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박정희 대통령을 생각하게 된다. 위대성은 모순 속에서 태어난다. 바보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떠들어 대지만 그들은 박정희를 논할 자격이 없는 자들이다. 모순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은 인생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은 독재와, 기업에 대한 특혜와, 부채 성장을 마치 박정희 시대의 오류인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오류가 아니다.
부채성장이 아니면 가진 것이라고는 한 푼도 없는 나라에서 무엇으로 기업을 세울 것이며, 기업에 특혜를 주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국민들에게 일자리와 성장과 저축을 가져다 준 것이고, 독재라고는 하지만 기생집에 웅크리고 있던 해방 공간의 그 낡아 빠진 정치꾼들을 쓸어버린 것이 진실이고, 강제였다고는 하지만 국민들을 일터로 내 몬 것이었고, 강압이었다고는 하지만 시골 노름방과 술주정꾼들을 흔들어 깨운 것이었고, 사상의 통제가 있었다고 하지만 대학의 낡은 주자학적 잠꼬대에 "정신 차리라"며 찬물을 끼얹은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아무도 당시에는 몰랐다. 그렇게 생산을 위한 정치를 해본 적도 없고, 그렇게 긍정적인 일을 해본 적도 없고, 그렇게 기업을 해본 적도 없고, 그렇게 수출이라는 것을 해본 적도 없고, 그렇게 열심히, 정말 열심히 일을 해본 적도 없었다. 시골서 상경한 가난한 농부의 딸들은 도시에 나와서야 비로소 야간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되었고 경제적으로 자립하게 되었다. 전태일도 김우중 같은 이들이 있고서야 봉제공장서 적지않은 월급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그런 기업이 있었기에 YH사건도 터져나올 문제로 존재했던 것이다. 그런 근거나마 없었더라면 소위 착취받던 여공들은 그나마의 기회마저 사라진 전통의 농촌에서 더욱 영락한 처지였을 것이다. 소팔아 대학 다닌 우골답의 졸업생들은 그랬기에 비로소 세계를 뛰는 상사맨이 될 수 있었고, 이제 막 신도시로 만들어지고 있던 강남에 작지만 나의 아파트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함부로 지나온 고된 삶에 대해 지금의 무지한 관점에서 지껄이지 마라. 처음부터 그 모든 것이 존재했던 것처럼 말하는 자들은 자신이 어떻게 다리 밑에서 태어났는지조차 모르는 바보들이요, 삶에 대한 백치들이다.
지금은 백치들이 지배하는 그런 시대다. 아무도 박정희 시절로 되돌아가고싶어 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그 시절을 비난하지는 마라. 박정희가 있었기에 청바지 문화가 가능했고 비아냥거리는 청년문화도 형성되었다. 박정희가 없었더라면 그들은 시골에서 지게꾼이나 했을 지 모르고 술주정뱅이가 되었을지 모르고 꼴이나 베러 다니면서 희망이라고는 없는 하늘을 씨팔!이라며 올려다 보았을 것이다.
그들은 민주주의의 부재를 한탄하며 '타는 목마름'을 노래했지만 박정희가 아니었다면 김지하는 프랑스 시인의 이 노래를 표절할 정도의 능력이나 시재조차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신새벽 뒷골목에/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여/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내 발길은 너를 잊은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오직 한가닥 있어/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숨죽여 흐느끼며/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타는 목마름으로/타는 목마름으로/민주주의여 만세’
그렇게 김지하는 노래했지. 당시만해도 우리는 아무 것도 알지 못했다. 박정희가 이 시대의 청년들이 민주주의를 자각할 만한 시간과 공간의 여유를 만들어 냈다는 사실 말이다. 그러나 바보들은 그것이 어디서 어떻게 나타난 것인지 조차 모른채 박정희를 비난하고 욕해댔다. 박정희는 기업들에 특혜를 주고 기업들로 하여금 부채를 거품처럼 조달해 또 기업을 만들도록 했다. 그렇다. 박정희는 그렇게 했다.그렇게 가난과 질시만이 깡마른 풀섶처럼 자라나고 있던 대한민국을 이런 풍요의 국가로 바꿔 놓았다.그리고 풍요는 부뚜막에 오줌이나 쓰는 그런 족속들도 동시에 만들어 냈다.
그 족속들은 박정희를 그들이 만들어내는 모든 죄악 속에 빠뜨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