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지.


생물학적으로 남성이라면 누구든 그 존재를 알고, 신체 일부로서 기능하는 그것.


분노.


반발, 저항, 어떤 것에 대해 생기는 부정적인 정서.


남자가 이 두 가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즈음에, 창문 사이로 은근히 방을 비추는 태양은 따뜻했다.


아니, 계절 자체가...


서울의 봄은 유독 따뜻했다.


이슬이 맺혀 빛나는 풀잎, 땅을 따스하게 데우는 볕의 온기, 저 멀리 수풀 사이에서 막 겨울잠을 끝내고 꼬물대는 새끼 고슴도치의 가시를 녹이는 이 하나하나가 당연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봄의 따뜻함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온기를 좁은 창살 사이로 미약하게만 느끼는 한 남자가 있다.


남자는 침대에 누워 볕으로부터 고개를 돌리며, 골똘하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자지를 화나게 하는 건 무엇인가.'


정상인의 범주를 넘어서도 한참 넘어선 생각이었다.


천박하고 자극적인 포르노인가, 아니면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음탕한 망상인가, 그것조차 아니라면 땀내나는 셔츠를 입은 육감적인 미녀의 애무인가.


무엇이 자지를 화나게 하는가.


그 남자의 생각은 무척이나 음란했으나 또 깊어서, 계절이 몸서리를 치며 도망갈 지경이었다.


남자는 이제 갓 스물둘이었다.


그의 22년은 항상 끝을 알 수 없는 생각과 의문과 망상과...또 무의미한 대화의 집합이었다.


남들이 보기에도 기분이 나쁠 정도로 그는 곧잘 요상한 것들을 망상하곤 했다.


계란으로 닭을 패죽이는 것은 패륜인가.


코끼리 코에 뿔을 달면 코뿔소인가.


만약 자지를 자르면 무엇으로 오줌을 싸는가.


평소와 거의 다를 바 없이, 그 괴상망측한 행동의 방향이 오늘은 그의 생식기와 분노에 관한 음탕한 망상이었을 뿐이다.


그가 끊임없이 밖으로 내보일 수 없는 외설적인 망상을 하는 도중에도, 태양은 여전히 그를 비추고 봄은 여전히 따뜻했고, 밖은 무엇이 있었는지 잊어버릴 정도로 변한 게 없었다. 계절은 한 번 도망갔다가 그의 망상이 끝나기 전에 다시 돌아왔다.


달라진 점이라고는 여성의 종류와 커진 자지뿐이었다.


속옷 위를 껄떡거리며 존재를 과시하는 16cm.


그것이 유일한 변화였다.


동시에, 불현듯 남자는 깨달았다.


자신.


생식기를 발기하는 것은 자신이었으며 여인의 나체와 몸내음과 기분 좋은 애무를 상상하는 것 또한 자신이었다.


분노를 느끼는 것은 자신이었으며 그것으로 생식기의 미약한 꿈틀거림을 느끼는 것 또한 자신이었다.


그의 인생 22년간 발기를 한 횟수는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렇기에 남자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아, 자지를 화나게 하는 천재는 나였구나.'


그러자 그의 몸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가슴이 봉긋해지고, 꼿꼿한 생식기가 줄어들고, 머리칼은 길게 늘어지고...


그는 깨달은 것이 아니었다. 단지 인정한 것이었다.


자신이 자지를 화나게 하는 천재라는 것을.


그, 아니. 그녀는 다시금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서울의 봄은 여전히 따스했고 고슴도치의 가시 하나까지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다만 달라진 것이라면...


이제 그의 방에서 밖으로 튀어나온 생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여자의 얼굴에 미약한 웃음기가 돌았다.


계절은 여전히 봄이었다.


이렇게 갑자기 TS당하는 망상 심한 음침거유암컷타락녀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