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근데 작가분들은 보통 글 하나씩은 다 완성하시는 거 아니였어요?"

"그, 그... 그렇죠?"

"근데, 제가 뭐 놓친 건지는 모르겠는데 지금 선생님 글들 중에 하나라도 완성하신 거라고는 전혀 안 보이는데요?"

"...."


어색한 침묵.


"....저...저는, 그러니까 아마추어 작가였잖아요? 그게 사실 어째보면 당연한거죠..."

"아가리 닫아, 이 새끼야."


사도 베드로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어줍잖은 변명을 가로막았다. 방금까지의 지독하게 사무적이지만 어쨌든 존댓말은 존댓말이었던 말투도, 이제는 하찮고 더러운 무언가를 경멸하는 것 같은 말투로 바뀌었다. 베드로가 "에이 씨, 또 이런 걸 재판받고 싶다고  한다고 꾸역꾸역 재판장에까지 데려오고 지랄이야."라고 투덜대며 일어설 때, 그 허리춤에서 대문짝하게 '천국'과 '지옥' 그리고 '분리수거'라는 활자가 떡하니 박혀있는 열쇠들이 요란하게 짤랑였다. 그 짤랑


"...저, 저는 진짜 생전에 글도 많이 쓰고 준비도 많이 했잖아요! 타이밍이 안 맞아서 꿈을 못 이뤘을 뿐이지, 그걸 제가 아무 것도 안 한 증거랍시고 나태 죄라고 판결을 내려버리시면..."


"어쭈 이 새끼, 아직도 뻥을 칠 생각을 하냐? 야, 너 부모님이 네가 작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글 쓸 시간 밥 먹자고 부를 때 빼고는 줬어, 안 줬어?"


"네! 주셨습니다! 그건 인정해요! 하지만 일단 제가 경험이 많이 없어서 그 시간만 가지고는 부족해서..."


"야 임마. 그럼 네가 부모님이 글 쓰라고 주신 타이밍에 왠 야동이나 틀어놓고 딸치다가 팬티에 묻는 바람에 부모님 주무시는 와중에 몰래 화장실로 기어들어가서 샤워하고 잔 건 뭐니, 그럼? 그것도 뭐, 글 쓰려면 필요한 시련이였어? 소설 이름은 '딸치다 팬티에 묻어서 몰래 씻은 썰 푼다', 그런 거고?"

"....그...그건..."

씨발,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라고 투덜거린 베드로가 뒤이어 쉴 틈조차 주지 않고 바로 다음 공격을 속사포같이 퍼부어댔다.


"그거 듣고도 할 변명이 남아있으면 뭐, 네가 마찬가지로 글 쓰라고 얻은 자유시간 중에 온라인 게임이나 하면서 채팅장에 생면부지의 남 부모님 얘기로 '니X미도 니 보면 자궁 안으로 니 다시 밀어넣으려고 할듯'이라고 적은 거라도 다시 한 번 보고 싶어? 그냥 요즘 재미도 없는데 웃길 거리 하나 만드는 셈 치고 생전에 적은 거 다 한번씩 볼래?"

"아, 아닙니다! 제가 정말 잘못했습니다!"

"왜? 뭐 작가라면서. 저거도 엄연히 보면 네가 쓴 글인데 뒤지다 보면 완성될 글 하나라도 나오는 거 아니야? 그럼 뭐 지옥갈 거 천당 가고, 쓰레기통 들어갈 거 지옥이라도 가게 될 줄 누가 알..."

"됐습니다! 차라리 그냥 어디든 판결 내려주시는 데로 갈게요!"


베드로가 비로소 퉁명스러운 표정을 풀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진작 그렇게 말씀하셨어야죠, 선생님."

".............." 

"아니 진짜, 절차대로 따라만 주시면 이게 말이죠, 하늘나라도 이승이랑 다를 바가 없거든요? 절차대로 하면 아무것도 문제 될 게 없다 안 그럽디까."


그러면서 베드로가 허리춤에서 짤랑이는 열쇠띠를 꺼내들고는 열쇠를 하나 빼내는데, 그 손에는 '분리수거'라고 간단하게 쓰인 거무튀튀한 색의 열쇠가 말 없이 들려있더라. 오호라, 운명의 장난이여! 망연자실한 법정의 죄수 뒤로 근엄한 표정의 천사들이 천천히 걸어왔다. 그 천사들의 새하얀 제복의 등짝에는 '법 정 질 서 유 지'라는 은색 글자가 대문짝만하게 반짝였으니, 누구에게는 조금 우스은 풍경일 줄 몰라도 곧 있으면 그들에게 팔을 한 짝식 잡히게 될 죄수 입장에서는 그렇게나 가슴을 쿡쿡 찔러대는 비수같을 수가 없었다.


"자, 그럼 여기서 재판 종료하고, 법정 경위 분들도 죄인 분 인솔해서 목적지까지 잘 데려다주세요. 자, 다들 퇴정!"

베드로가 대충 나무 망치로 땅-땅-땅-하고 앞의 책상을 세 번 내리쳤다. 이제는 가야 될 시간일 것이다. 축 늘어져있는 죄인이 막 천사들에게 팔을 한 짝식 잡힌 그 때, 죄인이 힘없이 늘어뜨린 고개를 갑자기 힘껏 들더니 울먹이는 목소리로 목청껏 소리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는 천국이잖아요! 저는 이승이랑 이 세상 규범 자체가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솔직히 저는 완성을 못했을 뿐이지 시도도 엄청 많이 하고 쓰는 것도 좋아했는데, 겨우 저런 몇몇 일탈들 때문에 저렇게 끔찍한 곳까지 끌려가야 되는 건데요?!"


"어이, 젊은 친구."

그러자 베드로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여기도 법정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