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동원 점검을 종료합니다."

 전시 동원 체제를 점검한다는 건 전시를 가정해서 벌어질 일들을 미리 훈련하는 것에 가까웠다. 시민권자들은 예비군 내지는 민병대 자격으로 전투 훈련에 참가하거나 피난처로 대피하는 훈련을 진행했고, 산업체들은 각자가 맡던 역할을 전시에 맞춰서 이행하는 걸 점검하는 것이다.

 당연히 이런 짓을 전 영역에 걸쳐서 시행하는 건 무리였고, 특정 섹터에 해당되는 영역에서 몇 년 주기로 시행되는 것에 가까웠다.

 다만 우주가 좀 넓은 게 아니다보니 이렇게 하더라도 일정이 겹쳐서 동시에 전시 동원 체제를 점검하는 섹터들이 있는데, 이들은 합의에 따라서 모의전도 치렀다. 동족상잔이라면 동족상잔이지만, 그건 그것대로 전투력 증진에 기여하는 것이니까.

 애초에 요즘 전쟁은 거진 클론 아니면 프로그램이 탑재된 무인 기계들에 의해서 치르는 것인데, 둘 다 제대로 된 사람 취급은 아니니 싸울 수 있는 기회가 있거든 어지간하면 싸우게 마련이었다.


 그렇게 모의전이 끝나거든 이제 '전시 동원 점검'을 끝내는데,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정말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시민권자들이야 훈련이나 피난처에서 살던 곳으로 복귀하면 그만이겠지만, 산업체들 입장에선 전시 동원 체제를 점검한단 이유로 무작정 생산해놨던 재고를 다시 원료로 환원하는 짓이 남았다. 보통은 편의상 '폐기'라 부르는 작업이다.



 "좀 적당히 만들어놓을 것이지, 전투에 투입하지도 않을 거 왜 이리 많이 쌓아놨나."

 군용 클론 무더기들 앞에서 관리자가 한 말이었다. 물론 실제 전시 상황에선 이렇게 만들어놓고도 부족해서 클론을 만들 때 콩이 아니라 돌 같은 것도 갈아 넣어서 만들어야 될 테지만, 그저 '점검'하는 것을 실전처럼 수행한 것에 기가 질려서 내뱉은 말이었다.

 물론 이성적으론 이렇게 하는 게 옳은 것이란 걸 알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행성 하나 단위로 수용해야 될-그러니까 최소한 10억은 넘어가는- 군용 클론을 처리하는 일이 보통 쉬운 게 아니었다. 꽤나 여러 차례 겪어봤는데도 정신적으로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단순히 인명을 살상한단 죄책감 같은 건 물론이고, 10억이 넘어가는 클론들을 도살한 다음에 그게 원료로 제대로 환원이 됐는지, 혹여나 통제 장치가 잘못 되어서 도주하거나 저항하거나 하는 사태가 벌어지면 그건 그것대로 대형참사였다.

 물론 사격 훈련한 다음에 탄피 찾아야 된다며 난리치는 수준으로 엄하게 대하는 건 아니지만, 그 학살의 현장에 어떻게든 있었던 존재가 도주할 정도 같거든, 곱게 붙잡혀줄 리가 없다.

 그리고 군용 클론이라곤 하지만 어떻게든 써먹을 수 있는 완제품을 도로 폐기하는 것도 직관적으로 보거든 낭비였다. 재활용/재가공해서 원료로 환원할 수 있고, 그것 때문에 이렇게 일을 벌인다곤 해도 그랬다.

 그렇지만 처음 입사해서 이런 일을 겪은 신입이면 군용 클론들 중에서 멀쩡한 걸 받아서 섹스 노예 내지는 가사 노예로 부려먹는 것에 좋아라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어야지, 그 다음부턴 폐기물이 늘어나는 것에 더 가까워진다.

 실제로 산업체 근무자들 중에서 군용 클론을 폐기하기 앞서서 분양받아서 잘 써먹고 있는 경우가 거진 대다수였다. 불임 조치가 취해졌다곤 하지만 원하거든 복원할 수 있는 기능이란 걸 생각하면 더 그랬다. 관련 산업 관계자들 중에서 자기 왕국을 안 차려본 경우가 없을 정도다.

 그렇기에 기회가 닿거든, 이런 점검이 있은 후에 수고했다면서 훈련에 참가하거나 피난처에 대피했던 시민권자들에게도 훈련에 참가하지 않은 신상 군용품을 뿌리다시피 제공하는데, 이것도 결국 신청을 해야 지급이 되는 것이었다. 신청도 없이 막 떠넘길 순 없는 물건이었다.

 이런 조치가 있기에 폐기대상이 절반 정도로 줄었다곤 해도 그 절반으로 줄어든 게 행성 하나에 수용할 규모였다. 아무리 폐기를 몰아서 하는 게 아니고, 며칠에 걸쳐서 한다곤 하지만 그래도 10억이 넘는 인원을 학살하게 되는 순간을 앞둔 것이다.


 부담이 안 된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겠지.


 "어째 이 일은 적응이 안 된단 말입니다."

 "괜한 동정심 가지지 마라. 저래봬도 군용이라서 동정심 갖고 대했다간 정말로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까."


 지금은 군용 클론을 폐기할 때 따로 행성 하나에 몰아넣고서 시작한다지만, 예전엔 편하단 이유로 행성도시 내지는 산업단지 행성에서 군용 클론을 몰아넣고 학살을 했는데, 만약 이런 상황에서 군용 클론이 불쌍하다고 그들을 풀어주고 그러거든 대번에 전쟁터가 되기 마련이었다.

 어찌 됐든 훈련을 거친 군인들이었고, 그들이 통제에서 벗어난 순간 자길 구해주려고 든 놈도 결국 자길 죽이려 했던 이들과 같은 소속이라고 총부터 쏘고 그 다음에 생각할 놈들이었다.

 어떤 머저리 같은 놈은 갑자기 일어난 성욕을 처리한다고 군용 클론을 하나 벗겨먹었다가 놈을 통제에서 풀어주는 바람에 그 산업 단지 일대가 전쟁터로 변한 적이 있었다. 통제에서 벗어난 군용 클론들은 그것도 전시 상황으로 인지하고 전우들을 통제에서 벗어나게 하며 싸우는 까닭이다.

 이러다 보면 어떤 곳에선 나노봇 같은 것도 취급하는데, 이게 군용 나노봇 같으면 군용 클론들이 다룰 수 있다보니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결국 해당 행성에 행성파괴병기를 사용한 다음에 테라포밍을 해서 복구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어쩌면 그런 사태가 벌어진 까닭에 구조가 지금처럼 바뀐 것일련지도 모르겠지만.


 "알고 있습니다."

 "좋아, 그럼 시작하자. 괜히 놈들이랑 눈 마주치지 말고."


 폐기가 시작됐다.



 "1조 인원은 지금 지시받은 구역으로 이동하십시오."

 폐기가 이뤄지는 구역은 보통 1만 명 가량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에 지상 1층, 지하론 여러 층에 걸친 시설로 이뤄져 있다. 이 곳에서 폐기 사업이 시동되거든 지상 구역에 수용할 수 인원을 끝자리 수 0에 맞춰서 투입시킨다. 행정상 편의를 위해서 이렇게 하는 편이었다.

 그렇게 지시가 이뤄지거든, 해당 군용 클론들은 군 통신망을 통해 해당 사실이 전파되며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해당 시설로 이동하는 형태였다. 그렇게 인원들이 집합하면서 인원수를 입구에서부터 세는데, 이 과정은 자동화가 이뤄진 상태였다.


 "정렬!"

 해당 시설 내에서 군용 클론들은 최후의 제식을 치르는데, 그 제식을 통해서 그녀들은 최후까지 성큼성큼 걸어가는 것과 같았다. 보는 입장에선 그렇다보니 이 제식을 보고도 충격받거나 하는 경우도 분명히 있었다.

 이에 대해선 정신적 치료를 제공한다지만 결국 해당 업계에서 은퇴하는 관계자들도 더러 있을 정도였다. 그만큼 지독한 광경을 코 앞까지 닿았을 때, 그녀들은 오와 열을 맞추며 정렬했다.


 여기서부터 크게 두 갈래로 나뉘는데, 둘 다 집행하는 처지에서 단추 하나 누르면 진행된단 점에서 똑같지만, 그 방식이 달랐다.

 '똑딱.'


 "크흐윽?"

 "크하앗! 크하악!"

 하나는 단추를 누르는 것과 동시에 해당 영역 내에 있는 병력들의 통제 장치를 작동시키는 방식이다. 그렇게 처분 명령이 내려지거든 통제 장치가 바로 전기 충격을 가해서 해당 개체를 제거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이 개발되면서 폐기처분하는 데 큰 편리성이 생겼지만, 안타깝게도 이 방식의 논리를 이용하거든 훈련이나 실전에서 폐기 처분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을 조성하는 것만으로도 제압이 되고 무력화가 된단 단점이 있었다.

 그럼에도 폐기 작업의 편의성이 높기에 대다수 폐기 처분은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데, 딱히 잔인할 것도 없고 전기 충격으로 근육마저 통제하는 까닭에 훈련 과정에 좀 참가했다거나 하는 게 아닌 이상에야 오와 열을 딱 맞췄거든 똑같은 자세로 죽어나간단 점 역시 편리한 점이었다.

 다만 이런 방식은 함부로 죽어나가도 되는 군용 클론들, 소모품 성향이 짙은 군용 클론들에 대해서 적용된다. 실전에서 좀 쓰러지더라도 그것보다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는 유형에나 이런 장치를 달아놓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적들에 의해 간파당해도 신경쓰지 않을 수 있는 경우에나 폐기 처분에서 이런 걸 기대할 수 있다.


 "지금 무슨……."

 "거짓말이지...?"

 문제는 통제 장치를 역이용한 걸로 쓰러져선 안 되는 유형의 군용 클론들도 분명히 있단 것이다. 지휘관급, 첩보 요원, 부사관급들 같은 경우엔 부하들이 죽어나가는 와중에도 적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아군이 제압된 원인을 제거해야 되는 임무를 당연히 갖고 있는 까닭이었다.

 그렇기에 이들은 보통 훈련으로 인해 태어났거든 상비군 체계에 포함되는 식으로 처리가 이뤄지는데, 이렇게 하더라도 우주 곳곳에서 사건사고가 넘쳐나니 거기서 희생되는 수가 많은 까닭에 이런 부류를 살처분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지금 저것도 겁을 있는대로 준 다음에 너희들이 운 좋아서 살아남았단 식으로 하는 통과의례다. 그러니까, 신고식이다. 당연히 죽이려고 드는 것하곤 거리가 멀었는데, 실제로 해당 인원들을 정말로 살처분 하는 경우가 드문 까닭에 그나마 비슷한 광경이 펼쳐지는 걸 보였다.


 그리고 이렇게 상비군에서도 소화못할 분량은 이제 민간 사회에서 소화를 시작하는데, 병졸급 군용 클론이야 민간에서도 도처에 넘쳐흐르니 수요가 없어서 폐기 처분하면서 원료로 환원한다지만 통제 장치가 없는 군용 클론들 같은 경우엔 통제 장치를 달아서라도 가지려는 경우가 많았다.

 민간 영역에서 소화할 여지가 충분히 있기에 이 단계를 거치고도 기어코 살처분에 휩쓸리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그럼에도 정말로 살처분이 이뤄지는 상황이 벌어지거든 해당 현장에 시민권자가 직접 참가해서 조치를 취하는 게 원칙이다.

 통제장치가 없다곤 하지만, 시민권자를 함부로 해쳐선 곤란하니까 시민권자가 현장에 있거든 그에 대해선 고분고분해지니깐 말이다. 그렇다면 그 시민권자가 명령을 내리는 것에 따라서 처분이 이뤄지는데, 이런 까닭에 독가스나 급성 감염병 같은 걸로 처리당하진 않았다.

 대신에 해당 시민권자가 부담해야 될 정신적 고충이 심했는데, 이것도 꽤나 고역인지라 결국 처분이 이뤄지기 직전에 해당 시민권자가 저가 데리고 가겠다고 하는 경우가 절대다수였다.

 운이 정 없거든 이 단계에서 살해당하는 경우도 분명히 있지만, 그런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 군용 클론이라고 다 같은 군용 클론이 아니란 소리다.



 "……."

 "……."

 이런 첫 번째 단계를 거치거든 정말로 죽어버린 경우도 있지만, 운 없는 경우엔 죽은 척을 한 수준으로 버티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되는 원인은 다양했다. 통제장치가 불량이라던가, 해당 군용 클론이 기대 이상의 기능을 갖고서 생산이 됐다거나 하는 경우다.

 이런 경우를 바로 원료 환원하는 과정에 넣거든 원료로 한창 환원되고 있는 통 속에 들어가면 그 과정에서 죽겠지만 그 과정까지 이르는 도중에 기운을 차리고 폭동을 일으킬 가능성이 무척이나 높았다. 자길 죽이려고 든 이상에야 어떻게든 저항하는 게 당연하니까.


 그렇기에 해당 시설은 지하로 깊숙하게 이어지는데, 1층에서 폐기 대상인 군용 클론들을 '제압'하는 것에 의의를 둔다면 지하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거치는 수 차례의 확인사살 절차들이 죽은 척을 하고 있는 군용 클론들을 반기고 있었다.

 그렇게 설비 1층의 시설이 바닥으로 꺼진 다음에, 새로운 1층 바닥으로 교체된다. 지하 최종층과 지상층 사이의 바닥은 서로 교체가 되는 구조다. 지하로 내려가는 과정에서 확인사살이 벌어지고, 지상으로 다시 올라오면서 세척이 이뤄지는 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허나 최근 들어서 두 번째 과정도 꽤나 획일화가 진행됐는데, 병졸급이더라도 그들의 바이탈 체크를 실시간으로 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긴 까닭에 폐기 처분할 때에도 누가 죽고 살았는지 아는 까닭이었다.

 이에 따라서 이전엔 살아있거든 종종 그 중에 이질적인 돌연변이를 찾는다고 수거해서 해부하거나 유전자 샘플을 채취하는 조치가 이뤄졌지만, 최근엔 이런 조치를 실시간 바이탈 체크를 통해서 살아남은 경우에 즉각적으로 해당 유전자 샘플을 저장하는 게 가능했다.


 그렇다면 이걸 빼돌리는 건 어떻게 하냐고 할 텐데, 간단했다.


 '푸득!'

 '드드득!'

 비교적 최근까지만 하더라도 중요 지휘관이나 첩보 요원들에게나 사용하던 기생촉수를 지금은 부사관급과 병졸급에도 집어넣어서 현장의 정보전을 좀 더 우위를 차지하는 식으로 발전된 상태였다.

 실전이 들이닥치거든 결국 임기응변이 중요한데, 임기응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현장 정보였다. 이런 정보를 아군이 목격하자마자 바로 해당 전투원들이 전부 잡아내는 걸 지원하는 시스템이다보니 전투력 증진에 크게 기여하는 까닭이었다.

 그리고 이게 폐기 과정에서도 꽤나 쓸모가 있어서, 첫 번째 과정에서 죽었던 살았던 해당 개체의 유전자 정보나 몸 상태 변화 등을 즉각 수집한 다음에 두 번째 과정에선 해당 개체에 치명상을 입히면서 탈출하는 것이다.


 관계자들은 이걸 '인격 배설'이란 식으로 불렀는데,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 인격 배설과 그리 다를 게 없었다. 그저 유전자 정보뿐만 아니라 해당 개체의 인격이라 할 수 있는 각종 정보를 죄다 긁어모으고 있다가 두 번째 과정에서 탈출할 때, 해당 개체에 치명상을 입히고 나오니까.

 두 번째 과정이 이렇게 고정되면서, 사실상 이 단계를 버티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이 단계를 정상적으로 거치고도 살아남는 경우는 지금 폐기 처분의 대상이 된 클론이 약 10억 명가량인데, 이 중에서 한 명이 나오기도 어려웠다.

 물론 기생 촉수가 모종의 이유로 두 번째 과정을 진행하는 데 장애를 겪거든 두 번째 과정을 넘어가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그런 경우엔 해당 기생 촉수부터가 불량품 취급이라서 세 번째 단계부터 5~10단계에 이르는 과정을 거치며 함께 처분될 뿐이다.

 보통 두 번째 과정에서 살아남거든 기생 촉수가 다른 건 다 수행했는데, 치명상을 입히는 부분에서 오작동이 일어나서 해당 개체가 인격 배설을 진행하고도 살아남은 경우라고 보면 됐다.



 '이제 난... 어떻게?'

 다만 살아남았다고 해도 이미 첫 번째 과정에서 온 몸의 근육이 뻗어버렸고, 두 번째 과정에서 그녀와 관련된 세부 사항은 전부 인격 배설을 통해서 제조사 측에 넘어간 까닭에 그녀가 더 이상 살아있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도리어 여기까지 온 이상에야 제조사 입장에선 반드시 처분해야 되는 괴물로 인지되는 판이었고, 이에 따라서 세 번째 과정을 거쳤다.


 5~10단계에 이르는 추가 과정들은 군용 클론마다 다양한 상황에 적응을 한 게 있다보니 있는 경우인데, 세 번째 과정은 해당 층을 격리한 다음에 안쪽에 물을 가득 채워서 이 지경이 됐는데도 살아남은 이들을 익사시키는 과정이 주로 배치됐다.

 군용 클론 중에서 수중 호흡이 가능한 개체들은 세 번째 과정을 거친다고 죽지 않으니, 바로 다음 단계들에 해당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폐기 처분을 당하지만, 그녀 같은 경우엔 그런 기능은 없기에 그대로 물에 잠겼다. 익사를 시키기 위해서 딱히 조치를 취할 필요는 없었다.

 이미 그녀가 장비하고 있는 군장의 무게 때문에 그녀가 누운 높이보다 수위가 높아진 것만으로도 어떻게든 살려고 낑낑대다가 죽게 마련이었으니까. 그렇게 수위가 차오르면 거품이 뽀글뽀글 올라오는 경우가 있는데, 숨통이 어떻게든 붙었는 게 기어코 끊어지는 소리였다.


 '이, 이런 씨발...!'

 어차피 죽을 거란 걸 알았지만, 막상 죽음의 때가 들이닥치자 심정의 변화가 생긴 것도 있고 그 죽음의 방식이 그녀를 비롯한 군용 클론이 납득할 수 있는 종류의 죽음이 아닌 것도 컸다. 설마 아군에게 뒤통수를 맞고 살해당하는 걸 원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


 "……."

 마침내 기포가 올라오지 않게 되거든, 그 경과를 살핀 다음에 수위를 내리게 마련이었다. 그리고 기포가 올라오던 지점을 확인하는데, 이미 죽어있는 시신들과 달리 그 시점까지 살아있던 시신들 같은 경우엔 익사하는 과정에서 물을 가득 들이마시고 죽는 까닭이었다.

 그래서 수위를 내릴 때 보거든 이미 죽은 시신들은 별로 달라진 게 없는데, 세 번째 과정에서 죽은 시신들 같은 경우엔 표정부터가 잔뜩 일그러진 것이며, 입이나 코 등에서 가득 들이마신 물을 쏟아내느라 여념이 없는 경우가 상당히 강했다.

 그리고 사타구니쪽도 이미 죽어있는 시신은 세 번째 과정을 거치면서 오히려 세척이 됐지만, 익사해서 죽었을 것 같으면 시신이 사타구니를 꽤나 더럽히고 있는 것도 있었다. 이런 걸 확인하는 작업이다.


 변태라서 확인하는 건 아니었다. 그보단 세 번째 과정에서야 죽었거든 두 번째 과정에서 기생 촉수가 불량을 일으킨 것이라 간주하는 까닭에 어떤 기생 촉수가 나쁜 촉수인가 판별하는 과정이었다.

 기생 촉수란 게 고급품 같으면 여러 가지 지표를 만족시켰지만, 병졸급에 집어넣는 경우엔 아직 생산 공정이 안정화된 게 아니었다. 그렇기에 불량률이 높았고, 이에 따라서 피드백이 절실하다보니 벌어지는 일에 가까웠다.



 여기까지 오거든, 폐기 처분은 거의 끝났다. 실제로 지금도 세 번째 과정을 거친 다음에 전원 사망 판정이 나오면서 남아있던 과정들이 전부 생략되어서 바로 최하층까지 별 다른 조치 없이 그대로 직행이었다. 생존자가 있었거든 나머지 단계도 추가로 거쳤을 터였다.

 보통은 여기에서 이제 바로 원료로 환원되는 통에 빠진 다음에, 원료 환원이 되거든 원격 유통 체계로 원료가 넘어가고 다음 사체들을 원료로 만들겠지만, 최근 들어서 클론 출신 시민권자가 많아지면서 이들에게도 존엄성이 있단 논리가 암암리에 퍼지고 있는 상태였다.

 그렇기에 폐기 업체들 중에서 일부는 재활용을 하기 직전 단계에서 현장에 널부러진 시체들을 정갈하게 닦아놓고, 군장품을 회수하거나 정리-대개 이 경우엔 군장품들도 원료로 환원되는 폐기 처분 대상이다-한 다음에 수의를 새로 입혀놓는 과정을 포함하기도 했다.

 당연히 이게 처음엔 비효율적이라고 여겨졌지만, 이내 수의를 취급하는 의복 제조사들이며 장의 업체 등에서 두 팔 벌려서 환영하는 바람에 최근 들어서 속속들이 추가되고 있는 형편이었다. 이에 따라 해당 과정 역시 원격화되고 자동화됐기에 이런 과정이 추가되는 경우가 많았다.

 제조사들 입장에선 별로 효용은 없지만, 의복 제조사들이나 장의 업체 등이 자기네들에게 사업이 된다고 덤벼드는 걸 클론 제조사가 기분 나쁘다고 떨쳐낼 순 없었다. 결국 함께 사는 세상 아니던가. 최근 들어선 관짝 장사를 하는 이들도 끼어들어서 축제를 벌이고 있는 판이다.

 실제로 장례 업체라고 하는 게 의료 발전으로 인해 시민권자들이 도통 죽을 일이 없으니, 기껏해야 산재 상황에 휩쓸려서 시민권자가 이용하던 육체가 죽은 걸 추모하던 수준으로 전락했던 게, 이 폐기 산업과 엮이면서 다시금 부흥하고 있는 판이었다. 권장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여기저기 널부러져서 꼴 사납게 죽어있던 시체밭이 그녀 생전엔 꿈도 꾸지 않았을 정도로 제법 꽃단장을 한 상태로 평온한 죽음을 맞았던 것처럼 연출되면서 그녀들은 최후의 단계를 맞이했다.

 폐기 처분이 끝난 군용 클론을 원료로 환원하는 방법도 꽤나 다양한데, 이건 폐기 처리를 하는 업체가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훈련을 주관한 조직의 지시에 따라서 수행해야 되는 업무였다.

 이에 따라서 원료로 환원하는 것도 시설마다 분류되는 게 아니라 한 곳에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조정할 수 있었다. 원자 상태로 만들어두는 것도 있고, 군용 클론 상태에서 시공간 왜곡 처리로 보존해둬서 나중에 군용 클론으로 재활용하기 수월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폐기업자들 입장에서 중요한 건 결국 이 단계까지 오거든 해당 군용 클론에 대해선 더 이상 신경쓰지 않아도 된단 것이다. 여기서부턴 자기네들 소관이 아니었으니, 이제 위로 올라오는 바닥을 세척하고, 바싹 말리고, 혹여나 남았을 악취를 제거하는 게 중요한 일이었다.


 그렇게 사체 1만 구가 '어디어디에서 전시 동원 점검이 있었다' 라는 역사책의 구절에 파묻혔다.

 그리고 또 파묻히고, 계속해서 파묻혔다.


 해당 폐기 처분으로 인해 발생한 마지막 시체가 환원될 때까지 계속될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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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절 알바가 끝나고서 글을 잡으려니 아무래도 잘 안 써졌다. 고어라곤 하지만 고어챈에 올리기엔 아무래도 그 특유의 느낌까진 오지 않는다. 그리 꼴리는 글은 아니다.

 다만 여기에 올릴 순 있다고 판단해서 올려본다.


 여기까지 읽느라 수고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