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미 2000 후기


 라미 사파리 디자인 진짜 극 불호라, 라미 제품은 신경도 안썼다. 예전에 여기에 글도 올렸던가? 룩스 EF를 시필 했었는데 굵기가 무슨 M촉마냥 펑펑 터져나오는 것을 보고 식겁한 후, 라미에 대한 내 인식은 ㅈ박았었다.


 근데  2000 이거는 진짜 너무 좋다.  만년필을 사면서 항상 "아... 사 놓고 손에 안 맞아 본전도 못건진 채 또 분양보내면 어떻하지." 하면서 결국 사는게 내 인생이었고,  이번엔 무난하게 선호하는 브랜드를 구매하자 싶어 파이롯트의 커스텀74 M닙을 구매하게 되었다. 하지만 필기감, 굵기 둘 다 너무 맘에 안들어서 멘탈이 나간 와중, 별 기대 안하고 구매한 2000이 나를 기쁘게 해 주었다.


 필각 많이 탄다는  리뷰를 보았고, 나 또한 필각이 상당히 높은 편이라 걱정했었는데, 상-하 필각은 전혀 문제 없는 것 같다. 파이롯트와 다르게 팁의 옆부분이 직선으로 쫙 깎여 있어서 좌우로 기울어 진 필각을 가진 사람에게 해당되는 문제인가 보다. 


 두께도 사진을 보고 상상했던 것 보다 얄쌍해서 좋았고, 내 손에 딱 맞는다. 살짝 뚱뚱해진 까렌을 잡는 기분이었다. 오히려 까렌보다 상하 필각이 더 높고 무게도 가벼워서 실사용으로는 라미를 더 자주 쓸 것 같다.


 필각을 잘 탄다는 말이, 아마 단호하게 커팅된 좌 우 옆부분의 예리한 단면 대문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 만큼 올바른 필각을 형성 했을 때  닙과 종이가 딱 완전히 밀착된다는 느낌이 있어서 어떤 만년필보다 직선이 더 편하게 그어지는 것 같다. 


 선 굵기는 일제 EF와 F의 중간 어디쯤이다. EF 사 놓고 일제 MF 정도 나왔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까렌 F보다 얇다.  맘에 든다. 


 필감이 버터필감이라고는 들었지만  EF라 그런지 사각거리는 피드백이 생각보다는 심했다. 



 다양한 각도와 자세, 필기체로 써 봤는데 헛발질 없이 다 잘 나와주었다. 나랑 잘 맞는 듯 하다. 그립감도 좋고 무게감도 맘에 든다. 

지금까지 나와 잘 맞아 "인생 펜 이다." 하고 느낀 제품은 까렌, 카쿠노 f 둘 뿐이었는데, 정말 진짜 수년 만에 이렇게 잘 맞는 펜을 발견하게 되어 너무 기쁘다. 이제 필사용은 그만 사고 관상용이나 몇 자루 사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