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연휴가 이틀밖에 남지 않았을 때


애니메이트 구경 후


신년을 맞이하는 겸 간만에 바다구경이 하고싶었다


저녁 바다가 보기 좋을 것 같아 장소를 고민했었다


해운대는 사람 많아서 싫었고


송정 역시 소문나서 사람이 많아지는 추세라 끌리지가 않았다


그렇게 속으로 결정하게 된 곳이


부산 외진 곳에 있었던 영도구의 감지해변이였다


도착 후 약 40분동안 바다 풍경을 보았다






감지해변 바로 앞은 보통 조개구이집이 즐비한데


건물 사이에 조그만한 분식집이 하나 있었다

(넓이가 원룸 수준이였음)


혼자 조개구이에 술 먹기엔 너무 이른시간이라


그냥 가서 라면 한그릇만 먹어야지 하고 들어갔다


들어오자마자 식당 안에서 담배냄새가 났다


난 뭐 흡연자니까 그러려니 했다


안에 계셨던 식당 주인 할머니가 사과하셨다


‘저도 흡연하니까 괜찮습니다’ 라고 했다

(신성한 주방을 앞에 두고 담배피는건 나이 불문하고 선 세게 넘는 행동이다)


그냥 해물라면 하나만 끼리주세요 하고 얌전히 앉아 기다렸다


할머니가 테이블을 닦아주며


’상좀 닦아드리겠심더 ㅎㅎ‘ 하며 살갑게 대해주셨다


테이블에서 주방을 잠시 엿봤는데


어디서 받아놓은 물을 냄비에 받아서 사용


라면은 안성탕면을 사용


조리 과정 중 조개류 담는 소리 3번


야채 손질하는 소리 두번


건미역 넣는 장면 확인


그렇게 라면을 기다리고 10분 가까이가 되어서 라면이 나왔다






여태껏 몇십년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라면들을 보았지만


식당 할머니가 끓여주신 라면의 비주얼은 참으로 신기하였다


피카소가 라면을 끓이면 이렇게 끓여주겠구나 싶었다


바지락 / 홍합 / 새우 / 미역 / 파 / 건고추 / 애호박이 보였다


국물도 한강수준이라 먹기도 전에 맛이 어떨지 파악이 될 수준이였다


그렇게 한젓가락 조심히 먹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라면 스프 특유의 감칠맛이 느껴지지 않고


해산물 특유의 비릿하며 짭조름한 맛이 대부분이였다


그렇게 한 젓가락을 먹고 나서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마치 식당에 들어와서 보았던 광경들이


조각난 퍼즐이 맞춰지는 것 처럼


하나의 결론이 도출되었다


‘여기 드럽게 맛 없어서 손님이 안 오다가 내가 첫 빠따로 온거구나’ 


그렇게 또 들은 두번째 생각


이런 상황인데 내가 음식을 몇 젓가락만 먹고 나가버린다면


아무래도 마음이 상하시진 않을까 싶어서

(살갑고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그런 생각이 든거지 싸가지 없었으면 그냥 음식에 침뱉고 나갈 생각이였음)


적어도 건더기는 다 먹고 나가자 하며


천천히 건더기들을 먹었다


뭐 당연하게도 맛은 없었다


그렇게 세번째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들어오자마자 봤던 메뉴판에 칼국수가 적혀 있었는데 


설마 이 할머니 라면도 칼국수랑 같은 레시피로 조리한건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건더기만 다 건져먹고


식당 주인 할머니에게 잘 먹었다고 인사하며


현금으로 결제 후 분식점을 벗어났다




다신 안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