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히 활과 화살을 가지고 말을 달려 노루를 쏘다가 말이 거꾸러짐으로 인하여 말에서 떨어졌으나 상하지는 않았다. 좌우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사관(史官)이 알게 하지 말라." 하였다.

태종 4년(1404) 2월 8일 4번째 기사


국왕 태종: "사관의 붓은 곧게 써야 한다. 비록 대전 밖에 있더라도 내 말을 듣지 못하겠는가?"

史筆宜直書. 雖在殿外, 豈不得聞予言?


사관 민인생: "신이 곧게 쓰지 않는다면 신의 위에 하늘이 있습니다."

臣如不直, 上有皇天.

- <태종실록>, 태종 1년(1401년) 4월 29일. 태종이 왕이 평소에 기거하는 편전까지 사관이 입시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자 이를 두고 태종이 민인생과 논쟁을 하는 기록이다.


사관(史官)이 6아일(六衙日)의 시조(視朝) 때에 입시(入侍)하라고 명령하였다. 처음에 임금이 편전(便殿)에 좌기(坐起)하였는데, 민인생(閔麟生)이 호외(戶外)에서 엿보았다. 임금이 이를 보고 좌우(左右)에게 묻기를,


"저게 어떤 사람인가?"


하니, 좌우가 대답하기를,


"사관 민인생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노하여 박석명(朴錫命)을 시켜 전명(傳命)하게 하였다.


"이제부터 사관이 날마다 예궐(詣闕)하지 말라."

- 태종 1년(1401) 7월 8일 2번째 기사 , 쉽게 말해서 일하려고 사무실 책상에 앉았더니 문밖에서 사관이 태종을 쳐다보고 있었다는 거


저거 다 민인생이라는 사관이 썼다던데


실록을 쓰려고 고위 관료만 참석할 수 있는 연회 때 몰래 따라가고, 얼굴을 가리고 태종의 사냥을 쫓아간다던가

했다는데 


뭐 결국은 

 편전입시를 허락하지 않아 휘장 안에 숨어 엿본 것이 발각나 귀양갔다지만

사관 민인생은 입시할 때를 당하여 여러 번 예(禮)를 잃어서 휘장을 걷고 엿보기까지 하였으니, 불경하기 심합니다. 원컨대 유사(攸司)로 하여금 그 직첩(職牒)을 거두고 외방에 귀양보내게 하소서.

태종 1년(1401) 7월 11일 1번째 기사


태종도 진절머리가 났는지

 민인생을 귀양 보낸지 11년이 지나도록 민인생의 험담을 했고, 

업무 보고 시간인 조계 때, 신하들이 사관을 들이자는 말에 기겁을 하고, 

민인생이 사관으로 있을 때 했던 행동들을 다시 언급하면서 

반대했다 는 이야기가 있다더라


아무튼 1명의 미친 인간이 뭔가를 만들어내는 건 맞는 거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