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온은 평범한 시골청년이다.

 본업은 양치기로 양어머니와 누나의 보살핌과 교육으로 바르고 성실하게 자라났다.

 출생의 비밀 따위가 있지만 본인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편이었다.

 

 그가 열여덟 번째 생일을 맞이했을 무렵, 그러니까 알드라시아 제국의 법으로 막 성인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도에서 먼 친척인 라이언이 찾아왔다.

 

 “지온, 나와 함께 수도로 올라가자.”

 

 친척의 제안에 지온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그다지 탐탁치가 않았기에.

 

 친척이라고는 하나 라이언과 지온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났다.

 라이언은 지온과 같은 평민 출신임에도 기사단장 자리까지 올라간 엘리트였다.

 

 그럼에도 둘은 분명한 친구였다.

 누구도 그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건 다른 이야기다.

 라이언이 같이 수도로 가자는 말은 단순히 놀러오라는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제국의 기사단장은 원하는 사람 한 명을 자신이 맡고 있튼 기사단의 단원으로 임명할 권한이 있었다.

 그리고 라이언은 그 기회를 지온에게 사용하고 싶어 했다.

 지온은 그것이 부담스러운 것이고.

 

 “나 같은 게 기사가 된다면 괜히 폐만 끼치는 게 아닐까?”

 “아니다.”

 “나는 일개 양치기라고. 이런 나한테 과한 기대를 걸면 부담스러운데”

 “너는 강해. 기사단장이 되었는데도 아직 나는 네 옷 깃 한 번 스친 적이 없다. 그 힘을 부디 제국을 위해 사용해 다오.”

 

 그렇다.

 지온은 강했다.

 그야말로 불합리한 검술의 천재.

 

 고작 양치기로 지내기에는 너무나도 과분한 힘이었다.

 필시 기사가 된다면 제국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라이언은 생각했다.

 특히 지금과 같은 불안한 정세에서는 더욱이.

 

 그렇다면 지온은 왜 심드렁한 반응을 보일까?

 이는 지온이 지닌 성정 때문이다.

 

 지온은 되도록 사람한테 검을 휘두르고 싶지 않았다.

 필요하다면 해야겠지만 되도록 피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기사가 된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항상 칼을 들고 다녀야 할 테고, 사람을 베어야 할 때도 많을 것이다.

 비록 그것이 정의로운 일이라 하더라도 타인을 상처주는 건 지온에게 있어서 괴로운 일이었다.

 

 “내일 까지 답해주었으면 좋겠군. 지금 제국에는 너의 힘이 절실하다 지온.”

 “……생각할 시간을 줘.”

 

 지온은 라이언이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누나와 양어머니에게 의견을 구했다.

 특히 누이인 시엘은 현명하고 슬기로워 예전부터 지온이 가진 고민들을 쉽게 해결해 주곤 하였다.

 그런 부분에서 지온은 시엘을 많이 의지하고 있는 편이었다.

 

 “수도로 가 지온.”

 

 시엘이 말했다.

 양어머니는 가만히 입을 닫고만 있었다.

 

 “너는 강해. 시간이 지나면 지금보다도 더 강해지겠지. 어쩌면 세상의 누구보다도 강해질지 몰라.”

 “누나……”

 “신께서 네게 그 힘을 준 건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 수도로 올라가 기사가 되는 게 정답일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무언가 답을 찾을 수 있는 계기가 않을까 싶어.”

 

 시엘은 언제나 옳았다.

 설령 그게 아니더라도 저같은 우둔한 것보다 훨씬 더 나으리라.

 

 지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음 날 라이언을 따라 수도로 올라갔다.

 

 “라이언 단장님!”

 

 그런데 지온과 라이언이 마을을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가 발생했다.

 

 “블레이크? 무슨 일이지?”

 

 라이언의 부하 단원이 통신 구슬을 통해 그에게 연락해 왔다.

 

 “지금 왕성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자객이 나타나……”

 

 부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라이언은 한숨을 내쉬었다.

 

 “일이 꼬였군. 나 먼저 가 봐야 할 것 같다. 수도까지 혼자 찾아올 수 있겠나?”

 “괜찮아. 먼저 가 있어. 지도를 보면 되니까 별 문제는 없을 거야.”

 “……너라면 웬만해서는 위험한 일은 없겠지. 그래도 남이 주는 거 함부로 받아먹지는 마라.”

 “너무 어린애 취급하는 거 아니야?”

 

 라이언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사회 초년생을 바라보다 귀환 스크롤을 찢었다.

 공간이동 스크롤은 무척이나 귀한 데다 비싸서 기사단장인 라이언도 비상용으로 하나 밖에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

 

 이후 혼자 남게 된 지온은 지도를 보며 이동했다.

 다행히 도중에 길을 잃어버리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라이언이 예상했던 대로 얼마안가 문제가 발생했으니.

 여관에다 짐을 놔두었다가 차고있던 검 한 자루 빼고 몽땅 도둑맞게 된 것이다.

 

 “벌써부터 이렇게 되다니.”

 

 길바닥에 앉아 한숨을 내쉬는 지온.

 안타깝게도 수도까지는 한참이나 남았다.

 지온이 얼마나 강하든 아무런 여비 없이 목적지 까지 가는 건 무척이나 힘들었다.

 

 “오랜 만에 남작이 무투회를 개최한다더군.”

 “이런 촌동네에서 무투회를 해봤자 얼마나 번다고……”

 “그건 그렇기는 한데, 나름 여기를 오가는 모험가나 용병들이 많으니까. 나름 짭짤하게 버나 봐.”

 “이번 우승 상금이 백 골드라던데?”

 

 우연히 지나가던 행인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랴왔다.

 백 골드면 여행 경비는 충분히 채우고도 남을 금액이었다.

 

 다행히 대회에 참가비 정도는 주머니에 있었던 지온은 곧바로 무투회에 참가 신청을 했다.

 

 “자신의 실력을 시험하러 왔다, 수수께끼의 수행기사, 지온!”

 

 무투회 당일, 진행자의 짤막한 소개와 함께 대회장에 나온 지온을 보며 관객들이 수근 거렸다.

 

 “뭐야 저 놈?”

 “귀족인가? 곱상하게 생겼는데?”

 

 다른 우락부락한 용병이나 모험가들과는 달리 잘생긴 귀공자 같은 외모는 여러모로 인상적이었다.

 

 “어머, 오빠, 잘생겼다.”

 “누구야 저 사람?”

 “동생, 나랑 사귈래?”

 “마음에 안 드는 군.”

 “쓰읍.”

 

 남자와 여자들의 반응은 극과 극으로 나뉘었다.

 그러한 관객들의 반응에 지온은 난처한 듯 웃어넘겼다.

 

 “상대는 두개골 분쇄자, 잔혹한 브랜든!!”

 “우워어어어.”

 

 지온의 첫 번 째 상대는 고릴라 같은 외모의 사내였다.

 무기는 제 키 만 한 거대한 전투망치.

 본인의 덩치와 맞물려 시각적으로 상당한 위압갑을 자아냈다.

 

 “너, 마음에 안 든다!”

 

 브랜든은 어째서인지 지온을 마음에 안 들어 하는 것 같았다.

 

 “너무 승부가 빨리 끝나는 거 아니야?”

 “또 몰라, 저렇게 생긴 애가 의외로 강하다고.”

 

 승부에는 도박이 빠질 수 없다.

 그리고 브랜든에게 돈을 건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지온이 지기를 바랐지만, 솔직히 별 걱정은 하지 않았다.

 승부가 뻔 하다고 생각했다,

 

 다만 역배를 노리는 사람들이 혹시 모를 지온의 일면을 기대했다.

 그리고 이내 지온은 그들의 기대를 충족해 주었다.

 

 -퍽.

 

 “커어어……”

 

 심판에 의해 경기가 시작하자마자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브랜든이 자리에서 쓰러졌다.

 지온이 폼멜로 브랜든의 복부를 가격한 것이다.

 

 “뭐야? 어떻게 한 거야?”

 “이게 말이 돼?”

 “반칙이라도 쓴 거 아니야?”

 

 생각이상으로 너무 압도적인 광경에 놀라는 관객들.

 그들 중 태반은 방금 전 무슨 일이 일어났는 지 조차 알지 못 했다.

 

 “스, 승자는 지온!”

 

 심판 또한 의아해 하면서도 지온의 승리를 선언했다.

 

그 뒤로는 일사천리.

과부제조기 앨버트 라던가, 혹은 철권 구르드, 마검사 후이트 같은 뭔가 거창한 상대들이 나왔으나 모두 한 방에 끝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온은 압도적인 실력을 뽐내며 무투회의 우승을 차지했다.

 ……라고 하기에는 결승전에서 의외의 강적을 만나 오른팔이 부러졌지만.

 

 “하하 대단하네 대단해!”

 

 무투회가 끝난 뒤, 대회를 개최했던 알폰스 남작이 지온을 집으로 초대해 식사를 대접했다.

 심지어 우승상금 뿐만 아니라 우승목록에도 없던 명검까지 따로 선물했다.

 일개 여행객한테 해주기에는 과분한 대우였지만, 그 만큼 지온의 검술 실력은 남작에게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내 비록 무예에 조예가 깊지는 않으나 자네 실력이 범상치 않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네.”

 “아 예……”

 “설마 해서 묻는 건데, 바로 떠날 건 아니겠지? 팔이 부러졌는데 혹여나 도적이나 사나운 짐승이라도 만나면 어떻게 하나?”

 “괜찮습……”

 “아니아니, 그럼 안 되지. 자네 같은 미래의 영웅이 혹여나 제 역량을 내지 못 해 산길에서 객사라도 하면? 설령 그게 아니더라도 다친 사람을 그냥 보냈다는 내 체면이 말이 아니란 말일세.”

 

 지온은 고작 팔 하나 부러진 거 가지고 상대가 과민반응 한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래도 상대의 성의를, 그것도 귀족의 성의를 거절하는 것은 예의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며칠 동안 남작의 저택에서 식객으로 머물렀다.

 회복력이 좋은 덕에 그 기간은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지온에게 있어서는 무척이나 부담스러운 나날이 아닐 수 없었다.

 

 “내일이면 떠난다고 했나?”

 “네, 아무래도 친척이 기다리고 있어서요.”

 “그렇군. 아쉽군.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나랑 술 좀 마시세.”

 “저는 술을 마시지 못 합니다.”

 “조금만 마시면 괜찮을 걸세.”

 “하지만……”

 “부탁일세.”

 

 알폰스는 어떻게든 눈앞의 젊은 영웅과 인연을 맺고 싶었다.

 자신의 기사로 삼으면 좋겠지만 가능성은 낮았다.

 수도의 기사랑 비교하면 이런 지방의 기사는 말만 기사지 칼든 깡패에 가까웠다.

 기사의 가치는 모시는 주군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니.

 

 허나 이대로 보냈다가는 시간이 지나 잊혀지는 건 물 보듯 뻔했다.

 때문에 알폰스는 지온이 사치스러운 수도의 삶이 아무리 황홀하다 하더라도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이유를 만들고자 했다.

 

 남작은 요 며칠 지내면서 이 젊은 청년의 성향을 파악했다.

 지온 같은 사람들은 웬만해서는 타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 하는 부류였다.

 흔히 말하는 호구 중 하나였다.

 그리고 남작은 호구를 다루는 데 이골이 난 사람이었다.

 

 “내가 자주 오는 술집이네. 여기 술맛이 아주 죽여주지.”

 “……뭔가 좀 화려하군요.”

 

 남작은 지온을 창관으로 데려갔다.

 일단 술집도 겸하고 있기에 틀린 말은 아니었다.

 순진한 지온은 이질감을 느끼면서도 아는 게 없으니 그러려니 했다.

 

 “자, 받게나.”

 “너무 많이 마셨습니다. 이제 그만……”

 “어허, 내 성의를 거절할 셈인가?”

 

 그렇게 억지로 술을 들이밀기를 한참.

 술을 처음 먹게 된 바른 생활 청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인사불성이 되었다.

 

 휘청거리며 제대로 말도 못 했을 정도.

 

 지온이 완전히 맛이 갔다고 판단한 남작이 지배인을 불렀다.

 

 “수고했다. 확실히 깊게 취한 것 같구나.”

 “그럼요. 저희 가게에서 제일 독한 것들로 드렸으니까요.”

 “최음제는 넣어 두었나?”

 “물론입죠. 백 살 먹은 노인도 단번에 발정난 개로 만들어 버릴 만큼 강력한 것으로 넣어두었습니다.”

 “좋군. 아주 좋아. 그래, 적당한 계집은 찾았고? 입을 잘 터는 년으로 말이야.”

 

 남작의 작전은 이랬다.

 매춘부 중에는 어리숙한 사내를 다루는 데 재능을 가진 이들이 있었다.

 동정심을 유발하고, 마음을 주게 하거나 혹은 자신을 사랑하게 하여 또다시 창관에 찾아오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지온이 다시금 이곳으로 찾아올 이유를 만들려고 했다.

 대게 지온과 같은 부류는 돈이나 이득보다는 사람 간의 정에 약한 법이니.

 

 “물론입죠. 메리 이년이 남자 구워삶는 솜씨는 아주……”

 “그만! 자넨 너무 말이 많아. 어쨌든 일이 잘 되면 추가금을 줄 테니 모쪼록 잘 하길 바란다.”

 “예, 걱정 마십시오 영주님.”

 “그건 그렇고, 오랜만에 왔는데 아래쪽이 당기는군.”

 “이, 마침 영주님 취향에 딱 맞는 계집이 하나 들어왔습죠.”

 

 여기서 남작의 취향은 숫처녀를 말한다.

 특별히 어린 여자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어린 여자는 숫처녀였기에 상당수그의 상대는 어린 아이였다.

 

 윤리적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지만 이런 변방에서는 영주이자 귀족인 그가 왕이었다.

 이곳에서 그에게 뭐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럼 먼저 방에 들어가 있을 테니 계집을 들여보내도록.”

 “예, 예 물론입죠.”

 

 하지만 ‘메리’가 지온이 있는 방으로 들어갈 일은 없었다.

 그 날 남작이 살해당했기 때문이다.

 

 

 

 ***

 

 

 

 어려서 부터 <검은 발톱>이란 조직의 암살자로 키워진 사샤는 짙은 금발과 푸른 벽안을 가진 아름다운 소녀였다.

 부모의 얼굴 따위 알지 못 했으며, 철이 들기 이전부터 조직의 교육에 따랐다.

 

 빵 한 덩이를 위해 사람을 죽였고,

 맞지 않기 위해 사람을 죽였으며,

 살기 위해 사람을 죽였다.

 

 당연하겠지만 기초적인 도덕적 관념조차 배우지 못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사샤는 재능이 있었다.

 잘 숨고, 잘 싸우고, 잘 죽였다.

 

 덕분에 사샤는 어린 나이에도 ‘조기졸업’을 할 수 있었다.

 또래의 다른 아이들이 지옥과도 같은 훈련을 거치고 있을 때, 사샤는 외부에서 직접 암살의뢰를 수행하였다.

 

 “이번 암살대상이다.”

 

 그런던 어느 날, 조직의 간부가 사샤의 앞으로 사진 한 장을 던졌다.

 

 “이름은 알폰스 덴 카네르. 알드라시아 제국의 남작이다. 숫처녀에 환장하는 변태지.”

 

 간부는 암살대상에 대해 아주 기초적인 정보와 성적취향만을 알려주었다.

 그 외 나머지는 직접 본인이 알아내라는 의미였다.

 

 “한 달 안에 처리해라.”

 

 고작 한 달 만에 귀족을 암살하라니.

 직접 정보를 수집해서 암살을 수행하기 까지 하면 여러모로 빠듯한 시간이다.

 

 특히 상대는 귀족이다.

 아직은 경험이 부족한 소녀가 아무런 지원도 없이 임무를 수행하기에는 실패확률이 높았다.

 

 그럼에도 사샤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다른 방법은 없었기에.

 

 남작령으로 향한 사샤는 얼마 지나지 않아 각종 정보들을 모을 수 있었다.

 성격, 좋아하는 음식, 성을 지키는 병사들의 규모, 자주 가는 창관, 그때 대동하는 대략적인 호위 수 등등……

 목표를 죽이기에 충분한 만큼 정보들을 모았다고 판단했을 때 사샤는 계획을 짰다.

 

 사샤의 암살 방식은 주로 상대의 곁에서 은신해 있다가 빈틈을 드러내면 비수로 찔러 죽이는 것이다.

 그게 가장 익숙하고 편했다.

 

 다만 이번에는 굳이 위험을 무릎 쓸 생각은 없었다.

 수많은 병사들을 뚫고 침실에 몰래 들어가 암살하는 것에는 많은 변수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굳이 애써서 숨어있을 필요도 없었다.

 

 사내는 관계 직후에 가장 취약하다고 했던가?

 사샤는 미인계를 사용하기로 했다.

 

 물론 여인으로써의 미모만 따지면 사샤는 풋사과에 불과했다.

 최근에야 2차 성징에 들어섰으나 체구가 작은 탓에 또래 아이들보다도 훨씬 어려 보였다.

 충분히 미소녀라 부를 수 있으나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 말 할 수 있으리라.

 

 허나 괜찮았다.

 사샤는 숫처녀였으니까.

 애초에 굳이 남작의 성적취향에 대해 알려준 것 자체가 조직에서 내린 암묵적인 강요였다.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다.

 예전부터 조직은 사샤를 완벽한 살인기계로 만들기 위해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자아를 무너뜨리려 했다.

 이것은 그 과정의 일환에 불과했다.

 

 설령 그게 아니더라도 미인계가 가장 쉬웠다.

 또한 안정성과 성공률이 가장 높았다.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렇게 사샤는 남작이 자주 들른다는 창관에 들어갔다.

 의외로 그 과정은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오갈 데 없는 소녀가 매춘부가 되는 건 흔한 일이었고, 무엇보다 사샤는 엄청난 미소녀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보기 드문 숫처녀다.

 직접 처녀막 검사까지 했으니 확실했다.

 

 창관에서 처녀는 그 자체로 상품성이 있었다.

 하물며 명확한 이곳에서는 수요처가 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창관 쪽에서는 거절하는 게 손해다.

 신원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애초에 이 바닥에서 사연 없는 사람은 없었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물론 그것은 엄청난 과실로 돌아오게 되리라.

 

 “여기야. 네가 들어갈 곳이.”

 

 예상대로 창관에서는 이후 기초적인 교육만 시킨 뒤 첫손님을 받게 하였다.

 당연하게도 상대는 남작.

 여급의 안내를 받아 사샤는 어느 방 안으로 들어갔다.

 

 어째서인지 방 안은 어두웠다.

 등불을 꺼놓았고 창문조차 닫아놓은 탓에 별빛조차 방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나마 희미한 윤곽을 통해 형상과 위치 따위를 가까스로 파악할 뿐이었다.

 

 ‘왜 불을 안 켜는 거지?’

 

 궁금하지만 묻지 않았다.

 괜히 신경을 거스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사샤가 좀 더 경험이 있거나, 말솜씨가 좋았더라면 어떻게든 불을 켜고 상대를 확인했을 것이다.

 아무리 사소한 거라도 대상을 착각하면 말짱 도루묵이니까.

 

 하지만 당시 소녀는 생각이상으로 크게 긴장하고 있었다.

 어쩌면 처음 살인을 했을 때보다 더더욱,

 게다가 물씬 풍겨오는 술 냄새와 향수 냄새가 맞물려 후각을 마비시켰고, 바깥에서 들려오는 거센 빗소리가 귓가를 어지럽혔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재능이 있다 한들, 경험이 부족한 소녀라면 실수를 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사샤는 생각 이상으로 술에 취해 헤롱거리는 상대에게 다가가 손을 만지거나 허벅지를 쓰다듬으면서 어설프게나마 자극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상대는 이내 사샤를 덮쳤다.

 

 이후 고통의 시간이 이어졌다.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좀처럼 말로는 형용하기 힘든 상실감이 사춘기 소녀의 마음속에 피어났다.

 

 ‘어?’

 

 그리고 관계가 끝날 쯤,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고 나서야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 위에 올라타고 있는 남자가 남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중늙은이인 남작과는 달리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 젊은 청년.

 특유의 곱상한 외모로 보아 귀족가의 자제인 듯싶었다.

 

 사샤는 이 청년을 알고 있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스쳐 지나가듯 본 적이 있었다.

 

 이름이 지온이라 했었나?

 듣기로는 무척이나 뛰어난 검객으로, 남작이 그와 연을 만들기 위해 꽤나 애쓴다고 들었다.

 심지어는 제 딸과 기정사실까지 만드는 것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그런데 대체 왜 이 사람이 여기에 있는 거야?’

 

 당연하지만 사샤는 당황했다.

 술에 거하게 취한 탓에 현재 지온은 짐승과 인간 사이의 그 어딘가에 위치해 있달까.

 그저 이성은 사라지고 제게 가해지는 자극과 본능에 몸을 맡긴 상태였다. 

 

 어떻게 된 것일까?

 이는 사샤를 안내한 여급의 오지랖이 원인이었다.

 여급은 사샤 같이 예쁘고 귀여운 소녀가 남작 같은 못생긴 늙은이에게 순결을 유린당할 것이 안타까웠다.

 어차피 매춘부로 지내기에 수많은 사내들의 육욕에 몸을 더럽히겠지만, 적어도 처음만큼은 잘생기고 젊은 청년과 보내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실수인양 사샤를 지온이 머물고 있는 방으로 안내한 것이다.

 

 물론 그 사실을 모르는 사샤는 기겁하며 남자를 밀치고는 허겁지겁 옷을 걸처 입은 뒤 방을 빠져나왔다.

 다행히 지온은 사샤를 붙잡지 않았다.

 

 밖으로 나가니 방문을 지키던 병사들이 힐끗 사샤를 흘겨보았다.

 병사들이 방문 앞을 지키고 서있어서 남작이 그 안에 없으리라고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남작이 아니라 귀빈을 지키는 호위 병사들이었다.

 

 ‘시간이 없어!’

 

 오늘이 주어진 한 달의 마지막 날이다.

 어떻게 되더라도 임무를 완수해야 했다.

 아랫배가 아프고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그래도 조직의 전문적인 훈련 덕에 통증을 견뎌낼 수 있었다.

 

 모종의 일로 방을 착각했을지언정 남작이 창관에 있는 것은 확실했다.

 

 사샤는 곧바로 기척을 죽이고 하숙집을 뒤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작이 묵고 있는 방을 찾아낼 수 있었다.

 

 사샤는 최대한 은밀히 지붕과 천장의 틈새를 이용해 남작의 방으로 들어갔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침대에 누워 거하게 취해 있는 남작의 모습이 보였다.

 사진으로 봤던 그 남작이 맞았다.

 여자를 불렀다가 정작 술기운을 못 이겨 잠에 든 것이다.

 

 눈앞까지 다가갔음에도 남작은 여전히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사샤는 단숨에 비수를 남작의 목덜미에 찔렀다.

 그걸로 끝이다.

 남작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너무나도 간단히 암살을 끝마치자 사샤는 허무한 마음까지 들었다.


 이럴 거면 뭐 하러 미인계를 쓰려고 했나?

 역시 사람은 안 하던 짓을 하면 안 된다.

 

 사샤는 조용하고 은밀하게 창관을 빠져나왔다.

 아무도 소녀를 붙잡지 않았다.

 이후로 일이 어떻게 된 지는 알고 싶지도, 알려 하지도 않았다.

 

 다행히 조직은 사샤의 실수에 대해 작은 핀잔만 줄 뿐 뭐라 하지는 않았다.

 

 거처로 돌아온 사샤는 가만히 앉아 한참동안 가만히 않아있었다.

 시간이 지나니 혼란스러웠던 감정 또한 나름 정리되었다.

 

 ‘피임약은 먹었으니 괜찮겠지?’

 

 끈적거리는 무언가가 제 안으로 들어오는 감각은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다.

 생각이 거기까지 이어지니 잠시 잊고 있던 상실감이 다시금 찾아왔다.

 

 그래도, 의외로 눈물이 날 만큼 슬프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 사람, 꽤나 잘생겼었지?’

 

 어쩌면 작은 위안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지도 모른다.

 물론 다시 만날 일은 없겠지만.

 

 

 

 ……라고 생각했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예상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는 법이다.

 

 어느덧 반년이 지났다.

 사샤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임무가 내려오면 사람을 죽였다.

 오로지 순수하게 육체능력과 은신, 뛰어난 단검술로 목표물을 척살했다.

 

 미인계는 사용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실수할 뻔한 기억이 강하게 박혔으니, 심리적으로 꺼리게 되었다.

 어차피 특정 취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사샤에게 욕정을 갖는 사람도 드물었기에 웬만해서는 쓸 일도 없었다.

 

 “이번 목표는 쿠르한이라는 이름의 상인이다. 알드라시아 제국 수도에 거점을 두고 있지. 축제가 끝나기 전까지 처리해라.”

 

 이견은 없다.

 사샤는 명에 따라 암살대상에 대해 조사하기 위해 알드라시아 제국의 수도로 향했다.

 

 “여기가 알드라시아 제국의 수도 아리에스?”

 

 축제가 가까워졌기 때문일까.

 제국 수도의 거리는 여러모로 화려했다.

 

 정돈된 도로, 반듯한 건물.

 시끌벅적한 사람들과 가지각색의 구경거리 등등.

 

 천재 암살자라 하더라도 사춘기 소녀.

 잠시나마 주변 풍경에 시선을 빼앗겼다.

 

 ‘……아니, 이럴 게 아니지.’

 

 사샤는 고개를 젓고는 평소처럼 거리를 돌아다니며 쿠르한의 정보를 수집하려 했다.

 그 순간 자신의 어깨 위로 올려진 손길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어느 틈에?’

 

 이 만큼이나 가까이 접근했음에도 전혀 눈치 채지 못 했다.

 사람이 많다는 것을 감안해도 너무 안일했다. 

 

 간단히 뒤를 잡혔다는 사실에 당혹스러워 하면서도, 사샤는 반사적으로 허리를 틀어 그 반동으로 몸을 띄우면서 플라잉 암바를 시도했다.

 허나 상대는 오히려 절묘하게 팔을 움직여 사샤를 제 품에 끌어안았다.

 

 “미안. 놀라게 할 의도는 아니었는데……”

 

 그제야 사샤는 상대의 얼굴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놀랍게도 아는 얼굴이었다.

 

 회색 머리칼과 신비로운 자색 눈동자.

 미남이라기 보다는 미소년에 가까운 외모.

 전체적으로 순하고 맹해 보이는 인상.

 

 사샤의 첫경험 상대인 지온이었다.

 이전과 다른 점이라면 알몸이 아니라 기사단 제복을 입고 있다는 사실일까?

 

 “우톳톳!!!”

 

 자연스레 그 날의 일이 떠오르며 소녀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평소답지 않게 당황하며 의미를 알 수 없는 이상한 소리를 내뱉었다.

 

 “그, 미안한데, 혹시 나 기억해?”

 

 지온의 물음에 사샤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적어도 지온은 자신을 기억하는 건 확실한 듯싶었다.

 다만 문제는 접근한 의도다.

 

 솔직히 말해 사샤는 지온은 교접 한 번 한 게 전부다.

 냉정히 말 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 길거리에서 발견했다고 이렇게 굳이 접근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 사람, 나랑 또 하고 싶어서?!’

 

 사춘기 소녀의 빈약한 경험과 상상력은 아무래도 그런 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말하는 게 많이 늦었는데, 그때는 많이 미안……”

 “이, 이 로리콘!!”

 

 사샤는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거의 비명에 가까운 외침이었다.

 

 “뭐, 뭐라고?”

 “이거 놔! 나 그런 사람 아니야!!”

 

 사샤가 저번처럼 지온의 가슴팍을 밀치며 품에서 빠져나왔다.

 그러고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벗어났다.

 

 “아니 나는……”

 

 지온은 멀어져 가는 사샤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런 그에게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몰렸다.

 

 “뭐야 뭐야?”

 “지금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저 사람 기사단 제복 입은 것 같은데.”

 “멀쩡하게 생겨가지고 쯧쯧.”

 “이거 신고해야 하는 거지?”

 

 곳곳에서 들려오는 수근거림.

 어떻게 해야 할 지 감을 잡지 못한 지온은 그저 바보처럼 가만히 서있었다.

 

 “하아 하아 하아……”

 

 아무도 없는 골목으로 사샤는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었다.

 

 이상한 일이다.

 지온을 본 순간 사샤의 가슴이 미친 듯이 두근거렸다.

 

 긴장, 공포?

 모르겠다.

 뭔가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묘한 감정이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이 망할 심장은 좀처럼 잠잠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왜 이러는 건데?”

 

 모르겠다.

 전혀 모르겠다.

 하나같이 모르는 것 투성이다.

 

 사샤가 눈물을 글썽였다.

 그 어느 때 보다도 어린 아이 같은 얼굴이었다.

 

 

 

***

 

 

 

 지온은 기사가 되었다.

 명성 높은 제국의 기사가 되었으나, 지온의 입장에서는 별달리 실감이 나지 않았다.

 지온이 소속된 회색 늑대 기사단은 생긴 지 얼마 안 된 신생 기사단으로, 오로지 평민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독특한 특징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 지 단원들이 대부분 악바리 근성이 강했다.

 때문에 순둥순둥하고 어딘가 어수룩한 지온은 여러모로 겉돌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속사정이야 어찌 되었든 겉으로 보기에 인맥으로 기사단에 들어왔으니, 기존에 있던 인원들에게는 아니꼽게 비쳐졌으리라.

 

 라이언이 신경 써 주고 있기는 하나 아무래도 한계가 있었다.

 

 “하아……”

 

 하지만 지금 지온이 한숨을 내쉬는 이유는 그런 사소한 문제 때문이 아니었다.

 

 현재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사샤에 관한 것들로 가득 차있었다.

 그 탓에 기사단 훈련을 하는 와중에도 온전히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딱히 실수는 하지 않았지만.

 

 반년 전, 지온은 남작의 권유에 못 이겨 창관에서 술을 마시다 인사불성이 된 적이 있었다.(거기가 창관이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자다 일어났더니 침대에 피가 묻어 있어서 얼마나 당황했던가?

 그와 동시에 어렴풋하게 떠오르는 어젯밤의 기억들.

 자신이 어린 여자애와 그걸 했다는 사실에 얼마나 자괴감마저 들었다.

 뿐만 아니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같이 술을 마셨던 남작이 암살을 당하는 등, 그야말로 충격과 혼란의 연속이었다.

 

 그나마 어떻게든 해결된 게 다행이었다.

 이후 지온은 사샤를 찾으려 했으나 이미 종적을 감춘 뒤였다.

 

 결국 안타깝지만 반쯤 포기했다.

 아무런 단서도 없으니 재회는 요원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사샤를 수도에서 만난 것은 정말 예상 밖이었다.

 어떻게든 말을 걸어보고 싶었지만, 예상 외로 미움 받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겠지. 그렇게 심한 짓을 했는데……’

 

 일과를 끝마치고 축 처진 걸음으로 하숙집으로 돌아가던 지온.

 그런데 문득 뒷골목 근처를 지나가던 중에 옅은 피 냄새를 맡았다.

 

 지온은 자연스레 냄새의 발원지로 향했다.

 

 “하아 하아……”

 

 그곳에서, 지온은 피를 흘리며 벽에 기대앉아 있는 사샤를 발견했다.

 

 “괜찮아?”

 “……또 너야?”

 

 지온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사샤에게 다가갔다.

 

 “오, 오지마……”

 “움직이지 마. 싱처가 심해.”

 

 척 봐도 사샤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지온이 가까이 다가오자 사샤가 뭐라 말하려 했지만, 이내 의식을 잃었다.

 

 ‘신전으로 데려가는 건…… 안 되겠지?’

 

 지온은 바보가 아니다.

 과거 남작의 죽음에 사샤가 관련되어 있음은 짐작할 수 있었다.

 

 괜히 신전에 데려갔다가 잡혀갈 가능성이 높았다.

 차라리 묵고 있는 하숙집으로 데려가서 응급처치라도 하는 게 나으리라.

 

 

 

 ***

 

 

 

 눈을 떴을 때 낯선 천장이 반겨주었다.

 그와 함께 느껴지는 푹신한 침대의 감촉.

 오랜만에 제대로 된 숙면에 사샤는 개운함 마저 느꼈을 정도였다.

 

 “일어났어?”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앞치마를 한 지온이 상을 차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여긴…… 어디야?”

 “내가 신세지고 있는 하숙집이야. 그보다 몸은 좀 괜찮아?”

 “아…… 어, 응.”

 “배고프지? 차린 건 얼마 안 되지만, 그래도 맛있게 먹길 바랄게.”

 

 지온의 말에 무심코 침대 밖으로 발을 디디려던 사샤는 이윽고 옆구리와 오른쪽 허벅지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눈살을 찌푸렸다.

 도망치는 과정에서 다리를 다친 것 같았다.

 지금 보니 왼 쪽 발목에 부목이 덧대어져 있었다.

 

 “괜찮아?”

 “괜찮아.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니까.”

 “……안되겠다. 잠깐 실례 좀 할게.”

 

 그러면서 지온은 사샤를 안아들었다.

 

 “무, 무슨 짓이야?”

 

 난생 처음 공주님 안기를 경험한 사샤가 당황했다.

 사실 어제도 당했지만 당시에는 정신을 잃어서 기억에 없었다.

 

 “아니, 아무래도 움직이는 게 불편할 것 같아서. 아무래도 크게 다쳤으니까.”

 “내가 괜찮다고 했잖아! 함부로 내 몸에 손대지 말라고!”

 “아, 알았어 미안. 내가 실수했어.”

 

 그래도 이미 식탁에 도착한 뒤였다.

 자리에 앉은 사샤는 지온과 서로 마주하며 수저를 들었다.

 

 삶은 감자, 스튜, 익힌 고기, 토마토. 빵

 호화롭지는 않지만 배를 채우기에는 충분하다.

 마치 배가 고팠기에 사냐는 금세 접시를 비웠다.

 

 “배고팠구나. 내 것도 줄까?”

 “아니 됐어. 충분해.”

 “다행이네. 그릇은 내가 닦을 테니까 침대에서 쉬고 있어.”

 “응.”

 

 절뚝이며 침대로 가는 사샤.

 그에 지온이 부축하려 하자 사샤는 황급히 침대 위로 뛰었다.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온 지온은 이윽고 미리 준비해둔 물로 그릇을 닦기 시작했다.

 

 지온이 그릇을 닦는 동안 사샤는 제 몸 상태를 살폈다.

 부러진 팔에 부목이 덧대어져 있었고, 그 밖에 상처가 난 부위에도 제대로 붕대가 감겨있었다.

 상처 소독도 제대로 된 것 같다.

 후에 악화될 가능성은 거의 없을 듯싶었다.

 

 “잠깐.”

 “응. 왜 그래?”

 “내 몸에 붕대…… 혹시 당신이 감아준 거야?”

 “맞아. 내가 감았어. 위급한 상황이었거든. 그, 늦었지만 마음대로 옷을 벗긴 건 사과할게.”

 

 사샤의 얼굴이 붉어졌다.

 지온이 너무 아무렇지 않게 옷을 벗기고 몸을 만지작거린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로리콘 변태.”

 “아니 그건……”

 

 막 설거지를 끝마친 지온이 뭐라 말하려 하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지금은 무슨 말을 해도 변명처럼 들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터억

 

 지온은 침대 끄트머리에 사샤와 거리를 두고 앉았다.

 별거 아닌 행동이었지만 사샤는 기겁했다.

 

 ‘뭐, 뭐야 왜 갑자기 여기 앉는 건데?’

 

 그런 혼란스러운 마음을 아는 지 모르는 지, 지온은 태연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은 지온이야. 괜찮으면 네 이름을 말해줄래?”

 “……사샤.”

 “그래 사샤, 미안하지만 부탁하나 해도 될까?”

 

 부탁.

 그 단어 하나에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아무 이유 없이 도와주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사샤는 생각했다.

 상대는 미성숙한 여자애를 좋아하는 로리콘(사샤는 그렇게 확신하고 있다)이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자신은 보기 드문 초절 미소녀.

 한 번 맛을 본 뒤 느낀 황홀감은 잊을 수 없을 터.

 그런 사람이 다시 한 번 자신의 몸을 원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알았어.”

 “어? 아직 부탁이 뭔지 얘기도……”

 “오늘은 안전한 날이니까, 딱히 약을 먹을 필요는 없겠지.”

 “저기……”

 “그래도 되도록 살살해줘. 처음 했을 때 꽤 아팠으니까.”

 

 그리 말하면서 사샤가 옷을 내리려고 했다.

 그 모습을 본 지온은 그야말로 펄쩍 뛰며 발광을 했다.

 

 “뭐하는 거야?!”

 “뭐하는 거긴? 성교를 하려면 옷을 벗어야 하잖아? 아니, 생각해 보니까 옷 입고 하는 경우도 많다고 들은 것 같네.”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잖아!!”

 

 이전과는 달리 당황해 하는 지온은 뭔가 우스웠다.

 차분하고 상냥한 표정만 지을 것 같은 사람이 그런 얼굴을 한다는 것이 여러모로 신기했다.

 

 “왜 ‘부탁’이 그런 거라 생각하는 건데?”

 “하고 싶은 거 아니야?”

 “당연히 아니지!”

 “왜 당연한 건데?”

 “그, 그야 사샤는 아직 어리니까.”

 

 뭐지?

 왜 아무렇지 않게 이름을 부르는 거지?

 저 어리다는 말이 왜 이렇게 짜증나는 거지?

 

 그리고 반 년 전 보다 키도 크고 가슴도 좀 더 나왔다고!

 왜 자꾸 애 취급 하는 건데?

 

 사샤는 스스로도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 했다.

 그렇기에 순간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도 못 했다.

 

 “그때는 그렇게 거칠게 해놓고……”

 

 말을 내뱉고도 스스로가 놀랐다.

 스스로가 이처럼 투정을 부렸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그, 그건 실…… 아니, 미안해. 당시에는 내가 나를 절제하지 못 했어. 하지만 그건 명백하게 잘못된 행동이야. 또 다시 같은 잘못을 반복할 생각은 없어.”

 “……대충 무슨 말인지 알았어.”

 “사샤도 자신의 몸을 좀 더 아껴주길 바래. 넌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소중한 사람이니까.”

 

 지온처럼 말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

 말투에 상대를 상처주지 않으려는 상냥함이 묻어나왔다.

 

 말로는 형용하기 힘든 이질적인 감정이 사샤의 가슴을 간지럽혔다.

 

 “그리고 이건 개인적인 의견인데, ‘그런 건’ 좀 더 크고 난 뒤에 해야 하지 않을까? 그때라면 마음껏 해도 괜찮으니까.”

 

 헌데 마지막에 하는 말이 조금 거슬렸다.

 

 “잠깐, 지금 마치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이야기 하는데?”

 “미안. 잠시 착각했어.”

 “……됐어. 이렇게 말씨름 하는 것도 바보 같아. 그보다 하고 싶은 부탁이 뭔데?”

 

 헛기침을 하며 분위기를 바꾸려 하는 지온.

 하지만 사샤가 초조해 하거나 불안해하지 않게 곧바로 말을 꺼냈다.

 

 “몇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거기에 대답해줄래?”

 “할 수 있는 거면.”

 “고마워. 전에 알폰스 남작을 죽인 건 너야?”

 “……”

 “방금 전 쿠르한이라는 상인이 자객에게 습격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어. 그 자객이 사샤야?”

 “……”

 

 왜 이런 걸 물어보는 걸까.

 간단한 답이다.

 벽 한편에 걸려 있는 기사단 제복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었다.

 

 지온은 기사였다.

 제국의 질서를 수호하는 기사가 분란을 일으키는 자객을 색출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나는……”

 

 사샤는 입을 열었다.

 어떻게든 거짓말을 하려 했는데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그렇게 바보처럼 어버버 거리고 있는데, 지온이 안심시키듯 사샤의 손을 감싸 쥐었다.

 

 “말하고 싶지 않으면 말하지 않아도 돼. 내가 알지 못하는 사정이 많겠지. 무책임한 소리라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네가 위험한 일과 엮이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게 무슨 말이야? 네가 왜?”

 “……어찌 되었든 연을 맺은 사람이 위험에 처한 걸 보고 싶지는 않으니까.”

 

 말하면서도 부끄러운지 지온은 얼굴이 붉어졌다.

 

 “미안, 괜히 불편하게 했네. 혹시 사샤는 나한테 궁금한 거 없어?”

 “물어보면 대답해 줄 거야?”

 “내가 해 줄 수 있는 거면.”

 “……너는 기사야?”

 “맞아. 그래봤자 정식 기사가 된 건 세 달 전이지만.”

 “창관에는 자주 가?”

 “원래는 안 가. 그때는 거기 남작님의 성의를 거절하는 게 실례라고 생각해서 가긴 했는데……”

 “남작과는…… 친한 사이였어?”

 “아니, 그건 아니야.”

 

 지온의 말에 사샤가 내심 안도했다.

 그러면서도 어째서 저가 안도하는 지 그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그래도, 누군가를 암살하는 건 나쁘다고 생각해.”

 “……남이사 신경 쓰지 마.”

 “하하, 알았어. 또 괜한 오지랖을 부렸나 보네.”

 

 지온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눈 옆을 긁었다.

 그러다 품에서 시계를 꺼내보고는 이윽고 벽에 걸려 있던 제복을 들었다.

 

 “혹시 뭐 또 필요한 거 있어? 이제 곧 출근 시간이라서, 필요한 게 있으면 오는 길에 사올게.”

 “괜찮겠어? 암살자를 이렇게 무방비하게 놔둬도? 재가 도망이라도 치면 어쩔 건데.”

 “……기사로써는 옳은 행동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어. 그래도 지금은 너를 도와주고 싶어. 만일 도망가고 싶다면 도망가도 돼. 조금 서운하기는 하겠지만.”

 

 그리 말하며 제복을 걸친 지온이 문 밖으로 나갔다.

 사샤는 잠시 지온이 떠난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곧 침대에 몸을 뉘었다.

 

 ‘이제 어떻게 하지?’

 

 임무 실패는 처형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직에서 보낸 암살자가 자신을 찾아올 터.

 

 “꼴이 말이 아니네 꼬맹이.”

 

 바로 지금처럼.

 

 “날 죽이러 온 거야?”

 

 붉은 머리의 여인이 천장에서 떨어졌다.

 몸에 착 달라붙는 밀착성 옷을 입었기에 앳된 사샤와는 달리 요염하고 육감적인 몸매가 여실히 들어났다.

 

 “아쉽게도 아니. 그냥 네 상태가 어떤 지 점검하러 왔지. 그리고 마스터가 너한테 내린 말도 있었고.”

 

 그리 말하며 붉은 머리의 여인은 침대에 걸터앉았다.

 

 여인의 이름은 카르멘.

 사샤와 같은 검은 발톱 소속의 암살자다.

 검은 발톱 내에서도 꽤나 실력자로 유명한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었다.

 

 “꼬맹이 네가 착각하고 있는데, 하찮은 수련생들이나 임무를 실패하면 죽이는 거지 우리 같은 고급 인력은 임무 좀 몇 번 실패했다고 안 죽여.”

 

 카르멘이 손톱을 손질하며 말했다.

 

 “난 그런 소리 못 들었는데.”

 “굳이 해줄 필요는 없으니까. 애초에 임무를 실패했다고 너나 할 거 없이 죽이면 손해가 크니까.”

 “……마스터가 전해주라고 한 말이 뭐야?”

 “고생했다고 푹 쉬래. 몸이 나을 때까지 임무는 없다고 하던 걸?”

 “뭐?”

 “진짜 그게 다야. 아무리 그래도 엄마인데 딸이 다치면 마음이 아프겠지.”

 “……마스터는 내 엄마가 아니야.”

 “아니긴, 그렇게나 닮았는데.”

 

 검은 발톱의 마스터는 사샤와 닮은 부분이 많았다.

딱 사샤가 좀 더 나이를 먹으면 그와 비슷할까 싶었다.

 그래서 조직 내에서도 둘이 서로 모녀관계라는 소문이 많았다.

 

 “그러니까 푹 쉬어. 아까 전에 나간 그 기사 오빠 랑도 오붓한 시간도 보고 그래.”

 “오, 오붓한 시간이라니? 무슨 말 하는 거야?!”

 

 사샤가 이상한 얼굴을 하며 베개를 카르멘에게 던졌다.

 얼굴로 날아오던 베개를 가볍게 캐치한 카르멘이 말을 이었다.

 

 “꼬맹아, 네가 사람은 잘 죽여도 표정을 숨기는 건 미숙하단 거 알고 있니?”

 “뭐?”

 “잘 숨고, 칼 잘 쓰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말이야. 때로는 상대의 방심을 유도해서 죽여야 할 때도 있는 법이야. 그럴 려면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거나 속여야 할 때도 있는 거고.”

 “……나도 알고 있어.”

 “어머, 지금 말대꾸 하는 거니? 귀엽다 우리 꼬맹이!”

 

 카르멘이 사샤에게 손을 뻗었다.

 금방이라도 머리를 쓰다듬을 기세다.

 하지만 실제로 카르멘의 ‘귀엽다’는 말은 말 그대로의 의미로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내 몸에 손대지마!”

 

 사샤는 숨겨 놓았던 단도를 휘둘러 카르멘의 손을 쳐냈다.

 어느새 카르멘의 손에는 작은 칼날이 들려 있었다.

 

 이상한 일은 아니다.

 원래부터 카르멘은 본인이 귀엽다고 말한 소년이나 소녀의 얼굴에 칼자국을 내는 게 일상다반사였으니.

 듣기로는 어려서부터 가학심이 심해 몇 번 문제를 일으켰다고 들었다.

 

 “언니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다니. 너무 슬퍼 흑흑.”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할 말 다했으면 사라져.”

 “그래, 우리 꼬맹이가 사라지라고 했으니까 사라져 줘야지. 그럼 나중에 봐.”

 

 카르멘은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회복될 때 까지…… 여기서 지내야 하는 건가?’

 

 아무것도 안 하고 편안히 휴식을 취한다.

 그것도 자신의 처음을 빼앗은 사내의 집에서.

 

 ‘나쁘지는 않네.’

 

 사샤는 왠지 묘한 기분이 들어 이불에 얼굴을 파묻었다.

 

 “아, 가기 전에 할 말이 있어.”

 

 그 순간 사라진 줄 알았던 카르멘이 창문 안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뭐, 뭐야?”

 “사람을 너무 믿지 마. 이유 없는 선의는 없는 거니까. 그럼 진짜 안녕.”

 

 그 말을 카르멘이 자리를 떠났다.

 

 “……알고 있다고 그런 거.”

 

 사샤가 침대 위에 누워있는 상태로 몸을 웅크렸다.

 

 “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

 

 

 

 이후 평화로운 일상이 반복되었다.

 지온은 사샤의 수발을 들거나 간호했다.

 아침을 해주고 기사단 일 때문에 출근을 하면, 그때 사샤는 낮잠을 자거나 방에 놓인 책을 읽었다.

 더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지온에게 부탁해 퇴근 중에 사오도록 시켰다.

 가끔은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읽고 생각난 글귀 따위를 끄적거렸다.

 

 그 동안 사샤는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나가고 싶지 않았다.

 생각 이상으로 너무 편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온은 집에서 뒹굴거리기만 하는 사샤의 모습이 퍽 걱정스러웠나 보다.

 

 “그래도 가끔은 바람을 쐬는 게 좋지 않을까?”

 “싫어.”

 “하지만 너무 이렇게 있는 것도 건강에 안 좋아.”

 “나갔다가 내 얼굴을 아는 사람 만나면?”

 “그건 그렇지만, 스카프를 두르고 모자를 쓰면 괜찮을 거라 생각해.”

 “싫다니까?!”

 “하지만 사샤야……”

 “싫어 싫다니까!! 나가기 싫다고!!”

 

 사샤가 꽥꽥 소리를 지르며 마구잡이로 바닥을 굴렀다.

 이름 하여 떙깡 부리기였다.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아, 알았어.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이제 안 그럴게!”

 

 그럴 때마다 마음이 약한 지온은 백기를 들었다.

 그러면 사샤는 승리를 자축하며 잉여 생활을 즐겁게 이어나갔다.

 

 “하아……”

 

 연무장에서 훈련이 끝난 뒤, 지온은 연무장 끄트머리에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렇게 죽상이냐?”

 “라이언……”

 

 그런 지온에게 라이언이 말을 걸었다.

 

 “무슨 고민이라고 있나?”

 “그냥…… 여자아이를 대하는 건 조금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서?”

 “여자아이?”

 “아니다. 지금 이야기는 못 들은 걸로 해줘.”

 

 어떻게든 얼버무리며 이야기를 넘기려 했는데, 일순 라이언의 얼굴이 굳었다.

 

 “지온.”

 “응?”

 “나는 너를 믿고 있다.”

 

 라이언의 진지한 말투에 지온은 당황스러웠다.

 

 “타인을 배려할 줄 알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은 두고 보지 못하지. 힘을 가졌 되 함부로 남을 상처 입히지도 않아.”

 “어, 어 그래. 고마워.”

 “너는 좋은 녀석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믿고 싶다.

 반대로 말하면 의심이 간다는 말이다.

 

 “무슨…… 말이야 그게?”

 “단지 소문일 뿐이지만, 네가 어린 여자 아이와 동거하고 있으며 불건전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제보를 들었다.”

 

 순간 지온의 입이 벌어졌다.

 

 “심지어 어린 여자아이를 좋아하고, 길 가던 소녀에게 원조교제를 시도하려 했다는 말도 있더군.”

 “아니 그게 뭔……”

 “지온. 나는 되도록 다른 사람의 취향은 존중해 주는 편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보편적인 윤리관에 윤리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야. 그럴 일은 없겠지만 네가 정말 어린 여자 아이를 좋아한다면……”

 “기다리라니까?!”

 

 라이언이 말을 이어갈수록 펄쩍 뛰는 지온.

 

 “나는 네거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

 “그런가?”

 “진짜로 아니라고!”

 “그렇다면 네 취향이 뭐지?”

 

 라이언의 물음에 지온은 반사적으로 사샤를 떠올렸다.

 

 ‘아니야. 나는, 나는 로리콘이 아니야.’

 

 로리콘.

 어린 여자를 좋아했던 변태성욕자로, 역사에 한 획을 그었을 정도로 유명하였으며 한낱 시골 무지렁이 조차 그 이름을 알았다.

 오늘날에 와서 그 이름은 어린 여자를 좋아하는 변태 성욕자를 상징하게 되었으니.

 아무리 성격 좋은 지온이라도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다.

 

 사샤는 당사자라 그렇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까지 그 말을 들으니 속이 뒤집어 지는 것 같았다.

 

 사실 지온은 이제까지 여성 취향이라 할 만한 게 없었다.

 

 훗날 결혼한다 하더라도 그냥 마음씨 좋고 성격 잘맞는 여자와 결혼하고 싶다는 것 정도.

 하지만 여기서 괜히 그렇게 말했다간 괜히 얼버무린다고 여길 것이다.

 

 “나, 난 적당히 연상에 그…… 가, 가슴과 엉덩이가 큰 여자를 좋아해!!”

 “네 누나처럼 말인가?”

 “이런 미친……”

 “그런데 그거 아나 지온? 너는 거짓말을 할 때 말을 더듬거나 왼쪽 눈썹을 찡그리는 버릇이 있다.”

 “……”

 “다른 사람의 취향에 대해 이래저래 할 수 없겠지. 그래도 되도록 말이 나오지 않게 자제하길 바란다. 우리는 제국의 기사이기에 개인의 행실 또한 매우 중요하다. 행동 하나하나가 황제 폐하의 평판을 떨어뜨릴 수 있으니 주의하도록. 이건 기사단장으로써 하는 말이니까.”

 

 할 말이 없었다.

 할 수만 있다면 당장 접시에 코박고 죽어버리고 싶은 게 지온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시간이 지나 일과가 끝났다.

 지온은 피곤한 걸음걸이로 귀가를 했다.

 

 ‘이게 맞는 걸까?’

 

 막상 집으로 데려오기는 했는데, 이후 어떻게 해야 할 지 막막했다.

 의외로 지온과 사샤는 네 살 정도 밖에 나이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지온은 사샤를 하나부터 열까지 돌봐주어야 할 어린아이로 보고 있었다.

 

 하지만 과연 사샤가 성인이 될 때까지 제대로 키울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혹여나 사샤를 조직으로 돌려보내면 또 다시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할 터.

 연이 있는 여자아이가 기사가 될 지언정 암살자로 자라길 바라지는 않았다.

 

 ‘이럴 때 누나라도 있었으면……’

 

 그런 생각을 하다 지온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의 누나가 알면 일이 더 복잡해질 게 뻔했기에.

 

 “네가 돌봐주고 있는 꼬마는 사람 수십 명을 죽인 살인자다”

 

 그러던 중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근처에 있던 골목의 그늘에서 사내가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어째서 그 꼬마를 돌봐주는 거냐?”

 “당신은……?”

 “너에 대해 나름 조사했다. 시간이 없어서 많이 조사하지는 못 했지만.”

 “저에 대해서요? 그보다 당신들은 누구입니까?”

 

 두건을 쓴 사내들은 지온의 말을 무시했다.

 그저 제일 선두에 있던 사내만이 혼자 저 하고 싶은 말만 나불거렸을 뿐이다.

 

 “회색늑대기사단의 신입기사. 기사단장 라이언의 먼 친척. 엔리케 지방에서 올라온 시골청년. 검술의 천재란 소문도 있지만, 이건 뭐 확인할 수도 없고. 가족관계는 두 살 위 누나와 어머니가 전부.”

 “……”

 

 뭐지 이거?

 잘은 모르겠지만 지온은 조금 불쾌감을 느꼈다.

 정확히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왠지 모르게 짜증이 났다.

 

 “하고 싶은 말이 뭐죠?”

 “그냥 궁금할 뿐이야. 네가 어째서 아무런 관계도 없는 그 꼬마에게 집착하는 지. 그 꼬마가 좀 예쁘장하게 생겼어도 풋내기잖아. 아, 혹시 그쪽 취향인……”

 “아닙니다.”

 “뭐?”

 “아니라고요. 그쪽이 생각하는 거.”

 

 정색하며 말하는 지온.

 평소의 어리숙하고 우유부단한 모습과는 달리 그 어느 때 보다도 단호했다.

 

 사실 지온이 정도 이상으로 사샤를 신경 쓰는 건 이상했다.

 고작 동정심 하나로 퉁 치기에는 분명 과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샤에 대한 지온의 감정은 조금 복합적이었다.

 

 만취상태였다고는 하나 사샤와 몸을 섞은 것은 사실.

 게다가 조금 지나서 알게 된 것이지만 사샤는 그때 숫처녀였다고 한다.

 그리고 지온은 소녀의 순결을 빼앗은 것에 책임감을 느꼈다.

 

 게다가 당시 지온도 숫총각이었다.

 많은 남성들이 첫사랑, 혹은 첫 여자에게 묘한 감정을 갖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었으니.

 

 그게 미성년 자여서 문제이기는 했지만.

 바른생활 청년인 지온은 그 사실을 자꾸만 신경쓰였다.

 

 “그, 그런가? 어차피 아니어도 상관없어.”

 

 짐짓 여유로운 태도로 사내는 클로를 꺼내들었다.

 일반적인 클로보다 날 부분이 크고 톱날 같았다.

 

 “어차피 죽을 놈 취향 따위 무의미 할 테니까?”

 “……일단 말로 했으면 좋겠는데요.”

 “대화는 팔 한짝 자르고 시작하자고.”

 

 사내가 지온에게 달려들었다.

 

 

 

 ***

 

 

 

 “푸하하하!! 아 배야……”

 

 사샤는 책을 읽다 말고 폭소를 터뜨렸다.

 책이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본인 딴에는 상당히 재미있었는 지 배를 부여잡으며 침대에 누워 발작했다.

 

 아주 살 맛 났다.

 두 달 전의 사샤의 모습과 비교하면 그 말이 절로 나올 것이다.

 

 그 만큼 소녀는 풀어져 있었고. 당장의 상황이 퍽 마음에 들었다.

 

 “아하, 하아…… 역시 재미있다니까. 빨리 지온이 다음 권 사왔으면 좋겠는데.”

 

 그러면서 막 책을 덮으려는데 순간 사샤의 눈빛이 변했다.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야?”

 “아주 상전이 다 되었나 보구나 꼬맹아.”

 

 카르멘이 창을 통해 집 안으로 들어왔다.

 굳이 문을 통해 들어오면 될 것을 왜 자꾸 번거롭게 창을 통해 들어오는지 모르겠다.

 

 “사내 하나 꿰어서 아주 살맛나게 지내는 걸 보면, 우리 꼬맹이 상당히 재능있는 걸?”

 “시끄러워.”

 “그런데 어쩌냐 꼬맹아? 좋은 시절 다 갔는데. 마스터께서 네 복귀를 명령하셨거든.”

 

 복귀.

 그 말을 듣는 순간 사샤의 마음 속에는 놀라움, 아쉬움, 그리고 약간의 반감이 스쳐 지나갔다.

 

 ‘반감이라고? 마스터에게?’

 

 사샤는 스스로가 느낀 감정에 다시 한 번 놀랐다.

 고작 두 달 가까이 쉬었다고 마스터의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잊다니.

 

 솔직히 지온과 같이 지내는 시간이 미치도록 즐겁다거나 당장 죽어도 괜찮을 것만큼 행복하지는 않았다.

 

 그냥 편안했다.

 아주 많이.

 

 누군가 제 수발을 들어주는 것도 처음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을 죽이지 않아도 되었고, 죽이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정보를 모을 필요가 없는 생활.

 자신에게 적의가 없는 사람과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며 쓸데없이 시간을 때우는 건 적당히 기분이 좋았다.

 

 그것은 뭐랄까……

 

 나쁘지 않다?

 만족스럽다?

 

 사샤의 부족한 어휘력으로는 딱히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알았어. 작별 인사만 하고 갈게.”

 

 그냥 인사만 하자.

 아무래도 도움 받은 게 있으니까.

 

 “미안하지만 그건 안 될 것 같은데?”

 “왜 안 되는데? 그냥 인사만 할 거라니까?”

 

 카르멘은 의외라고 생각했다.

 사샤가 고집을 부리는 건 처음 봤기에.

 짜증이 난다기 보다 오히려 더 귀여웠다.

 

 “네가 좋아하는 그 오빠, 아직 살아있을지 모르겠거든.”

 “그게 무슨 말이야?”

 “마스터가 슬래시 녀석한테 명령을 내렸으니까. 네가 어울리는 그 남자를 죽이라고.”

 

 슬래시는 검은 발톱 소속의 암살자다.

 사실 암살자 보다는 학살자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암살 기술만 따지면 삼류에 불과하지만, 기본 전투력이 검은 발톱 내에서 손에 꼽을 정도다.

 

 문제는 그 잔인하고 가학적인 성정이다.

 슬래시는 상대를 곱게 죽이지 않았다.

 가장 먼저 팔다리를 자르고 눈을 뽑은 뒤, 벌레처럼 발악하는 것을 구경하다 말려 죽이거나 머리를 터뜨려 죽인다.

 급한 일이 없으면 항상 그랬다.

 

 “대체 왜?”

 “낸들 아나? 마스터께서 제 딸이 물렁해지는 걸 못 보시는 거겠지.”

 

 사샤는 곧바로 자리를 박찼다.

 그 짧은 순간에 무수한 생각들이 머릿속에 뒤엉켰다.

 

 ‘왜 항상 빼앗은 건데?’

 

 요즘에 뜸해서 방심하고 있었다.

 마스터는 사샤에게서 무언가를 빼앗았다.

 

 벼룩의 간을 빼먹듯이.

 심지어 가진 게 없다면 주었다 빼앗았다.

 

 먹을 것을 빼앗았다.

 자유를 빼앗았다.

 어렵게 사귄 친구와 서로 싸워 죽이게 했다.

 정주며 키운 강아지도 직접 숨통을 끊으라 시켰다.

 

 ‘왜, 왜, 왜!!!!’

 

 밉다.

 마스터가 밉다.

 

 왜 나를 괴롭히지 못 해서 안달인 건데?

 

 당신이 내 엄마일 리가 없어.

 부모라면 자식한테 이런 심한 짓 안 해. 

 

 “무슨 일이야? 집에서 다 나오고?”

 

 허나 그런 부정적인 감정은 일순 눈 녹듯 사라졌다.

 방문을 나서자마 사샤는 지온과 마주쳤다.

 

 “왜 여기에 있어?”

 “그야 퇴근시간이니까?”

 “……다친 데는 없어?”

 “없어. 내가 왜 다쳐? 그런데……”

 

 지온이 사샤를 한 팔로 끌어안았다.

 마치 보호하듯이.

 의도적으로 했다기보다는 반사적으로 한 행동이었다.

 

 ‘뭐, 뭐야?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사샤의 얼굴이 붉어졌다.

 가슴이 콩닥콩닥 사정없이 뛰어다녔다.

 단단한 복근에 얼굴을 박고 있으니 지온의 체취가 느껴졌다.

 희미한 땀 냄새가 이상하게 자극적이었다.

 

 “그 쪽은 누굽니까?”

 

 지온이 카르멘을 보며 물었다.

 

 “흐음, 진짜 멀쩡한 것 같네. 저기 오빠, 혹시 오는 중에 누군가와 마주치지 않았어?”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지온의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다.

 크게 무섭다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사샤는 지온이 그런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어머, 보기보다 한 성깔 하는 걸?”

 “……”

 “알았어 알았어. 나는 카르멘이라고 해. 그쪽이 감싸고 있는 꼬맹이와는 직장 동료지.”

 “당신도 암살자인가요? 아니, 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당신이 말한 누군가가 클로를 다루는 사내라면, 이미 도망쳤습니다. 다만 다시는 사람을 해치지 못 하게 다리 한 쪽을 잘라놓았으니 양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슬래시를 물리쳤다는 말에 카르멘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 벌레잡이 놈을 물리쳤다고? 그렇게 강해보이지는 않는데.’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슬래시는 정보수집을 소홀히 하는 편이니 상대의 역량을 잘못 평가하는 경우가 많았다.

 

 허나 그렇다 하더라도 지온이 상처하나 없는 것은 분명히 의외다.

 슬래시가 보기에는 허접해 보여도 평범한 기사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강자였으니.

 의외로 단순히 인맥으로 기사단에 들어온 낙하산은 아닌 듯싶었다.

 

 “여기에는 무슨 일이죠? 시샤를 데려가려 온 겁니까?”

 “왜? 막으려고? 설령 여기서 나를 죽인다 해도……”

 

 그때 지온이 품에서 주머니를 꺼내 카르멘에게 던졌다.

 공격이 목적은 아니었고, 단순히 물건을 건네주는 것이었다.

 

 -찰랑

 

 묵직한 무게.

 그리고 특유의 소리.

 

 주머니를 열어보니 적지 않은 금화와 은화가 주머니 안에 담겨져 있었다.

 

 “생각 보다 많은데? 수도 기사들 월급이 세다더니…… 근데 이건 뭐야?”

 “그건 의뢰비입니다.”

 “의뢰비?”

 “당신 같은 사람들은 돈을 받고 사람을 죽여주거나 지켜준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쪽 상사한테 사샤를 고용한다고 대신 전해주세요.”

 “흐음, 이게 적은 돈은 아니지만 이 정도로는 기껏해야 한 달 밖에 안 되는 데 말이지.”

 “그럼 매달 그 만큼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제가 돈을 계속 낼 때까지는 이 아이는 제가 데리고 있겠습니다.”

 

 카르멘은 지온의 눈을 마주보았다.

 

 지온은 단호했다.

 만일 여기서 자신의 제안을 거절했다가는 금방이라도 검을 뽑을 기세였다.

 

 ‘아까 한 말이 사실이라면 슬래시를 손쉽게 제압한 녀석이야. 나같은 건 기습이 아니면 제대로 재미도 못 보겠지?’

 

 판단을 마친 카르멘이 입을 열었다.

 

 “우리 오빠는 꼬맹이가 꽤나 마음에 들었나 보네. 어때? 이 돈이면 내가 그 덜 자란 꼬맹이 보다 훨씬 즐겁게 해 줄 수 있는데.”

 “머, 뭐뭐?”


 지온은 가만히 있는데 품에 있던 사샤가 동요를 보였다.


 “그쪽은 저보다 나이가 많은 것 같습니다만, 왜 자꾸 오빠라 부르시는 거죠?”

 “……헤에, 우리 오빠는 어린 여자애 좋아하는 구나?”

 

 카르멘의 이마에 핏줄이 돋은 것 같은 것은 단순히 기분 탓일까?

 

 “……로리콘.”

 “넌 또 왜 그래?!”

 

 사샤는 이제는 아예 홍당무처럼 붉게 물든 얼굴을 감추기 위해 지온한테 좀 더 얼굴을 파묻었다.

 

 “하여튼 알겠어. 우리 마스터 에게 전해줄게.”

 “용건이 끝났으면 나가주시죠.”

 “하여튼 쌀쌀맞다니까. 그럼 뭐, 나중에 봐 귀여운 오빠.”

 

 그 말을 끝으로 카르멘은 자리에서 사라졌다.

 다만 지온은 창문을 통해 바깥으로 나가는 카르멘을 눈으로 쫓았다.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질 때가 되어서야 사샤를 제 품에서 놓아주었다.

 

 “괜찮아. 이제 갔어.”

 “……왜 그러는 거야?”

 

 앞 뒤 잘라먹은 물음에 지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안한데, 내가 또 뭔가 잘못했니?”

 “왜 이렇게 잘 해주는 거냐고.”

 “그건……”

 “나는 마음씨가 좋은 것도 아니고, 신분을 감춘 공주님도 아니야. 사람도 많이 죽였어. 기껏해야 얼굴만 좀 예쁠 뿐인데.”

 “본인 입으로 귀엽다고 말하는 구나.”

 

 피식.

 지온은 웃음이 나왔다.

 

 “오해하는 게 있는데, 내가 사샤 한테 해준 건 그리 힘든 일이 아니야. 어차피 돈은 쓸 데가 없어서 계속 모아두고만 있었고,”

 “그래도 고작 몇 번 마주친 여자애 한테 과분한 친절을 베푼 건 맞잖아?”

 

 이게 과분한 친절인가?

 지온은 정말로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인간관계가 협소하고 사회생활도 많이 하지 않았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아니면, 그거 때문이야?”

 “그거라니?”

 “그, 그 내가 너랑 몸을 섰었으니까?”

 

 이번에는 지온도 얼굴이 붉어졌다.

 그 일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쥐구멍에 얼굴을 파묻고 싶었다.

 되도록 이 소재에 관해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상대가 진지하니 그 또한 진심으로 대꾸해 주는 게 도리였다.

 

 “……아예 관계가 없다고 말하지는 않을 게. 하지만 어찌 되었든 나는 사샤를 돕고 싶어. 네가 괴로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 마음이 그래야 한다고 말하고 있어. 그래서 그런 거야 다른 의미는 없어.”

 “고작 그런 걸로?”

 “그거면 충분하지.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고 생각해.”

 

 사샤는 지온과 두 눈을 마주했다.

 생긴 건 순둥하게 생겨서 저런 말을 하다니.

 왠지 모르게 사샤는 지는 것 같았다.

 

 “……로리콘.”

 “그건 진짜 아니야. 그리고 이런 말 하기는 우리 4살 차이 밖에 안 난다고!!”

 “제국에서 18세는 성인이잖아. 나는 아직 미성년자고.”

 “그건 그렇지만……”

 

 지온과 사샤와 좀 더 같이 살게 되었다.

 어찌 보면 이때 부터 이미 둘의 관계는 사실혼에 더 가까웠을 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