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근현대사에서 많이 이제 논란이 오가는 것이 조선의 개항과 근대화일 것이다 

이게 논란이 되는 이유는 결국 조선이 근대화와 개항에 실패하고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는 것에서 오는 것이겠고 

그렇기에 조선의 근대화에 대해서 많은 연구가 있는데 오늘 알아볼 것은 바로 동도서기론에 대해서다 


일단 동도서기론이 뭔지에 대해서 알아보자면 간단하게 온건개혁파의 발전형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니까 온건개혁파는 청나라의 근대화를 모티브로 삼자고 했고 그렇게 해서 사상적으로 발전한 게 동도서기론이다 

이 동도서기론이 뭐냐면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는데 하나하나 풀어보자 

동도 - 東道 즉 동쪽의 도를 그대로 따르면서 

서기 - 西技 서쪽의 기술을 받아들이자 

즉 동도서기론은 이데올로기는 그대로 가지고 가면서 서양의 기술력을 받아들여서 근대화를 이루자는 이론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이론의 근간은 바로 청나라의 양무운동이고 

청나라의 양무운동은 사실 그 결과인 청일전쟁을 말아먹어서 그렇지 개혁 자체는 성공적인 캐이스다 

군대를 근대화하는데 성공했고 예산을 많이 배정 받은 해군은 당대 동아시아 최강의 함대라는 평가를 받은 북양함대를 성공적으로 창설했었으니까 

양무운동의 핵심은 간단하게도 제도나 이념같은 건 그대로 두고서 우선적으로 군 부터 근대화를 시켜서 서양식 군대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건 개혁 당시에는 성공적이었고 그래서 온건개화파와 그 온건개화파를 이어 받은 동도서기론에게는 좋은 근거가 되었다 

그러나 그런 양무운동은 청일전쟁에서 그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면서 실패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말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동도서기론이 나왔나?

그것은 제목에서도 알수 있다 시피 이 동도서기론은 사실 많은 근대화를 추구하는 개혁가들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여 낸 타협안이니까 

일단 흔히 알고 있는 근대 개화파들, 특히나 급진개화파는 숫자가 매우 적었다 

한줌에 불과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고 그렇기에 그들이 일으켰던 갑신정변은 자신들의 조직에서 군대를 이끌고 한 게 아니라 일본군을 빌려서 했던 것이었고 

더해서 급진개화파는 당시 조선으로서는 너무 과격하고 일반 대중에게 설득력을 얻기 힘든 급진적인 타입이었다 

일본에 차관을 끌어다가 근대화를 이루자는 건 차치하고서라도 당시 조선에서는 이미지가 너무 좋지 않았던 기독교와 같은 서양식 이론이나 정신 같은 것들도 모두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자는 건 당시 대중들에게 설득력을 주기 힘들었고 그렇기에 힘을 모을 수가 없었다 

권력은 숫자에서 나오는데 양반들은 고사하고 일반 백성들에게 까지 설득력을 얻기 힘들었고 여론의 힘을 얻을 수 없었던 것이 급진개화파가 가진 한계점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선택한 게 쿠테타라는 굉장히 과격한 방식이었고 더하여 급진개화파는 그 과격함을 가졌던 특성상 대중과 양반층 뿐만이 아니라 조선이라는 나라가 가진 왕조 특성상 왕을 설득하는 것도 힘들었다 

이렇기에 많은 개화론자들과 개혁가들이 고민에 고민을 하며 근대화를 추진할 수 있는 원동력을 얻기 위해 나온 것이 바로 동도서기론이다 

급진개화파는 너무 과격하여 여론의 힘도, 왕의 신뢰와 후원도 얻기 힘들기에 그들을 설득할 수 있도록 좀 더 온건하게 만든 것이 바로 동도서기론인 것이다 


현대의 관점에서 동도서기론은 너무 보수적이고 결국 실패한 이론이다. 메이지 유신을 모티브 삼았던 급진개화파 결과적으로 옳은 것이었으니까. 청나라의 개혁은 실패해서 무너졌고 일본은 개혁과 근대화에 성공해 열강이 되었기에 

그러나 당대의 관점에서는 급진개화파는 한줌에 불과한 너무나 미약한 세력이었고 근대화를 위해서 짜낼 수 있었던 최선이 동도서기론이었다 

더하여 사실 양무운동도 약간은 억울한 면이 있기도 했다 


양무운동은 대체적으로 성공적이었다 

황제도 그 양무운동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 열정적으로 밀어줬으니까 

그래서 나온 것이 북양함대였고 

그러나 청나라는 안타깝게도 황제보다 더 강력한 권력을 쥐고 있는 희대의 쌍년이 있었으니 서태후...

군대라는 건 보급과 사기가 중요한데 청나라군은 서태후와 고질적인 부정부패로 인해 둘 모두 없었다 

그래서 프랑스의 엘랑 교리를 받아 돌격 교리를 가졌던 일본군의 닥돌에도 그대로 장비도 놓고 튀는 짓을 벌였고 

그 강력한 북양함대가 서태후의 예산 슈킹으로 인해 기름과 포탄이 없어서 일본 해군에게 일방적으로 얻어터졌던 것이었다 

그러나 결국 양무운동은 군대만 개혁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제도와 권력층까지 갈아엎어야 한다는 교훈을 주었다 

더하여 이런 문제는 조선의 온건개혁파와 동도서기론도 같은 것이었고 결국 조선의 근대화의 큰 적 중 하나가 바로 왕실과 외척들의 부정부패였기에 


조선이란 나라는 기회도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근대화와 산업화를 하기 너무 어려운 땅이었다 

산업화에 필수적인 자원들이 거의 나지 않는 여로모로 소위 말하는 똥땅이었으니까 

특히나 이 나라에서 그나마 나오는 석탄은 무연탄이라 산업화에 가장 중요한 철강산업이 제대로 나오기 힘들었고 

배우면 배울 수록 조선의 근대화는 어떻게든 하려고 몸을 비틀었지만 하늘에게 버림 받았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그럼 오늘은 이만 

좋은 정보 배웠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