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당시 스무 살이던 저는 장충동 D 대학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집에서 통학하려면 대략 두시간 조금 안 되는 시간이 걸렸는데, 왕복 4시간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제 하루에 많은 비중을 차지하더군요.



게다가 여자친구랑 만나다 보면 금세 지하철이 끊기는 일이 태반이라, 결국 상경해서 살기로 했습니다.







원룸을 알아보고 있었는데, 최대한 학교에서 가까운 곳에서 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이 보증금이 천만 원은 기본이었고, 보증금이 저렴한 곳은 월세로 지급하는 금액이 상당히 비쌌습니다.



결국, 저는 당분간 고시원에서 지내기로 했죠.







학교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그루터기 고시원이라는 곳이었는데, 한 달 고시원비가 20만 원이었습니다.



생각보다 값이 저렴했죠.



물론 방에 창문은 없었고, 화장실과 취사시설은 다 같이 쓰는 구조였지만요.







워낙 학교에서 가깝다 보니 한두 달 정도만 살고, 원룸을 구해서 나갈 생각이었습니다.



근데 사람이 환경에 적응해버리면, 익숙해져서 새로운 환경을 거부하게 되더라고요.



7월에 고시원에 들어갔는데, 어느덧 11월을 지날 무렵이었습니다.







마침 11월에 제 생일이 있어서 동기들과 학교 앞 베XX트라는 술집에서 파티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닮아 술이 강한 편인데, 이상하게 그날은 빨리 취해서 결국 동기들이 저를 데려다 주게 되었습니다.



저는 취기를 없앤답시고 동기들과 학교 중앙 광장 코끼리 동상에 올라가는 등 미친 짓을 하다가, 동기들을 먼저 보내고 비틀거리면서 고시원으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고시원은 동산 뒤에 있는데, 그곳은 건물로 둘러싸여 있고 가로등도 하나밖에 없는지라 11시 정도만 되도 인적이 상당히 줄어들고 나름 음산한 분위기를 내뿜는 곳이었습니다.



겨우 골목 앞까지 와서 "아 이제 다 왔다." 생각하며 고시원 쪽으로 향하는데, 가로등에 어떤 여자가 머리를 툭툭 박고 있었습니다.



마치 왕복운동을 하는 듯 말이죠.







저는 [저 여자도 술 취해서 맛이 갔구나...] 하고 혼자 중얼대며 고시원에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갑자기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느낌이 들더니 뒤에서 [너무 춥다...] 하고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마치 기계로 조합해 낸 것 같은 소리였죠.







흔히 공포영화나 그런 곳에서 나올법한 목소리였어요.



상당히 거슬리는 기분 나쁜 톤이었고.



취기 때문에, 그리고 피곤하기도 했기에 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한마디 던졌습니다.







[집 가서 발 닦고 자면 되지, 왜.]



그리고는 고시원으로 올라갔습니다.



1층은 사무실 같은 곳이고, 2층은 총무실과 여자 숙소가 있었습니다.







제가 사는 곳은 3층이었고, 4층은 원룸 비슷한 형태였습니다.



고시원은 밤이 되면 모든 층에 불을 꺼놓으므로 가끔 맨정신에 올라가면 소름이 끼칠 때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1층 2층 3층 올라가는데 뭔가 느낌이 이상해서 뒤를 돌아보니 그 술 취한 여자가 제 바로 뒤에 있더군요.







순간 술이 확 깼습니다.



[뭐... 뭐야... ] 하고 입이 저절로 움직이더군요.



그 전봇대에 머리를 박아대던 여자는 저를 쫓아왔던 겁니다.







제가 서 있던 장소는 층간 창가 쪽, 담배를 태우던 장소여서 노래방 간판 불빛이 비쳤는데, 그 여자 얼굴도 불빛에 비쳤습니다.



보통 시선이 다리부터 올라가서 얼굴로 향하는데 이상하게 그 여자는 얼굴부터 보게 되었습니다.



턱... 입... 코... 눈...







눈?



눈 주위가 새까맣길래 처음에는 선글라스를 낀 줄 알았는데 다시 살펴보니 눈이 없습니다.



고깃집에서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게 갖춰둔 스쿱으로 도려낸 것같이 말입니다.







3층 현관에서는 신발을 슬리퍼 같은 걸로 갈아신어야 하는데, 저는 너무 놀란 나머지 그대로 제 방 815호로 죽으라 달려가서 단숨에 문을 따고 들어가서 잠갔습니다.



방으로 들어오니 고시원 특유의 따뜻한 보일러 때문에 방 안은 찜질방처럼 따뜻하더군요.



덕분에 저는 논리적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긴장이 풀렸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여자가 더는 안 올 거라는 안도감도 있었고요.



그래서 잠깐 잠에 빠졌나 봅니다.



너무 더워서 눈을 떴습니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정도 됐던 걸로 기억합니다.



더워서 문을 좀 열었습니다.



그 방은 문을 열면 왼쪽에 1인용 침대가 있고, 정면에는 책상이 있습니다.







침대 맞은편에는 옷장이 있고요.



상당히 좁은 방이었습니다.



방에 창문이 없어서 환기하려면 문을 열어야 했고요.







잠에서 잠깐 깨어났던 저는, 문을 살짝 열어두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러고 눈을 감았습니다.



그런데 기척이라고 해야 하나, 눈을 감고 있어도 물체가 지나가면 보이지는 않아도 뭔가 지나갔다는 것을 알 수 있잖아요?







누군가 제 방앞에 있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술도 마셨겠다 하도 피곤해서, 그냥 옆방 사는 형일 거로 생각하고 잠을 청했죠.



그리고 아침 9시쯤 일어났습니다.







마침 그때 옆방 형도 일어났는지 방에서 나왔습니다.



[어? 형 일어나셨어요?]



[아... 아니, 일어난 건 진작에 일어났지.]







[오늘 쉬는 날인데 빨리 일어나셨네요?]



[잠이 안 와서... 근데 너 어제 여자 데려왔냐?]



저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습니다.







[여자라뇨?]



[에이, 시치미 떼지 마. 어제 새벽에 물 먹으러 가는데 네 방 앞에 여자 한 명 서있더만.]



저는 순간 소름이 확 돋았습니다.







전날 새벽, 고시원 앞에 있던 여자가 저를 따라서 3층까지 올라왔던 게 그제야 떠올랐거든요.



자다가 문을 열어두었고, 문 앞에 누군가 서 있었다는 건 생각났지만, 그 주인공이 옆방 형이 아닌 그 눈알 없던 여자일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형, 어제 제 방 앞에 서 있던 사람 형 아니었어요?]







[에이, 무슨 소리야 그게. 너 좀 더 자야겠다. 아침부터 이상한 소리만 하고.]



저는 너무 놀라서 방안에 돌아와 침대에 앉았습니다.



그때 귓가에 들렸던 한마디가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잘 쉬고 간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중성적인 기괴한 목소리...



전날 새벽에 봤던 것은...







그리고 밤새 제가 느낀 인기척은...



그저 술김에 본 환상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