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desire the very thing that dominates and exploits us.

우리를 지배하고 착취하는, 바로 그것을 갈망하게 만드는 것.


-미셸 푸코 Michel Foucault -









 11월에 접어드는 가을의 뮌헨.

즐거움에 흠뻑 적셔진, 그러면서도 격식을 갖춘 잔들이 오가던 맥주홀.

혁명으로부터 5년, 참석한 모든 유력자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웃음꽃이 피어 있었다.


 곧 둔탁한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한 사람만의 발소리가 아니었다.

위기를 감지한 사람들이 달아오른 취기 속에서 허둥댈 때, 그들은 서서히 맥주홀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마침내 철통같은 포위망이 모양을 갖추고, 한 사나이가 마침내 선봉에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의 이름은 아돌프 히틀러였다.






조용히 살고자 했던 사람은 20세기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세기를 관통하는 문장.


 발칸의 저주받은 바보짓 하나가 그 대가로 세계에 남긴 여파는 거대했다.

세계가 공식과 이론 아래 정확히 측량되기 시작했고 전쟁으로부터 촉발된 인간 회의는 그 정점에 이르렀다.

현실과 학계에 거대한 구조들이 세워졌다가 금세 해체되고 다시 세워지기를 반복했으며

정점에 다다르려 하는 인간은 광막한 우주를 이제 막 트인 눈에 담아가기 시작했다.

인류에게 이 모든 발전을 체험시키며 몸소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은 과학이었다.


 이제 대륙을 넘어 온 세계에 과학이 일구어낸 객관의 껍질이 입혀지려 하고 있었다.

모든 개체를 명료한 객관적 사고와 틀 안에 가두고,

그 자신은 마침내 견고한 관념을 향해 날아 오르려 하고 있었다.


 세계가 나날이 발전을 거듭할수록 개인의 개성과 주체성은 발달하는 사회 속에 빠르게 녹아 없어지고 있었다.

그 방법이 폭력적이든, 자연스럽든, 인위적이든지..

양면을 지닌 객관의 마수는 속도감 있게 세상을 환원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광경을 조용히 지켜보던 한 사내가 있었다.



 잠시 뒤 사내는 저 아래 온 세계의 표면을 마치 천막처럼 뒤덮은 수면을 향해 뛰어들며 외쳤다.






사태 자체로 돌아가라!


 이미 모든 학문을 조화롭고 평화롭게 통합하고 이끄는, 

오랫동안 바래왔던 모든 학자들의 꿈인 '보편' 은 더욱 요원한 것이 되고야 말았다.

좋든 나쁘든 모든 학문을 뒤흔들고 있는 저 앞의 거대한 파고를 살아남으려면 뚫어야 했다.


 객관의 천막을 뚫고 인간 의식의 심층부로 파고 들어간 움직임은 혁명적 반성을 추구하고 있었다.

플라톤으로부터 면면히 계승되어 온 합리주의의 편향성을 그들은 밀어 넘어뜨리고자 하고 있었다.

모든 것, 심지어 현상마저도 고정시키고 개념화시키던 전통에 반기를 꺼내 든 이들이 점차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점차 엄청나게 느슨하면서도, 곧 누구도 허물 수 없을 만큼 견고한 하나의 학문적 체계로 변하기 시작했다.


 단촐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시작이었다.


 험난한 여정의 끝이자 앞으로 대륙 전역에 미칠 거대한 영향의 출발점에서,

그가 일으킨 작은 파동은 현상학phenomenology 라는 이름으로 학계의 전면부에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인간 의식의 가장 깊은 곳에서 솟아올라

거대한 시류를 사방으로 찢어발기며 등장한 반역의 기운은 점차 짙어져만 가고 있었다.







 학문에서 세계로 눈을 돌리면 우리는 이상 위의 희망이 참상 속의 희열에 조각나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붕괴와 해체의 상황에서 국제라는 이름은 기어코 사지 잘린 맹수로 전락하고야 말았다.

절단되고 무너져가는 결속의 흐름 속에서 경고와 합의의 쓸모는 말 그대로 빛 좋은 개살구의 정도였다.

몇 천만 명의 목숨을 패권을 향한 참극으로 내몬 참상에 반하여 세운 윌슨의 거대한 실험은 끝내 비극으로 향하고 있었다.


 대략 이 시기 즈음 모든 국가가 나름의 고통을 겪고 그것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고 있음은 공평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시선을 패권을 잃어가던 대륙, 그 중앙에 있는 어떤 민족의 왕국으로 시선을 고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험난한 시기 속에서 피어난 국가와 단결의 사상, 파시즘facism 은 대공황의 해빙을 맞아 전 대륙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뻗어나가던 사상은 곧 분화되기 시작했고 분화된 사상의 일부는 극단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파시즘이라는 제단의 중심부에서 환하게 타오르던 해방이라는 불꽃은 곧 니체의 정신마저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미래와 진보를 향하여 끊임없이 나아가려는 이상주의의 희망으로 가득 찬 이들로 가득 싸인 제단의 중심부는 환하게 타올랐다.

떠밀려 로마로 진군하려는 미치광이 하나가 타오르는 그 불길을 가져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많은 사람의 기대와 우려를 한 몸에 지고 수 천년 고도에 입성한 무솔리니라는 이름의 미치광이는 

기대보다는 우려에 맞게 행동했다. 결속과 단결이라는 미명 하에 수 많은 미래주의자들과 낙관주의자들이 숙청되었으며

이는 파시스트 이탈리아 내부의 독재를 굳건히 하고, 무엇보다 참극에 가까운 선례를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겼다.

그로부터 파시즘은 우리가 아는, 결코 실현되지 말았어야 할 방향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비극 그리고 참극의 시작,

벼랑 끝의 저항으로 세워진 공화국은 이제 한낱 연합국의 허수아비 취급을 받고 있었다.

존재가 운명을 위해 기꺼이 민족의 과업을 자신의 업무로 떠안는다는 하이데거의 생각이 시대를 대변했다.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나 비틀려버린 환경에서 살아남고자 스스로 몸을 뒤틀던 독일의 민중들은 서서히 갈구하고 있었다.


 이 기나긴 빈곤을 찰나의 허기로 만들어 줄 누군가를.

 이미 조각난 민족의 위신을 다시 짜맞춰 줄 누군가를.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일부' 의 마음을 완벽히 대변해 줄 누군가를.



 그리고 그 누군가가 나타났다.





 세상은  '비겁한' 사람들을 위한 곳이 아니다.




광기의 폭풍이 세계를 뒤덮었다.

다가오는 1939년은 마치 필연과도 같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