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악한 마도의 걸을 걷는 네크로멘서가 용사 앞에 나타났습다.


《살아주세요. 당신만큼은 잃고 싶지 않으니까...》


이미 여정을 떠나던 길에 용사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대신 스러진 그녀의 모습을 한 채 말이지요.



《자! 네놈은 과연 사랑하던 '이년'의 모습을 한 나를 벨 수 있을까? 크하하하하!!!》


고통스러워하는 용사의 모습을 즐기며 몰아붙이는 네크로멘서, 하지만 강대한 마력을 휘두르던 네크로멘서의 몸은 갑자기 삐꺽거리기 시작합니다.



《말도 안돼! 왜 이몸의 사술이..? 이건 말도..》

《안... 돼.... 용사... 다.. 치게 하고 싶....ㅈ...》


죽음으로 연인을 지켰던 그녀의 바램

그 애틋한 바램이 남긴 허망한 사념이 그의 손을 멈췄습니다.



두 정신의 다툼 속, 멈춰가는 그녀의 몸을 용사는 차마 베어내지 못했고,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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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젠장...! 왜 이몸이 네놈을 따라가야 하는 게냐! 이 잔류 사념만 없엔다면 네놈의 목을...!》





《용사 네놈이 준 음식을 내가 먹을듯 싶으냐? 그냥 굶어 죽어 부스러져서 이 몸을 떠나겠... 안돼!! 강제로 넣지 ㅁ...으읍!! 읍... 어.... 어어... 맛... 있어...?》




《웃기는군... 용사라는 놈이 요리에 능숙해봤자...》




《응...? '이년'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였다고?》




《뭘 하느라 이렇게 찌뿌리고 있냐고? '이년'의 기억을 읽는 중이다. 이년이라면 네놈의 약점도 알고 있었을테니까.》





《크하하핫! 네놈도 고생 깨나 했겠군, 마력도 평범해, 쓸 줄 아는 마법도 하급 치유 뿐, 이런 년을 데리고 마왕님을 토벌하겠다고 나선 게냐?》




《....'따라나서는걸 말리지 못해서 후회한다'니... 멍청한 놈...》




《네놈이 약했기 때문에 이년을 지키지 못한거다.》




《'이년'을 지키기 위해 강해질 수 있었다니. 그런 궤변 따위 통할 리가 없지.》




《잔류 사념이 풀려가는 중에도 네놈의 요리는 꽤 괜찮군. '이년'이 좋아할 만도 했.... 》




《아.. 아니다..! '이년' 몸 속에 들어있어도 나는 사내다!》




《마족들은 서로 서로가 경쟁 대상일 뿐이었다. '이년'의 몸에 들어가 네놈의 보살핌을 받는것도 꽤나 기분 좋은 일이군. 정적들도 네놈이 제거해주니 말이지.》





《이년의 잔류 사념을 해주하는것도 이제 거의 끝이다. 네놈과도 곧 작별이군, 이년이 죽어서도 숨기고 싶어하던 네놈과의 비밀과 기억도 이제 거의 나의 것.... 이... 이건...?》




《이... 이... 변태새끼....! 요..요요... 용사라는 놈이... 애인에게... 나한테 무...무무뭐를 입힌 거에요...??? 이 기억... 이 감각은 도대체.....?》




《쓰레기 같은 놈. 이젠 밖에서 자! 용사라는 놈이 침대에선 마물보다 더 거친게 말이 돼? 얼굴 붉히지 마!! 영혼은 남자라고 남자!!!》




《얌전하고 순진한 얼굴로 꽤나 서로를 격하게 아꼈군 그래》




《'이년' 꽤나 무모했구만, 이런 알팍한 마력으로 그런 괴물 앞에 서다니.. 많이 아프고 두렵다는 감정이 그대로 전해진다.》




《'나한텐 그런 이야기 한 적 없다'고...? 네놈 바보냐? 네놈은 소녀를 전장에 끌고 왔다! 그정도는 눈치챘어야지!》




《바보.. 바보... 왜 알아차려주지 않은거야... 지금 미안하다고 해 봤자..... '나'... 너무 힘들었는데... 》




《으아아악...! '이년' 아직도 해주가 덜 끝난건가?》




《'이년'에게 미안해할거 없다. '이년'는 아파도, 무서워도 항상 널 믿었던것 같더군... 내 창이 네놈 대신 '이년'의 배를 꿰뚫었던 그날.. 그순간에도 말이다.》




《하등종 치고는 용감한 여자였다.》




《머릿속 목소리가 작아지는군... 크크... 네놈도 이제 잠들때 조심해라.》




《아... 아니다!! 이건... 네놈을 죽이려고 천막에 드...들어온 건데... '그럼 그 <옷>은 뭐냐'고? 어.. 어느새 이런 꼴이...? 이익..'. 힘이 왜 안들어가는거야!!?》




《..... 그.... 요리나 빨랑 해줘. 아침이잖아....》




《이거 봐라 용사! '그녀'를 죽였을때 가지고 있던 반지다...! 네놈이 같은 반지를 안 차고 있는걸 보면 '그녀'도 딴 놈과 뒹굴던 거렸다? 크하하하핫! 멍청한....》




《'이걸 왜 하필 오늘 건네주었냐'니... 어... 왜지...? 뭔가 꼭 오늘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




《망할 년, 난 네년의 한풀이용 몸종이 아니야! 죽어서도 첫만남 기념일을 챙기려고 날 속여???!!??》





《지금 우는거냐?? 젠장.... 울지 마라... 귀찮은 놈... 나... '나는' 정말 괜찮으니까.... 눈물은 멈춰줘...》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내가 알 바냐? 이제 거의 해주가 끝나서 얘 목소리도 안들린다고.》





《다 젖어버려서 춥군. 같은 천막에 들어가 있는게 효율적이겠어....》




《증오와 사랑, 정욕과 복수심이 섞인 눈초리라... 하... 이 몸에 갇힌 것도 꽤나 재미있어지는군. 마음대로 괴롭혀라. 어짜피 '그녀'를 죽인건 나니까.》





《아무리 옛 연인의 몸이여도 너무 소중하게 다뤄주는군. '그녀'를 꿰뚫은 내가 이 몸속에 들어있는데도 말이지...》





《멍청한 놈! 뒤를 조심해!!! 젠장.... 뭐라도 하지 않으면...! 어.... 마력이 돌아왔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정말...  큰일날... 큭... '이년'의 목소리는 이제 거의 안들리는데... 어째서..》




《'도와줘서 고맙다'라고 해 봤자... 나 말고 '그녀'한테나 하시지. 나였다면 네놈을 죽여버렸을테니.》





《으하하!!! '그년'은 이런거 못했지? 오히려 내가 쓸모 있지 않아?》




《야. 머릿속에 있는 너, 지금 뭐라고 한거야...'지금까지 그이를 도와줘서 고마웠어요..'라니... 미친거 아냐?》




《널 죽인건 나라고... 너의 자리를 빼앗은 것도...》




《뭐라도 말 좀 해봐... 이젠 안들린단 말이야... 이러면... 이러면 나만.... 나 때문에 너희가....》




《어... 어쩌다가 아침밥을 차렸냐고? 그... 그래...  네놈 여자친구가 가르쳐줬다!》




《저기 말이야... '그녀'는 어떤 사람이었어..? 기억을 읽어도 알수 없는 감정들이 있어서 말이지.》




《손이 많이 가는군, '그녀'도 참 힘들었겠어. '그녀'는 마력도 제대로 못썼는데 말이야.》




《'왜 마력이 돌아왔는데도 안 도망치냐'고??? ...그거야 '그녀'의 사념 때문이지.... 그래.. 그뿐이야...》




《앞으로도 이대로만 있으면 좋겠다고 '그녀'가 말한것 같다... 큼... 요즘엔 목소리가 잘 안들려서..》





《이제 마지막이네, 내일이면 마왕 앞에 설 거다. 인간 남자는 죽기 전에 성욕이 가장 끓어오른다지?》




《자. 나를 마음대로 다뤄라. 목을 조르고, 무참히 범한 뒤 그 칼을 내 살결에 꽂아넣어라. 내가 네년의 계집을 죽일때 했던 것처럼 말이다. 어자피 나도, '그녀'도 서로에게 벗어날 수 없으니....》




《'연기는 그만두라'니... 언제부터....》





《...'그녀'는 아침밥같은거 할줄 몰랐다고...?  ....멍청한 년.....》




《좋은 사람이었어, 용감한 사람이었고... 너희의 행복을 빼앗아서 미안해... 정말... 미안해....》




《최소한... 마지막 밤에는... '그녀' 말고 내 이름을 불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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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와 '그녀'는 마왕 앞에 섰습니다.


강대한 마왕은 두 사람의 힘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을것 같아 보였습니다.


용사는 쓰러지고, 마왕은 피할수 없는 마력의 창을 내질렀습니다.


'그녀'는 다시 한번,


아니 처음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용기를 내었습니다.


《살아줘. 너희의 기억만큼은, 잃고 싶지 않으니까...》


'그녀'의 몸이 꿰뚫리고, 마왕이 승리의 포효로 방심한 순간, 용사의 성검이 마왕을 향해 호를 그렸습니다.



세상은 평화를 되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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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이....  그래도... 마지막엔 '나'를... 위해서 울어주는구나... 헤...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