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매터 잔량 30%. 개체명 카파의 활동을 개시합니다."


사고 모듈이 재기동한다. 안구 파츠를 가동해 시각 정보를 모은다.


"여기는..."


가장 먼저 렌즈에 인식되는 것은 쓸데없이 장엄한 천장. 밤과 같은 색깔의 천장에 아름다운 황금 장식이 과하지도 적지도 않을 만큼 완벽한 비율로 세공되어 있다. 등에서는 매끈한 비단이 느껴진다. 순백의 실크가 깔린, 움직임에 방해가 될 정도로 푹신한 침대에 본 개체는 누워 있었다.


"젠장."


굳이 메모리를 열어서 대조해볼 필요는 없었다. 지겹도록 와본 곳이니까.


"일어났나요, 카파?"


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린다. 갈색 피부를 치녀처럼 드러낸 자동인형이 들어오고 있었다.


"여전히 악취미 가득한 곳이군. 자동인형은 수면 따위 취하지 않는데 말이야."


"그래도 백성들의 마음이 담긴 곳이잖습니까? 가끔씩 이렇게 요긴할 때도 있고요."


그녀가 찻잔에 차를 따라 내민다. 나는 맑게 빛나는 금빛 액체를 바라보며 말했다.


"뭐냐, 이건. 본 개체더러 이걸 마시라고?"


"어머. 미안합니다. 백성들을 간호하다 보니 아픈 사람에게 따뜻한 차를 내어주는 게 습관처럼 되어버렸네요."


"본 개체는 사람이 아니야."


"그랬죠. 미안합니다."


"내놔. 마시게."


찻잔을 들어 입가로 가져간다. 자스민 향의 에스테르가 내부에서 후각 센서를 자극한다. 액체가 코어 내부로 흘러들어가며 극미량의 안티매터가 생성되었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날 구조한 건 너냐? 요타."


"아뇨. 수호대입니다. 마수 토벌을 위해 나간 당신의 연락이 두절되자 그들이 당신을 찾으러 나섰습니다."


"그 녀석들이?"


"네. 그리고 당신을 찾은 후, 활동 정지 상태의 당신을 깨우기 위해 저에게 데려왔습니다. ...그들의 전우도 함께요."


요타가 슬픈 표정을 짓는다. 주먹이 사고 모듈을 거치지 않고 꽉 쥐어졌다.


전우. 필시 내 명령을 위반한, 날 지키고 죽은, 그 빌어먹을 얼간이들을 말하는 거겠지.


"...장례는."


"아직입니다. 참관하시겠습니까?"


"간다."


요타가 조용히 일어서서 등을 돌린다. 본 개체 또한 침대에서 일어나 그 뒤를 따랐다.



---


영묘.


영묘라지만 이곳에 시체는 없다. 오로지 백합과 자스민 같이 새하얀 꽃만이 가득할 뿐. 영묘라기보다 실내정원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이곳의 중앙에는 연꽃이 핀 맑은 못이 있다. 그리고 못 한가운데에 그 얼간이들이 누워 있었다.


"나크트의 아들, 나크테프. 메리레의 아들, 메리호르. 네바문의 아들, 네브카..."


요타가 그들 앞에 서서 그들의 이름을 하나씩 읊는다. 이름을 말할 때마다 왕홀로 세 번 바닥을 두드린다. 퉁, 퉁, 퉁 하는 맑은 소리가 영묘에 울려 퍼진다. 본 개체는 벽에 기대어 팔짱을 낀 채 말없이 그 광경을 바라본다.


"......"


요타의 저 행동의 의미는 모른다. 본인의 말로는 저 행동을 하는 것으로 연산 장치가 가속되어 저들의 삶을 기억 장치에서 분류하여 기록하는 것이 더욱 수월해진다고 했다. 내가 막 엣셉흐의 수호대장이 되었을 무렵에는 저 행동을 바보처럼 여겼었다. 그래서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빨리 안티매터로 만들라고 했더니 진심으로 화를 냈더랬지. 그 이후, 본 개체는 저 행동을 제지하지 않는다. 아니, 이제는 제지하는 녀석이 있다면 본 개체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당신들은 나의 소중한 백성들. 당신들의 이름 하나하나는 영원토록 제 안에 남을 것입니다."


요타의 왕홀이 마지막으로 바닥을 두드린다. 수면에서 파문이 일어 녀석들을 부드럽게 쓸고 지나간다. 그들의 시신이 천천히 분해된다. 그리고 황금빛 안티매터로 변해 요타의 코어로 빨려 들어간다. 안티매터는 단순히 에너지일 뿐 감상을 가질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 광경을 볼 때면 항상 코어의 온도가 올라가는 기분이 든다.


"수고했다."


"제가 해야 할 일일 뿐입니다."


구태여 그 말에 첨언하지는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 그리고 우리는 함께 영묘를 나섰다.


---

요타와 함께 엣셉흐의 왕궁을 거닌다.


엣셉흐의 왕궁을 보고 있노라면 항상 처리해야 할 시각 정보가 많다. 제3방주 오지만디아스를 엣셉흐 양식으로 개조한 이 건물에는, 올 때마다 본 개체의 기억 장치에 없는 장식물이 추가되어 있다. 저기 있는 요타를 찬양하는 시를 새긴 석판이라던가, 저쪽 외벽에 그려진 요타를 찬양하는 벽화라던가. 그리고 본 개체가 제일 꼴 보기 싫어하는, 왕궁 중앙에 있는 황금 요타상이라던가.


"그럼 카파. 이제 보고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요?"


"알잖아. 마수 토벌에 실패했어. 그뿐이야."


"그뿐이라고요? 당신의 안티매터가 고갈되었는데도요?"


"그런 적이었으니까."


"그런 적? 마족들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당신을 그 정도로 고전시킬 적이 아직도 남았나요?"


"아포피스."


요타의 걸음이 멈춘다.


"아포피스? 지저 세계에 있던 그 크립티드 말인가요? 그 괴물이 어째서... 아!"


요타가 깨달은 듯 눈을 동그랗게 뜬다. 난 그 모습을 보고 한숨을 쉰다.


"가끔은 회로에 바람이라도 쐬어줘라. 과열로 쇼트 나서 고철덩어리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면. 너한테 알린 녀석이 아무도 없는 거냐?"


요타가 쓴웃음을 짓는다.


"아무래도 지금은 모두가 제 자리에서 버티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황이니까요. 그리고 바깥의 일은... 모두가 당신에게 맡기면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쳇. 도움이 되지 않는 녀석들이군. ...지금의 본 개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은 없지만."


"하지만 카파. 이상합니다. 제 기억을 토대로 계산한 바로는, 아포피스가 다소 강한 개체라고는 하나 당신이 고전해야 할 정도는 아닙니다. 제가 모르는 변수라도 있었습니까?"


"그래. 녀석이 죽지를 않아. 아무리 죽여도 부활한다."


"부활이요? 대체 어떻게..."


"몰라. 그러니까 나한테 묻지 마."


요타가 잠시 조용히 있다가 다시 입을 연다.


"카파. 제 도움이 필요하지는 않습니까?"


"장난하냐? 당연히 필요 없지. 드론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녀석이 누구를 돕는다는 거야. 본 개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신경 꺼. 그보다 너 임마. 안티매터를 왜 이렇게 많이 줬어? 이 정도 양이면 현재 엣셉흐 인프라를 100년은 족히 돌릴 수 있는 양이잖아."


본 개체의 말에 요타가 눈을 크게 뜨고 놀란 표정을 짓더니 본 개체를 보는 시선이 더욱 부드러워진다.


"어머. 기쁜 일 아닌가요? 당신의 안티매터가 늘어났잖아요."


"화낸다?"


"농담입니다. 그러니 화내지 마세요. 당연히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한 일이랍니다. 백성들의 생활의 편의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생명을 지키는 것에 비할 바는 아니니까요. 당신의 말처럼 제가 드론을 움직이기 어려운 지금, 백성들의 안전을 믿고 맡길 수 있는 건 당신뿐입니다. 카파."


"흥."


안면부의 온도가 올라간다. 요타의 저 눈빛을 마주하기 어려워 괜히 고개를 돌린다.


하염없이 거닐다 보니 어느덧 왕궁의 정문이 보인다. 요타가 얼굴의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나에게 말한다.


"이왕이면 궁성의 출입문까지 에스코트 해드릴까요?"


"어디 한 군데 단단히 망가졌나 보군. 장난치지 말고 들어가서 자가수복 프로토콜이나 돌려."


"어머나. 서운하군요. 당신과 좀 더 오래 있고 싶을 뿐인데."


"시끄러워. 간다."


헛소리를 하는 요타를 뒤로 한 채 별빛이 반짝이는 하늘 아래로 나아간다.


"카파."


요타는 아직도 내게 할 말이 남았나 보다. 흘긋 뒤를 바라본다.


"우리의 백성을 잘 부탁합니다."


여전히 한심하기 짝이 없는 녀석이다. 굳이 저런 필요 없는 말을 해서 동력을 낭비하다니. 쏘아붙일 말이 수십 가지 생각났지만 본 개체는 우수한 자동인형이다. 굳이 저런 동력 낭비에 어울리지 않고 짧게 대답할 것이다. 그러니 이 말은 절대 본 개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다.


"물론이야."


앞을 보며 대답했다. 뒤는 돌아보지 않았다. 녀석의 열감지 센서에 안면부를 보이고 싶지 않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