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형을 찾아 방문한 헌터관리과 사무실에서는 웬 남자 하나가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나는 남자를 피해 형의 자리로 다가가며 작게 속삭였다.



 "형, 저 사람 왜 저러는 거야?"



 형은 잠시 한숨을 쉬더니 입을 열었지만, 곧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옆에서 남자의 고함으로 충분한 설명이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씨발, 저번 달에 찢어죽인 괴물 새끼가 몇 마린데, 해결한 게이트가 몇 갠데, 월급이 뭐? 18원? 니들은 지금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네. 말 됩니다."



 대답한 것은 막 사무실에 들어온 안경 낀 남자였다. 막무가내인 헌터를 막지 못하고 안절부절하던 다른 사람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헌터가 남자에게 성큼성큼 걸어갔지만, 곧이어 뭔가를 설명하는 남자의 말에 헌터는 얼굴만 붉힐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조용해진 틈을 타 나는 형에게 시설의 월간 보고서 따위의 잡다한 서류를 내밀었다.



 "근데 왜 직접 왔냐? 이런 건 아무나 보내도 되는데. 그리고 너 근무 중에 자리 비우면 안 되잖아."


 "괜찮아. 지금 대타도 있고, 사육사 분들도 바쁘길래 형 얼굴도 볼 겸 내가 갔다 온다고 했지. 그리고…."



 나는 종이가방에서 작은 도시락을 꺼내서 형에게 건넸다.



 "형 보러 간다니까 엄마가 형 아직 밥 안 먹었을 거라고 주시더라."


 "뭘 또 이런 걸 다… 아니, 잠깐. 생각해보니까 너 진짜 개빠졌네. 근무시간에 집까지 갔다왔냐?"


 "아니, 뭐. 소장님이 요새 좀 바빴으니까 천천히 갔다오래서…."



 나는 머쓱해서 얼굴을 긁적였다. 시계를 보니 슬슬 돌아가야 할 때긴 했다.



 "그럼 슬슬 나…."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인사하려는데 다시 헌터가 고함을 질렀다. 형은 질린다는 표정으로 헌터를 쳐다봤다. 하필 위치가 문 근처라 나가기도 애매했다.



 "그래서 그 지랄을 했다고?"


 "네. 이미 심사 중입니다. 결격사유가 너무 확실해서 내일이면 확정될 겁니다."


 "이런 개 좆같은 새끼가…!"



 공무원이 잠깐 침묵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



 "아직도 욕이 나오시는 걸 보니 아까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를 못 하신 거 같네요.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는 이런 말을 들어도 참긴 합니다만, 보호 대상인 시민 분들은 참지 않고 민원을 넣으십니다. 그게 쌓여서 규정대로 삭감하다 보니 저번 월급이 나온 거구요. 특히 이번 달에는 시민 분에게 불필요한 신체 접촉까지 하셨지 않습니까? 그것도 구조 과정 중도 아니었고 상대가 거부 의사를 밝혔는데도 말입니다. 그 시민 분은 보복을 염려해 따로 신고를 하진 않으셨습니다만은, 저희 현장 직원이 다 목격을 하고 촬영한 뒤 보고를 올렸구요. 저는 그걸 헌터 결격사유로 판단하고 심사위원회에 올렸습니다. 여기까지인데, 이 내용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으십니까?"



 남자는 웬일인지 아무 반박도 하지 않고 눈만 꾹 감고 있었다. 얼굴은 여전히 붉었고 힘줄이 돋아있어서 여전히 화가 나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한참을 묵묵히 서 있던 남자가 천천히 말했다.



 "그러니까 뭐 다 내가 잘못해서 짤리는 거다? 맞냐?"


 "네. 잘 이해하셨습니다. A급 헌터로 남고 싶으셨으면 그에 맞는 수준을 갖추셨어야죠. 아, 그리고 이후 헌터 자격이 정지되면 당연히 월급 같은 건 없어지는 점, 소집에 정당한 사유 없이 응하지 않을 시 수배당하는 점 인지해주시길 바랍니다."


 "하…."



 끝인가? 내가 봤을 땐 저 헌터가 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화풀이 정도가 끝이지 않을까? 그 자신의 잘못이 반론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았으니까.


 사무실 안의 긴장됐던 분위기가 느슨해진 틈을 타 슬쩍 형에게 인사를 건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나는 격통과 함께 정신을 잃었다.




 ---




 "…!"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말이 나오지 않는다. 오직 고통만 느껴졌다. 감전? 폭발? 어떤 일인지는 몰라도 누가 했는지는 확실했다.


 헌터가 할 수 있는 일은 있었다. 화풀이도 맞았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안간힘을 써서 그 소리에 집중했다.



 "이 씹새끼, 진작 죽였어야 했는데."


 "…."


 "꼴 좋다, 씨발. 손 한번 털면 찌그러지는 새끼가 앵앵거리기는 존나 앵앵거려. 그러니까 뒤지는 거야."



 감각이 천천히 돌아왔다. 나는 간신히 눈을 떴다. 거기엔 바싹 타버린 시체가 있었다. 누군지 모를 수가 없었다.


 예상했는데도 눈물이 흘렀다. 알려야 한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어렵지 않다. 어쩌면 그 정도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안간힘을 써서 능력을 발동시켰다. 건물에서 나와 조금만 가면 국가직 헌터 대기실이 있다. 거기까지만 가면 된다.


 한참을 고통을 참으며 집중했다. 간신히 능력을 사용해 건물 입구로 이동했다.


 고통에 집중이 깨진 탓인지 아니면 사람을 옮기기엔 내 능력이 부족했던 것인지 좌표가 틀어졌다. 땅과 겹친 부분이 터져나갔다. 생각보다 몸이 터지는 고통은 크지 않았다. 이미 심한 고통을 겪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고통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몸이 망가진 건지는 모르겠다.


 나는 천천히 땅을 기었다. 조금만 앞으로 가면, 헌터 대기실이다. 느리지만, 꾸준하게. 계속 땅을 기었다. 그러다, 멈췄다. 팔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점점 약해지던 고통도 이젠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졸렸다. 나는 몰려오는 수마에 그대로 잠이 들었다. 희미하게 무슨 소리를 들은 것 같기도 했다.




 ---




 "하, 씨발. 안 들킬 수 있었는데. 운 더럽게 없네, 진짜."




 ---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억울한 죽음을 맞은 이는 안락한 휴식과 복수의 기회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고 한다.


 어떻게 하고 싶냐고 묻기에 복수하고 했다.


 기회는 줄 수 있지만 그를 위해선 고난을 겪어야 하는데 하겠냐고 묻기에 하겠다고 했다.


 복수의 길은 험난하지만 편안한 길도 있다며 왜 굳이 복수하려 하냐고 묻기에, 그런 사람이 살아있고 그 하는 일을 봤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냐고 했다.


 그렇다면 기회를 주겠다기에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눈을 떴다.


 실장석 33-111-47.


 그것이 내게 주어진 새로운 이름이었다.








 #2

 실장석 사육사 김 씨는 아침부터 분주하게 하루 작업을 준비했다. 다른 사육사들이 기존 실장석들을 관리하는 동안 김 씨는 새로 들어올 실장석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준비가 다 끝날 때쯤, 정문으로 트럭 한 대가 들어왔다. 김 씨는 트럭에서 내린 공장 직원 정 씨와 인사한 뒤 자실장이 든 케이지를 땅에 내렸다. 정 씨가 떠나자 김 씨는 바로 선별 작업에 들어갔다. 김 씨에겐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하루였다.




 ---




 공장에서 자실장으로 태어난 지 3일 째, 공장의 한국어 교육 과정이 끝났다. 나는 한국어를 익힐 필요가 없었기에 수업 시간 대부분을 상황을 받아들이고 내가 복수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는 데 활용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약간의 사고가 있었다. 인간의 사고를 받아들이기에 실장석의 뇌는 너무나 열등했다. 잠깐 생각을 계속한 것만으로도 내 의식은 수면 아래로 잠겨버리고, 다른 의식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실장석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었다. 실장석의 몸에 빙의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닫자 없는 소름이 돋는 느낌을 받았다.



 다행히 내가 빙의한 자실장은 상황파악이 빨랐다.


 내가 몸을 조종하는 동안의 사고를 엿본 것으로 자실장은 실장석의 처지에 대해 알게 되었고, 생존을 위한 지식을 얻기 위해 나에게 협력하게 되었다.


 내가 빙의한 실장석이 분충이었다면 협조는커녕 당장 하루하루의 생존도 힘들었을텐데, 정말로 운이 좋았다. 나는 이 자실장을 일련번호를 따 임시로 47호라고 부르기로 했다.


 교육이 끝나자 공장 직원들이 자실장들을 케이지에 가둬 트럭에 실었다. 그 뒤 한참을 달린 트럭은 나에겐 너무 익숙한 건물에 도착했다.



 "오마에는 누구인테츄? 빨리 풀어주는 테츄웅."


 "테챠앗! 감히 똥닌겐 주제에 뭘 쳐다보는테치? 죽고 싶지 않으면 똥닌겐답게 콘페이토를 바치는테치."


 "왜 풀어주지 않는테치? 오마에는 와타치를 키우고 싶지 않은테치?"



 나는 시끄러운 소리에 얼굴을 찌푸렸다. 다른 실장석들이 바깥의 사육사를 보고 난동을 피우고 있었다. 그게 죽기 딱 좋은 일인 것도 모르고. 공장에서 간단한 교육만 받은 자실장들은 아직 인간의 무서움을 알지 못했다.



 나에겐 너무 익숙한 이 곳의 정보를 떠올렸다.


 실장석 파견소.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괴수들은 가장 가까운 생명체를 노린다는 점을 이용, 공간이동 능력자가 대기하다가 게이트가 발생하면 미끼 역할인 실장석을 전송하는 곳이다.


 몇 년 전 일본 후타바 공원 거대 게이트 사태 때 실장석 덕에 민간인 희생자를 줄일 수 있었던 것을 계기로 한국에서도 실장석을 대량 수입해왔다.


 한국 도입 초창기엔 지성체를 사육하고 괴물의 먹이로 던져주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실장석은 저열한 지능과 혐오스러운 외모, 인간을 깔보는 태도를 갖추고 있었고, 실장석 파견소는 게이트 발생 후 헌터 도착까지의 시간을 벌어준다는 명분을 갖추고 있어 반대 의견은 빠르게 사라졌다.



 하지만 실장석들을 죄다 미끼로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실장석들은 파견소로 옮겨져 선별 작업을 거친다. 선별을 거치면…!



 [경고! 뇌를 과도하게 사용했습니다!]



 의식이 뒤로 밀려나며 47호의 의식과 자리를 바꿨다.



 "테챠앗…!"



 테에엥… 닌겐상…! 머리가 너무 아픈테치!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기억이 안 나는테치, 다시 알려주는테치…!



 '말해. 닌겐상에서 닌겐이 없어진다.'



 닌겐… 상?



 "상… 상…? 상, 테챠앗…!"



 [이름] 33-111-47 (신창석)


 [성장단계] 자실장


 [근력] 0.7 [맷집] 0.8 [체력] 0.5 [지능] 1.1 (12) [정신] 1.9 (28)


 [뇌가 녹아내릴 수 있습니다!]


 [당장 다음 조치를 따라하십시오.]


 [1. 크게 호흡합니다.]

 [2. 몸을 움직입니다. 행동이 크면 클수록 좋습니다.]

 [3. 통증이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반복하십시오!]



 "테에에…."



 숨을 쉬니까 조금 괜찮아진테치… 그래도 아직 아픈테치.



 '그러고 보니 분명 뇌 자체는 통증을 느끼지 못할 텐데… 아무래도 뇌 주변 조직까지 붕괴되는 것 같네.'



 텟? 와타치… 죽는테치?



 '계속 상태창의 지시를 따르면 괜찮을 거야. 안심해.'



 몸을 움직이기엔 좁은테치… 숨만 쉬어도 괜찮은테치?



 '괜찮아. 저 지시는 생각을 돌리게 하려는 거니까.'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테치… 그래도 일단 알겠는테치!



 '알겠다는 거야, 모르겠다는 거야….'




 ---




 김 씨는 케이지를 쳐다봤다.


 자실장의 키는 아무리 커봤자 고작 20cm다. 그것도 특별히 큰 개체들만 해당되는 사항이고 보통은 10cm가 평균적이었다. 수용에 그렇게 넓은 공간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자실장들을 운송할 때는 보통 납작한 케이지 여러 개를 층층이 쌓아올려 사용했다. 이번에 받은 자실장 케이지는 5층 구조에 각 층당 100마리, 총 500마리를 수용하고 있었다.


 그는 먼저 5층과 4층의 연결부를 해체한 뒤 5층을 들어 그대로 바닥으로 내렸다. 김 씨의 힘이 특별히 강해서 가능한 게 아니라 그저 자실장 100마리의 무게가 별 것 없었기 때문이었다.


 김 씨가 케이지를 열자 100마리의 자실장들이 김 씨를 둘러싸고 제각각 다른 반응을 보였다. 자신을 키워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감사를 표하는 경우는 그나마 양호한 편이었고, 대부분은 빨리 별사탕을 대령하라거나 엎드려 빌라는 등 헛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멍청한 탓인지 도망가는 개체는 하나도 없었다.



 김 씨는 말없이 팔짱을 낀 채 희생양을 물색했다.


 잠깐 사이 고약한 냄새가 나서 김 씨가 고개를 돌리니 자실장 하나가 자신의 대변을 쥐고 있었다. 반응하지 않는 김 씨를 명백한 약자로 판단하고 투분을 하려는 것이다. 멍청한 자실장들 중에서도 독보적인 지능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아래에서 따질 경우였다.


 김 씨가 묵묵히 쳐다보기만 하자, 기어코 그 자실장이 대변을 던졌고, 김 씨의 두꺼운 작업복에 정확히 명중했다.



 '신체능력은 꽤나 높은 편이지만, 참피는 살려둘 가치가 없지. 저 한 마리로 기강을 잡는다.'



 김 씨는 자실장 사이를 뚜벅뚜벅 걸어가 해당 개체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땅바닥에 내려꽂았다. 철퍽, 하는 소리가 나고는 침묵이 감돌았다. 사회인 야구를 하는 김 씨의 튼튼한 어깨는 자실장 따위는 가볍게 곤죽으로 만들 수 있었다.


 조용해진 자실장들을 보며, 김 씨는 분위기가 잡힌 것에 만족했다.



 "5열 종대… 아니지."



 김 씨가 실장석도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말했다.



 "거기 앞에 다섯. 내 앞에 서라. 나머지도 다섯 씩 모여서 뒤에 쭉 서."




 ---




 "테에엥…"


 "저렇게 되고 싶지 않은테츄…"



 머리가 좀 괜찮아졌다. 선별 작업에서 분충으로 판정받으면 돌이킬 수 없다. 다른 분충과는 다르다는 점을 보여야 한다. 47호. 만약 중간에 다시 나오면 계속 움직여야 한다. 멈추면 죽는다고 생각해.



 '힘내는테치!'




 ---




 김 씨는 자실장들에게 간단한 질문을 한 뒤 체력 테스트를 시작했다. 1차인 질문으로 자신의 일련번호도 대답하지 못하는 멍청한 자실장들을 걸러내면, 2차인 체력 테스트로는 신체능력과 상황파악 능력을 평가한다.


 첫 번째 케이지의 99마리 중 1차에서 걸러진 자실장들은 다시 케이지로 집어넣었고, 나머지 72마리는 김 씨의 지시에 따라 팔굽혀펴기, 10m 달리기 등의 간단한 운동을 시작했다.


 자실장들은 공포에 질려서든 아니면 1등을 하면 상을 받을 것이라 생각해서든 의욕적으로 운동을 계속했다… 그게 1시간 동안 반복될 때까지는.



 이제 자실장들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탈진해서 더 이상의 운동을 거부하는 자실장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드물게 운동을 계속하는 자실장들이 있었다. 김 씨는 운동하는 자실장 두 마리에게 다가가 질문했다.



 "안 힘드니?"


 "괘, 괜찮은테, 츄."


 "닌겐상의 지시인테치… 와타치는 닌겐상의 지시를 따라야 마땅한테치."



 김 씨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첫 번째 자실장을 움직이는 것은 공포였다. 자신을 보며 떨리는 몸만 봐도 바로 알 수 있었다. 반면 두 번째 자실장은 떨지 않았다. 오히려 표정에서 안도감이 느껴졌다. 마치 자신이 시험을 통과한 것을 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신체능력도 괜찮고. 정신력도 좋아. 지능은.'



 잠깐 생각하던 김 씨가 결론을 내렸다.



 '최상이다. 시험을 눈치챈 실장석은 처음이야….'



 김 씨는 두 자실장의 일련번호를 확인했다. 첫번째 자실장. 33-111-4. 두번째 자실장. 33-111-47. 김 씨는 공터 한 켠에 놓여진 낡은 종이박스를 가져왔다.



 "자. 너희 둘은 여기 들어가. 나머지, 너희는 다시 케이지로 들어간다. 실시."



 두 자실장과 달리 탈진한, 혹은 탈진한 척 하던 자실장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김 씨는 흠, 하고 다시 말했다.



 "케이지에 들어가서 얌전히 있으면 콘페이토를 나눠주려고 했는데… 뭐, 어쩔 수 없지. 내가 다 먹어야겠다."



 그 말을 듣고도 케이지에 들어가지 않는 자실장은 없었다.




 ---




 '테에에… 와타치도 콘페이토를 먹고 싶은테치…'



 저건 거짓말이야.



 '텟? 그게 무슨 말인테치?'



 저 자실장들은 분충으로 판단됐어. 사육사들은 분충에게 콘페이토를 주지 않아.



 '어째서 그런 거짓말을 하는테치…?'



 마지막 기회를 주는 거야. 정말로 운동을 열심히 해서 탈진한 경우엔 저 말을 듣고도 움직이지 못하니까.



 '이해한테치… 그런데 왜 탈진한 척을 하지 않은테치? 적당히 움직이다 계속 누워 있으면 와타치도 닌겐상도 힘들게 뛸 필요 없었지 않은테치?'



 좀 똑똑해졌구나. 그렇긴 한데, 몸을 움직이는 데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었어.



 '와타치는 잘 모르겠는테치. 궁금한테치.'



 내가 계속 생각하면 머리가 더 아플텐데?



 '텟. 그건 좀 싫은테치…'



 좀 쉬고 있어. 오늘 잘 해줬으니까.



 '그럼 좀 자고 오는테치…'



 47호의 의식이 완전히 수면 밑으로 내려갔다. 육체를 공유하다 보니 몸의 통제를 하지 못할 때도 고통이나 피로는 다 전해졌을 테니 꽤 피곤했을 것이다.


 나 또한 피곤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못 견딜 수준은 아니었다. 의식 속에서 47호가 잠들고, 옆의 4호도 완전히 지친 듯 상자에 엎어져 자는 동안 나는 사육사가 다른 자실장을 심사하는 것을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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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예전에 적어놨던 거고 아래는 설정


게이트가 열리고 마나의 영향으로 인간들이 헌터로 각성하는 상황 속에서 실장석들도 마찬가지로 각성해 인간의 말을 익힐 수 있을 정도로 진화하게 됨. 보통 실장석 창작물에서 나오는 특유의 질긴 생명력이 생긴 건 덤.


하지만 그 탓에 안 그래도 혐오생물이었던 실장석은 더욱 골칫거리가 되는데, 본문에 나오는 것처럼 후타바 공원에서 대형 게이트가 열렸을 당시 대량으로 서식하던 실장석들이 괴수들에게 사냥당하는 동안 인근 주민들이 대피해 피해를 극적으로 줄이는 일이 발생하면서 실장석에 대한 시선이 달라짐.



일본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국가에서 사육한 대량의 실장석을 주인공 같은 공간 능력자를 통해 게이트 현장으로 사출하는 식으로 운용하게 됨.


실장석들은 헌터들이 출동할 때까지의 시간을 벌기 위해 고기방패로 소모되고 따라서 특별한 훈련을 시키지는 않지만, 기초적인 선별작업에서 특출난 면모를 보이면 추가적인 전투훈련을 받음.


게이트에서 출현하는 소형 괴수들 같은 경우에는 헌터들도 처리할 수는 있지만 굉장히 번거롭기 때문에, 크기가 비슷한 실장석을 활용해 소형 괴수를 담당하게 하는 것.


물론 소형 괴수들은 훈련을 받았다 해도 실장석의 처참한 전투력으로는 쉽게 처리할 수 없는 수준이지만, 워낙 실장석들이 대량생산되고 그만큼 개념실장들도 많이 배출되는만큼 어떻게든 시간을 끌다보면 헌터들이 도우러 와서 살아남을 수 있음



생존률이 높은 편은 아니지만 계속해서 살아남아서 관록이 쌓인 실장석들은 현장에서 은퇴하고, 대신 국가 주관 투기장에 출전하게 됨


괴수들과의 스펙 차이를 고려했을 때 고기방패용으로 생산되는 실장석들은 정말 어마어마한 수를 자랑함


그렇게 많은 실장석들을 생산하고 키우는 것은 굉장히 비용이 많이 들 수밖에 없음... 그래서 국가에서는 실장석들을 키우는 비용을 투기장을 통해 충당함



투기장의 시합은 항상 전국에 생중계되며 출전하는 실장석들에게 베팅이 가능함


일련번호로 불리던 실장석들은 검투사로 첫 승리를 거두면 그제서야 이름을 얻게 됨. 이렇게 네임드가 된 실장석들이 계속 살아남아 투기장의 최고 검투사, 참피온이 되면 소원을 빌 수 있음



주인공은 저 험난한 루트를 모두 거쳐 참피온에 등극하고, 소원으로 다시 괴수들과 싸우고 싶다고 빔.


이는 주인공을 죽인 헌터와 접촉할 기회를 늘리고, 만약 접촉하게 되면 기습해 죽이기 위한 것.


그렇게 주인공은 최초의 실장석 출신 헌터가 된 동시에 검투사 실장석들 중에서 희망자를 받아 실장석들로 구성된 특임대를 꾸리게 됨.



이후 주인공은 실장석의 몸에 빙의한 뒤 처음으로 달력을 접하면서 충격적인 사실을 깨닫게 됨. 사실 주인공이 실장석이 된 날짜는 죽었던 날짜인 23년이 아니라 과거의 21년이었던 것


2년이 걸려 실장석의 몸으로 쌓을 수 있는 최대한의 힘과 지위를 얻은 주인공은 곧 인간 시절의 자신이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는 것을 깨닫게 됨.


주인공은 잠시 자신의 죽음을 막으면 현재의 자신은 어떻게 되는지 고민하지만 애초에 그 폐급 헌터를 잡으러 온 것이기 때문에 결국 복잡한 심경으로 결전을 준비하게 됨.



사건 발생 당일, 주인공은 거주지역을 이탈한 뒤 막 모두를 죽이려던 헌터를 현장에서 막아섬. 주인공은 그동안 많이 강해졌지만 결국 사람과 실장석의 격차는 컸고 고전을 면치 못함.


그때 주인공과 같은 처지의 피해자들이 등장해서 빈틈을 만들어냄. 길고양이, 비둘기 따위의 조력으로 만들어낸 틈으로, 주인공은 숨기고 있던 비장의 한 수, 인간 시절부터 사용할 수 있던 공간 능력을 사용해 비수를 헌터의 심장에 꽂아넣음.


실장석 쪽에 있던 주인공의 인격은 그 자리에서 흐릿해지다가 인간 쪽의 인격으로 합쳐지고, 주인공이 성장시켜둔 실장석은 국가 직속 헌터들이 체포하러 올 때까지 얌전히 앉아서 기다림.



실장석이 a급 헌터를 죽인 것이 논란이 됐지만 참피온 출신인 데다가 실장석 특임대장으로 활동하며 수많은 인명을 구했던 것, 또한 헌터가 현장의 모두를 죽이려 했다는 것을 당사자들이 일관적으로 진술한 점 등을 감안해 실장석은 처벌받지 않는 것으로 마무리됨.


이후 실장석은 인간으로 돌아온 주인공이 입양해 사육실장으로 살게 됨. 주인공은 실장석 시절 전투에 익숙해지고 마지막 일격을 위해 공간 능력을 갈고 닦다가 굉장한 성취를 얻어 무려 a급 헌터로 재조정, 사육실장과 함께 현장에서 활약하게 되는 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