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폐쇄됨


새벽의 공기가 코를 배회한다.

무엇도 없는 새벽, 이 빛도ㅡ 저 빛도,

인기척도,

인공적으로 비추는 저 공업 탐조등의 빛도, 모두 작위적이다.

나를 인도하려는 저 하얀색 또 노란색 표지판도, 가림막도.

전부 나를 속이려는 듯 아주 정교하게 작위적이다.


막연한 공포감이 몰려온다.

나는 어디로부터 왔는가.

나는 왜 저기로 가려고 하는거지, 또

저 작위성을 왜 나는 작위로 인식하는가,

나는 왜 이 막다른 길 앞에서 공포스러워하는가.


억만의 잡상이 뇌를 지나간다.

죽은듯이 인기척이 없는 이 길목 앞에서, 난 왜 옮겼는지 모르는 발의 방향을 잠시 멈춰두고 고민해본다.

아니, 그러나 이 상황이 내 고민을 막아선다.

나의 고민이 유구하다만 또 어느샌가부터 그 고민의 말단은 소실되어간다.


불과 오분 전에도 이런 고민을 했었던가.

그러나 나는 그 오분 전의 고민을 기억하지 못한다.

다시 막연히 공포해진다.

영원히 공포할 셈으로 이 적막한 새벽 속에서 고민한다.

발이 멈춘지 몇분이 지났을까?

겨우 부여잡은 정신 안에서 '탈출'을 부르짖는 원시의 감정이 나를 향해 절규한다.


펜스를 넘어


순간, 공포는 충동으로 바뀌어 나는 마구 뛴다.

발걸음이 여러겹으로 들려온다

숨이 멎을듯이 몰아쳐오도록 나는 뛴다.

숨소리가 이중주로 맞춰져온다

펜스가 점점 가까워져오고 나는 그걸 느낄 새도 없이 미친듯이 뛴다.

적막 속에서 우리는 뛰고있다

새벽의 산소는 여간 부족하고 폐가 얼어온다.

그네들도 힘에 부쳐한다

또 작위 속에서 발이 멈춘다.


나는 공포 이전의 위상으로 복귀하여있다.

펜스는 적당한 거리에 있고 나를 거부하는 채 그대로 있다.

저 펜스를 넘어야할텐데, 그래야 이 연옥에서 나갈 수 있을텐데.


펜스는 가까워지지 않는다.


다시 공포가 찾아온다.

다시 영원할듯한 적막의 새벽.


펜스, 펜스와 저 표지판이 보인다.

하얀색과 노란색의 표지판,

그 표지판에는ㅡ


도로 폐쇄됨


새벽의 공기가 코를 배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