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s that dreams never come true.

꿈은 절대 현실이 될 수 없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전쟁은 끝났다.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전쟁은 끝났다.

몇 개의 협약으로 몇 천만의 목숨은 역사 속에 가라앉았다.


너무나 강력하게, 그래서 더 허술하게 걸렸던 응징의 빗장 그 너머에는

거대하고 무거운 족쇄를 벗어던지며 성장하는 배후중상의 물결이,

그와 더불어 반유대주의가 미친 듯이 질주해오고 있었다.


사라예보의 총성으로부터 25년.

전운이 대륙 전체를 어지럽히며

광기의 파시스트들은 끊임없이 민족의 영광을 외치고

종이에 떨어진 검은 먹처럼 이념들은 끊임없이 세계로 번져가며

라디오에서는 끊임없이 '평화' 가 새어나오고 있을 뿐이었다.



시계는 다시 1919년으로 돌려지며 우리에게 하나의 상징적인 장소를 보여 준다.






그곳은 한 제국의 탄생과 비참한 대가로서의 사망을 증명하는 거울들로 뒤덮인 방이다.



반세기도 전에 번쩍거리는 제복의 황제가 제국을 선포했던 그 자리에 

이제 정장을 갖춰 입은 정상들이 패배를 재확인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로써 벗어날 수 없는, 거대한 족쇄가 패전국 독일에 채워졌다.

거부할 수 없는 시류에 휩쓸린 단 한 번의 결정에 이끌리고 나아가며 도달한 목적지는 모두에게 상처만을 안겼다.

정치, 경제, 사회, 학문 저변에 깊게 패인 상처들은 끊임없이 번져 갈 것만 같았다.


그러나 상처는 겉으로라도 아무는 법.

작은 움직임, 작은 희생 하나하나가 모여들어

마침내 가시적인 회복이 세계인들의 시야에 희미하게나마 다가오기 시작했다.

지쳐버린 사람들은 마침내 다가오는 광란의 물결에 저항 없이 휩쓸려갔다.



그리고 즐겼다.



그 끝에 무엇이 다가오게 될지 모를 수밖에 없는 채로 말이다..









편견보다 원자를 부수기가 더 쉽다니, 이 얼마나 슬픈 시대인가?


 

한편, 갈수록 몸집을 늘려가는 호황과 번영의 저편에서는 

작금의 대전쟁을 바탕으로 두각을 드러낸 또 하나의 학문이 대전쟁이 남겨둔 유산들을 철저히 해부하고 있었다.

대륙의 모든 학문과 개인과 공동체들이 새로운 시대 아래 상실과 분노 사이의 공란에서 하염없이 헤맬 때,

또 하나의 학문, 즉 자연과학은 그 빈칸 사이를 사정 없이 헤집어 분석하고, 더 나아가 흡수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인문학적 질서가 사정없이 흔들리는 마당에,

거대한 기계와 신무기를 이끌고 

인간을 단 몇 초 만에 부수어지는 단백질 덩어리로 바꾸어버리는 데 일조한 학문의 다음 행보는 자명했다.


전쟁을 넘어,

학문을 넘어,

마침내 대륙을 넘어

그들은 모든 세계를 측량하기 시작했다.


모든 내부의 구심점과 목표를 일시적으로 상실한 학문들은 

마치 송곳처럼 세계의 모든 것을 꿰뚫고자 하는 자연과학의 질주를 감히 막을 수 없었다.


고전의 위기 또한 점차적으로 달아오르고 분해와 분석의 드높은 기치가 그 정점에 이르렀을 때,


고전역학의 마지막 총아 아인슈타인은 마침내 저 우주 너머로 작은 공식 하나를 쏘아 올렸다.





작은 공식 하나로 세계에 거대한 파장이 일었다.


오랫동안 잊혀진 블랙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불투명하게 멀어 보였던 우주는 이제 아주 선명하게 우리로부터 빠르게 멀어졌다.

철학사 안에서 도도하게 이어져 오던 관념론적 움직임 또한 거대한 타격을 입었다.


질주는 계속되었다.

그리고 끝내는 대전쟁의 끝까지 계속될 것이었다.





"여긴 우리 땅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태어나 일하고 여기서 죽으니 여기는 우리 땅이란 말입니다."


-"결국 땅을 비집고 들어온 바람에 뿌리가 땅으로부터 해방되고

옥수수 줄기들은 바람의 방향을 따라 지친 듯 땅 위에 몸을 뉘었다...


여자들이 집에서 나와 이번에야말로 남자들이 완전히 주저앉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았다."


-<존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한낮의 캘리포니아,

흉흉한 소식은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집을 떠나온 오클라호마 주의 사람들을 경멸조로 오키(oki) 라고 불러댔다.


분노 대신 절망이 찬 눈과 공황으로 인해 떠나온 터전을 그리는 순수한 욕망의 절규까지,

그러나 일자리부터 자신의 땅까지 갑작스럽게 모든 부분에서 거대한 위협에 직면한 캘리포니아인들은

그들을 빈민가에 몰아넣고, 몰아넣고, 몰아넣고, 몰아넣으며 자신들의 안위와 주 전체의 치안을 보전하려 했다.


그럴수록 오키들은 더욱 악착같아졌다.

한 명이 할 수 있는 일에 열 명이 달라붙어 임금을 요구했으며

시위와 불만의 폭발은 이제 일상화되기 시작했다.


떠나와야만 했던 자들과 지키려고 했던 자들,

한때 부유하나 지금은 얻으려고 싸우는 자들과 가난했으나 어떻게든 지키려고 애쓰는 사람들,


이것이 공황이 드러낸 맨살이었다.


맛있고 영양가 있는 음식 대신 밀가루 반죽과 쓰레기통을 남김 없이 게걸스럽게 먹어 치워야 했던 빈민들,

평화롭게 거주하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빈민들의 행렬과 탐욕을 마주해야 했던 사람들,

몇 센트라도 더 얻기 위하여 싸워야만 했던 사람들, 그리고 그것을 지키기 위하여 잔혹하게 진압하는 세력들..


이 모든 것이 한데 뒤섞여 이뤄낸 아수라도가 바로 대공황, 그리고 그것의 파장이었다.




우리는, 점점 더 세계가 종잡을 수 없이 흘러가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대공황의 물결은 가공할 만한 숫자의 사람들을 이곳에서 쓸어다가 저쪽으로 옮기고 있고,



사회가 어떻게 되든 과학의 질주는 마침내 다다르게 될 심오한 곳까지 질주하고 있으며



전쟁의 참화에서 탄생한 이념의 불길은 공황의 거센 바람을 타고 세계로 번져가고 있었다.


세계는 간신히 붙들려 있었다.

그러나 또한 무르익고 있었다.


누가 이 혼란의 시대를 끝낼 것인가?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 지옥으로 세계를 끌고 갈 것이라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