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진무학관 동급 교관인 백문성은 모처럼의 휴식시간에 자신에게 질문하러 온 관도에게 시선을 옮겼다.


최근들어 이어진 격무에서 잠깐이나마 해방되어 손에 넣은 꿀같은 휴식시간을 방해받는 것에 조금 짜증난건 어쩔수 없었다. 


"간만에 교관님께서 쉬고있는데 우리 기특한 관도님이 방해를 하시는군."


"하하... 죄송합니다. 대신 제가 식사를 한번 대접해드리죠."


"관도를 돕는것이 교관의 의무지. 그래 무엇이 궁금한가?"


동급 무관 관도, 선진은 며칠 전부터 느낀 위화감에 대한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저쪽에 말입니다."


말하면서 슬며시 고개를 돌려 어느 한곳을 바라보는 선진.


"...?"


따라서 고개를 돌리는데.



쉭- 쉭- 쉭- 쉭-

후욱! 후욱! 후욱! 후욱!


시선 끝에 자리잡은건 연무장 한구석에서 검을 들고 내려베기를 반복하고 있는 청년이다.


"적용백 관도? 적 관도가 왜?"


"저도 본래는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냥 참 열심히 하는 친구구나 싶었죠. 그런데 근래 들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스윽-


백무성이 다소 늘어져있던 자세를 바로잡았다.


"무슨 생각이 바뀌었지?"


"사실 생각이라고 하는건 좀 애매하군요. 그렇지. 느낌입니다. 그동안은 다른 관도들하고 별다를 바 없었는데 요새 갑자기 적 관도가 수련하는 모습 때 보이는 느낌이 달라졌습니다.

보고 있자면 속에서 무언가 솟아오르는 느낌이라 해야될까요. 처음에는 호승심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여지껏 제가 느껴왔던 호승심과도 확연히 다른 감각이라 그건 아니었죠. 게다가 적 관도는..."


"선 관도. 자네가 진무학관에 입관한지 두달 째였던가?"


백문성은 선진의 말을 자르며 대뜸 물었다.


"예? 입관한지 이제 곧 두달이긴 합니다."


"...역시 타고났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백문성은 무슨 생각에 잠긴건지 눈알을 또르르 굴리다 말을 이었다.


"자네가 나에게 이 문제에 대해 물은 이유는 내가 교관으로 있으면서 적 관도를 오래 보아왔으니 뭔가 알거라 생각해서겠지."


"바로 맞히셨습니다. 사실 백 교관님께서는 어째서 동급 교관으로 계신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출중하시지 않습니까. 제가 보지못한 다른 것을 보셨을거라 생각합니다."


"변한건 적 관도가 아니네."


"적 관도가 변한 것이 아니라면."


"적 관도는 입관했던 3년 전부터 늘 한결같았지. 변한건 자네쪽이라 할수 있어."


"제가 말씀입니까?"


"자네는 재능이 있어.  그것도 보통 수준이 아니야. 간신히 이류나 될 법했던 놈이 입관한지 두달도 안되서 곧 은급 관도로 승급이 예정되어 있지 않나? 하위 경지에선 성장이 빠르다지만 정상적인 속도가 아니지. 특히 일류로 넘어가는 구간부터는 더욱."


선진은 백 교관이 말하고자 하는 저의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제가 경지가 높아지면서 보는 눈이 달라졌다는 뜻입니까?"


"반은 맞고 반은 틀렸네. 경지가 높아지면 얻을 수 있는 것이긴 하지만 이제 일류에 진입하는 수준에선 얻을 수 없는 것이야. 보통은."


백문성은 다시 고개를 돌려 적용백이란 관도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런 상식을 우습게 부수고 세상 위에 올라서는 작자들이 있지. 흔히 말해 천재라고들 하지 않나."


선진은 슬쩍슬쩍 말을 돌리는 듯한 교관의 태도에 조금 답답함을 느꼈다.


"그래서 제가, 무엇이 변한 것입니까?"


씨익-


백문성은 곁눈으로 선진을 흘기면서 슬쩍 웃더니,


"아직 겉핥기에 불과하지만 선 관도 자네는 상대의 '의'를 읽을 수 있게 된것 같네.  고작 일류의 문턱에 걸친 주제에."


"의...?"


" 단순히 말하자면 뜻 이고. 생각? 감정? 의도? 설명하기 어렵군. 굳이 정의하자면 마음에서부터 나오는 일종의 파동이지. 경지에 이른 고수들은 서로의 의를 통찰하며 겨룬다고 어디서 들어본 적 없나?"


"제가 상대의 감정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고요?"


"엄밀히 말해서 그런 것과는 달라. 의라는건, 그런세간에서 말하는 개념이 아닌 좀더 원시적이고 근원적인 것이라네. 사실 직접 겪어보면 뭐가 다른가 싶은데, 이 이상은 땡중 말코들하고 지지고 볶아봐야 알수 있는 문제라 그냥 그런가 하고 넘어가는게 좋아."


선진은 백문성의 설명에도 혼란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백문성도 이를 눈치챘는 지,


"이제 일류로 넘어가나 싶은 시점에선 너무 이른 영역. 신경 써봐야 자네 수련에 독만 될꺼니까 그냥 느껴지면 느껴지는대로 둬. 자네정도 재능이면 자연스럽게 해결될꺼니까."


"...예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자네도 자네지만 적 관도도 어지간하지 않다고 생각 안드나?"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생각을 해봐. 이제 의를 통찰하는 경지 초입에서 서성거리는 자네가 느낄 정도라면 적 관도가 발산하는 의가 얼마나 강렬하단 뜻이겠나?"


"!"


그러고 보니 그렇다. 다른 사람들에게선 느껴지지 않는데 적용백을 보고있자면 일순 속이 울렁거릴 정도이지 않은가.


백문성의 눈이 반달모양으로 휘더니 선진의 어깨에 손을 턱 언졌다.


"경지에 오른 축하의 의미로 살짝 알려줘 볼까. 지금 적 관도가 내비치고 있는 의는... 긍정적인 것이로군."


"긍정적..."


"다른 의도 좀 보이는것 같은데 제일 큰건 어쨌든 그거야. 자세한건 적 관도에게 직접 물어보지 그러나? 자네에게도 나쁜 이야기는 아닐꺼고."


선진은 망설일 수 밖에 없었다. 적용백과는 가벼운 대화만 주고받았던 사이라 이런 이야기를 물어봐도 될지 판단이 서질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물었다.


"백 교관님. 적용백 관도는 어떤 사람입니까?"


교관에게서 정보를 얻는다면 말을 붙히기 더 용이하리라.


"음... 미친놈?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래."


"..."


도움은 안됐다.


"그럼 말씀하신대로 한번 적용백 관도와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만간 운해루에서 뵙죠."


그렇게 걸음을 돌리는데.


"선 관도."


"예?"


"진무학관을 졸업하고 나서는 어찌할껀가?"


"벌써 그런 것을 고민하기엔 이른 것 같습니다만. 그렇군요. 그때쯤 되면 저도 많이 강해졌을테니 유람이나 다니면서 일단 즐길까 합니다. 그간 노력에 대한 보상으로."


"...그렇구나. 나쁘지 않은 생각이다."


왜일까. 일순간 백문성의 눈빛이 가라앉은 듯 했다. 선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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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욱- 후욱- 후욱-"


호흡을 고른다.


쉭- 쉭- 쉭-


들어올리고 벤다.


근육의 수축과 이완이 느껴진다.


눈은 내려베는 검로에 흔들림은 없는지 쫓는다.


완전히 내려벤 순간 손아귀에서 전해지는 진동을 오롯이 음미한다.


그러면서도 직전의 내려베기와 도달한 위치가 같은지 가늠한다.


동시에 하체의 움직임은 조화로웠는지 판단한다.


적용백은 단순한 내려베기를 하면서도 많은 것을 생각하고 있다.


좀더.  좀더.  좀더.


좀더 정확히 할수 있을 것인데.


좀더 빠르게 할수 있을 것인데.


좀더 선명한 감각이 있을 터인데.


보이지 않는 앞을 더듬는 듯한 심정으로 정성스레 내려벤다. 


그리고 내려벨 때마다 느낀다.


이건 정말-


"...?"


적용백은 시선을 느꼈다.


고개를 돌리자 약간 엉거주춤한 자세를 하고있는 청년이 보인다.


볼때마다 느끼는거지만 참 편안한 느낌을 주는 인상이다.


선진 또한 적용백을 보았다.


분명 깔끔하게 빗어넘겼을 머리는  산발이 된지 오래고.


회색 무복은 땀에 얼마나 절었는지 잿빛으로 보일 지경이다.


검을 쥐고 있는 손은 짐승가죽 같다. 도대체 굳은살이 몇번이나 터지고 다시 박혔을까.


신발은 또 어떠한가.


발목이 움직이는 각도에 맞춰 가죽이 주름지다 못해 찢어질 듯하다. 모르긴 몰라도 밑창도 수명이 다해가고 있을 것이다.


선진은 문득 백 교관이 뭔놈의 무복하고 신발을 이리 자주 해처먹냐고 투덜거렸던 일이 생각났다.


아마 대부분의 수요가 적용백이겠지.


어쨌든 그런 거지꼴을 하고 있지만.


'눈.'


'의'인지 뭔지하는 것을 읽는 경지에 걸치고 눈을 마주보니 알겠다.


그의 눈에는 빛이 담겨있음을.


투지로 불타는 안광과는 다른 종류다.


굳건한 의지? 그것과도 다르다.


겉으로 보이는 평범한 흑색 동공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빛을 마주하자.


씨익-


"뭐야? 볼일 있어?"


"...!"


선진은 자신이 왜 웃었는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뭐가 기뻐서 웃었단 말인가?


'기쁘다고?'


그에 대한 생각이 이어지던 찰나였다.


"볼일 없으면 마저 수련해도 될까? 구경하는건 괜찮은데. 조금 신경은 쓰이겠지만 그것 나름대로 의미가 있겠네."


"아. 수련을 방해하려던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잠시 물어볼 것이 있어서 말을 걸까 하려던게 그만.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니 나중에 물어도 괜찮습니다."


적용백은 왼손으로 산발이 된 머리 벅벅 긁었다.


머리를 긁으니 떨어지는 땀이 물보라를 연상케 한다.


"뭐. 잠깐 쉬는 것도 좋지. 뭐가 궁금한데?"


"그게."


"아 맞다! 너 이번에 은급 무관으로 승급한다며? 캬- 좋겠다 야! 입관한지 두달만에 은급? 동료로서 자랑하고 다녀도 되지?"


"어... 괜찮습니다."


'확실히 보통 사람하곤 거리가 있는게 맞는거 같다.'


선진은 백 교관이 내린 적용백에 대한 평가에 동의하진 않지만 맞는 부분도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자 이제 물어봐!"


이쪽으로 오면서 뭐라 말을 열어야 좋을지 몇번이고 생각했다. 그렇게 정한 말을 꺼냈다.


"적 관도는 수련할 때 어떻습니까?"


"엥. 그게 무슨 소리야."


질문 자체가 두루뭉술 하다. 뭘 묻고 싶은지 알기 어렵다.

"그것이... 좀 달라보여서 말입니다.  다른 관도들과 적 관도를 비교했을 때 확실히 차별되는 느낌이 있었거든요."


덛붙힌 말을 들어도 아리송하다.


'나도 질문이 애매하다는걸 알지만 내가 느끼고 있는  것 자체가 애매해서 어쩔 수 없어.'


선진이 의를 통찰하는 경지에 재대로 오른것도 아닌지라 질문하는 본인도 혼란스러웠다.


적용백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선진을 빤히 응시했다.


'기분이 나빠진 것인가.'


자신이라도 당황스러울 수 있겠다 싶었다.


"너는 어떤데?"


"저요?"


근 반 시진 남짓한 시간동안 되묻는 것을 몇번이나 하는지 모르겠다고 선진은 생각했다. 자신도 몰랐던 버릇인 모양이다.


"힘들지만 보람되죠. 강해지는 감각은 제 삶에서 손꼽히는 원동력 입니다. 그리고 이리 수련하고나서 강호에 나가 유람을 하며 그에 대한 보상이 따라올거라 생각할 때면 근육통도 순간 잊는답니다."



"음. 그렇구나. 하긴 다른 사람들도 비슷비슷하긴 하지. 강해지는게 좋다. 출세할거다. 협객으로 이름을 날리고 싶다. 복수를 할거다. 소중한 사람들을 지킬거다. 가문을 부흥시킬거다. 약속을 지킬거다 등등."


선진은 적용백이 나열한 말들이 어디가 비슷비슷하다는건지 알수 없었다.


적용백은 자신이 나열한 말을 되새기는 듯 고개를 슬쩍 기울이더니 이윽고 끄덕였다.


"네가 뭘 말하고 싶은지 알거 같네."


선진은 가만히 들었다. 자신도 정확히 모르는 자신의 궁금점을 적용백이 깨달았단 말인가?


"말하기 전에 물어볼게. 너 무공이 좋냐?"


"예? 좋죠 당연히."


사실 자신의 목표를 이루는데 굳이 무의 길을 걷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그럼에도 정천맹 소속 진무학관에 입관한 것은 무공이 좋았기 때문이다.


운이 좋게도 재능도 있었다.


"넌 강해지는게 좋다고 했지. 그럼 술법 같은건 어때? 술법도 강해지는 길이잖냐."


"술법이라. 물론 그것도 방법이겠습다만 애초에 술법은 입문 자체도 철저히 사람을 가리는데다가 술법사회 자체도 굉장히 폐쇄적이잖습니까. 그리고 전 무공이 좋습니다. 취향 같은거죠."


"그럼 만약 술법을 익힐 기회가 있다면? 거기다 재능도 무공보다 월등하다면?"


"그렇다면.으음. 술법 입문을 고민해볼지도요."


"그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꺼야.결국 무공을 선택할 사람들도 고민을 하겠지."


선진은.


"그런데 난 아냐."


적용백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알것만 같았다. 


"굳이 술법이 아니더라도 목표를 이루기 위한 다른 좋은 방법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은 눈길을 줄테지만 나한테는-"


아아.  그런거였구나.


"무공이 전부야."


그래서 그의 눈을 보았을 때 웃었던것 이구나.


"무공을 익힌다는 것 자체가 너무 좋은데?"


왜냐면


"내게 무공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거든."


이리도 즐거워하는데 어찌 옆에 있는 사람 또한 즐겁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군요. 그래서 였어요. 그런데... 아,아닙니다."


선진은 이 말을 꺼내면 안된다는걸 깨달았다.


그에게 너무 상처가 되기 때문이다.


"재능도 없으면서 어떻게 이리 즐거워 할수 있냐는거지?"


"...!"


선진은 제 속마음을 들킨것 같아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선진도 바보가 아니니 안다. 동급 무관에 입관한 이후 주위 관도들이 자신을 어떠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는지.


질투심. 열등감.


다른 관도들도 그랬는데 적용백은 자신을 보며 심정이 어땠을까?


적용백에 대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역대급 재능. 물론 안좋은 쪽으로.


원숭이를 입관시켜도 2년이면 졸업한다는 동급 무관에서 3년 넘게 붙어있으며 연일 기록갱신 중인 지박령.


그런 와중에 지독히도 수련하는 무공광.


앞서 백문성과 이야기 할때 중간에 말이 잘려서 이야기하지 못한 호승심이 아니라 판단한 이유.


명백히 하수인 상대에게 호승심을 느끼는 사람은 없다.

그것을 떠올리자 안그래도 붉어진 선진의 얼굴이 터질듯 달아올랐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사람이 무언가를 하는데 기쁨과 보람을 느끼는 요소는 무엇인가?


성취감이다.


선진 자신만해도 그렇다. 하루하루 강해지며 달라지는 자신이 좋아서 안그래도 흥미있던 무공에 더욱 애착을 가지지 않았던가.


그런데 들어가는 노력은 한가득인데 결과가 없다면?


무가 삶의 일부라 자신하는 기라성같은 고수들이 어째서 심마에 빠지나?


벽에 막혀 나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벽을 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여도 벽이 자신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선진은 약관도 전에 절정경에 올랐다던 제갈세가의 소가주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해 망나니마냥 살고 있다던 소문도 들은 적 있다.


성취감은 그만큼 중대사항인 것이다.


"무공이란게 말이야. 난 꽤 친절하다고 생각한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선진은 이제 적용백의 말에 지대한 흥미까지 생기는게 느껴졌다.


"봐봐. 방금 말했던 술법 같은건 재능을 타고나지 않으면 입문조차 안되잖아? 그런데 무공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누구든 길을 걸을수 있게 되어있어. 왜 불문에서 그러지 않냐. 모두의 마음 속에는 저마다의 부처가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면 무 라는건 부처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어때? 그럴 듯하지?"  


선진은 이런 생각도 있을 수 있구나 싶으면서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선천적으로 내공을 익히지 못하게 태어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런 경우는 무공을 익히지 못하는것 아닙니까?"


적용백은 짜게 식은 눈빛으로 선진을 바라봤다.


"무라는게 내공이 있어야만 성립하는거라고 생각하냐?"


"그럼 아닙니까?"


"무는 삶의 일부라는 강호의 격언이 괜히 생긴게 아니라고 이 몸께선 생각한다.그리고 나도 아직은 잘 모르지만 소림사에서 높은 분이 그러셨다더라. 빗자루로 마당쓰는 것도 무고, 부처님 설법을 되새기며 절하는 것도 무라고."


"그게 무슨?"


"나도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린가 싶은데 소림사잖냐 소림사!  우리가 아직 깨닫지 못한 높은 무리가 있는거겠지! 우리 수준으로 단순하게 생각하면 외공도 무잖아!"


"음...예에..."


"쯧.  이야기가 샜네. 아무튼 내가 재능도 쥐뿔 없으면서 무공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공을 익히다보면 무공이 내게 말을 거는 것처럼 느껴져. 내 삶 속 행동 하나하나 모두가 무와 소통하면서 나를 이루는 듯한 감각 느껴  본적 있어? 너도 그걸 느낀다면 날 이해할텐데!"


"...적 관도는 저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뭐? 너를 보고? 설마 열등감 말하는건가? 없다고하면 그건 거짓말이겠지만 그런 하찮은 감정에 내 정신을 소모하기엔 내 무를 추구하는 것만으로도 바빠서 말이야."

선진은 백문성 교관이 어째서 적용백을 미친... 그리 평가했는지 알것 같았다.


하지만 하나만은 확실하다.


'적 관도는 무에 한없이 진심이구나.'


순수하게 이리 무에 자신을 내던지는 사람은 앞으로도 만날 일이 없을 것이라 선진은 생각했다.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적 관도.  정말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정말로요. 앞으로 저 선진. 은급 무관을 넘어서 금급 성급 그리고 강호무림에 나가서도 당신이 한 말을 마음에 새기고 잊지 않을 것 입니다."


"어? 어 그래라..?"


적용백은 갑작스런 선진의 의지의 선언에 당황한 듯 했다.


"그럼 이만."


선진은 발걸음을 돌리며 생각했다.


'난 무에 얼마나 진심이었지?'


결코 장난은 아니었다. 나름 진지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의식 한켠에선.


'가볍게... 생각했나?'


쉭- 쉭-


뒷쪽에서 다시 검을 휘두르는 소리가 들린다.


'적 관도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도.'


적용백은 무 자체가 목적인 사람이었다. 
무를 수단으로 여기는 자신이 결코 흉내낼 수 없는.


'다시 시작한다는 느낌으로 간다.'


한 천재가 그리 마음 먹었다. 무에 대한 자세를 다시 잡은 천재가 어디까지 해낼지는 알기 어려웠다.


아니.


그 누구도 알수 없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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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익-


'달라졌어!'


적용백의 안색에 희색이 어렸다.


"흐흐흐흐..! 내려베기 수련 3달 보름만에 나아졌다!"


물론 그 차이는 자신만이 알 수 있을 정도로 미묘한 것이었지만 앞으로 더 나아갔다는게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그래. 이렇게 나아간다면 이류 중입에 도달하는거도 언젠가-"


그렇게 싱글벙글 할때 였다.


"어이. 적 관도."


"음? 뭐야?"


고개를 돌리자 백문성 교관이 벽에 기대고 나를 쳐다보고 있다.


"엇! 백 교관님! 마침 잘 왔어요! 특별히 한발짝 더 나아간 제 검을 처음으로 견식할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대련 한판 땡기죠?"


"큽. 한발짝은 무슨. 반의 반발짝도 안되겠구만. 대련은 나중에 하고, 손님이 찾아오셨다. 널 보자시더군."


"엥? 손님?"


적용백은 의문을 표할 수 밖에 없었다. 인간관계라곤 모래보다 마른 자신인데 누가 찾아온단 말인가.


"잔말 말고 따라오도록. 너한테도 나쁜 이야기는 아닐꺼다."


"으음 교관님. 항상 생각하던건데 다른 관도한테는 자네라고 존칭하시면서 왜 저한테는"


"꼬우면 니가 나 이기던가."


적용백은 인상을 구기면서도 얌전히 백문성의 뒤를 따랐다.


동급 무관 응접실.


얼굴의 반을 가릴 정도로 거대한 삿갓을 쓴 사람이 차를 마시며 앉아있다.


드르륵-


"데려왔습니다."


적용백은 응접실에 자리 차지하고 앉아있는 인간을 보며 감상을 떠올렸다.


'뭔 실내인데도 삿갓을 눌러쓰고 있냐. 탈모인가?'


그 순간 삿갓인이 입을 열었다.


"뭔가 불순한 생각을 하는군."


"그런 적 없는데요."


내심 찔렸다. 하지만 들켰을거라 생각치는 않았다. 자신의 표정관리는 완벽했다.


"얼굴만 굳히면 다 인줄 아나본데, 네 '의'가  너무티나서 모른 척 하기도 어렵다."


"의? 의가 뭔데요?"


"앞으로 네가 내게서 배울 것 정도로만 알아두도록."


삿갓인이 삿갓을 벗었다.


드러난 용모는 꽤나 빼어났다.


'워~ 잘생겼는데~? 나랑 몇 살 차이도 안 날것 같은데. 아니지. 나보다 어린가?'


그때 옆에서 잠자코 있던 백문성 교관이 말했다.


"인사드려라.  앞으로 네 사부가 되어주실 분이다."


"예?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다짜고짜 사부로 모시라 하면은 저도 곤란한데요?"


"나는."


단지 두 글자만 말했을 뿐인데.


거부할 수 없는 존재감이 뇌에 때려박혔다.


저 사람의 말을 어쨌든 귀담아 들어야한다는 생각이 솟구쳤다.


"무종의 길을 추구하는 자."


"무종...? 무의 끝?"


무의 끝이라니. 그런 광오한 말을 입에 담을 수 있단 말인가? 천하제일인도 그런 말은 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더없이 어울리는 말이라고 적용백은 생각했다.


"무의 끝이 존재하는지는 나로서도 알수 없다. 다만 그를 추구할 뿐. 그런 의지의 표명이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거야.'


"이 길을 걸으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이 영역에 다다르는 것에 재능은 그리 중요치 않다는 걸."


적용백은 뻔히 듣고 있으면서도 눈 앞의 남자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알아듣기 어려웠다.


남자의 말에서부터 나오는 어떠한 존재감이 적용백을 에워쌌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무에 자신의 삶을 모두 바칠 자세가 되었는가."


남자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더니 응접실 밖으로 나가 버렸다.


백문성 교관이 응접실 창문을 열었다.


방금 나간 남자가 소리도 없이 창밖 공터에 서있다.


"그런 의미에서 너는 합격이다."


남자가 수도를 세워 위로 들어올렸다.


그 순간부터 적용백은 온몸에 전율이 이는 것을 느꼈다. 아무런 기운도 압박감도 없거늘 저 수도가 하늘의 천벌이라도 되는 양 옴짝달짝 할수 없이 시선만 그곳에 집중되었다.


이윽고, 내리쳤다.


'...신 인가?'

일순간, 그리 보였다.

그리고 적용백은 보았다. 자신의 주마등을. 코흘리개 어린 시절부터 무에 빠져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그 장면은 몸만 자란 채 변하지 않았다.

'참으로 단조롭네 내 삶도. 하지만 멋지잖아.'

적용백은 자신도 모르게 감았던 눈을 떴다. 체감상 2시진은 지난 것 같은데.


"촌각도 흐르지 않았다."


"그런것 같네요."

"무엇을 보았나."

"제 삶을 요."

"어떠한 삶이었지?"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던데요. 하지만 제 맘에 들었습니다."

히죽.

남자가 슬쩍 웃었다.

"훌륭하다."

히죽.

적용백도 웃었다.

"날 따라오겠는가?"

"어디든지요."

정천맹 소속 진무학관 동급 지박령 적용백.

그는 그렇게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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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소재로 쓰려했는데 쓰다보니 질질 늘어져서 단편 비스무리하게 되었음.


손가는대로 무뇌입력 하다보니 본래 계획은 적용백을 주인공으로 쓰는거였는데 쓰고보니 선진이 주인공 같이 됨.

밤새도록 뭐한다고 썼는 지 모르겠다.

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