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존재 앞에, 무엇이 선행하는가?



생물은 두 가지의 철학적 개념으로 정의할 수 있는데 하나는 육신(肉身)이고 다른 하나는 실념(實念)이다. 육신이란 어떠한 존재의 구체적 실체를 구성하는 개념으로 동물의 신체와 지구 중의 원소, 통틀어 지구라고 불리우는 원소의 집합 자체가 여기에 속한다. 반면 실념이란 굉장히 추상적인 개념으로 실체적으로 정의할 수 없는 인간의 언어, 감정과 이성 등이 여기에 속한다.

육신과 실념 둘 중 어떠한 개념이 다른 하나의 실존 이전에 선행하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지만, 총괄적인 육신의 발달이 그 실념의 발달에 항시적으로 선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예컨대 인간의 정자(精子)는 사고하는 존재가 아니면서도, 생물학적으로 분명히 움직이고 있다. 물론 그것을 일말의 실념을 배제한 순수 육신적인 존재라고 판단할 수는 없기에, 두 개념의 선행 관계를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필자는 흔히 학문이라는 것을 육신적인 내용을 다루는 것과 실념적인 내용을 다루는 두 가지의 것으로 구분하곤 한다. 양 극단적으로 보자면 육신적인 내용을 다루는 전자의 학문을 순수 과학이라고 정의하고, 그렇지 않은 후자의 것을 순수 인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정의한다. 하지만 두 학문의 본질은 결국 "인간은 무엇인가?" 그리고 "세계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의 구심점과도 맞닿아 있기에, 서로 완벽한 극단으로 분리될 수 없다.

다만 육신 그 자체의 기원을 찾고자 하는 시도는 주로 자연과학에서 다루어져 왔다. 이에 따라 화학적으로 원자라 불리우는 개념이 분리되었으며, 또 다시 원자핵과 전자라는 더욱 작은 모델의 형태로 분리되었다. 원자핵은 또 다시금 양성자와 중성자라는 세부 모델로 분리될 수 있으며, 심지어 이 두 가지의 모델 역시 쿼크라 불리우는 기본 입자의 집합으로 정의된다.

모든 세계의 물질은 쿼크와 같은 "가장 작은 입자" 의 집합으로서 이루어진다. 만약 그러한 "가장 작은 입자" 가 쪼개지고 더욱 잘게 쪼개져서 신의 입자라 불리우는 힉스 보손(Higgs boson)의 수준에 이르고, 그것을 더욱 잘게 쪼개어서 마침내 "진정으로 가장 작은 입자" 를 발견하는 데 성공한다면 어떨까? 애초에 그것을 입자라고 부를 수는 있을까? 필자는 그 존재가 바로 세상 모든 육신(肉身)의 기원과도 다름이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우리가 실존하고 있으므로, 육신의 기원은 실존한다. 이 세계는 육신의 기원으로 이루어져 있음과 동시에 분명히 실존하고 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도대체 어떻게 실존하고 있는가?" 의 딜레마로서 그 존재는 정말 언어 그대로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필자의 생각에 따르면 그것을 신(神)이라고 정의하기에 손색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육신의 발달에 후행하는 실념(實念)의 기원에 관하여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만약 정말로 실념이 육신에 완벽히 후행하는 개념이었다면, 육신의 기원이라 정의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존재" 가 도대체 왜, 어째서, 반드시 존재하는지 큰 의문이 남는다. 적어도 필자는 그 태초의 육신적 존재가 "정의하기 난해한, 그럼에도 분명히 존재하는 명백한 실념을 간직하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언어 그대로 실존할 이유가 없다.

그 실념은 세계의 목적임과 동시에, 또한 실념의 기원으로 정의할 수 있기도 하다. 세계라는 집합을 아우르는 모든 원소는 곧 그들의 실념을 따르도록 존재하고 있기에, 후대의 모든 육신은 이에 따른 진화 과정을 거쳐왔을 것이다. 우리의 존재가 현재까지 "실념의 기원" 에 지배받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서도, 분명한 것은 우리가 실존한다는 그 사실이다. 그 이상은 필자로서도 알 수 없다. 적어도 더욱 나아간다면 나는 그것을 명백히 종교(religion)라고 정의할 수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