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허공에 돈을 흩뿌리며 깊은 코스피의 바다로 도망치고 있다.

온 세상이 푸른 것이 과연 바다 같았다.

푸르기만 한 기둥 사이로 줄줄 뿜어져 나오는 황금은 눈에 선명하게 띄었다.

그 마법사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방증이었다.


"김상용 씨."


그림자처럼 마법사의 뒤를 쫓아오고 있는 흑복의 사내를 향해 마법사는 마법을 시전했다.

뇌물계열 마법 중에서 가장 파괴력이 높은 사과상자 였다.

흔히 만원 단위로 시전되는 친척들과 달리 그의 마법은 특별했다.

여인의 모습이 일렁거리는 황금빛 마나. 족히 파괴력이 5배는 되었다.


하지만 흑복의 사내는 그 <아랫것의 자그마한 성의> 간지럽다는 듯이 부수고 나왔다.

막은 흔적도 회피한 흔적도 없이, 그저 마법이 실체를 잃고 사라진 것만 같았다.


"김상용 씨. 이만 도주를 멈추시지요."


"비타이오 오배쿠스!"


"선생. 제가 쌍팔년도 교통관리국인줄 아십니까. 그런 저질스러운 마법으로 감히 사법에 도전하실 생각이었습니까. 같잖군요."


그는 그림자 속에서 날카로운 검을 한자루 벼려내었다.

법복파의 서슬퍼런 검에선 무궁화 향이 났다.

그는 그저 허공을 노리는 듯 가볍게 날을 털어냈지만 그 결과는 절대 가볍지 않았다.


온통 푸르게 물든 주식의 파동마저 이 어수룩한 마법사를 비웃는 것 같았다.

그가 온 지혜와 자금을 짜내 시도한 최후의 공격은 그의 빈궁한 계좌와 함께 난도질 당했다.

쿨럭, 내상을 입은 마법사가 마지막까지 남겨두었던 귀금속을 토해냈다.


"돈이 모이질 않는 군..."


"그렇겠지요. 분명. 방금의 공격으로 당신의 모든 계좌는 정지되었습니다. 자본을 휘두르지 못하는 마법사라니, 차라리 닭이 자유롭겠군요 하하."


칠흑의 검사는 자조하듯이 웃었다. 허나 웃음이라고 판단할 만한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그는 마치 법전의 어느 구절을 낭독하듯이 무기질적으로 웃음을 암송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말과 정신과 따로 노는 듯한 얼굴을 움직여 웃음 모양으로 찡그렸다.


"그 알량한 자금을 믿고 날뛰고 다니니 자신이 무엇이라도 된 줄 아셨습니까."


"마도를 모욕하는 건가. 대마를 위해 그물까지 희생하는 너희가?"


"오. 토론입니까. 그거 좋아합니다. 그런데 토론자의 태도가 영 싸가지가 없군요."


순간 그림자의 그림자가 사라졌다.

죽어가는 마법사가 다시 초점을 찾았을 때, 그것은 이미 그이 머리를 짓니기고 있었다.

소리와 충격파 치고는 온건한 단죄의 손길이 마법사의 안면을 일그러뜨렸다.


"마법사는."


쾅! 코가 부서졌다.


"법망을!"


쾅! 입술이 폭발했다.


"피해가는 존재입니다!"


쾅! 눈 한쪽이 망가졌다.


"간신히 도망친 것들이, 꼭 자기가 잘나서 심판이 피해갔다고 착각하지 말란 말입니다!!!"


간신히 얼굴의 형상을 한 가면이 금이 갈 정도로 깨어지면서 빛을 발했다.

발광하는 그림자는 애써 그 조각을 그러모으며 마법사를 발로 날려버렸다.

퍽! 하고 고기와 구분할 수 없게 된 빈털털이가 날아갔다.


"잘 가시지요 김상용 씨. 부디 내세에는 당신의 망상처럼 회장급 마법사가 되시길 빌겠습니다." 


검사는 칠흑의 그림자를 높게 치켜들고 바닥을 구르는 돼지고기를 향해 치켜들었다.

곧 엮어넣을 만한 모든 법률이 법치의 인도 아래 정렬하고.

시간과 운명의 도움이 있다면 법 만드는 자들조차 파멸시킬 수 있는 심판이 완성되었다.


"입법과 사법과 행정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피고 김상용의 이름은 이 땅에서 영원토록 저주를 받으리라. 너는 묵비권을 행사할 수 없었으며 변호사도 고용할 수 없었다. 죄인에게 오직 심판이 있기를."


거대한 천상의 망치가 빛의 형상으로 피고를 겨누었다.

사위가 고요하고 시장의 개미들조차 숨을 죽이고 법의 철퇴가 꽃히느 순간을 감상했다.

이곳에는 유인원도 개미도 큰손도 보이지 않는 손도 없었다.

오직 죄만이 있을 뿐.


그러나 얼굴이 다 망가진 마법사는 웃었다.

그의 손에는 글리치로 반짝거리는 어떤 동전이 하나 쥐여저 있었다.

팅! 검지와 중지가 경련하듯이 마직막 마법사의 숨결을 튕겨올렸다.

그리고 그 최후의 도박은 떡상으로 돌아왔다.


"후우. 너무 불안정한 힘이군."


"코인으로 심판을 막을 줄 알았더냐!!!"


"여기서는 무리겠지. 하지만... 도망칠 힘은 될거야."


검사가 미처 법전을 완성하기도 전에, 상용은 어떤 자본도 살아남을 수 없는 깊고 깊은 심연으로 몸을 던졌다.

아뿔사. 그곳은 접경이었다.

먼 옛날 붉은 사제들이 일으킨 대규모 적마법에 의해 모든 생산수단이 봉인된 그곳에는 어떤 이능도 통하지 않았다.

오직 깊은 벙커의 왕들이 다스리는 땅. 동토. 솔방울이 수류탄이 되는 땅... 알지 못하는 곳.


검사는 그림자 집행검을 내려놓고 한숨을 쉬었다.


"미친 놈."


오늘따라 저 깊은 심연이 유독 깊고 어두워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