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t miracles still happen, even if we don't think they do.

하지만 기적은 일어납니다. 비록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이곳의 모든 유대인들은 지금 제각기 다른 감정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당황, 슬픔, 분노, 놀라움, 그리고 공포가 예고도 없이 닥친 재앙에 한데 뒤섞여 요동치고 있다.


불행하게도 이들의 지쳐버린 몸뚱아리를 누일 교통은 벌판을 가로질러 어딘가로 끝없이 향할 것이었다.


그리하여 더 멀리, 더 멀리, 그리고 더 멀리...



그리고 끝내는 아우슈비츠로.






파울 클레paul klee, <새로운 천사Angelus novus>



 운이 나빴다.

결국 벤야민은 하지 말아야 할 선택을 하고야 말았다.

나치의 마수에서 간신히 벗어나 몸을 던지듯이 스페인에 이르렀어도,

그를 기다리던 것은 세관의 차가운 협박 뿐이었다.

고뇌 끝에 삼킨 독은 불운했던 문필가의 목숨을 서서히 옥죄고 있었다.


 살아있을 적에, 그는 연이 닿아 있던 화가 파울 클레에게 수채화 하나를 선물로 받은 적이 있었다.

약간은 기괴한 표정에 무언가를 감싸듯 팔을 벌리고 있는 존재, 클레는 그것을 천사라고 이름 붙였다.

그 기이한 그림을 응시하던 벤야민은, 갑자기 무언가 영감을 받은 듯이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천사가 등을 돌린 미래를 향해, 폭풍은 쉴 새 없이 그를 내몬다.


 우리가 진보라고 이름 붙인 바로 그 폭풍이.


 그림 속의 천사의 눈은 정처 없이 방황하고 있다.

천사라고 부르기 어려운 기이한 종잇장 같은 몸은 당장에라도 흔들릴 듯 하다.

그러나 벤야민은 그의 이름에 새로운novus 이 아닌, 역사의history 천사라는 이름을 안겨 주었다.

마치 지난 역사의 모든 유산과 전언들을 감싸 안기라도 하려는 듯이, 천사는 무언가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다.


 그리고 벤야민은 보았다. 

천사가 등을 돌리고 있던 백색의 배경으로부터 덮쳐오는 무언가를.

기존의 가치, 질서, 국가, 규범을 해체하고 분해하려 서둘러 질주하고 있는 무언가를.

그리하여 마침내 거대한 단일 을 산산이 조각내어 한 시대의 문을 닫고 '이후post' 를 선언할 그 무언가를.


 위험이 그에게 점차적으로 선명하게 닥쳐올 때에도

그는 오히려 클레가 자신에게 선물해준 미래의 청사진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마침내 나치라는 단일 아래의 위험분자들이 하나하나 쓸려 나가고, 마지막 차례가 그에게 이르렀을 때,

그림에 갇히지 않고 곧 현실이 되어 다가올 미래를 목격했던 독일의 유대인 철학자는 쓸쓸히 눈을 감았다.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하나의 지도자.


빈곤에서 피어난 광기가 빚어낸 3원칙에 따라 군대는 지금까지 충실히 움직였다.


 '하나' 의 범주에서 벗어난 자들은

가차없이 머리에 구멍이 뚫리든, 가스로 서서히 숨통이 끊어지든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몰살당했다.

마치 봉제된 인형같은 민족적, 국가적 아름다움을 위하여 약자라고 불리는 자들은 그렇게 사라져갔다.

처음부터 방벽이란 없었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나치의 앞에는 

이제 모든 타자들이 그저 그들을 위해 죽어야 할 먹잇감으로 여겨졌다.


폴란드의 잔재는 지하에 암약했고, 

프랑스인들의 고도 파리는 나치의 깃발 아래 놓였고, 

오직 런던만이 과격한 폭격을 견디며 저항을 이어가고 있었다.


 간신히 이성이라고 부르기도 부끄러운 썩은 동아줄을 붙들던 나치 수뇌부는 이제 마침내 그 손을 스스로 놓아버렸다.

그들은 결국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던 스탈린의 모스크바로 진격할 맘을 굳혔다.

더욱 과격한 폭거를 저지를 수 있음을 위해서라도 그러한 결정은 필수불가결이었다고, 그들은 확신했다.

마침내 그들이 공산주의의 요람으로 한 걸음을 내딛었을 때, 그들은 순식간에 목표한 곳으로 번개같이 질주하고 있었다.





광대한 아시아에서도 합일과 일체의 통치가 작열하듯 타오르며 사람들을 고통 속에 신음하게 만들고 있었다.

폭력으로 강탈하고, 악랄하게 착취하며, 대등하게 대우하기는커녕 문명을 빌미로 뼛속까지 말려 죽이는 그러한 통치가.

그러면서도 이들은 2개의 눈에 '대동아' 라는 단 하나의 터무니없는 이상만을 박아 넣은 채로 멸망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참 이상했다.


작열하는 광기가 대륙의 서쪽 끝과 동쪽 끝에서 전부를 태울 듯한 기세로 진격하고 있었고

모든 것을 나치와 대동아, 그리고 이탈리아라는 이름 하나에 집어넣고 

그러한 하나의 테두리만으로 사람들을 몰개성화시키고, 반하는 경우 몰살했다.

그리고 광기에 빠진 존재들은 잔혹함의 정점에 오른 그들을 옹호했다.

굶주리던 거지부터 둔한 지식인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열렬하게 자신과 그들의 증오를 옹호했다.





열광하던 사람들에게 패배란 논외였고 

그러한 영광과 승리의 뒤에서는 아무도 모르게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동성애자, 집시, 유대인, 공산주의자, 비판적 지식인... 

그들의 죽음을 연료 삼듯이 비정상은 더욱 뻔뻔하게 정상을 호소하고 있었다.


전쟁은 끝나지 않는 걸까?

이 양면의 동전 던지기는 언제쯤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까?



오직 시간만이 답해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