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정대의 여정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덕분에 제국은 여덟 왕국과 동맹을 맺는 것에 성공했고, 그 과정에서 여러 이름난 마족들을 물리치는 것에 성공했다.

 

 허나 그렇다 하더라도 그 여정이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각국의 복잡한 정치상황, 점점 강해지는 마족들, 인류의 배신자들……

 

 그 과정에서 여러 나라들이 멸망했다.

 아니 원정이 끝난 이후에도 여전히 멸망하고 있다.

 마족의 군세는 멈췄지만 여전히 마경은 계속 넓어지며 세상을 잠식해 들어갔다.

 

 그 과정에서 매일같이 사람이 죽었다.

 반으로 갈린 남자, 배가 갈려 죽은 어린 소녀, 두 눈이 뽑히고 목이 잘려 농락당하는 소년, 제물로 올려진 아기의 시체들.

 하지만 무엇보다 고통스러운 것은 동료들의 죽음이었다.

 

 “모두 인류를 위해 희생한 영웅들에게 묵념!”

 “……”

 

 장례를 치루는 와중에 지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더글라스, 레나, 실비아, 그리고 라이언……

 

 초기 원정대원들 중에 태반이 죽었다.

 그 뒤로도 새로운 동료를 만났지만, 그들도 대부분 죽어나갔다.

 

 “괜찮냐?”

 

 뒤에서 누군가 말을 걸었다.

 아크샤다.

 우라질 매형이었다.

 

 “아니.”

 “그러냐?”

 

 잠시 둘 사이에 정적이 감돌았다.

 

 “대체, 언제까지 싸워야 하는 거지?”

 “마왕의 멱을 딸 때까지?”

 “그렇게 되면…… 다시 평화가 찾아올까?”

 “편화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마경은 사라지겠지. 그렇게 되면 적어도 지금 보다는 나아지지 않겠어?”

 

 다시 이어진 침묵.

 이번에 먼저 입을 연 것은 아크샤였다.

 

 “……네 여친 깨어났다. 가서 만나봐.”

 “알려줘서 고마워.”

 

 지온은 신전 병동으로 향했다.

 

 “왔어?”

 

 그곳에는 사샤가 온 몸에 붕대를 감은 사샤가 있었다.

 부러진 팔에 부목을 하고는 침대에 앉아 지온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

 

 이상하게 그런 사샤를 보고 있자니 지온은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괜찮아.

 고생했어.

 덕분에 살았어.

 

 이런 말을 하려고 했는데, 정작 입 밖으로 나온 것은 다른 말이었다.

 

 “지금 웃음이 나와?”

 “어?”

 “죽을 뻔 했어. 사지 멀쩡하게 살아남은 게 기적이라고. 그러게 대체 그때 왜 끼어들어서!”

 “미안……”

 

 이렇게 화내는 지온은 정말 오랜만에 보았다.

 사샤는 눈을 내리깔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사과했다.

 

 “……아니. 목소리 높여서 미안해. 내가 잘못 한 거 맞아.”

 

 -털썩

 

 지온이 침대 맡에 있는 의자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그래도 다시는 그러지 마.”

 “으응.”

 “……”

 

 지온은 무의식적으로 사샤를 살폈다.

 

 사샤의 나이 18세.

 사 년 전과는 달리 상당히 자랐다.

 곳곳에 붕대를 감고 있음에도 몸의 굴곡을 완전히 감출 수 없을 정도로, 사샤는 매력적인 여인이 되어 있었다.

 

 길고 가는 팔다리.

 허리는 잘록하고 가슴과 엉덩이가 커서 마치 호리병을 연상시켰다.

 그러면서도 당장의 기운 없는 모습이 묘하게 남심을 자극했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지온은 스스로에게 혐오감을 느끼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최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많은 지라 지온은 현재 여러모로 심신이 불안정했다.

 다만 사샤는 지온의 그러한 모습을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다.

 

 “화 많이 났어?”

 “아니야. 화 안 났어.”

 “미안.”

 “자꾸 사과 안 해도 돼. 그냥…… 좀 생각할 게 있어서 그런 거니까.”

 

 잠시 정적이 이어졌다.

 요즘 따라 자꾸 누군가와 대화를 하면 이럴 때가 많았다.

 

 사냐는 초조한 마음으로 지온이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한 달 뒤에 연합군 측에서 병사들을 모아 마왕성으로 진격할 거야.”

 “응, 걱정 마. 이런 상처는 일주일이면 전부 나으니까.”

 

 사샤의 말은 거짓말이 아니다.

 그들은 초인.

 부상의 회복 또한 남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빨랐다.

 

 하지만 지온이 듣고 싶은 말은 아니었다.

 지온은 사샤가 이번 출정에 나가지 못하길 바랬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전쟁에서 벗어났으면 했다.

 

 최근들어 지온은 악몽을 꾸었다.

 사샤가 죽는 악몽.

 죽는 방법은 하나같이 다 달랐다.

 

 어쩔 때는 목이 잘려서,

 어느 때는 심장이 뚫려서,

 또 어는 때는……

 

 악몽에서 깨어나도 두려움은 가시지 않았다.

 그 악몽이 현실이 될까 봐.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부상이 나으면…… 마지막으로 같이 여행이라도 갈까?”

 “여, 여행이라고?”

 “어. 단 둘이서. 다른 사람 없이.”

 

 단 둘이 여행을 떠난다는 말에 사샤는 저도 모르게 야릇한 상상이 떠올랐다.

 

 “……이런 시국에 단 둘이서 여행을 다녀와도 될까?”

 “오히려 이런 시기니까. 조금이라도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아.”

 “……알았어.”

 

 전쟁 중에 여행이라니.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행동이다.

 실질적으로 마족의 군세를 이끄는 팔마장들이 모두 전멸했다지만, 아직 마왕은 건재한데다가 휘하 친위대들도 멀쩡히 살아있었다.

 

 게다가 전쟁이라는 어떠한 변수가 생길지 모르는 법.

 괜히 핵심전력이 자리를 비웠다가는 무슨 일이 생길지 몰랐다.

 

 그럼에도 둘은 여행을 떠났다.

 문제 삼는 사람이 없지는 않았지만 실질적인 지휘관인 황태자가 용사의 휴가를 허가하자 그 마저도 조용해졌다.

 

 어쩌면 다들 직감적으로 깨달았을지 모른다.

 이번이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설령 그게 아니더라도 여태껏 인류를 위해 힘써온 영웅들에게 자그마한 보상을 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여행지는 전장에서 가장 떨어진 남쪽의 어느 마을. 

 특유의 계곡과 온천으로 나름 알려진 관광지였는데, 아는 사람만 가는 숨은 명소라 할 수 있었다.

 

 물론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비싼 귀환스크롤을 가지고 갔고, 언제라도 통신할 수 있게끔 통신구도 소지했다.

 

 “온천은 오랜만이네.”

 “저번에 원정 도중에 한번 갔었던 적이 있었지.”

 

 그때는 지금처럼 둘이 아니라서 여러모로 시끌벅적 했는데.

 

 ‘이제는 우리 둘만 남았네.’

 

 사샤는 지온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일견 유약해 보이는 인상이지만 그 어깨에 짊어진 것은 누구보다 무겁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그 짐을 덜어주고 싶었다.

 

 목적지 까지 향하는 동안 둘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고, 오랜만의 손님이군요.”

 

 연로한 노파가 지온과 사새를 맞이했다.

 

 “둘이 부부이신가요?”

 “예. 방은…… 하나만 잡아주시면 됩니다.”

 

 노파의 물음에 지온이 망설임 없이 말했다.

 당연하겠지만 사샤는 긴장된 마음에 마른침을 삼켰다.

 

 ‘미리 각오하기는 했지만……, 이번에 정말 작정했구나.’

 

 사샤의 얼굴이 살짝 붉어지자 노파는 묘한 표정을 짓는다.

 

 “신혼이시군요. 한창 불타오를 때지요.”

 “흠흠……”

 

 지온도 낯 뜨거운지 나머지 헛기침을 하며 대답을 피했다.

 

 이후로도 지온과 사샤는 여관에 짐을 풀고 주변을 돌아다니고 마을 구경을 다녔다.

 본래 사샤는 쉬는 날에는 방에 짱박혀서 뒹구는 편이었지만, 그 날 만큼은 달랐다.

 긴장을 낮추기 위해, 그리고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추억을 쌓기 위해 하루 종일 지온과 함께 거리를 돌아다녔다.

 

 -꼬옥.

 

 ‘어?’

 

 지온의 거친 손이 사샤의 손을 감싸 쥐었다.

 지금까지 손을 잡은 적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처럼 남들이 다 보는 앞에서 손을 잡고 거리를 누비는 건 처음이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무릎에 올라간다던가, 팔베게를 해주는 등의 스킨십도 많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뭔가 지금은 느낌이 달랐다.

 

 풋풋하다.

 우연히 둘을 본 행인은 그런 생각을 했다.

 

 “먼저 씻어.”

 “어? 어……”

 

 여관으로 돌아온 뒤, 지온이 사샤에게 말했다.

 너무 자연스럽게 말해서 사샤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받아놓은 물로 몸을 씻으면서 왠지 모르게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정말 할 건가? 굉장히 오랜만에 하는 건데……’

 

 혹시나 몸에서 이상한 냄새라도 나지 않을까.

 사샤는 평소보다 훨씬 더 박박 몸을 씻었다.

 

 첫 경험 당시에는 상황이 상황인지라 아픈 것 밖에 기억나지는 않았지만,

 그때와는 지금은 두려운 마음보다는 기대하는 마음이 더 컸다.

 

 ‘자스민 향이 좋을까? 아니면 장미향이……’

 

 그러면서 평소에는 피하던 향수까지 뿌렸다.

 어떻게든 샤워를 끝마치고 나온 뒤 지온이 욕실로 들어섰다.

 

 지온도 긴장했던 것인지 생각보다 늦게 나왔다.

 

 “미안 오래 기다렸어?”

 “아니 그렇게 오래 안 걸렸……”

 

 사샤는 중간에 말을 하다 입을 다물었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지온은 곱상한 얼굴과는 별개로 상당한 근육질이다.

 

 빨래판 같은 복근, 보기 좋게 굵은 팔뚝. 넓은 어깨 등등……

 민첩하면서도 탄탄한 근육들은 단련된 전사임을 알려주었다.

 그럼에도 우락부락해서 보기 흉한 게 아니라 고대의 예술작품 마냥 특유의 아름다움으로 계속 눈길을 끌었다.

 

 이전에도 몇 번 갑옷이나 옷이 찢어져 맨몸을 본 적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지금 막 샤워를 마치고 가운을 걸친 그 모습은 그때와는 뭔가 달랐다.

 

 “……뭔가 이상해?”

 

 너무 뚫어져라 봤던 걸까?

 뒤늦게 그 사실을 인지한 사샤는 화들짝 놀라며 얼굴을 돌렸다.

 

 “아, 아냐 아무것도.”

 

 침대 위에 걸터앉아 있는 사샤의 옆으로 지온이 앉았다.

 

 “혹시 싫지 않다면…… 내가 옷을 벗겨 주어도 될까?”

 

 지온의 얼굴은 무슨 전쟁을 치루는 것 마냥 비장하기 그지없었다.

 실제로도 지온은 사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다만 사샤가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어차피 가운 말고는 아무것도 안 입었어.”

 “……”

 

 조심스레 지온이 사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러면서 목에서 어깨로, 가운을 벗겨냈다.

 

 곧이어 드러나는 육감적인 여인의 몸.

 호리병 마냥 풍만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 발달된 골반이 어우러져 있었다.

 의외로 굳은 일을 했음에도 피부는 희고 깨끗했다.

 

 “너, 너무 그렇게 뚫어져라 보지 마.”

 “아, 미안.”

 

 지온의 노골적인 시선에 사샤가 겸연적여 하며 말했다.

 그러다 문득 눈을 마주친 둘.

 

 지온은 반사적으로 사샤와 거리를 좁히며 입을 맞추었다.

 

 포개어지는 입술.

 서로의 입안으로 혀가 들어오며 자연스레 타액을 교환했다.

 

 따지고 보면 첫키스이기에 지온이나 사샤나 그 행위가 무척이나 어색했다.

 

 ‘첫키스는 딸기 맛이 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래도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아니, 오하려 좋았다.

 야릇하고 묘한 중독성이 있었다.

 나중에는 지온이 아예 잡아먹으려는 과격하게 한 탓에 곤란하기는 했지만.

 

 “켁켁……!”

 “미, 미안.”

 “괜찮아.”

 

 다음으로 지온은 사샤의 가슴을 만졌다.

 풍만하면서도 탄력적인 가슴의 감촉은 뭐라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지온의 손길을 따라 빵반죽 마냥 모양이 바뀌는 젖가슴은 그 자체로 묘한 마력이 있었다.

 

 “아파……”

 “……”

 

 사샤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지온은 몰입해 있었다.

 그렇게 계속 만지작거리다 문득, 꼭지를 핥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읏?!”

 

 사샤는 저도 모르게 이상한 소리를 냈다.

 혀의 미세한 돌기들이 신체의 민감한 부위를 스쳤다.

 묘하게 간질거리면서도 자극적이었다.

 핥는 것으로도 만족 못 한 지온이 이제는 아예 아기 마냥 사샤의 젖꼭지를 빨았다.

 

 “자, 잠깐! 그렇게 세게 하면……”

 

 더는 흥분을 참기 어려웠을까.

 지온은 점차 적극적이다 못 해 공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앗……”

 

 사샤를 뒤도 넘어뜨린 뒤, 그대로 다리를 벌렸다.

 비밀스러운 계곡을 벌리자 드러나는 분홍빛 속살.

 그 어떤 고기 보다도 맛있어 보였다.

 

 “헤윽……”

 

 거친 숨결이 예민한 부위에 닿자 사샤가 신음을 흘렸다.

 지온은 손가락으로 톡 튀어나온 음핵을 몇 번 건드리다 그것을 혀로 핥았다.

 

 제 삼자가 본다면 어설프기 그지없는 애무였다.

 그래도 나름의 노력 끝에 사샤 또한 아래쪽이 젖어갔다.

 

 아, 이제 더는 참을 수 없다.

 

 지온은 입고 있던 가운 따위 벗어던지며 제 양물을 바깥으로 들어냈다.

 

 사샤는 처음으로 마주한 거대한 남성의 상징을 보며 입이 벌어졌다.

 과거에도 지온과 관계를 갖은 적은 있으나, 그때는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을 뿐더러 일부러 시선을 피하려고 했기에 정확히 보지 못 했었다.

 

 그렇기에 직접 두 눈으로 마주한 남근은 그 자체로 충격적이게 다가왔다.

 발딱거리는 양물은 객관적으로 봐도 상당한 대물이었다.

 

 ‘저런 게 내 안에 들어갔었다고?’

 

 사샤는 자신의 기억을 의심했다.

 사실 당시 사샤의 안에 지온의 양물이 전부 다 들어가지는 못 했었다.

 다만 본인만 알지 못 했을 뿐이다.

 

 “넣을게.”

 “자, 잠깐……”

 

 말을 하기도 전에 지온은 자신의 물건을 사샤의 안으로 집어넣었다.

 

 거침없이 안 번에 푸욱.

 이전과는 달리 사샤의 몸이 커졌는지라 어떻게든 뿌리까지 삼입할 수 있었다.

 

 “우윽!!”

 

 자신의 것이 아닌 다른 생물의 일부가 제 안을 가득채우는 기묘한 감각.

 아니 그 이전에 커다란 쇠몽둥이 따위로 복부를 짓누르는 것 같아 아팠다.

 

 경험이 있다고는 해도 어렸을 때 한번 뿐이니.

 아직 육체가 남녀 간의 성관계에 익숙해지지 않았다.

 

 “억! 어억! 어흐억!”

 

 지온이 허리를 흔들 때마다 샤샤의 입에서는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나왔다.

 안타깝게도 야릇한 신음소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럼애도 지온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지온을 흥분하게 하기 충분했다.

 

 주름진 질벽이 음경과 마찰할 때마다 전해져 오는 자극은 여러모로 신선하게 다가왔다.

 

 섹스가 이렇게나 기분이 좋은 거였나?

 금방이라도 정신이 날아갈 것 같았다.

 지온은 좀 더 기분이 좋아지기 위해 허리를 흗드는 와중에 앞에 있는 큼지막한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양 유방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 마냥 손가락 사이로 튀어나왔다.

 

 물론 그럴수록 사샤는 죽을 맛이었지만.

 

 -턱 턱 턱 턱

 

 치골이 부딪혔다.

 그 리듬에 따라 사샤의 몸이 흔들렸다.

 

 “스……”

 

 한참을 정신 못 차리고 있던 사샤가 입을 열었다.

 아니, 입은 전부터 계속 벌어져 있었지만 이제야 목소리를 내뱉었다.

 

 “키스…… 해…… 줘. 웁?!”

 

 지온은 대 조차 하지 않고 입을 맞췄다.

 낭만적이지 않은 개걸스러운 키스였지만, 사샤는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땀과 애액으로 침대가 흠뻑 젖어갈 무렵, 지온도 점차 한계가 찾아왔다.

 

 “크윽!”

 

 허리놀림이 점차 빨라졌다.

 사샤도 본능적으로 뭔가 일어날 것을 깨달았다.

 

 “자, 잠깐만……”

 

 지온은 사샤가 뭐라 할 새도 없이 깊숙이 양물을 찔러 넣었다.

 최대한 깊게, 자신의 씨앗을 안쪽에 흩뿌렸다.

 

 “우우……”

 

 조금 시간이 지나 사샤도 안정을 되찾았다.

 

 “너무해. 그렇게 과격하게 하고……”

 “미, 미안 나도 모르게 하다 보니까.”

 

 훌쩍 눈물을 글썽이는 사샤.

 그런 사샤를 보며 지온은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이상하게 다시금 아래쪽에 힘이 들어갔다.

 

 “……그런데 다시 한 번 해도 될까?”

 “뭐, 뭐? 방금도 많이 했잖아?”

 “……”

 

 지온이 아무 말 않고 지긋이 사샤를 바라보았다.

 

 “아, 알았어. 알았으니까!”

 

 지온은 다시 허리를 흔들었다.

 그래도 두 번째라고 나름 요령이 생긴 것일까?

 방금 전과는 달리 느리고 부드러웠다.

 

 “하아.”

 

 사샤도 나름 익숙해 졌는지 이전과는 반응이 달랐다.

 지온의 사샤의 가슴을 주무르던 와중에 다른 생각이 들었다.

 

 ‘사샤가 이렇게 몸이 작았었나?’

 

 사샤는 지온에 비가 그렇게 키가 작았던 것은 아니었다.

 기껏해야 7cm 차이.

 다만 지온 자신과 비교하면 너무나도 얄상한 팔다리와 잘록한 허리, 부드러운 살결은 너무나도 연약해 보였다.

 

 물론 객관적으로 보면 사샤는 가녀리다기 보다는 건강미 넘치는 여인이었지만, 지온 본인에게는 아니었다.

 

 ‘이렇게나 가녀린 팔로 마족들과 싸운 건가? 이렇게나 연약한 몸으로 공격을 막아내 나를 지킨 건가?’

 

 본능에 따라 육체는 여체를 탐하면서도 머릿속은 여러 생각들로 복잡해졌다.

 

 “아, 거긴……”

 

 젖가슴에 입을 맞추고 허리를 찔러 넣으며 계속 공격을 이어나갔다.

 사샤는 그저 무력하게 하나하나 공략 당할 뿐이었다.

 

 “또 갈게.”

 “으아……”

 

 아번에 지온은 아예 사샤를 끌어안으면서 그 안에 사정했다.

 

 “……사랑해 사샤.”

 

 진이 빠진 사샤의 귓가에 지온이 속삭였다.

 

 “……나도.”

 

 그 뒤로도 휴가는 비슷한 양상을 띠었다.

 지온은 남은 삼일 동안 못 해도 하루에 한 번 이상 사샤와 성교했다.

 

 때로는 욕실에서,

 때로는 온천에서.

 

 그 밖에 다른 시간에는 거리를 구경하거나 맛있는 것을 먹으러 다녔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일주일의 휴가가 끝났다.

 

 

 

&

 

 

 

 “임신이요?”

 

 사샤가 몸의 이상을 깨달은 것은 출정을 앞두기 삼일 전 부터였다.

 

 평소와는 달리 조금만 움직여도 힘들고, 왠지 모르게 입맛이 없었다.

 게다가 가끔씩 헛구역질 까지 했다

 

 독에 중독된 것은 아니었다.

 혹시나 해서 신전에 가서 검사를 받았는데, 그 결과가 예상 밖이었다.

 

 “예, 최소 3주는 된 것 같군요.”

 

 3주 전이면 여행을 갔을 때다.

 그렇게나 많이 했는데 오히려 임신을 안 한 게 이상했다.

 

 “하지만 얼마 전에 달거리를……”

 “아이가 자리 잡는 과정에 하혈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런 중요한 시국에 초보적인 실수를 하다니.

 사샤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 일은 비밀로 해주시겠어요?”

 

 적어도 전쟁이 완전히 끝나기 전까지는 이 일을 비밀로 해 둘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사샤의 노력은 출정 당일 물거품으로 끝났다.

 

 “안 돼.”

 “왜 안 된다는 거야?”

 “이미 알고 있잖아.”

 

 지온은 사샤를 원정군 명단에서 제외했다.

 

 “이미 알고 있다니? 무슨 말이야?”

 

 모른 척 시치미를 때지만 지온은 넘어가지 않았다.

 

 “……회임 한 거, 알고 있어.”

 

 순간 사샤는 말문이 막혔다.

 

 설마 신관이 이야기 했나?

 아니 그렇다기에는 지온의 얼굴이 지나치게 덤덤했다.

 마치 이미 예상했다는 듯.

 

 “……일부러 그런 거야?”

 “……”

 

 지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예전부터 거짓말은 좀처럼 하지 못 하는 사람이었다.

 

 -찰싹.

 

 사샤가 지온의 뺨을 후려쳤다.

 처음으로 지온한테 손찌검을 한 것이다.

 

 “네가,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

 

 지온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됐어. 네 허락 따위 필요없어.”

 “이번 원정군의 책임자는 나야.”

 “상관없어!!”

 

 사샤가 등을 돌려 자리를 벗어나려 하자 지온이 재빨리 손목을 낚아챘다.

 

 “네 안에 있는 건 내 아이 이기도 해.”

 “그래서?”

 “……사샤 네가 함부로 행동하게 할 수 없어.”

 “할 말은 그게 다야?”

 

 그 순간 지온이 사샤를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잠시 반항해 보려고 해봤지만 지온의 완력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사샤……”

 “이거 놔!”

 “부탁이야.”

 “놓으라고!!”

 

 사샤는 지온의 품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쳤다.

 어림도 없었다.

 

 “난 무서워. 너 마저 잃는다면…… 난 네가 없으면 안 되는데.”

 “그럼 나는? 나라고 네가 없어도 잘 먹고 살 것 같아?”

 “그래도…… 남아있는 게 있잖아?”

 “……이 애가 너를 대신할 수는 없어.”

 “대신할 수는 없더라도, 살아갈 힘이 되어 주겠지.”

 “나는……”

 

 사샤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서럽고 화나고 억울했다.

 너무나 분하고 분한데, 그걸 어떻게 해소할 방법이 없어서 계속 눈물만 흘릴 수밖에 없었다.

 

 “나쁜 놈. 나쁜 새끼, 로리콘, 소아성애자, 귀축……”

 

 사샤는 계속 울면서도 면전에서 지온을 욕했다.

 지온은 묵묵히 사샤가 하는 말들을 듣고만 있었다.

 

 그리고 그날, 원정군이 마왕성을 향해 진군했다.

 

 

 

 ***

 

 

 

 “어딜 가는 거냐?”

 

 원정군이 마왕성으로 떠난 지 삼일이 지났을 무렵, 남들 몰래 길을 떠나려던 사샤의 앞을 누군가가 막아섰다.

 

 황금 같은 금발과 벽안, 옷 위에서도 알 수 있는 육감적인 몸매 까지.

 언뜻 보면 사샤와 쌍둥이로 착각할 정도로 똑 닮은 여인이었다.

 다만 단발인 사샤와는 달리 머리가 허벅지 까지 내려올 정도로 길고 눈매가 표독스러웠다.

 

 “마스터?”

 

 검은 발톱의 마스터 루시아였다.

 

 “마스터가 왜 여기에?”

 “지금 어딜 가는 거냐 물었다.”

 “……어딜 가든 뭔 상관이야. 어차피 나는 이제 조직 사람도 아닌데.”

 

 사샤는 무시하고 루시아를 지나치려 했다.

 허나 그 전에 루시아가 먼저 사샤의 뒷목을 후려쳤다.

 

 “뭐하는 거야?”

 

 사샤는 루시아의 기습을 간단히 피해냈다.

 

 “긴 말 하지 않겠다. 떠나려면 나를 쓰러뜨리고 가라.”

 “하아? 갑자기 나타나서 뭔 소리래?”

 

 이해를 못 하겠다.

 영문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사샤는 태세를 갖추었다.

 루시아는 원래부터가 대화가 통할 상대가 아니었다.

 

 다만 암살을 시도하지 않은 것을 보면 저를 진정으로 죽이려는 것 같지는 않았다.

 

 둘은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짧은 시간에 손과 발이 얽히며 무수한 잔영들이 일었다.

 

 아무래도 뿌리가 같은 바, 둘의 기술은 공통점이 많았다.

 눈으로 쫓기 어려울 만큼 빠른 단검술을 사용하며 거침없이 급소를 노리고 잔상을 이용한 페인트를 시도했다.

 

 -카가가가가 카가각

 

 단검과 단검이 연속적으로 부딪히며 불티가 생겼다.

 

 루시아는 악명 높은 검은 발톱의 마스터.

 경험도 공격수단도 사샤보다 월등하였을 테지만, 의외로 사샤는 밀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압도했다.

 

 놀랍게도 사샤는 루시아 보다 빠르고 더 강했다.

 기술의 위력은 말할 것도 없었다.

 무엇보다 순간적인 임기응변 따위가 퍽 뛰어났다.

 

 원정을 떠난 이후 사샤는 인간 보다는 마족을 상대할 때가 더 많았으니,

 괴랄한 마족들을 상대하다 보니 여러 번 한계를 넘을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순수한 은신술이나 정면 전투에서 사샤는 루시아를 뛰어넘었다.

 

 -촤악.

 

 루시아의 옆구리가 베였다.

 위험을 느낀 그녀가 거리를 벌리려 하였으나 사샤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계속 물고 늘어졌다.

 

 단검술로는 답이 없다고 느낀 루시아는 순간 품에서 주먹만한 구체를 꺼내들었다.

 

 독연(毒煙)이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들이쉬기만 해도 위험하겠지만, 검은 발톱 출신인 사샤에게는 어지간한 독은 먹히지 않았다.

 게다가 여러 마족들과 싸우면서 독의 대한 내성은 더욱 강해졌다.

 마찬가지로 잠시 시야를 가린다고 해도 별 의미는 없었을 터였다.

 

 그럼에도 사샤는 물러섰다,

 이성적으로 한 행동이 아니라 반사적인, 아니 그보다는 본능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그 순간 드러난 짧은 빈틈.

 루시아는 놓치지 않고 공격을 시도했다.

 

 왼손에 든 단검으로 목덜미를 찌르고, 오른손에 쥔 주먹을 복부에 내질렀다.

 방어를 도외시한 일격.

 

 허나 카운터를 시도하기에도, 회피를 시도하기에도 너무 늦었다.

 거기서 평소의 사샤였다면 충분히 막아낼 수 있는 공격이었다.

 아니 그게 아니더라도 복부를 노리는 주먹은 맞아주고 단검을 튕겨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사샤는 실수를 연발했다.

 양팔로 배를 보호하며 뒤로 물러난 것이다,

 마치 제 아이를 보호하는 어미처럼.

 

 그 대가로 단검이 목에 겨누어 지고 말았지만.

 

“아……”

 

 뒤늦게 탄식을 내뱉는 사샤.

 그리고 언제나처럼 그를 무정하게 바라보는 루시아.

 

 “이제 알았나? 지금 네가 원정군을 따라가 봤자 짐만 될 뿐이다.”

 

 루시아의 말에 사샤는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인정하기 싫지만 결국 깨닫고 말았기 때문이다.

 

 “알았으면 돌아가라. 괜한 고집 부리지 말고.”

 

 할 일을 끝마친 루시아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묻고 싶은 게 있어.”

 

 사샤의 말에 루시아가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이러는 이유가 뭐야? 당신이 정말…… 내 엄마야? 늦게나마 엄마 노릇이라도 하려고?”

 “쓸데없는 걸 물어보는군.”

 

 루시아는 사샤를 돌아보지 조차 않고 말했다.

 

 “그게 중요한가?”

 “……그래, 중요하지 않지.”

 “알았으면 돌아가 발 닦고 잠이나 자거라. 과도한 움직임은 산모에게 좋지 않으니.”

 

 예상 밖의 소리에 사샤가 벙찐 표정을 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루시아는 계속 멀어져 갔다.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사샤는 변해가는 자신의 몸을 실감할 수 있었다.

 

 ‘몸이 무거워.’

 

 사샤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천하나 걸치지 않은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나올 데는 나오고 들어갈 데는 들어간 도발적인 자태가 돋보인다.

 

 그런 와중에 성인 남성의 주먹만큼 볼록 튀어나온 배.

 옷을 입으면 크게 티가 니지는 않으나, 그래도 눈썰미가 있다면 이상을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아기가 있는 건가?’

 

 제 안에 또 다른 생명이 자라나고 있다는 게 여러모로 묘한 느낌을 주었다.

 

 -똑 똑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사샤는 발소리만 듣고도 상대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들어오세요.”

 

 세상에서 사샤가 존대를 하는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다.

 시누이인 시엘이었다.

 이윽고 방으로 들어온 시엘은 사샤가 아무것도 입지 않은 것을 보며 입을 가렸다.

 

 “미안 아무것도 안 입고 있었구나?”

 “아니요, 괜찮아요, 들어오셔도 돼요.”

 “그런데 사샤가 몸매가 참 좋구나. 가슴도 크고.”

 “언니가 그렇게 말해도……”

 

 말끝을 흐리는 사샤.

 그녀 본인도 가슴이 큰 편이지만 시엘과 비교하면 한 수 접어주어야 했다.

 

 “신기하지?”

 “네?”

 “안 그래? 난 처음에 그랬거든. 생명을 잉태한다는 게 좀처럼 와 닿지가 않아서.”

 

 시엘이 제 배를 문지르며 말했다.

 사샤보다 훨씬 크게 부풀어 오른 배.

 누가 봐도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여담이지만 이미 시엘은 아이를 둘이나 낳았고, 지금은 세 번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 부분에서 사샤에게는 나름의 대선배 격이라 할 수 있으리라.

 

 “그…… 무섭지 않아요?”

 “아예 무섭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그보다는 기대가 되었던 것 같아.”

 “아아……”

 “사샤는 어때?”

 “어떠냐고 물어도…… 그냥 신경 쓰이는 게 많은 것 같아요. 생각도 좀 많아지고.”

 “그럴 거야. 게다가 지금이 상황이 상황이니까.”

 “……아이를 낳을 때 아프지는 않았어요?”

 

 아직 출산을 하려면 몇 개월을 더 지나야겠으나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 중 하나였다.

 

 “아프기는 한데, 원래 그이 게 커서 그렇게 아프지는 않았어. 여러모로 단련이 되었달까?”

 

 사샤는 예상치 못한 음담에 당황했다.

 다른 것을 다 떠나서 시엘이 그런 말을 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시엘은 고혹적인 면은 있어도 기본적으로 청순, 다정, 자애 따위가 어울리는 사람이었기에.

 

 “그, 그렇군요.”

 

 그럼 저도 괜찮겠네요.

 사샤는 뒷말을 삼켰다.

 

 “지온이 걱정되니?”

 “……언니는 걱정되지 않았나요?”

 “아크샤는 지온과는 경우가 많이 다르니까. 솔직히 반은 포기하고 있었어.”

 

 시엘의 부군인 아크샤는 대륙에서 유명한 전투광이다.

 과격하며 잔인하다.

 그래도 인간관계를 보면 인성이 그렇게 나쁜 것 같지는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의 힘이 되어주지 못 한다는 건 무척이나 괴로운 일이야. 나도 아크샤가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온 걸 보면 가슴이 철렁한 게 한 두 번이 아니니까.”

 “……지온이 저를 두고 간 건 제가 도움이 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죠?”

 “글쎄?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되지 않아. 오히려 살아 돌아올 이유를 만든 게 아닐까?”

 “네?”

 

 시엘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 한 사샤가 반문했다.

 

 “아크샤가 말했거든. 원래 자신은 단순해서 언제 죽어도 상관없다고, 그런데 나와 결혼하고 아이들이 생긴 뒤로는 반드시 살아 돌아와야 하는 이유가 생겼데.”

 “그 사람이 그런 말을 했어요?”

 “의외지? 하지만 아크샤도 알고 보면 귀여운 부분이 있으니까.”

 “……죄송한 말이지만 그 사람을 귀엽다고 하는 건 언니 밖에 없을 거에요.”

 

 사샤는 아직도 피에 굶주린 아크샤의 눈빛이 잊혀지지 않았다.

 

 “어쨌든 지온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 말씀은……?”

 “지온도 반드시 돌아와야 할 이유를 만든 거야. 전쟁에서 승리해서 마왕을 물리치는 것보다 네가 다치는 게 더 싫은 거야. 그 만큼 네가 소중한 존재니까.”

 “……”

 “지온을 믿어 사샤. 내가 아크샤를 믿는 것처럼.”

 

 사샤는 지온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친절하게 대해 준 사람.

 처음으로 응석을 받아 준 사람.

 처음으로 몸을 섞은 사람.

 처음으로 입을 맞춘 사람.

 처음으로……

 

 지온은 ‘인간’ 사샤의 시작과도 같았다.

 곁에서 본 그의 모습은 착하고 순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위해 검을 들 수 있는 용기를 지녔으며 엉뚱한 부분이 있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강했다.

 

 “언니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지온은 다시 돌아올 거예요.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양, 바보처럼 웃으며……”

 

 그 날 이후로 사샤는 미련을 완전히 접었다.

 대신 매일 아침, 신전에 나가 기도를 드렸다.

 

 마왕 같은 거 물리치지 못 해도 되니까 지온이 무사히 귀환하기를.

 선하고 고귀한 용사가 부디 보답 받을 수 있기를.

 

 그리고 남는 시간에는 한 남자의 아내이자, 배 속에 있는 아이의 엄마가 될 준비를 했다.

 

 과업을 마치고 돌아온 용사가 편안히 쉴 수 있도록.

 그의 안식처를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