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11월 강택민 중국 주석과 정상회담을 하고 난 뒤 공동기자 회견에서 金泳三 (김영삼) 대통령은 일본을 향하여 이렇게 말했다. 


"이번엔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기어이 고치겠습니다. 실제로 못 고치면 정상회담도 포기합니다." 


1997년 김영삼 정부 시절의 외환위기 때 경제부총리를 지낸 姜慶植(강경식) 씨는 '국가가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김영사)이라는 회고록에서 일본의 도움을 받으려다가 거절당한 과정을 소개하였다. 


<상환 능력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평소에 90% 이상이던 단기외채의 滿期(만기)갱신비율(Roll Over Rate)이 60% 이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외환보유고가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했고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엄낙용 차관보(후에 한국산업은행 총재 역임)가 외환시장 동향이 심상치 않다고 하면서 긴급자금지원 요청을 위해 일본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일본에 자금 지원을 요청하는 것과 관련해 예상되는 문제를 제기했다. 우선 미국과 IMF가, 일본과 직접 해결하는 쌍방방식을 별로 환영할 것 같지 않다는 것(AMF 구상의 좌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또 成事(성사)될 가능성도 의문시된다는 것(11월 초의 외신에 클린턴 대통령이 하시모토 류타로 일본 총리에게 앞으로 금융위기로 어려움을 겪는 나라가 생기더라도 양국 간 해결 방식을 취하지 말아달라는 공한을 보냈다는 보도가 있었다) 등의 우려를 말했다. 또 우리 국민들이 일본의 도움을 받을 경우 자존심 손상도 있을 수 있었다. 이렇게 볼 때 일본 정부에 지원 요청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IMF에 지원 요청을 하는 것이 正道(정도)라는 나의 생각을 말했다. 


따라서 일본에 갈 경우 정부 對 정부의 지원이 아닌, 일본 금융기관들이 滿期연장 등에 특별 배려를 해주도록 ‘행정 지도’를 당부하는 쪽으로 교섭하도록 지시했다. 만기연장만 순조롭게 이루어지면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고, 또 비공식적 영향력 행사는 8월 말 미쓰츠카 대장상이 訪韓(방한)했을 때의 예를 보더라도 기꺼이 협조해 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엄 차관보는 1997년 11월10일 訪日(방일)해서 미스터 옌(Mr. Yen)으로 널리 알려진 일본 대장성 사카키바라 차관보를 만난 후 11일 귀국했다. 訪日 성과는 아무것도 없었다. 양국 간 협력은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었지만 일본은행이 한국은행에 대한 SWAP(注: 통화스와프)등 지원은 가능하지 않겠는가, 하고 협력 가능성을 타진했으나 그것도 마찬가지로 안 된다고 했다는 보고였다. 즉 자금난 해소를 위한 지원은 IMF를 통해서만 하도록 이미 미국과 일본이 합의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입장이라고 했다. 


일본 정부가 일본 시중은행에 대해 만기연장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의 협조 요청에 대해서는, 당시 일본의 경제 사정이 어려울 뿐 아니라 일본 검찰이 금융기관과 대장성의 유착관계를 수사 중이어서 대장성의 位相(위상)이 약화된 터라 실현되기 어렵다는 대답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설사 당시 일본 정부가 나서서 만기연장 협조를 요청했더라도 일본 금융업계는 별로 기대할 수 없는 사정에 있었다. 1997년 11월에는 일본도 금융위기에 몰려 엄청난 홍역을 치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은행들이 BIS 기준을 맞추기 위해 무자비한 자금회수에 나섰고 그 결과 수많은 일본의 중소기업들이 흑자도산에 몰리고 있었다. 한국에 대한 배려를 할 여유가 없었다. 다만 일본은 외환 사정이 좋았기 때문에 금융위기가 한국 같은 외환위기로 발전하지 않았을 따름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공언한 사람이다. 김영삼 정부는 그러나 외환위기를 맞아 그 일본에 지원을 부탁하는 처지가 되었다. 韓日관계가 좋았더라면, 韓美관계가 원만하였더라면 일본과 미국은 수백억 달러의 지불 보증으로 한국이 IMF로 가지 않도록 도왔을 것이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일본뿐 아니라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와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失人心(실인심) 상태였다. 외교의 가장 큰 실수는 고립인데, 김영삼 정부는 자주와 민족을 외치다가 동맹국 사이에서 고립되었던 것이다. 


國力(국력) 이상으로 강경 외교를 벌이면 부도가 나는 수가 있다. 일본 지도부가 김영삼의 '버르장머리' 발언을 가슴 속에 새겨 두고 있다가 조용히 보복을 하였다는 해석이 있다. 당시 한국은 흑자 부도 상태였다. 경제지표는 좋았지만 외환 수급에 이상이 생겨 일시적으로 경제동맥이 막히기 직전이었다. 일본이 마음만 먹으면 통화 스와핑 방식으로 얼마든지 일시적 외환 부족을 풀어줄 수 있었다. 당시 김영삼 주변엔 그런 일본통이 없었다. 김종필, 박태준 같은 일본통은 김대중 편에 가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자신이 지금 김영삼과 비슷한 처지가 아닌지 살펴보길 바란다. 트럼프가 아베의 팔을 비틀면서 도와줄지, 아니면 이 기회에 다시 한국의 버르장머리를 고치려 할지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