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솔에 간 프붕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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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은 해줄 수 있고, 지금도 해 주고 있지만 아직 적극적으로 나설 수는 없어.”

 

“마스터, 동생 군이 이렇게 부탁하는데 좀 해 주면 안 돼?”

 

“슬슬 오빠도 라비린스의 일원으로 맞이해도 되지 않을까요?”

 

“저... 나 아직 한 마디밖에 안 했어. 그리고 난 이미 미식전 소속이야.”

 

“이렇게 귀여운 동생 군의 부탁을 거절하다니! 마스터는 피도 눈물도 없어?”

 

“그래요! 이때가 아니면 언제 오빠가 우리 길드에 들어와준다고 말할지 모른다고요!”

 

“그러니까 나는 미식전 소속이야.”

 

“결국 이렇게 될 것 같았단 말이지... 그래서 접촉은 최대한 피하라고 했던 건데, 곤란하게 됐어.”

 

“라비 누나도 고생하시네요...”

 

“너도 말야...”

 

두 명은 무언의 공감을 한 뒤, 시즈루와 리노를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라비 누나의 도움이 필요한 건 사실이에요. 물론 공짜로 해달라고 하지는 않아요. 거점 옮기시느라 경제적으로 부담이 있는 건 사실이잖아요?”

 

“호오, 소년. 그 말은 나를 돈으로 매수해보겠다는 뜻 같은데? 미안하지만 나는-”

 

라비리스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키시쿤은 무료연 170연차를 책상 위에 쿵 하고 올려놓았다.

그 모습에 라비리스타의 눈이 약간 흔들렸지만, 이내 정신을 붙잡은 듯 말을 이었다.

 

“...그렇게 싼 여자가 아니야. 이 정도로는 택도 없어.”

 

“그런가요? 물론 저도 그렇게 누나를 가볍게 보지 않아요.”

 

키시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책상 위에 추가로 19500쥬얼을 올려놓았다.


“...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큰 돈이구나. 좋아, 뭐든 협력할게~”

 

반짝반짝 빛나는 쥬얼의 밝기에 결국 라비리스타는 키시쿤의 설득에 넘어갔다.

물론 이번 거래는 키시쿤에게도 뼈아픈 지출이었다.

그러나 라비리스타의 눈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키시쿤은 어딘가 먼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아아, 익숙한 천장이다.”

 

 

 

“아, 그래서 도와줘야 할 일이 뭐야? 말해두지만 난 별로 전지전능한 신 같은 게 아니라서 의외로 제약이 많다고?”

 

“뭐, 라비 누나에게는 간단한 일이에요.”

 

그렇게 말하며 키시쿤은 한 시름 놨다는 얼굴로 종이 한 장을 내보였다.

종이에는 무수히 많은 그림과 함께 설명이 써져 있었다.

 

-18템 목록

-시작의 로브x18

-그리핀의 날개 장식x28

-사법신의 석장x38

-태양의 목걸이x48

-아이스 클레이모어x58

.

.

.

 

 

“오브젝트 작성이 특기시잖아요?”

 

“...너, 의외로 사람을 혹사하는 타입이구나.”

 

“추가로 필요한 건 통신기로 연락드릴게요. 아, 무이미한테 천루패단검도 좀 쥐어주시고요.”


“한동안 마나가 남아나지 않을 거 같네... 뭐, 휴식도 필요할 테니까-”

 

“여기 탐색 2배 티켓이랑 던전 2배 티켓도 두고 갈게요. 클리어는 둘한테 하청 맡기면 되니까, 최대한 아이템 작성에 집중해주세요.”

 

“...아마 라비린스가 나라와 관계없는 곳으로 무너진다면, 그건 아마 네 탓일거야, 소년.”

 

“칭찬 감사합니다. 그러면 슬슬 미식전에 보내주실래요? 저는 이만 길드에서 뒹굴고 싶어서.”

 

“서비스를 받았으니까, 이쪽도 서비스를 주긴 해야겠지. 하아... 내가 어쩌다가 이런 의뢰를 받았을까.”

 

 

 

미식전 안

 

“어딜 나갔다가 이제 돌아오는 거야!”

 

“쇼핑.”

 

“...뭐?”

 

“좀 좋은 걸 살 수 있었거든. 2만쥬얼 정도 했지만.”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주인님. 여기 캬루 님과 제가 번 5천 쥬얼입니다.”

 

“오, 많이 벌었네? 요즘 좀 쥬얼이 부족해서 말이야. 꼭 필요한 데만 쓰는데도 쥬얼이 남아나질 않는다니까?”

 

“...그게 사흘 만에 7만 쥬얼 넘게 쓰고 온 사람이 할 소리야!”

 

“화내지 마세요, 캬루 씨~ 화내면 주름이 생겨요. 자, 스마일 스마일~☆”

 

“지금이 웃을 때냐고! 아무튼, 오늘 길드 의뢰에는 너도 강제 참가야!”

 

“뭐? 난 이만 뒹굴거리고 싶은데... 돈은 콧코로 마망이 벌어준다 했잖아.”

 

“그렇습니다, 캬루 님. 주인님은 제가 충분히 먹여살릴 테니 걱정마시고-”

 

“먹고사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이대로 가다가는 빚더미 위에 나앉게 생겼다고-! 하루에 1만쥬얼씩 쓰고 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러나 캬루가 열심히 설교를 하는 도중에도, 

키시쿤은 별로 대꾸하지 않은 채 콧코로와 페코린느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오오, 이게 주인님께서 사오신 옷입니까. 나비같이 예쁜 옷이군요.”

 

“제 옷에는 음식을 잔뜩 넣는 주머니가 달려 있어요! 이걸로 싸우는 중간에도 계속 음식을 먹을 수 있겠네요♪”

 

“라비리스타 누나랑 협상하는 도중에 받은 거야. 다음에는 그거 입고 한 번 싸워보자고.”

 

“...그니까, 너네는 제발 내 이야기 좀 들어!”

 

미식전 안에 한탄이 가득찬 캬루의 소리가 쓸쓸히 울려퍼졌다.

 

 

 

 

“생각보다 흔쾌히 일하러 나왔네? 좀 더 떼를 쓸 줄 알았는데,”

 

“주인님이 길드에서 쉬시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떼가 아닙니다.”

 

“네가 그래서 얘가 성장을 못하는 거잖아, 코로스케!”

 

“유우키 씨는 이미 멋지게 성장한 남성분이랍니다. 캬루 님은 그렇게 생각 안하시나요?”

 

“...뭐, 얼굴은 나쁘지 않지만. 아무튼! 성격이 저래서는 멋지다고 할 수 없어!”

 

“응? 캬루 씨, 앞에 뭐라고 하셨나요? 잘 못들었어요.”

 

“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것보다, 유우키 너는 우리가 지금 어디 가는지는 알고 있어?”

 

“응? 목장 가는 거 아니야? 마침 목장에는 볼 일이 있으니까 따라 나왔는데?”

 

“...잠깐, 같이 일하러 나온 게 아니야?”

 

“목장에는 린이 있었지, 그러고보니. 그러면 남는 시간에는 린이랑 같이 노는 것도 괜찮겠다.”

 

“놀지 말고 일하라고!”

 

그렇게 미식전은 시끌벅적하게 길을 걸었다.

 

 

10분쯤 걷다 보니 저 멀리에 농장과 같은 게 보이기 시작했다.

엘리자베스 파크에 거의 도착한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절대 낭비하지 말고 아껴야 해!”

 

“알고 있어. 안 그래도 요즘 쥬얼이 부족해서 존버 중이야.”

 

“존버...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낭비만 하지 않는다면 그걸로 됐어.”

 

“1천장은 남겨놔야 필수를 또 뽑으니까.”

 

“...결국 낭비한다는 뜻이잖아! 아니, 일단은 아낀다고 했으니 조금 기다려봐도 될까? 음...”

 

“저, 주인님. 캬루님. 멀리서 누군가 저희를 향해 달려옵니다.”

 

“사람? 은 아닌 것 같은데요... 털이 새하야네요?”

 

“설마...!”

 

키시쿤이 눈을 들어 길을 바라보니, 

이족보행하는 라마 한 마리가 미식전을 향해

정확히는 키시쿤을 향해 오고 있었다.

 

“유우키, 마중하러 왔어!”

 

리마의 목소리가 들리기가 무섭게,

키시쿤의 반응은 그 무엇보다 재빨랐다.

곧바로 품에 손을 넣더니, 수많은 쥬얼들이 리마의 앞으로 빗발쳤다.

 

“응? 이게 뭐야? 쥬얼?”

 

“유우키! 너 지금 뭘-”

 

“갈라져라, 쥬얼이여!”

 

키시쿤의 말 한마디에 쥬얼이 강력한 빛을 내면서 신석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무,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요?”

 

“-하려고 있는 거야!”

 

“터져라, 여신석!”

 

키시쿤의 호령이 끝나자마자, 무수히 많은 신석들은

다시 한 번 리마의 메모리피스로 그 형태를 바꿔나갔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예쁘네... 응, 유우키?”

 

그리고 유우키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오른손을 리마에게로 뻗으며 외쳤다.

 

“Vanishment this beast! (소멸해라, 이 짐승아!)”


순간 리마의 몸에서 강렬한 빛이 빛나더니,

이내 ☆☆☆☆☆★이라는 모양과 함께

빛이 잦아들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한 명의 ‘인간’ 여성이 서 있었다.

 

“오오, 이게 주인님께서 말씀하신 ‘쓰레기를 아레나 입장권으로 바꾸는 힘’입니까.”

 

“우와, 예쁘게 되었네요~☆”

 

“...이게, 진짜 나야? 정말로..?”

 

“...방금 내 눈앞에서, 수만개의 쥬얼이, ...이거 꿈 아니지?”

 

그러나 네 명이 방금 일어난 상황에 넋이 나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현상을 일으킨 키시쿤은 조용히 구석에 앉아서 무언가 중얼거릴 뿐이었다.

 

“저건짐승이다저건짐승이다저건짐승이다저건짐승이다맛만좋으면그만저건짐승이다저건짐승이다나는리마단이아니다나는리마단이아니다나는리마단이아니다나는리마단이다나는리마단이아니다나는리마단이아니다...”

 

가장 냉정하게 상황을 보고 있던 탓인지,

가장 먼저 키시쿤의 상태를 알아차린 캬루가,

이번 일의 항의도 할 겸 키시쿤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말을 걸었다.

 

하지만, 키시쿤의 상태가 많이 안 좋았던 게 문제였던 모양이다.

 

“유우키! 정신차려! 너, 지금 쥬얼을 얼마나 낭비한 건지 알기나-”

 

“꺼, 꺼져, 짐승놈아!”

 

퍼억-

 

“...아, 미안. 다른 짐승이었네. 내가 순간 착각했어. 아무래도 같은 카테고리다 보니까.”

 

생각보다 강한 키시쿤의 펀치에 기절한 나머지

캬루가 키시쿤의 말을 듣지 못했던 건,

어쩌면 행운이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캬루를 때려 날리고 어느 정도 평정심을 찾은 키시쿤.

극도의 혼란상태마저 치료하다니,

역시 캬혐에는 정신을 맑게 해주고 만병을 치유하는 힘이 깃들어 있는 것이 틀림없다.

 

“콧코로, 수영복 폼으로 유버 좀 부탁할게.”

 

“알겠습니다, 주인님. ‘오션 힐’.”

 

“어머, 내 정신 좀 봐. 깜짝 놀라서 인사도 제대로 못했네. 나는 리마야. 목장에서 마스코트를 담당하고 있어. 그리고 유우키, 고마워! 나도 한 번 인간모습으로 지내 보고 싶었어!”

 

“그래... 알았으니 가까이 오지 마...”

 

“맞다. 큰 마법을 써서 좀 힘들구나? 괜찮아, 천천히 따라와. 길에 나오는 마물들은 내가 처리할 테니까.”

 

“그래, 고마워...”

 

키시쿤이 힘 빠진 모습으로 리마를 상대하는 동안,

치료가 끝난 캬루가 부스스한 눈을 뜨면서 깨어났다.

 

“음냐... 난 왜 이런 곳에서 자고 있던 거지...?”

 

“캬루 씨는 유우키 씨의 어마어마한 마법을 본 뒤로 기절하셨답니다☆ 그만큼 놀랄 만한 마법이기도 했지만요.”

 

“...그래, 맞다! 유우키! 도대체 얼마나 쥬얼을 흩뿌린 거야!”

 

“...가진 거의 절반 정도?”

 

“미쳤어!? 아껴 쓴다고 했잖아! 며칠 사이에 거진 십만 쥬얼 가까이는 나갔겠다! 이게 무슨 짓-”

 

“잠시만요, 캬루 님.”

 

또 일어나자마자 설교를 하려는 캬루를, 콧코로가 옆에서 막아섰다.

캬루는 기분이 나쁜 상태였지만, 콧코로의 말을 무시하지 못하고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뭐야, 코로스케!”

 

“지금 주인님께서 십만 쥬얼 가까이 쓰셨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래, 맞아!”

 

“저희가 언제 십만 쥬얼 씩이나 벌었었나요?”

 

“그거야 물론... 어?”

 

“주인님이 아메스 님의 인도를 받아 이 땅에 왔을 때는, 분명 한 푼도 없으셨을 겁니다. 그러면 적어도 주인님이 사용하신 쥬얼의 절반은 주인님이 벌어들이신 것. 그것에 대해서는 캬루 님이 화낼 이유가-”

 

“잠깐만, 그러면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그러고 보니 미식전의 세 명이 열심히 돈을 번 것은 맞지만,

모두 해도 거진 5만 쥬얼도 채 벌지 못했었다.

그러나 키시쿤이 사용한 쥬얼은 십만 가까이, 아니 그보다 더 클 수도 있다.

 

하지만 키시쿤이 쥬얼을 벌기 위해 일을 하는 모습은 몇 번 본 적이 없다.

대부분 길드에 누워서 놀고먹고 있지 않았던가.

그러면 키시쿤이 벌어온 5만 쥬얼은 어디서 온 걸까.

 

“유우키... 너 어디서 그만한 쥬얼을... 설마!”

 

“설마, 뭐.”

 

“도둑질...!”

 

퍼억!

 

키시쿤의 주먹이 캬루의 배를 정확하게 가격했다.

캬루는 소리도 내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무릎 꿇었다.

유우키는 살며시 캬루 앞에 앉아서 슬쩍 귀에다 대고 말했다.

 

“배신자한테 범죄자 취급받고 싶지는 않은데. 첫째 날에 내가 너무 상냥하게 대했었나? 요즘 좀 시끄럽다?”

 

“읍... 으읍...”

 

캬루의 머릿속에 불현 듯 첫날의 공포가 솟아올랐다.

캬루는 간신히 키시쿤을 보면서 고개를 세차게 도리도리 할 뿐이었다.

키시쿤은 그 모습을 보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래, 뭐. 아직은 쓸 데가 있으니까. 아무튼 입 조심해라? 선 잘 타고.”

 

“...네.”

 

키시쿤은 천천히 캬루를 잡고 일어났다.

그러나 캬루는 배를 부여잡은 채로 도저히 움직일 수 없었다.

그걸 본 키시쿤이 한 마디 했다.

 

“아픈 데를 문지르는 건 좋은데, 그런 표정이면 너무 내가 너를 괴롭히는 거 같잖아. 안 그래?”

 

“네...”

 

“아, 실패인가. 카오리한테 류큐견을 제대로 배워놓을 걸 그랬네. 역시 프로에는 못 미친다니까.”

 

캬루는 그제야 주변을 볼 여유가 생겼다.

페코린느도, 콧코로도, 리마도 

자신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고 있었다.

 

“캬루 님, 무슨 일이신가요? 어디 몸이 좋지 않으십니까?”

 

“혹시 아까 먹었던 마물이 문제였나요?”

 

“근처에 마물은 없음! ...우왓! 갑자기 왜 배를 잡고 있는 거야!”

 

“캬루가 속이 안 좋은 모양이야. 콧코로, 오션 힐 한 번만 더 써줘.”

 

“알겠습니다. ‘오션 힐’!”

 

“어때, 좀 괜찮아? 물론 병까지는 고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한결 낫지?”

 

“히익... 네, 괜찮습니다!”

 

“뭘 또 그렇게 긴장하고 그래. 그렇게 오버하지 않아도 돼.”

 

하지만 캬루의 머릿속에는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배를 맞은 거야 그렇게까지 아프지는 않았지만,

그보다 세 명의 눈길을 정확히 피해서 아무일 없다는 듯이

자신에게 주먹을 꽂아넣은 키시쿤이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불편해? 잠깐만 기다려 봐.”

 

“히익...!”

 

키시군은 무서워하는 캬루를 아랑곳하지 않은 채

다시 캬루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평상시처럼 하지 않으면 의심받겠지? 자, 박수소리가 나면 평소대로 돌아오는 거다. 하나, 둘.”

 

짝!

 

“어... 응... 미안, 유우키. 속이 조금 좋지 않아서 말이야. 그래도 지금은 좀 나아.”

 

“그래? 피곤한 것 같은데, 무리하지는 말고.”

 

캬루는 언제 그랬냐는 듯 피곤한 얼굴로 키시쿤에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 눈에서는 아까와 같은 공포는 찾아볼 수 없었다.

 

“네가 쥬얼을 낭비만 하지 않아도 좀 괜찮았을 텐데 말이야. 그건 그렇고 그 5만 쥬얼은 어디서 벌어온 거야.”

 

“그렇습니다, 주인님. 비록 주인님은 충분히 그럴 능력이 되시는 분이지만, 주인님께서 고생하시면서 돈을 버는 모습은 별로 보고 싶지 않습니다.”

 

“유우키 씨, 돈이 없어도 맛있는 음식은 충분히 먹을 수 있다고요☆”

 

키시쿤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식전의 멤버들을 보고 말했다.

 

“글쎄, 별로 말하고 싶지 않기는 했지만, 오늘 기분도 좋으니까 슬슬 보여줘도 괜찮겠지. ...안나가 있었으면 매우 좋아했을 텐데 말이야.”

 

그리고는 하늘 위로 오른손을 들고 외쳤다.

 

“내 오른손에 깃든 흑염우(黑炎牛)에게 명한다! 처참한 길을 뚫고 지갑으로의 문을 열어라!”

 

그러자 키시쿤의 오른손에서 검은 무언가가 흘러나와 

키시쿤의 온 몸을 뒤덮기 시작하더니,

이내 하늘을 뚫을 기세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이, 이게 뭐야!?”

 

“뭔가 불길하네요.”

 

“주인님이 하시는 일이니 위험하지는 않겠지만...”

 

“뭐야, 이거는 아까와 다른 마법이야?”

 

키시쿤의 손에서 떠난 검은 기운은, 하늘을 빙빙 돌며 모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거대한 구름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구름 가운데서 형언할 수 없는 형체의 소리가 울려퍼졌다.

 

[검은 소의 울음을 듣고 나 여기 현현하노니,

나는 지혜와 양심의 수호자, 지갑으로의 길을 지키는 문지기.

너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세 가지 시련에 답해야 한다.

준비는 되었는가.]

 

“얼마든지.”

 

[...좋다. 첫 번째다. 앞으로의 인생과 내일의 식량을 위해 더 값진 곳에 투자할 생각은 없나?]

 

“저에겐 공주기사가 인생입니다.”

 

[...두 번째다. NO재팬에 동참할 일말의 애국심은 남아있지 않은가.]

 

“NO재팬에서 ‘노’는 빼고 주세요. 왜냐하면 ‘노’는 좀 일베 같으니까...”

 

[...세 번째다. 부모님께 효도할 생각은 들지 않는가.]

 

“부모님 안마의자 하나 사 드린 셈 치지 뭐.”

 

세 번째 질문이 끝나자, 형체가 잠시간 침묵했다.

난해한 질문을 하는 형체의 목소리에 막힘없이 대답하는 키시쿤을 보면서

세 명은 어안이 벙벙한 채 그저 멍하니 듣고 있을 뿐이었다.

 

이내, 다시 하늘에서 소리가 들렸다.

 

[...정답이다, 현금술사! 너는 능지에게 이겼다. 가져가라, 네 지혜와 양심의 대가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늘의 검은 형체도

키시쿤을 뒤덮은 검은 소의 형상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다만, 그의 앞에 놓인 쥬얼주머니가 방금 있었던 일이 현실임을 알리는 듯 했다.

 

“2만4천 쥬얼인가... 앞으로 한 달은 프리코네 불매해야겠군.”

 

“유우키... 그거 쥬얼이야? 그런 힘이 있었다면 어째서-”

 

캬루는 쥬얼을 보고 유우키에게 기쁜 목소리로 말을 하려다 그만뒀다.

유우키의 표정이 마치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가자. 이번에는 정말 아껴써야 하니까.”

 

“아, 응... 그래...”

 

네 명은 아무런 말 없이 목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펑! 펑! 펑!

 

목장에 가까이 갈수록 무언가 폭탄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처음에는 작은 소리였지만, 목장에 가까이 갈수록 귀가 떨어질 것 같았기에,

참다못한 캬루가 리마에게 물었다.

 

“도대체 이건 무슨 소리야? 귀 떨어지겠네!”

 

“아마도 시오리가 활 연습을 하고 있는 소리일 거야. 아, 저기 봐봐!”

 

리마가 손으로 가리킨 곳에는 큰 산 하나가,

마치 폭격이라도 맞은 듯이 구멍이 패이고 있는 광경이 보였다.

그리고, 구멍이 패일 때마다 산에서는 굉음이 울려퍼졌다.

 

“저게 활 연습이라고? 그 시오리라는 사람은 도대체 얼마나 괴물인 거야?”

 

“무슨 소리야? 시오리는 병약한 아이라고?”

 

“병...약? 활로 포탄을 쏘는 아이가 병약하다고?”

 

어리둥절하는 캬루의 모습에, 키시쿤은 캬루한테 살며시 말했다.

 

“캬루, 시오리는 병약해. 하지만 나라면 절대 시오리는 건들지 않을 거야. 여기서는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만큼 위험하다는 걸 마음에 꼭 새겨놔.”

 

키시쿤의 말에 캬루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마음속 메모의 조심해야 할 인물 목록 안에

키시쿤 이름 옆에 시오리를 추가했다.

 

“주인님. 그 시오리라는 분은 어떤 분이신가요?”

 

“몸이 약해서 목장으로 요양을 와 있는 아이야. 취미는 독서. 몸이 나쁘긴 하지만 활을 쏠 때 만큼은 조금 낫다고 하나 봐.”

 

“유우키 씨, 저건 조금이 아닌 수준 같은데요?”

 

“멀리 있는 표적일수록, 또 활을 오래 쏠수록 더 잘 쏴진다고 하더라. 나는 궁수가 아니라서 그런건 잘 모르지만.”

 

“저 정도면 한 150발 정도 쏜 것 같은데? 오늘은 연습을 늦게 시작한 모양이야.”

 

“어떤 병약소녀가 활 150발을 쏘는 체력으로 산을 날려먹는 파워까지 겸비하냐고! 말이 돼?”

 

“저, 죄송해요... 활이 재미있어서 쏘다 보면 어느새... 그래도 저 정도 먼 거리는 정확성이 떨어져서 표적에서 10m정도 벗어나니까 큰 의미가 없어요.”

 

“저 파워면 10m 벗어나는 건 아무 의미 없다고! 여파에 맞아 죽지 않아?”

 

“글쎄요... 저기까지 가보기에는 체력이 부족해서... 앗!”

 

휘청-

 

쾅!

 

굉음과 함께, 캬루 바로 옆에 있던 큰 나무에 

파인 듯한 손자국이 새겨졌다.

그제서야 네 명은 소리가 난 곳을 돌아보았다.

 

“시오리! 연습이 끝날 때 쯤 데리러 간다고 했잖아!”

 

“유우키 씨가 오신다고 들어서요. 그래도 마중을 나가야...”

 

“가뜩이나 몸도 안 좋은데, 이렇게 돌아다니면 어떡해! 방금도 휘청거렸지!”

 

“활을 쏘면 몸이 좀 괜찮아지니까, 이 정도는 혼자서 걸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아무튼 빨리 등에 타! 침대에 눕혀 줄게. 미안해 유우키, 얼마 안 남았으니 남은 거리는 셋아서 와 줘.”

 

“저 리마 씨, 그러지 않으셔도- 앗!”

 

시오리의 말이 끝날 새도 없이, 리마는 시오리를 매고 달렸다.

그렇게 미식전의 멤버들만 덩그러니 나무 옆에 남게 됐다.

 

“유우키, 나 방금 저 아이가 기대듯 살며시 손댄 나무가 손 모양으로 쑥 들어가는 걸 봤어...”

 

“시오리는 ‘호랑이 수인 치고’ 병약하니까 잘 챙겨줘야 해.”

 

“음식도 잘 먹지 못하는 걸로 보였는데, 많이 약하신가 보네요.”

 

“너는 이럴 때도 먹는 게 기준이야?”

 

“봉사할 대상이 한 분 더 늘은 것 같습니다. 빨리 가시죠, 캬루 님.”

 

“...돌봐주다가 우리도 같이 드러눕게 되지 않을까?”

 

태평한 셋에 비해 혼자 안절부절 못하는 캬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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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라면 3화로 끝내려 했는데, 왜 길어졌지... 길어질수록 노잼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