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a5ND5gJRjNI



에이스 컴뱃 시리즈.


하늘에서 춤추듯 영국에 내려온, 정체불명의 작가가 집필한 sf 작품이다.


sf라고 해도 은하계의 대전쟁이나, 하다못해 얼마 전에 나온 우주전쟁 마냥 외계인이 침공하는 건 아니다.


분명 미래적인 무기를 타고 미래적인 전쟁을 벌이지만, 아주 먼 미래는 아닌 시대.


그런 1995년의 미래를 다룬 에이스 컴뱃 벨칸 워에서 다뤄진 전쟁의 참상은, 그런만큼 현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더욱 와닿는 바가 있었다.


사람이 살고, 죽는 인간들의 이야기였다.




초강대국 벨카는 과도한 확장에 따른 행정비용, 군비 지출을 감당하지 못해 경제가 파탄난다.


결국 자신들의 영토를 내다 판다는 극단적인 개혁을 감행했음에도 벨카의 경제는 무엇 하나 나아지는 것이 없었고 파탄을 향해 나아간다.


호전되지 않는 경제로 인해 국가 상황은 더더욱 혼란스럽게 돌아가게 되는데, 자신들이 팔아치웠던 영토인 우스티오에서 대량의 광맥이 발견되었지 뭔가.


그리하여 벨카는 그들의 독립은 외세의 개입에 의한 것이었다 우기면서 전쟁을 개시한다.


바야흐로 대전쟁의 시작이었다.


만약 작가가 에이스 컴뱃을 30년 전 정도에 집필했더라면 '아무리 소설이라도 저런 이야기가 말이 되느냐'는 핀잔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을 겪어본 독자들은 이 전쟁의 현실성을 지적할 수가 없었다.


충분히 가능해보인다.


하여튼, 그 이후로 벌어지는 전쟁의 모습은 이야기가 거듭해나갈수록 더욱 어둡고 음울해진다.


연합군이 벨카의 공업 능력을 제거하기 위한 '전략폭격'으로 공장지대의 민간인을 죽여대면서 이야기는 절정에 다다른다.


이 역시 지난 대전쟁에서 독일 제국의 비행선 폭격을 당해본 런던 시민들에게는 와닿는 이야기였다.


언젠가는, 정말로 런던의 하늘 위에서 적들이 폭격을 퍼붓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민간인 학살조차도 이 광기의 끝은 아니었다.




적군의 진격을 막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벨카는 자국의 영토에 '최종병기'를 7발이나 떨어뜨린다.



국가의 존재의의 그 자체를 근본으로 부정하는 전쟁범죄였다.



그리하여 국가의 존재 그 자체에 회의감을 품은 주인공의 동료 픽시는 전장에서 이탈한다.



그리고는 이 비틀린 세상을 0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며, 최종병기의 발사로 전 세계의 국경을 물리적으로 없애버리려 한다.



독자들이 보기에도 '저걸 어떻게 이기냐' 싶은 절망감을 줄 정도로 압도적인 전투기, '모르간'


그러나 사이퍼는 언제나 그렇듯이, 적이 얼마나 강하냐고 묻지 않는다.


적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을 뿐.


거기에 픽시 또한 마지막까지 자신의 정의를 확신하지 못한다.


정말 인류사를 0부터 시작할 작정이라면 굳이 사이퍼와 정면 대결을 벌일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했다.



마치 중세 기사들의 마상창시합을 연상시키는 명장면이다.


최후의 결전 끝에 인류의 종말을 막아낸 사이퍼.


소설의 끝에서 사실 인터뷰를 하던 화자가 그의 동료 픽시라는 것이 드러난다.




Yo, Buddy. Still Alive?




독자들은 모두 울었다.


이 명장면에서 울지 않으면 어찌 사내대장부라 할 수 있으랴.


하여튼, 그렇게 인류의 멸망을 막아낸 것 까지는 좋았는데 '에이스 컴뱃'의 지구에선 그 이후로도 전쟁이 끊이지를 않는다.


에이스 컴뱃 시리즈는 누가 정의이고 악인가를 다루지 않는다.


하지만 그 시시비비는 현실에 존재하는 이들에게 충분한 논쟁의 여지를 주었다.


'벨카가 자국 영토에 최종병기를 떨어뜨린 것은 정당한가...'


'난민을 강제로 수용당한 에루지아야말로 불쌍한 쪽이 아닐까...'


뭐 이런 것들.


이런 논쟁이야말로 작가의 의도하신 바일 것 같지만, 소설을 읽는 모두가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와! 개쩌는 미래 전투기!'


'와! 전략폭격!'


이렇게 전혀 엉뚱한 쪽에 영감을 받은 이들이 나타난 것이다.


동네 아이들은 에이스 컴뱃에 나오는 미래 전투기 모형을 들고 공터를 뛰돌며 명장면을 따라한다.


에이스 컴뱃의 출시 이후, 영국 꼬맹이들의 장래희망 1위는 파일럿이 되었다...


아무래도 사이퍼와 픽시가 벌인 최후의 결전에서 기사도 뽕을 너무 얻어맞았나 보다.


뭐, 작품의 의도는 해석하는 독자의 몫에도 달렸다고 하니까.


* * *



에이스 컴뱃 시리즈가 전간기에 나왔으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궁금하더라.


아나키즘 공산주의 파시즘 셋 다 여기 저기서 뭐라뭐라 떠들 것 같기는 한데.


특히 에이스 컴뱃 제로는 전간기 독자들한태 큰 충격을 주고도 남을 것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