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x/x/456] 에뒤트

"흐으응. 기사님. 내가 괜찮은 식당을 아는데. 어때?"


지나가다가 남자 열 명중 다섯은 돌아볼만큼 아름다운 여자 모험가, 에뒤트가 언제나와같은 암시를 던졌다.


물론이지만 나, 아니.

우리가 내놓은 대답은 같았다.


"일은 끝났으니 이만 꺼져라."

'푸르르륵. 맙소사. 이 인간 암컷은 질리지도 않고! 빨리 돌아가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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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오늘도 차였구만. 니콜라님. 받으쇼."

[♂/45/6/x/1139]

"착한 내기 언제나 고마워. 오늘 뒤퐁에게 줄 선물에 보태야겠군."

[♀/21/3/x/x/456]

"이 망할 자식들이 누구의 뭐를 내기 대상으로 삼는 거야!!!"


"못말리겠군. 이틀 뒤에 길드에서 보도록하지."


대답은 듣지 않고 에뒤트가 난입해 파티원인 니콜라 장 드 를루라르, 가엘을 습격하는 틈을 타 난 육중한 갑옷이 무색하도록 소리없이 기척을 죽여 소란에서 빠져나왔다.


'맙소사. 내 코. 내 뿔. 제발. 골목에서 잠시 숨 좀 돌리자꾸나.'

"어련하시겠습니까."


마음 속에서 들려오는 대사에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며 난 오늘도 내가 대체 왜 이런 세상에, 아니.


하필 왜 이런 판타지 세계에 떨어졌는지 소리없이 한탄했다.


그리스인지 로마인지에서 왔다는 유니콘 구리상에 흠집을 낸 탓일까? 아니면 평소부터 지긋지긋한 밑바닥 생활에 질려 아무도 모르는 판타지 소설같은 세상에 환생하고 싶다 매일 밤 소원을 빈 탓일까.


어쨌거나 나는 환생했다.


판타지 세계에 그것도 나름 금수저라고 할 수 있는 기사 가문의 자식으로. 삼남이라는 패널티가 있긴 했지만 어쨌든.


내가 태어난 나라는 랑칼리아 왕국으로 중세-근대 프랑스 느낌이 물씬 나는 왕국이었다.


그리고 랑칼리아 왕국은 주변 왕국들과는 다르게 매우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여기 이 골목으로 들어가자꾸나.'

"평소와는 다른 골목 아닙니까?"

'지금 거긴 더러운 바람둥이들이 얽힌 냄새가 나.'

"알겠습니다."


나는 마음 속의 목소리. 유니콘이 말하는 골목으로 들어가기 전 눈 앞의 시장을 둘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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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가까히 있던 일꾼, 상인, 용병의 머리 위에 떠오른 암호갓은 숫자암기표에 질끈 감고 골목으로 들어가 벽에 머리를 박았다.


카드드득-!


전신갑주의 투구 부분에 장식된 유니콘 뿔이 벽에 박혔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기사 가문의 삼남으로 환생했다는 나름의 패널티를 갖추고는 있었지만, 크게 걱정은 없었다.


'푸르륵, 푸르륵. 오늘은 여기서 숨 좀 돌리자꾸나.'


환생하고 나서부터 들려온 마음 속의 목소리.

이렇게 말하면 뭐하지만 상상의 친구 보다는 나름의 특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경기를 일으키며 푸륵푸륵거리는 존재의 이름은 오귀스트.


내 몸에 깃든 유니콘의 영혼이다.


덤으로 내가 어지간한 몬스터와도 맨손으로 드잡이질 할 수 있게 해주는 상시 발동형 특전에 딸린 보이스웨어같은 느낌이기도 하고.


처음에는 난데없는 불청객에 만성 두통이 일어날 만큼 머릿속으로 치고 박고 싸웠지만, 우리는 금새 세상에 둘도 없는 우정을 나눌 수 있었다.


다름아닌 우리가 태어난 랑칼리아 왕국의 끔찍하고 개탄스러운 문화...바람기 때문이다.


중세 느낌이 나는 판타지 세상 답게 현대 만큼의 문화 수준은 당연히 기대하지 않았건만 이 랑칼리아 왕국의 끔찍한 바람기는 전생에도 없던 내 마음 속의 유교 드래곤이 각성하는 계기가 될 정도였다.


건물 외벽에 뿔을 박아넣은 채 나는 청동 거울을 꺼냈다.

언제나처럼 변하지 않는 표가 머리 위에 보였다.


[♂/0/0/o/x/0]


당연하겠지만 오귀스트 때문에 내 머리 위에도 표는 보였다. 무슨 표냐고?


[성별, 만난 이성 수, 동성 수, 처녀막or동정 유무, 결혼 유무, 성교를 나눈 횟수]


이것만으로도 눈치가 빠른 사람은 내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랑칼리아 왕국의 개탄스러운 현실을 알아 차렸을 것이다.


그렇다.


랑칼리아 왕국은 바람기가 심해도 너무 심했다.


처음에는 이 세상 자체가 다 그런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유독 여타 국가들 중 랑칼리아의 문화가 독특한 것 뿐이었다.


그야말로 동물의 왕국이 떠오를 만큼 치정의 불장난으로 왕부터 동네 거지에 이르기까지 성별을 가리지 않고...않고....


"갑자기 열불나네 씨바아아아알!"

'뭣, 자네 갑자기 뭔-'


쾅!


와르르르르-!!!


무심코 한 박치기에 뿔을 박아넣었던 벽이 무너졌다.


그 너머에서 한창 식사를 진행중이던 일가족....


[♂/4/8/x/o/445] [♀/6/x/o/320] [♂/0/3/x/x/9]


잠시 눈 앞을 가리고 있던 끔찍한 현실과 배상금으로부터 도망쳤다.


다만 랑칼리아 왕국에서 딱 하나 본받을 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전 국가를 뒤져서 그 어디에도 사생아만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피임을 철저히 한다는 기대는 하지 말라.


여기는 랑칼리아 왕국. 이른바 동물의 왕국이다.


바람을 피워서 생긴 자식은 여자쪽 부부가 책임을 진다.


그 때문에 누가 임신이라도 했다면 가능한 빨리 결혼을 하는 것이 전통문화처럼 자리잡았다고나 할까. 아직도 난 잘 모르겠다.


주변 국가에서는 대놓고 짐승 소굴, 동물의 왕국이라고 욕하지만 랑칼리아 사람들은 당당하게 몰래 하는 너네들보다는 낫다고 받아치는 상황이니 원 참.


어쨌거나 나도, 유니콘 지박령-


'누가 지박령이라는 거냐!'


시끄럽고. 아무튼 오귀스트도 그닥 큰 것을 바라지는 않았다. 그냥, 딱 일부일처든 일부다처든 일처다부든간에 동성결혼이든간에 바람을 피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이건 욕심이겠지.


'난, 그냥 딱 네놈이 바람을 피지 않고 한 사람과 지고지순한 순애 결혼과 충실한 연애 및 가정 생활을 보냈으면 하는 구나.'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이 빌어먹을 동물의 왕국에선 불가능하겠지.'

"그리고 전 당장은 이 나라를 나갈 수 없지요."

'이런 씹-'


어쨌거나 독립한 이후 적당한 반고정 파티를 구해 기사로서는 드물게 모험자 생활을 이어가는 나날을 보던 중 도시 지하의 카타콤과 이어진 하수구에 자리잡은 혐오체의 토벌 의뢰를 받았다.


평소였다면 하수구는 거들떠보지도 않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금수저라고 해도 삼남은 돈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우리는 이 나라에서 전혀 기대하지 않던 충격적인 것을 목도했다.


[45/21/x/x/1449]

"흐흐흐, 고귀하신 분께서 어쩌다 이런 하수구까지 들어오셨을까."

[19/0/x/x/587]

"햐, 얘들어 저 망토 밑으로 보이는 곱디 고운 피부좀 봐라."


대사만으로도 범죄 냄새가 물씬 풍기는 불량배도, 칼을 할짝이는 범죄자도 아니고, 그들에 의해 하수구에 몸을 뉘인 모험가들도 아니다.


[0/0/x/x/0]

"크으으윽! 제발! 누군가 도와주세요! 동료들이!"

[39/0/x/x/403]

"하하하! 형님. 저 말좀 들어보십쇼!"

[45/21/x/x/1449]

"하 씨발, 꼴리게 만드네."


천사를 목도했다.


그리고 천사는 위험에 처해 있었다.


"찢어 발겨서 개먹이로 만들어주마!!!!"

'찢어 발겨서 개먹이로 만들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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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중세-근현대 프랑스를 뛰어넘는 동물의 왕국같은 판타지 국가 배경.

평범하다면 평범하고 특별하다면 특별한 순수한 사랑을 원하는 환생자

모든 욕심을 버리고 제발 그 순애를 보고싶은 유니콘(특전)

원하지 않는 결혼과 동경하던 모험에 가출한 왕국의 공주님


과 동료들의 우당탕탕 모험 이야기 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