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써 본 프리코네 소설임

캐붕 있을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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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리고 보니 캬루는 모르는 방에 있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굴리며 왜 자신이 여기에 있는 지 생각해보는 캬루.

그녀의 마지막 기억은 언제나와 같이 혼자서 뒷골목에서 어슬렁거리다 약이 묻은 손수건으로 얼굴을 덮쳐지는 것이었다.


즉 납치되었다는 것이다.



아직 약의 기운이 풀리지 않은 듯, 일어나기엔 너무 힘이 들어 그 자리에서 앉아 방을 두리번 거리는 캬루.

푹신푹신한 침대, 바닥에 깔려 있는 털 카페트, 파스텔 톤 벽지, 핑크, 핑크, 핑크.

방 안의 모든 것이 핑크빛이였다. 발목에 걸려 있는 쇠사슬을 제외하면 도저히 납치되었다고 

믿기 힘든 상황이었다.




이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순간 한 남자가 들어왔다.


“안녕? 키루야양, 지금 일어났네 보네?”


웃으며 친근한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남자.

필시 저 사람이 자신을 납치 한 남자일 것이라고 키루야는 깨달았다.


“나를 여기 가둬서 어쩔 생각이야?”


‘빨리 여기서 내보내! 죽여버린다!’ 라고 평소의 말버릇이 나오는 것을 참으며 말했다.

이 사람이 자신을 왜 가두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평소의 말버릇으로는 위험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캬루였다.

몸값을 건 인질극? 누군가의 노리개? 캬루의 머리는 핑핑 돌아가기 시작했으나 이 이상의 것들은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남자의 입에서 나온 말은 자신이 생각한 말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나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뭐?”


예상치 못한 말에 당황하는 캬루.


“일어났으니 배고프지? 식사를 가져올게.”


캬루가 뭐라고 반박하기도 전에 남자는 이 말만 남기고 문 밖으로 사라졌다.




슬슬 약효가 풀려서 캬루는 일어서서 걸어다닐 수 있게 되었다.

발에 묶인 쇠사슬은 꽤 길어서 불편함 없이 방 안을 돌아다닐 수 있었고 쇠사슬 때문에 문을 닫을 수 없기는 하지만 멀쩡한 화장실에도 갈 수 있었다.

창문이 없고 현관으로 보이는 문에는 반대로 된 잠금장치가 달려 있다는 점 외에는 화장실과 욕실이 갖추어진 평범한 방 이었다.


“기다렸지?”


문이 열리고 아까의 그 남자가 돌아왔다.


“할 일이 많아서 이런 것 밖에 준비 못 했지만...”


 남자의 손에는 봉투가 들려져 있었다.


그리고 봉투 안에서 나오는 햄버거, 감자튀김, 콜라.


“먹어 줄래?”


방에 갇힌 상태에서, 수상한 남자가 주는 음식 따윈 먹고 싶지 않았지만, 평소에도 변변찮은 식사를 하지 못한 그녀기에 배가 고팠다.


“하뭇, 하무, 하무하무.”


음식은 그저 평범한 가게에서 파는 햄버거였지만 방금 만든 듯이 따듯했다.

언제나와는 다르게.










며칠 후 자고 일어난 그녀의 방에 TV가 들어왔다.

매번 식사를 가지고 오는 남자에게 물어보니 “아무것도 없으면 심심할 것 같아서” 하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남자가 나간 후 TV를 틀어 보니 뉴스가 틀어져 나왔다.


“며칠 전 10대 여성이 실종되었다는 사건이…..”


캬루는 자신이 납치 된 사건이 뉴스에 나왔다는 생각에 곧 누군가가 구하러 오겠다는 생각을 했다.


“...있었으나 단순 가출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당사자는 무사히 집으로….”


하지만 이어지는 기사에 의해 자신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캬루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그 사람이 내 실종신고를 할 리가 없지…”


과거의 일을 떠올리며 우울해지는 캬루.

멋대로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학교를 바꾼 일, 돈이 아깝다면서 단 한번인 수학여행을 가지 못하게 한 일 등.


자기가 없어져도 신경쓰지 않을 것이고 납치되었다는 사실을 알아도 돈이 아깝다면서 구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캬루는 거울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자는 동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울었는지 눈은 빨개진 채 퉁퉁 부어 있었다. 

갇힌 채 주는 먹이만 받아 먹는 처지라고 생각하니 다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세수를 해도 부은 눈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울었어?”


밥을 가져온 남자의 말에 캬루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아직이었네.”


다가오는 남자의 손에 캬루는 눈을 질끈 감고 움츠려들었지만 남자는 캬루를 때리지 않았다.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발에 있는 수갑이 풀렸다.


“이것 때문에 잘 씻지 못했지? 미안해.”


캬루는 놀란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오늘은 욕조에 몸을 담가서 피로를 푸는 게 좋을 거야.”


캬루는 뭐라 말하려 했지만, 그 전에 남자는 방 밖으로 나가 버렸다.




며칠 만의 목욕에 긴장이 풀어지는 캬루.

긴장과 공포에 굳었던 머리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쇠사슬이 풀렸으니 그 남자를 때려 눕히고…..”


하지만 그 남자와 싸워서 이길 수 있다는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남자를 쓰러뜨려도 들어온 문을 열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에 탈출은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그나저나 큰 욕조네….”


다리를 쭉 뻗으며 중얼거렸다.

집에 있는 욕조는 무릎을 굽혀야 들어갈 수 있는 크기였다. 심지어 몇 십 년도 더 된 목조 아파트의 벽채는 물을 뜨겁게 데워도 따뜻하게 목욕을 즐길 수 없었기 때문에 캬루는 언제나 샤워만 빨리 끝내고 나오는 편이었다.


무심코 평소보다 길게 한 목욕을 끝내고 나오고 보니 방 한가운데의 접이식 책상에 우유와 함께 쪽지가 놓여 있었다.


‘목욕 끝난 후에 마시라고 준비했어’


카루는 쪽지를 집어들고 쪽지와 우유를 번갈아서 바라보았다.


갑자기 원래 살던 집의 모습이 떠올랐다.

언제나 쓰레기가 굴러다니던 거실, 저녁은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는 즉석 볶음밥, 용돈도 주지 않아서 언제나 아르바이트에 치이며 점심값을 벌던 나날.

납치범의 손에서 탈출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며칠을 지내왔지만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탈출하면 어디로? 집으로? 찬 밥과 쓰레기투성이인 곳으로? 아무것도 해 주지 않는 부모님의 말을 들어야 하는 곳으로?











다음 날 식사를 가져 온 남자에게 캬루는 물었다.


“나를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남자는 그저 웃으며 말했다.


“나는 그냥 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그런 거를 물어 본 것이 아니야!”


캬루는 책상을 내리치며 소리쳤다.


“나한테 뭘 원하는 거야!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 이렇게 잡아 놔도 날 풀어주라고 돈을 내 줄 사람도 없어! 내가 없어져도 날 찾는 사람도 없다고!”


소리는 비명이 되었고 비명은 점점 울음소리가 되었다.


“나는…. 아무것도….. 아무도……”


눈물을 참을 수 없다. 더 이상 서 있을 수도 없다.

그녀는 무너졌다.


“나는 너한테 그런 걸 원하는 게 아니야.”


“흑...흐흑….”


울음소리가 그쳤다.


“어차피 너도 이런 걸 원하는 거지…?”


캬루는 겉옷을 벗었다. 바지의 단추를 풀고 티셔츠를 벗어서 내팽겨쳤다.

속옷만 남은 그녀는 남자에게 다가왔다.


“이제 마음대로 해….”


그녀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나는 그런 걸 원하는 것을 아니야.”


남자는 캬루를 안았다.

상냥하게 쓰다듬으며, 그녀를 바닥에 앉히고 겉옷을 걸쳐주었다

.

“나는 정말로 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진짜로 그것 뿐이야.

그걸 위해서라면 너에게 뭐든 줄 수 있어.”


“정말로 뭐든 해 줄꺼야?”


“부탁만 해주면.”


“내가 여기서 나가고 싶다고 해도?”


“원한다면”


남자는 방을 나갔다.

언제나와는 다르게 방의 문은 닫히지 않았고, 잠기지 않았다.



















이제 캬루는 혼자다.

자신을 막을 사람은 없고 쇠사슬은 풀렸으며 문은 열려 있었다.

캬루는 벗어던진 옷을 다시 입었다.

그리고는 문을 향해 걸어갔다.

문고리에 손을 올리고


그녀는 문을 닫았다.

그리고 문 밖을 향해 물었다.


“또 올거야?”


문 밖의 남자는 말했다.


“원한다면.”


“부탁할게”





이제 캬루는 행복하다.

매일 따뜻한 밥이 나오고 따뜻한 목욕을 즐기고 따뜻한 말과 원한다면 뭐든 받을 수 있다.


차가운 밖과 다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