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


창문도 없는 작은 방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는 헤븐. 온갖 해괴한 연구들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 그가, 지금 이렇게 누워 있어야만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내가 그걸... 어휴."


자신이 저질렀던 하나의 실책을 생각하며, 옆으로 돌아눕는 헤븐 박사. 무슨 일을 했던 것일까?


 


지금으로부터 약 열 몇시간 전, 흑타냥에게 전해주었던 물건이, 또 개지랄발작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전달받은 박사.


"...이번엔 대체 또 뭐가 문제인거야?"


자리에서 일어나, 오랜만에 현장을 보기 위해 블루 아이즈의 숙소로 향하는 헤븐. 허나, 점점 숙소 부근으로 다가갈수록, 불길한 기운과 더불어, 무언가가 심히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는 박사. 괜히 발걸음만 빨라진다.


"아니... 아니 씨발??? 이게 다 무슨 개지랄이람?"


(끼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블루 아이즈, 특히 흑타냥의 숙소 천장을 뚫고 솟아난 거대한 식물 괴수가, 오색빛깔 개다래를 마구 던져대며 괴성을 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아? 설마...?"


옛 기억을 곰곰히 되짚어보는 그. 헤븐 박사는, 흑타냥을 비롯한 다른 블루 아이즈들에게, 이번에야말로 품종 개량에 성공했다고 자신만만하게 선언하며, 작은 개다래나무 화분을 하나 건네준 것을 기억해냈다.


'이번엔 진짜로 믿어보라니깐? 더 이상 사건사고는 없을거라고! 시제품이지만 아주 안정적이니까, 쓰고 후기좀 남겨줘. 오케이?'


'...믿어도 되냐 진짜? ...하아... 그래,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다?'


"어라? ...설마... 괜찮은 나무들 중에 아무거나 골라서 줬는데... 가챠 실패했나 설마?"


어찌 되었든, 헤븐 박사가 건네준 발명품이 또, 또또, 이젠 당연하다는 듯이 또 개좆지랄발작염병발광을 일으킨 상황. 심지어, 뿌리 부근에서 덩쿨 줄기가 하나 더 솟아오르더니, 화장실과 물탱크를 향해 그 짙푸른 녹음을 뻗치기 시작했다.


"콜록! 콜록콜록! 아이고 이게 무슨냄새야? 설마 저 식물... 자기 알아서 물과 거름을 찾는 것인가? ...역시 내 발명품!"


(끼야아아아아아악! 께에에에에에에엑!)


"...이게 아닌가?"


(쐐액-!)


"...응?"


(턱-!)


"...개다래구나? 노랑 개다래? 흠... 신선하군!"


(끼에에에에엑!)


(투-!)


"...오매 씨부럴! 개다래 사이클론이다!"


"여기 있었냐! 이 개씨발놈아!"


분노에 찬 으르렁거리는 소리에, 뒤를 황급히 돌아온 헤븐, 그의 뒤엔, 격렬한 분노로 온 몸의 털이 곤두선 흑타냥이, 콧김을 식식거리며 서 있었다.


"오, 흑타냥? ...왜그래? 뭐 있어?"


"...뭐 있냐고?! 이...! 이 씨발 개새끼야!!! 이번엔 또 뭘 줬길래 나무가 또 개지랄을 하는데!!! 내 집 어쩔거냐고!!! 캬아아아아아아아악!!!!!"


"...형... 제 집도... 제... 제가 자는 곳이..."


망연한 표정으로 괴식물의 덩쿨줄기에 의해 아작나는 집을 보던 백타냥도, 원망 한 스푼 섞인 목소리로 헤븐을 올려다보며 간신히 말을 이어갔다.


 


"흠흠! 이쪽도 봐주시겠나?"


"...마몬? 자넨 왜..."


"왜긴 왜겠나, 흑슬리네 집도 박살이 나서 한동안 내게 신세를 져야 하니까 그렇지. ...비단 흑슬리네 집 뿐만이 아닌걸?"


"...설마..."


무언가 터벅터벅 힘주어 걸어오는 소리에 옆을 바라보는 헤븐, 그 옆에는...


"헤븐! 이게 어떻게 된 건데! 해명해!"


"이런 씨발! 나 옛날 성질 올라오게 만드냐?!"


백타마와 백슬리가 무기를 들고 나오며 이를 갈고 있었고, 나머지 블루 아이즈는 전투를 이어가며 식물을 최대한 제압하고 있었고, 화를 내던 백타마와 백슬리, 그리고 쌍타냥 커플과 마몬까지 그 괴식물 레이드에 합류했다.


"...오우. 장관이 따로 없는데?"


그리고, 좆됐음을 감지했지만, 아직 실감이 나질 않는 헤븐이었다.


 


(우우웅-! 파앗-!)


(끄륵?! 끼야아아아악!!!)


"빻수야! 묶어뒀어! 지금이야!"


"...이거나 쳐먹어라!"


(쉬익-! 콰광-!)


(키야아아아아아아아아악-! 크륵... 크르륵...)


(쿵-!)


"...허억... 허억... 겨우... 조졌네... 고마워... 백타마..."


"...으응... 고생했어... 우리 황수... 아... 지금 다리에 힘이..."


"...후우... 백타냥, 다친 덴 없어?"


"...집이 다쳤어요..."


지쳐 주저앉아있던 블루 아이즈 사이에서, 흑타냥이 벌떡 일어나더니, 날카로운 검을 뽑아들고, 그를 돌아봤다.


"...헤븐!!!!! 이 개 씨발새끼야아아아아---!!!!!"


버럭 소리를 지르며 깊은 빡침으로 몸을 떠는 흑타냥. 그때, 그녀를 막아서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심정은 이해하지만, 흑타냥. 대원들 간의 물리적 충돌은 금지다. 너도 잘 알텐데?"


평소보다 한없이 진중하고, 또 무거운 목소리. 고개를 돌린 그녀의 눈엔, 한없이 차가운, 그리고 무표정한 모습의 단장 냥붕이가 서 있었다.


"알아. 근데 뭐...! 그렇다고 해서 우리 숙소 건물 하나를 통째로 날려먹은 새끼를 지금...!"


"..."


"...하아... 알았어. 씨발..."


천천히, 그러나 한 걸음 한 걸음, 힘을 담아 걸어오며, 전례없는 위엄과 무게를 보이는 냥붕이. 잔뜩 열이 뻗쳐 있던 흑타냥도, 괜히 그 모습에 고개를 돌렸다.


"...아비스 본 헤븐 박사."


"..."


"대답."


"...예... 단장..."


"듣기로는 자네가 개량한 품종이라고 들었다. 사실인가?"


"...사실...인데..."


"이렇게 될 것을, 조금이라도 몰랐나?"


"..."


"몰랐다면 무능의 극치고, 알았다면 살인미수다.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무시하지 말자고,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나?"


"...그...랬지..."


"...더 할 말은 있나?"


"...죄송...합니다... 수리비는..."


"전액을 네가 부담하겠지. 그리고 징계위원회... 아니, 거기까지 갈 것도 없군. 당분간 근신해라. 헤븐. 많이 봐주고 봐줘서 일주일이야."


"...무슨... 근신?"


"그래. 근신. 한동안 조용히 지내라. 아니, 딱 24시간이라도 좋으니까. 제발 가만히, 그리고 조용히 있어. 물론, 너의 노고를 모르는 건 아니다. 시간 역행 장치, 차원 항법장치 안정화 등, 너의 공이 혁혁했지, 하지만, 이번 것은 우리 냥코 군단에 아주 심각한 손해를 끼쳤다. ...지금 상황 속에선, 누군가가 다칠 수 있었고, 최악의 경우, 죽을 뻔 하기도 했겠지."


"..."


"잘못을 시인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겠다. 헤븐. ...얌전히, 그리고 조용히 지내도록. 듣자하니, 비상시를 대비해 만든 벙커... 아마 방공호같은 시설이 있다고 들었다. 맞나?"


"...맞는데..."


"그럼 거기로 가라. 아무도 만나지 마. 밖도 보지 말고, 햇빛도 볼 생각 마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24시간만 그러고 있어."


하루, 하루의 시간이다. 그 동안, 철저히 고립되어야만 하는 헤븐.


"...이 시점부터, 24시간은 밖에 나올 생각은 하지도 마. 그리고 나머지 6일은 팀원들하고만 지내라. ...만약 그때 또 사고 터지면, 평생 그 방공호에 가둬놓고 군만두만 먹이면서 공돌이로 굴릴거니까, 알아서 하라고."


"...네에... 후..."


"이해했으면 가봐라. 헤븐. ...하아... 이 염병할... 어디부터 어떻게 뜯어고쳐야 하지...? 몇 개가 박살이 난거야?"


"...단장님... 저 어디서 자요...?"


"...후우... 그러게 말이다... 흑타마는 내 방에서 재우면 되는데... 나머지는..."


"...으아아아아악! 개 씨 발---!!!!!"


흑타냥의 비명소리를 뒤로 하고, 머리를 긁적이며 돌아가는 헤븐. 덤덤히 자신의 잘못을 받아들이고, 속죄하기 위해 자신이 만들어둔 방공호같은 독방으로 향했다.


"이게 여기서 이렇게 운빨 억까를 당하네... 쩝... 미안해서 어쩌나 애들... 아, 시발 이번 던파 패키지사려고 돈 왕창 모아놓은거 다 털어야겠네... 어휴..."


이게 과학자인지 방구석 백수인지 도저히 구별이 안갈 정도였지만, 뭐... 어찌 되었든, 근신에 들어가는 헤븐 박사였다고.


 


그리고 다시, 현재.


"...심심해 뒤지겠네. 뭐 할거 없나..."


24시간.


일주일엔 7일이나, 일년엔 365일씩이나 존재하는 하루, 24시간, 1440분, 86400초, 짧다면 짧고, 길다면 한없이 긴 시간. 하루.


"...진짜 할거 없구먼."


권태의 늪에 빠진 기분이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남다른 호기심의 소유자인, 태생이 연구자인 헤븐 박사에게, 이와 같은 처벌 -즉,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시간을 땅바닥에 버리는 행위- 는 그에겐 너무나도 강한 처벌이었고, 냥붕이는 그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하아..."


가만히 누워, 머릿속으로 이것저것을 생각해보는 박사.


"...나는 무엇인가? 왜 연구를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가?"


이 땅을 밟고 살아가는, 철학적이고 냉철한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하나의 지적 생명체로서, 그것은 꽤나 본질적인 질문이었다.


"내가 누구인가, 무엇인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가야만 하는가? 아니, 애초에 내가 무엇이라고 간단하게 정의될 수 있나?"


마치 미친 사람처럼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헤븐. 전후 사정을 모르는 누군가가 봤다면, '레전드 레어' 유닛들의 힘의 근원인 4차원 크리스탈의 힘에 완전히 잠식된, 미쳐버린 과학자로밖에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이 되고자 하는가, 아니, 내가 무엇일 필요가 있는가? ...있지. 당연하지. 내 모든 동료들..."


몇 시간 전만 해도 자신에 의해 목숨을 잃을 뻔 한 이들에게, 뻔뻔하게 동료라니,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헤븐은, 조금 침울한 듯, 말을 다시 집어삼켰다. 혼잣말조차도, 그런 혼잣말은 용납할 수 없었다.


"...이토록 과학적으로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음에도, 언제까지고 끝없이 번민하는 것이 내 운명인가. ...과학을 숭상하는 과학자이자 의사인 내가, 운명을 믿는다는 것이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운명... 운명은 실제로 존재하는가? 바꿀 수 있는가?"


(스윽...)


헤븐은, 누워있던 바닥에서 몸을 일으켰다. 곧 그는, 덩그러니 놓여진 책상의 앞으로 다가가, 그 자리에 착석했다.


"...아직 쓸만한 샤프펜이 남아있군. ...종이도 있군. 왜 이걸 가져다 놓았던거지?"


오랜만에 잡아보는 펜. 모든 것을 디지털화하고, 편의성만을 추구하며 구시대의 잔재들을 배척하던 그가, 그토록 구시대적이라는 아날로그식 필기구인 샤프 펜슬을 잡고,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빛이 바래 누르스름한 종이 위에 글을 쓰고 있었다. 아날로그가 주는, 아이러니였다.


"...흠."


(스윽... 슥... 스슥...)


'나는 병적인 탐구자다. 지식에 미친 광인이며, 매드 사이언티스트이다. 좀처럼 호감을 사는 방법도 모르고, 딱히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다. 아무래도 내 머릿속이 어딘가 다른 이들과는 다른 까닭일 것이다. 전두엽이라도 아픈 것일까. 의사이자 과학자라는 작자가 내 머릿속에 대해서 아는 게 하나도 없다니. 아니, 애초에 내가 이상한지조차도 모르겠다.'


두서없이 써내려간 글. 곱씹을수록 어딘가 답답해지는 자신의 마음처럼, 점점 악필로 변해가는 글씨체는 뒤로 갈수록 내용을 알아보기 힘들어지고 있었다.


"...젠장."


(스윽-! 슥...스슥...슥...)


대충 샤프 펜슬로 필기한 내용을 문질러버리는 헤븐. 하지만, 얇디 얇은 샤프펜으로 글자를 문지르는 것으로 그것들을 잊으려는 행동은, 마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 만큼이나 부질없는 짓이었다.


"...이게 맞나..."


(슥... 스슥...)


'화창하고도 쌀쌀한 1월의 어느 날, 시계는 1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건 너무 1984 대놓고 배낀거잖아. ...잠깐, 애초에 지금 뭐하냐고 헤븐! 대체 뭘 하고 싶은건데! 과학 때려치고 글이라도 쓰겠다는거냐! 니새끼 주제에 소설가들을 흉내내?!"


종이를 집어 거칠게 구기며, 한쪽 벽으로 던져버리는 헤븐. 심란해진 마음을 가라앉히고자 시작한 글쓰기였으나, 좀처럼 그의 마음엔 안정이라는 녀석이 찾아오질 않았다. 부잣집의 곱게 자란 규수보다도 더 비싸게 구는 것 같은 녀석이었다.


(스륵... 촤악-)


새 종이를 꺼내며, 한탄을 이어가는 헤븐.


"...하아... 애초에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는거지?"


(스윽... 스륵...슥...)


'불행은 저마다의 얼굴이 있다.'


"...나의 불행은 어떻게 생겼지? ...불행한가? 아니잖아. 난... 아닌가, 불행한가. ...그렇진 않아. 내겐 수많은 친구들, 그리고 든든한 투자자들이 있는걸. ...그런데, 무조건적으로 행복하다고 말하긴 그렇군."


(스슥... 스르륵... 슥...)


'나는 음해당했다. 끌어내려졌다. 필요 이상의 비난을 받았다. 특별히 나쁜 짓도 하지 않았는데, 느닷없이 이런 꼴이라니.'


"..."


자신이 써놓은 종이의 글을 내려다보던 헤븐. 그는, 곧 세차게 고개를 휘젓더니 종이를 잡고 마구잡이로 찢어버리는 것이었다.


"...한심하긴! 도망이나 치는 거냐! 음해당하다니! 비난이라니! 너 때문에 친구들이 다칠 뻔 했다고!"


허공에 휘날리는 누르스름한 종이의 파편. 거친 숨소리와 흩날리는 종잇조각의 조화는, 마치 정신병원에 수감된 광인이 제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마구 미쳐날뛰는 모습이었다. 이성도, 냉철함도, 탐구하는 천재 과학자의 모습도, 그 어느 무엇 하나도,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풀썩-!)


"...하아..."


(촤악...)


힘없이 종이 한 장을 더 뽑아 내려놓는 헤븐. 펜을 굴려, 이런 글을 적어냈다.


'오늘, 내 양심이 드디어 뒤져버렸다.'


"...풋..."


'어쩌면 오늘이 아니고 어제, 그제... 아니, 애초에 흑타냥에게 그 미친 생물재해에 가까운 개다래나무를 안전하답시고 줬을 때 뒤져버렸으려나.'


"...알긴 아네. 미친놈..."


마치 종이에 글을 쓰는 자아와, 그 글을 읽고 대꾸하는 자아가 나뉘기라도 한 듯, 혼잣말을 하며 대화 아닌 대화를 해나가는 헤븐. 지금 자신이 미치기라도 한 것인가, 하는 착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흠."


(스윽... 스슥... 스윽...슥...)


무어라 종이에 글을 적는 박사. 그리고, 연극 대본을 받은 배우처럼, 소리내어 그 문장을 읽어본다.


"오오, 헤븐, 불쌍한 헤븐, 무려 양심이라는 것이 뒤져버리고 말다니, 가장 어두운 날의 등대보다도 밝은 빛을 뿜어내주는 그 소중하고 진귀한 것을 잃어버리다니! 가여운 사람아. 어쩌다 그리 되었느냐?"


"...풉...크큭..."


연극 배우라도 된 듯, 감정을 담아 자신이 쓴 글을 읽고, 어이없음과 수치스러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며, 의자에 걸터앉은 채로 하늘을 바라보며 허망한 웃음을 지어내는 헤븐.


"...내가 드디어 미쳤나보다? 크하하하! ...하아..."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자신의 이토록 초라한 모습에 웃음이 나는 헤븐. 멍하니 이것저것이 적힌 종이를 바라보다가, 깨끗한 뒷장을 펼쳐본다. 그리고, 그 자리에 무언가를 적어내기 시작한다.


'나는 나약하다.'


"..."


그것으로는 한참 부족하다는 듯, 무언가를 더 두서없이 적는 헤븐.


'그리고 겁쟁이다.'


'지혜로운 현인을 자처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정돈되지 않은 자질구레한 상념에 잠겨 산다.'


'미래라는 배에서 튕겨져 나와, 초라하기 그지없는 찢어진 돛과 망가진 돛대를 달고, 희망이라는 이름의 닳아빠진 노를 갖고 표류하는 조난자이이다.'


'매일 밤, 홀로 남아 밤거리를 장식하는 불빛들을 원망스레 바라보는 외톨이에 불과하다. 게다가, 그 불쾌하고 원망스러운 감정이 온 몸을 휘감아 나를 무자비하게 강간할지라도, 그저 그것을 방관할 뿐인 얼간이이다.'


'그렇게 나는, 매일 밤,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지배되어, 슬퍼하며, 괴로워하며, 외로워하며, 모두가 거니는 밤거리를 그저 조용히 지켜볼 뿐이다. 친구들이 온다 할지라도, 그것은 단지 그때뿐. 벗들이 돌아가고, 다시 밤이 찾아오면, 뼈에 사무치는 고독함과 외로움, 그리고 우울함에 시달리며, 독한 술을 위안 삼아, 그 술기운의 힘을 빌어, 고독하고 차디찬 밤으로부터 도피하는 나날이 반복되는 것 뿐이다.'


"...하아..."


대체 어쩌다가 여기까지 다다른 것인지 감도 잡히지 않는 헤븐. 다시 종이를 잡아, 마구잡이로 구겨버리며, 이미 종이가 수북히 쌓인 벽을 향해 던져버린다.


"...뭐...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군. ...모르겠다고? 네 마음 속을? 아니면 다른 무엇을? ...대체 뭘 하고 싶은거냐? 헤븐."




(끼익...)


그리고, 책상 앞에서 일어나는 헤븐. 앉아도 보고, 누워도 봤다. 눈을 감고 양도 세 보았고, 꿈 속의 양떼 무리를 해치려는 늑대에게 기계팔을 휘둘러보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책상 앞으로 돌아와 앉았다.


"..."


(촤악...)


"...왜 다시 앉은거지?"


멍하니 샤프를 굴리던 헤븐은, 세 가지 단어를 순서대로 적어보았다.


'낙타, 사자, 아이.'


"...나는 무엇인가."


니체는, 사람을 세 가지 유형으로 정의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인가. 자유의지를 상실하고 운명과 고통을 받아들이는 낙타인가, 고통을 거부하며 투쟁하며 괴로워하는 사자인가, 슬픔도, 근심도, 괴로움도, 모두...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삶을 있는 그대로 즐기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인가.


"...나는..."


잠시 무언가를 곰곰히 고민해나가던 헤븐.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났다. 마치 죽은 것처럼 보일 정도로, 눈을 감고 명상하며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헤븐. 그리고 마침내, 무언가에 대한 깨달음에 근접하기라도 한 듯, 옅은 미소를 지으며 눈을 뜨는, 헤븐 박사였다.


"...그래. 나는..."


'나는 미련하다.'


"...풋..."


'나는 미련하고, 우둔하다. 걱정이 많고, 매사에 실수가 일상인, 지극히, 너무나 우둔한 인간이다. 죽음과 그 뒤의 세상에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하나의 낭만처럼 생각하는, 무지하고 한심한 얼간이에 불과하다. 하루 하루, 매일같이, 낡아빠진 잔에 고독을 가득 채워 마시며, 쓸쓸한 바닥 위에서, 지독하게 차디찬 외로움을 끝없이 반추하는, 미련하고도 우둔한, 그렇기에 한편으로는 안쓰러운, 참으로 미련하기 그지없는 나약한 인간이다.'


담담히 무언가를 적어내려가는 헤븐. 그리고 곧이어, 그는 결의에 찬 표정으로 글을 적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극복해야 한다. 미련하고 나약한 나 자신을 부정하지 않고, 삶을 긍정해나가며 나의 가치를 새로이 만들어가야 한다. 기존의 기득권과 강자들이 정한 사회의 규범, 그리고 이 세상에 팽배하게 퍼져 곳곳에 뿌리내린 그들이 정한 '스테레오타입' 에서 벗어난, 자신의 도덕적 가치관에 따른 가치판단에 근거한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과 의지로, 삶을 헤쳐나가야 한다. 그 행위에는 부단한 노력과, 초월적인 고통이 수반된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것이, 그것이 바로 철학자 니체가 말한, 극복한 자의 삶, 초인의 삶을 말하는 것이다.'


자신만의 답을 찾은 듯, 거침없이 무언가를 써내려가던 헤븐. 마침내 펜을 내려놓고, 조용히 마지막 문장을 읊조려본다.


"인간은, 극복해야 할, 그리고 극복되어야 할 무언가이다. 초인으로 나아가는 길을 두고도, 그 가시밭길이 줄 고통과 괴로움에 겁을 먹어, 다시 사자와 낙타가 되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적인 모든 것을 내던져버려야 초인이 될 수 있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너무 인간적인 존재가 아닌가. ...그렇기에, 우리는 결코 존재할 수 없는, 진정한 초인의 경지에 조금이라도 범접하기 위하여, 그 초월적이고 형이상학적 경지에 다다르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여, 자신을 압제하던 그릇을 부수고 나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




(탁-)


소리가 나게 샤프를 내려놓은 헤븐. 흡족스러운 듯, 조심스레 종이를 접어 품 속에 집어넣었다. 흐리멍텅한 눈이 아닌, 이 군단에 처음 들어왔을 때 만큼이나 빛나는 눈을 하고, 강한 결의와 의지를 품은 눈빛을 하고 있는 헤븐의 모습은, 180도 다른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 꺾이지 않으리라, 그리고 나의 잘못을 외면하지도 않겠어.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나를 넘어서는, 극복하는 새로운 자가 되어서, 모두에게 과학의 이기를 고루고루 누리게 할 것이라고. 내 이름처럼, 낙원을 만들겠다고, 약속해야겠다. ...내 자신과 말이야."


자신의 과오를 오롯이 받아들이며, 마음 속의 짐을 스스로 극복해 낸 박사. 헤븐. 그리고, 새로운 결의를 다지자,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그래서 이제 뭐하지? 딸이나 칠까?"




(끼이익-! 쿵!)


육중한 벙커의 문이 열리는 소리였다. 그 밖에는, 늘 그렇듯, 망토와 투구를 걸친 히어로, 캣맨이 서 있었다.


"...캣맨?"


"여어, 우리 죄인, 잘 지냈나?"


"심심하긴 하지만, 그럭저럭. ...그나저나 캣맨, 무슨 일이야?"


"단장님이 잠깐 보자고 하는데, 괜찮겠어?"


"나가도 되나?"


"아니."


"...?"


"단장님이 직접 왔어."


"여기까지?"


"어. 나다."


"...이런 누추한 곳 까지 오다니, 무슨?"


"...눈빛이 달라졌군. 헤븐."


"...생각을 정리했거든. 과오를 받아들이고, 더 이상 도망치지 않기로."


"...좋은 눈빛이군. 지금이라면, 맡겨도 되겠어."


"맡기다니?"


"흠... 저번 설 전에, 흑타냥, 그리고 백타냥과 흑타마와 함께, 흑타냥이 합류하기 전 활동했던 차원을 다녀왔거든."


"그랬군. ...그래서?"


"흑타냥의 추억이 녹아든 곳이기도 하고 해서, 그곳에 차원문 가동장치를 설치하고, 성공적으로 구동했지."


"아하, 그랬군. ...그런데?"


"...그 차원의 총사대가 도움을 요청했거든. ...아마 무슨 종교집단의 문제인 것 같은데."


"그렇군. 도와줄 것인가?"


"당연하지. 한때 흑타냥이 몸을 담았던 곳이고, 그곳의 구성원들과도 나름 친분을 쌓았거든. ...손 놓고 볼 수만은 없지."


"단장답군. 그래, 내가 무엇을 해야 하지?"


"그곳에서 무슨 개지랄이 벌어지고 있는지, 최대한 자료를 수집해주겠나? ...참고로, 자넨 아직 죄인 신분이야. 나도 형식상으로 권유하는 어투지만... 잘 알지?"


"물론. 선택권이 없다는 것은 내가 제일 잘 안다."


"그래... 이해해주니 되었군."


"뭐, 그래도 어렵진 않겠군. ...잠깐, 그 곳에서 내가 힘을 써도 되나?"


"글쎄, 대놓고 막 미쳐 날뛰지만 않는다면야... 아, 그래도 좀 힘드려나. 까딱하면 이단 취급받고 화형대에 오를수도 있겠는걸."


"뭐가 그리 살벌한거지... 흠, 더 궁금해지는데."


"이상한 호기심에 시동 걸진 마라. 헤븐."


"...이제 그런 과오는 저지르지 않아. 믿어줘. 단장."


"...좋아. 그 눈빛... 그래, 믿어주도록 하지. 뭐, 그건 그거고. 그래도... 넌 아직 죄인이야. 널 도와주고, 보조하면서도, 허튼 짓을 하나 안하나 감시하기 위한 인원이 하나 붙을거야."


"흠... 동행객인가."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친히 여기까지 왔다. 너도 아는 사람이지."


"...응? 내가 아는?"


"같은 레전드 레어 유닛의 일원이니까. ...들어오게, 형사."


"단장도 참, 딱딱하게 형사라고 말고 모모코라고 불러주지!"


"...모코코?"




단장의 뒤에서, 조용히 걸어나오는, 두 자루의 광선총을 허리에 맨 여형사. 모모코였다.


"모코코가 아니라, 모 모 코! 게임을 너무 많이 한 거 아냐? 헤븐?"


"...동행객으로 너라니, 흠... 나쁘지 않은데?"


"ㅁ... 뭐...?! 나쁘지 않...헤... 에...? ㅎ...흐응! 어쨌든! 난 너의 감시역이니, 감히 이몸에게 흑심을 품는 일은 없ㄷ..."


"단장, 언제 가면 되는거지? 미리 조율해뒀나?"


"...야!"


단장은 둘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품 속에서 가져왔던 홀로그램 투사 장치를 이용해, 설명을 시작했다.


"...아마 내일 이동하게 될 거다. 이른 아침에. 일정은 총사대 일원들과 모두 조율해뒀고. ...준비는 알아서 해. 연구실에서 필요한 건 다 챙기고, 혹시 모르니 몸을 지킬 수단만큼은 둘 다, 아주 확실하고 단단히 챙기는 것이 좋을거야."


"그렇군. ...모코코, 연구실에 들르겠나? 필요한 물건이 있다면 급조해서라도 만들고 가지. ...차원 너머의 탐사는..."


"알지. 뭐, 위험하니까. ...그건 그렇고 난 모코코가 아니라 모모코라고!"


"...그래, 모코모."


"너 일부러 그러는거지!"


"...모...모모...모코...모로...모로코... 어렵군."


"야!!!!!"


"푸흣... 헤븐, 이런 농담도 할 줄 알았나?"


"...농담 아닌데..."


어쩐지 조금 비참해보이는 헤븐 박사였다고.




"...흐음. 그래, 이거면 될까? 모..."


"모모코."


극비 연구시설, TSL-02, 차원연구시설에서, 마지막으로 점검하며 준비를 마치는 두 사람.


"그래, 모모코. ...입에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군."


"너는 머리도 좋은 애가... 어휴, 아니다. 그래, 넌 준비 끝?"


"난... 평소보다 무장을 좀 무겁게 했지."


"...달라진 게 없는데?"


"그야 슈트 안쪽에 압축해서 보관하고 있으니. ...그럼, 가볼까?"


"그래. 단장님이 가기 전에 이거 가지고 가라고 했지? ...뭐였더라?"


"이차원 신호 송수신기. 이게 있으면, 뭐... 최소한 여기와 통신이 끊길 일은 없겠지."


"좋아, 그럼 가볼까? ...소장! 우리 지금 가볼게!"


"다녀오라냥!"


[우우우웅- 팟!]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 지, 기대 반, 그리고 걱정 반의 심정으로, 모든 일이 무사히 끝나 돌아오길 바라는, 두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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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싸개의 말)

다시는깝치지않겟습니다 다시는규정을어기지않겟읍니다 다시는깝치지않겠습니다 다시는깝치지않겠습니다 다시는깝치지않겠스빈다 다시는깝치지않겟습니다 다시는깝치지않겟습니다 다시는깝치지않겟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앞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노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차단당한동안 대가리박고 반성하면서 떠오른 영감이 있어서 적절히 본인의 경험과 버무려왓읍니다... 나는 하루라도 냥챈에 개좆똥글을 싸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몸이 되었어...

비틱질 안하겠소! 다시는 안하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