 있으리라, 그리 짐작했다.


그 무기가 두렵지는 않았다. 천 년을 넘는 시간 동안 무를 세우고 정신을 세우고 뜻을 세웠으니. 적어도 이 한 몸은 버틸 수 있으리라는 자신 정도는 있었다.


허나, 또한 두려웠다. 무예가 아닌 무기가 발전하는 속도가, 내가 무예를 쌓는 속도를 앞지르리라는 것이.


언젠가 도시 하나가 아니라 나라 하나를, 나라 하나가 아니라 대륙 하나를, 대륙 하나가 아니라 이 천지를 무너트릴 무기가 등장한다면.


그때는, 나 역시 버틸 수 없으리라,


무기가 세계를 무너트릴 수 있다면, 무인은 어디에 서야하는가. 천지 바깥, 아니, 천지가 놓여진 배경에는 무엇이 있는가.


그 답을 찾기 위해 우주로 떠났다.


일론 머스크라는 이름의 괴짜에게 무공을 가르쳐주고, 적당한 로켓 하나를 얻어탈 수 있었다.


우주를 유영하던 중 작은 깨달음을 얻어 조금 더 운신이 자유로워졌다. 태양계의 행성들을 건너다니며 유랑했다.


허나, 여전히 나는 작았다. 이 세계는 너무나도 거대했다.


겨우 하나의 태양계조차 온전히 걷지 못할 지인데, 저 바깥의, 빛조차 느림보처럼 여기는 별까지 건너가려면 어찌해야할까.


다른 은하, 그리고 다른 은하단까지 건너가는 것이 과연 유한한 수명으로 가능이나 할까.


그래, 부족한 수명으로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


몇 차례의 반로환동과 환골탈태를 거치며 노화가 멈춘 줄 알았으나, 겨우 천 년의 세월로도 벗어냈던 주름이 다시 지기에는 충분하였다.


우주도, 시간도, 지구라는 창백한 푸른 점조차, 한낱 범부 따위가 범하기에는 너무나 거대하였다.


결국, 인정해야했다.


개인이 쌓을 수 있는 무예에는 한계가 있음을.


결국 강호라는 것은, 무예라는 것은, 무인이라는 것은, 한낱 개인이라는 것은.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서 끝내 도태되리라는 것을.


그런 예감이 들었고, 끝내 그리되었다.


나는 수명이 다하여 죽었다. 우화등선이라는 거창한 표현 따위 어울리지 않으리라.


하늘은 어디에 있는가? 구름 위를 거닐었고, 달을 거닐었고, 명왕성을 거닐었다. 허나, 나의 하늘은 어디에 있는가?


아아, 원통하다.


내 수명이 짧은 것이 원통하다.


나에게 조금 더 긴 세월이 주어졌다면, 그때는, 그때야말로.


내가 하늘 위에 서겠다.



*



"꺄하핫 - ! 어서와라, 아홉 세계의 인간들아!"



저 미력한 것이 말하기를, 탑의 한 층은 하나의 세계라고 한다.



"너희는 이제부터 이 탑을 오르게 될 거다!"



여러 세계를 쌓아올려 만들어진, 아흔아홉 세계의 탑.



"너희들은 탑이 주는 미션을 클리어하고, 탑의 다음 층으로 나아가야한다!"



아아, 부수고 싶다.



"탑의 꼭대기에 오른 인간은."



이 탑이라는 작은 세계의 천장을, 벽을, 경계선과 경계선 바깥의 면면을. 부수어 올라가고 싶다.



"소원을 이룰 것이다!"



이제, 내가 하늘 위에 서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