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우브레이크 오픈 당시의 한 리뷰


시선 게임을 하는 유저들은 종종 얘네한테 씹덕겜은 그냥 취미다, 모기업이 짱짱해서 돈이 많다 등의 얘기들을 들어봤을 것이다. 그렇다면 얘넨 뭐하는 놈들이길래 한때 유명했는지, 왜 씹덕겜 계속 말아먹어도 괜찮은 것인지, 지금은 대체 뭘 하고 있는지 없뎃 시간동안 심심하니 살펴보자.



킹소프트와 WPS오피스


시선게임즈의 시발점을 알기 위해선 모회사인 킹소프트의 초기 역사를 잠깐 볼 필요가 있다. 언론의 표현을 빌리자면 킹소프트는 '중국의 마이크로소프트'로 오피스, 클라우드, 백신, 게임 등 소프트웨어 전반을 개발하며 주식시장 3곳에 상장된 대기업이다. 대표 제품인 WPS오피스는 현재 월간 활성 사용자수(MAU)가 6억 명에 달하는 중국 대표 소프트웨어로 성장했는데, 이런 킹소프트가 처음부터 순탄한 길을 걸은 것은 아니었다.




킹소프트 창립자인 치우보쥔은 어릴 떄부터 신동이었고 대학 시절엔 컴퓨터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1988년 중관춘의 대부라 불린 장쉬안롱의 권유로 킹소프트의 전신인 홍콩 킹소프트에 입사한 치우보쥔은 1년 4개월간 홀로 프로그래밍에 매진해 이듬해인 1989년 중국 최초의 워드프로세서인 WPS를 완성한다.


WPS(Word Processor System)


MS의 기본 프로세서인 '워드스타'가 있었지만 당시는 아직 MS가 중국에 진출하기 전이라 컴퓨터에 한자를 입력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는데, WPS의 등장으로 자유롭게 한자를 입력할 수 있어졌고 치우보쥔은 중국 IT계의 영웅이 된다. 94년까지 WPS의 시장 점유율은 95%에 달해 당시 중국에서 '컴퓨터를 사용한다'는 'WPS를 사용한다'와 동의어였고 킹소프트는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다.


치우보쥔과 레이쥔


레이쥔은 훗날 샤오미를 창립하여 현재 킹소프트 회장과 샤오미 회장 및 CEO로 재임중이다.


귀인은 귀인을 알아본다 했던가. 두 사람은 1991년 컴퓨터 전시회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IT계의 스타인 치우보쥔처럼 되고 싶었던 레이쥔은 자신을 적극적으로 어필했고 레이쥔의 능력을 알아본 치우보쥔은 그를 스카웃해 총책임자의 자리에 앉힌다.

둘은 곧 윈도우의 시대가 도래할 것을 알았고 레이쥔의 지휘 하에 1992년부터 3년간 윈도우용 오피스 <판구>를 개발한다. 그러던 중인 1994년 치우보쥔, 레이쥔, 장쉬안롱을 중심으로 지금의 킹소프트인 베이징 킹소프트가 설립된다.


<판구, 1995>


장장 3년간 회사 역량을 총동원한 판구는 고작 2000장이 팔리며 개좆망한다. 레이쥔은 총책임자 자리에서 사임했고 회사는 파산 위기에 몰리게 된다. 뿐만 아니라 1992년 중국에 진출한 MS는 그동안 WPS의 벽에 막혀 힘을 쓰지 못했으나 윈도우 95 출시와 함께 공격적 스탠스로 나섰고, 1996년 킹소프트에 '모든 사람이 윈도우를 사용하는데 워드와 WPS가 호환이 돼야 하지 않겠느냐' 라는 제안을 한다. 

당시 모두가 넷스케이프의 몰락을 지켜보던 상황이었기에 킹소프트는 이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고 이후 거의 모든 사용자가 워드로 넘어가며 WPS마저 끝장나고 만다.


넷스케이프 : 한때 세계를 장악한 브라우저였으나 MS가 익스플로러를 윈도우 기본 브라우저로 탑재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같은 시기 MS는 치우보쥔에게 연봉 70만 달러의 스카웃을 제의하는데 치우보쥔은 자국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며 제의를 거절했고 이로 인해 오늘날까지도 '중국 제일의 프로그래머'로 불리게 된다.


WPS 97을 발표하는 치우보쥔과 레이쥔


레이쥔의 회고에 따르면 세상 다 잃은 심정으로 회사를 떠나려 했으나 치우보쥔이 강하게 말리며 대신 푹 쉬고 오라고 6개월 휴가를 준다. 피끓는 청년이었던 둘은 이 기간동안 게시판에서 다른 사람들과 키배를 떴다고 하는데 이게 또 멘탈 관리에 도움이 됐는지 6개월 뒤 복귀한 레이쥔과 치우보쥔은 마음을 다잡고 WPS 97을 완성한다.

대부분이 정부 구매이긴 했으나 WPS 97은 꽤 팔려 자금 사정이 좀 나아졌고 98년 레노버의 투자를 받아 동력을 얻은 킹소프트는 지금에 이르게 되는데 이때부턴 우리와 상관 없는 이야기. 1995년으로 되돌아가자.



1995년 판구가 개좆망하고 킹소프트에겐 세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소프트웨어 개발을 계속하느냐, 부동산업으로 전향하느냐, 피임기구 제조업으로 전향하느냐(당시 중국 산아정책으로 피임기구가 잘 팔림)의 기로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을 계속하기로 한 치우보쥔은 회사 유지를 위해 뭐라도 해야 했다. 


서산촌의 풍경


WPS도 초기엔 서산WPS라는 이름이었다


서산(西山)이라는 산골에서 태어난 치우보쥔은 고향에 대한 애착이 강해 자신이 만드는 제품에 서산이란 이름을 붙이곤 했고, 자신의 대학 시절 별명인 서산거사(西山居士)에서 이름을 따와 중국* 최초의 게임 스튜디오인 서산거 공작실을 만든다.

*대만, 홍콩 제외. 이후로도 중국은 중국 본토만을 지칭.


<중관춘 묵시록, 1996>

당시 시선은 스튜디오명일 뿐 출시엔 킹소프트 게임즈를 씀.


1996년 1월 중국 최초의 상업 게임인 <중관춘 묵시록>이 출시되고 잇달아 <중국민항>도 출시된다. 이 게임들은 많이 팔리진 않았으나 게임 부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치우보쥔은 본격적으로 시선게임즈를 가동한다.



시선 삼총사와 1차 전성기


수석 프로그래머 주신, 수석 기획자 리란윤, 음악가 뤄샤오인


킹소프트가 파산 직전이긴 해도 치우보쥔은 여전히 중국 IT계의 스타였고 그가 게임 스튜디오 직원을 뽑는다는 소식에 훗날 '시선 삼총사'라 불리는 인재들이 시선게임즈로 모인다. 그리고 1997년, 중국 최고의 게임이라 일컬어지는 검협정연 시리즈의 첫 작, <검협정연>이 출시된다.


<검협정연, 1997>


세계에선 이미 이딴 조잡한 게임과는 비교도 안 될 게임들이 나오고 있었으나 서양과 일본 게임엔 중화풍 테마가 없었고,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검과 무협과 남녀간의 연정을 다룬 이 게임은 <선검기협전>이나 <헌원검>의 뒤를 이어 중국 게이머들을 환장시키기에 충분했다.

검협정연(이후 검연)은 2.5만장을 판매하며 어려웠던 킹소프트에게 가뭄의 단비같은 수익을 가져다준다.


검연이 히트를 치자 사람들은 당연히 바로 검연2를 만들 것이라 생각했지만 시선은 갑자기 검연 시리즈가 아닌 SRPG 게임을 내놓는다. 삼총사 중 한 명인 주신이 지원할 때 가져온 기획이 검연의 초기설정이었고 리란윤이 가져온 기획이 SRPG였는데, 주신의 기획으로 하나를 만들었으니 리란윤의 기획으로도 만들어야 공평하다는 이유에서였다.


<항일 지뢰전, 1998>과 <결전조선, 1999>


1942년을 배경으로 일본군과 싸우는 게임은 차치하더라도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결전조선>은 우리 입장에선 아주 개씹새끼같은 게임이나 당시 게임을 이렇게 만들지 않으면 천안문에 끌려갔을 테니 뭐 어쩌겠는가. 어찌됐건 중국인들의 카타르시스를 충족시켜주는 게임들이었고 레이쥔이 이끄는 마케팅팀의 활약으로 결전조선은 10만장 넘게 팔리는 대박을 치며 시선을 먹여살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게임들은 시선의 발목을 잡았다고 평가되는데, 훗날 시선의 베테랑 개발자들은 이 때 SRPG에 2년을 쓰는 대신 검연 시리즈를 만들고 빨리 온라인으로 넘어갔더라면 2000년대 시선이 더 나은 상황이었을 것이라 말한다.


<검협정연 2, 2000>


3년만에 나온 검연2는 당시 최다 판매량인 20만장을 달성하며 다시 한 번 대박을 친다. 1998년 중국에서 판매된 게임 110만장 중 중국산 게임은 10%에 불과했는데 이후 결전조선이 10만, 검연2가 20만장을 팔았으니 게임 하나 하나가 다른 모든 중국산 게임을 합친 만큼 팔린 셈이다. 특히 뤄샤오인의 음악은 매우 좋은 평가를 받았고 검연2 삽입곡들이 2002년 인기드라마 <협객행>의 오프닝과 주제가로 쓰이며 검연의 인지도 상승에 도움이 된다.


<검협정연 외전 달그림자의 전설, 2001>


그리고 이듬해 나온 달그림자의 전설로 시선게임즈는 최고점을 찍는다. 당시로선 정말 드물게 대만에 수출된 게임으로, "아니 짱깨가 소짱깨에 게임 판 게 뭐 그렇게 대단해" 싶겠으나 상황을 보면 그렇지 않다.


<의천도룡기, 1994>와 <용의 기사 2, 1995>

이외에도 많은 대만 게임들이 한국에 수입됐다.


90년대 초중반 대만 게임계는 중국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 대부분이 일본 게임의 아류이긴 했으나 킹소프트가 애들 장난같은 게임을 만들기 한참 전부터 대만은 훨씬 게임다운 게임을 만들고 있었으니 굳이 중국산 게임을 할 필요가 없었다.

또한 알다시피 중국은 예전부터 하나의 중국을 주장해 왔고 대만도 90년대까진 이에 크게 반대하지 않는 스탠스였으나, 2000년 대만 최초로 민주당 후보인 천수이볜이 총통에 당선되어 공식적으로 하나의 중국을 반대하고 대만 독립을 주장하며 양국의 관계는 급격히 나빠졌는데 이런 와중에 대만에 수출됐으니 이 게임이 중화권에서 얼마나 인기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일본판 제목인 <월영의 데스티니>


게다가 정말 놀랍게도 이 게임은 팔콤을 통해 일본에 수출한 시선의 첫 일본 진출작이다. 당시 일본에선 <파이널판타지X>, <킹덤하츠> 등 괴물같은 게임들이 나오고 있었고 팔콤 또한 <영웅전설>과 <이스>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이름도 모를 중국 회사의 게임을 사왔으니 이 게임을 꽤 높게 평가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렇게 시선게임즈는 명실상부 중화권 최고의 게임 개발사에 등극했고 그들 앞엔 황금빛 나날이 펼쳐질 것만 같았으나 열의가 너무 앞선 탓이었을까, 이듬해 시선은 역대 최악의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천왕, 2002>


시선의 모든 기술력을 쏟아부어 만든 이 게임은 너무 높은 사양 탓에 '하드웨어 킬러' 라 불렸고 거의 모든 중국 게이머가 이 게임을 돌릴 수 없었다. 심지어 다이렉트X 8.1을 필요로 했는데, 이는 당시 최신 그래픽카드인 지포스 4 시리즈 중에서도 하이엔드인 Ti 4400 이상에서만 지원한 미친 스펙으로 중국은 커녕 다른 나라에서도 거의 못 돌렸을 것이다.


2년의 개발기간과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어간 이 게임은 판구급으로 좆망하고 시선은 이후 20년간 패키지 게임을 만들지 않게 된다. 설상가상 뛰어난 인재들이 고작 사축에 만족했겠는가? 2000년대 초중반에 걸쳐 시선 삼총사가 하나 둘 자기 회사를 차려 나가고 시선은 슬럼프에 빠지게 된다.



온라인 게임의 시대


<검협정연 온라인, 2002>


앞서 말했듯 검연2의 개발이 늦어진 탓에 시선의 온라인 게임 진출 역시 늦어졌고, 개발중이던 검연3를 취소하는 강수를 두며 부랴부랴 검연 온라인을 만든다. 원작의 인기에 힘입어 중국에서의 흥행은 물론 동남아 서버까지 열고 동시접속자 20만명을 찍으며 꽤 흥했으나, '꽤' 흥하는 정도로는 전설의 게임을 상대하기에 역부족이었다.


<미르의전설 2, 2001>


2001년 중국에 진출한 <미르의전설 2>는 그야말로 전설이었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유저들을 끌어모은 미르2는 중국 온라인게임 점유율 65%를 달성하고 동시접속자 80만명으로 기네스에 등재되는 등 유래 없는 중국 국민게임의 반열에 오른다. 젊은 게이머들이 중국 근본 게임인 검연이 아닌 미르를 택하며 그 차이는 점점 벌어져갔다.


<검협정연 2 온라인, 2005>


2005년에 출시한 검연2 온라인 역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여전히 미르2의 아성에 도전할 수 없었을 뿐더러 2005년에 나오기엔 너무 낡은 게임이었다. 물론 개발 시작땐 그리 낡지 않았을지 모르나 이 때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가 세상에 나오며 세계 게임 판도가 바뀐 시기였다.


와우의 여러 보스를 표절해 와이온이라 불렸던 엔씨소프트의 <아이온>


그러나 와우의 등장은 시선에게 위기임과 동시에 기회였으니, 검연2 온라인이 시대에 뒤쳐지긴 했으나 이는 미르2를 포함한 수많은 미르 짭들 역시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이후 와우를 베끼는 데 혈안이 된 수많은 게임사들과 마찬가지로 시선도 이 기류에 탑승하며 기회를 노렸다.


<검협정연3 온라인, 2009>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09년, 시선게임즈 최고 성공작이자 현재까지도 중국 1위 PC MMORPG인 검협정연3 온라인이 출시된다. 



국내에도 중국 1위 MMO라 홍보하며 <명품온라인>이라는 이름으로 서비스됐으나 막장운영으로 금방 망했다.




게임 화면을 보면 알듯이 대놓고 무협와우다. “와우가 있는데 와우 짭을 왜함?” 싶겠으나 재미있게도 세계적으론 와우가 압도적 1위였지만 동아시아에선 각 국 게이머들의 니즈를 반영한 게임들이 와우를 이기는 현상이 일어난다. 한국에선 K-여캐와 날개를 탑재한 아이온이 이기고 일본에선 파판IP를 활용한 파판14가 이겼듯이 중국에서도 무협와우인 검연3가 와우를 이기고 1위의 자리에 오른다.

검연3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고 시선은 게임을 넘어 검연 IP를 대대적으로 확장하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이놈은 돈이 많았고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었다.


소설


게임 리그


애니메이션 (4개 시즌)


TV드라마 및 웹 드라마


실사 영화


오페라 (광둥 오페라 극단)


진짜 다 했다... 심지어 지금도 새 영화와 드라마가 제작중이다.

검연3가 대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킹소프트와 시선은 이 하나의 무협 게임에만 의존한다는 리스크를 모르지 않았고 다른 테마나 장르의 게임 개발에도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한다.


시간여행을 테마로 한 <성도전기>와 마법과 기계문명의 갈등을 테마로 한 <하늘의 분노>


당시 유행한 귀여운 스타일 RPG인 <춘추외전>과 <마라강호>


원시고대 전장의 아이돌이 나오는 FPS 게임 <M.A.T>와 <러시 팀>


킹소프트는 한때 산하 게임 스튜디오를 7개까지 늘리며 20여개의 온라인게임을 만들고 10여개의 웹게임을 퍼블리싱했는데 다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근데 그래도 괜찮았다. 넥슨이 맨날 신작 말아먹어도 던메가 메꿔주듯 20개 말아먹어도 검연3가 메꿔줬으니까.




그러나 시대가 흘러 검연3에도 위기가 찾아오니, 너무 낡은 그래픽과 경쟁작들의 등장이 바로 그것이었다. 물론 오래된 게임이긴 하지만 같은 시기 우리나라에서 <C9>, <마비노기 영웅전> 등의 게임이 나온 것을 감안하면 아무리 09년 게임이라도 너무 눈썩이었다.


<천애명월도, 2016>


그리고 2016년 텐센트의 야심작이 출시된다. 넥슨에서 서비스한 적이 있어 우리도 잘 아는 이 게임은 기존 중국 게임들에 비해 월등한 그래픽과 캐릭터 커스터마이징을 보여줬고, 더는 손 놓고 있을 수 없게 된 시선은 검연3 리메이크를 통해 엔진 교체와 그래픽 업데이트를 단행한다.


검연3 리메이크는 2017 TGA에서 텐센트의 <왕자영요>를 누르고 중국 최고 인기 게임상을 수상한다. 


<검연3 리메이크, 좌측>과 <천애명월도, 우측>


하지만 이런 인기와는 반대로 리메이크에 대한 유저들의 반응은 썩 좋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막대한 개발비를 쏟아부었음에도 동시기에 나온 천애명월도보다 훨씬 구렸다는 점이다. 게다가 최적화마저 좆박아서 같은 해에 나온 하이엔드 그래픽카드인 GTX 1080ti로 60프레임을 간신히 방어했는데 당시 1080ti나 타이탄X를 산 유저들이 얼마나 있었겠는가. 유저들이 원성이 자자한 것은 안 봐도 뻔했다.



2019년 무슨 기술로 의상을 어쩌고 하는 PV


물론 자신들의 대표 게임을 이대로 내버려 둘 순 없었기에 꾸준한 최적화와 더불어 2019년 의상 2.0과 다시 한 번의 그래픽 상향으로 안정을 되찾기는 한다. 게다가 와우가 그렇듯 그래픽이 전부는 아니기에 천애명월도나 또 다른 인기 게임인 구음진경 온라인 등 수많은 MMO가 검연3를 넘지는 못했다. 이놈은 그냥 체급이 존나 높았다.



<역수한, 2018>



하지만 2018년, 넷이즈가 야심차게 준비한 역수한(니수이한)은 조금 달랐다. 많은 게임으로 증명된 Havok 물리엔진과 Enlighten 광원, 중국 전역을 돌며 모은 배경자료로 만든 게임 세상은 매력적이었고, 무엇보다 최신기술인 RTX를 탑재한 역수한의 그래픽은 기존 중국 MMO들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중국 최대 게임 시상식인 금령상에서 매 년 검연3가 받던 '게이머들이 가장 좋아하는 온라인 게임' 상도 역수한의 손에 넘어갔다.


드디어 검연의 아성이 무너지나 싶었으나 화려한 겉모습과는 달리 역수한에는 큰 문제가 두 가지 있었다.

첫째로 타격감과 모션이 구렸는데 이는 무협 게임에 있어 큰 단점이었고 유저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둘째로 넷이즈의 악랄한 상술로 갈수록 많은 현질이 필요했고 2년쯤 지난 시점엔 '숨 쉬는데 돈이 드는 게임' 이라 불리며 유저가 급감하게 된다.

그렇게 역수한마저도 검연이란 태산을 넘진 못했지만 이는 이제 예전만큼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PC게임의 시대가 아니었고 넷이즈는 물 밑에서 칼을 갈고 있었다.



모바일 게임의 시대


2015년 시선의 모바일 게임 라인업


시선이 본격적으로 모바일 게임 개발을 시작한 것은 2011년으로 그리 늦은 편은 아니었지만 여러 사정으로 개발이 늦어졌고, 결국 2014년이 되어서야 제대로 된 게임이 나오게 되며 온라인 게임 때와 마찬가지로 비교적 늦은 출발을 하게 된다. 흥미롭게도 당연히 성공한 IP인 검연을 활용한 모바일 게임을 만들 거란 생각과는 달리 초기엔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신들의 유적>


신들의 유적은 2015 E3 게임쇼에서 중국 게임 중 유일하게 메인 홀에 위치하며 기대를 모았다.


개발 도중 2D에서 3D로 갈아엎느라 4년이나 걸려 나온 이 게임은 서구권을 노린 게임성과 독특한 장르로 잠깐 돌풍을 일으켰으나 안타깝게도 오래 가진 못했다.



삼국지 기반 게임인 <변신하라 주공>과 <해머 삼국지>

해머 삼국지는 국내에 <돌격 앞으로>라는 이름으로 서비스됐다.




그리고 가장 참신했던 시도로 위치 기반 서비스(LBS)를 활용한 <리비아 전기, 2015>가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LBS 게임 자체는 <콜로니 생활>을 필두로 2000년대부터 있어 왔으나 2016년 <포켓몬 고>가 세계적 돌풍을 일으키기 전엔 메인스트림이 아니었고 아마 지금 읽고 있는 사람들도 LBS게임들을 주로 하진 않았을 것이다. 당연히 이 게임도 인기를 끌진 못했다.



게다가 이 게임은 LBS에 그치지 않고 모바일 게임 최초로 실시간 스트리밍을 탑재해 게임을 플레이하며 보고 싶은 방송을 보거나 스트리머가 시청자를 도와주는 등의 상호작용이 가능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이것저것 떄려박아 난잡해진 게임이었고 결국 2년만에 문을 닫는다.



젊은 시절 똥꼬쇼를 하던 레이쥔(좌측)



앞서 말했듯 샤오미와 킹소프트를 소유한 레이쥔은 샤오미 스마트폰 점유율을 올릴 방법 중 하나로 게임을 통해 사람들을 샤오미 스토어를 찾게 만든다는 전략을 세운다. 갤럭시 스토어와 마찬가지로 각종 혜택이나 할인과 더불어 샤오미 스토어 독점작이 필요했는데, 멀리서 찾을 필요 없이 그에겐 시선이 있었고 시선은 샤오미와의 공동작업으로 여러 모바일 게임을 만든다.



국내에도 개봉해 잘 알려진 2013년 서유기 영화




중국에서 흥행한 이 영화의 판권을 사서 시선과 샤오미가 공동개발한 서유기 게임 2종



샤오미 독점이었던 검연2M의 런칭 행사




배틀그라운드 흥행 이후 쏟아졌던 짭배그 중 하나인 <샤오미 총격전>.

넷이즈의 황야행동과 곧이어 나온 배틀그라운드 모바일에 밀려 망한다.


지금까지 봤듯 검연3의 성공에 안주하며 신작 개발을 게을리 한 것은 아니었으나 결과적으로 20개의 PC 온라인 게임, 10여개의 모바일 게임, 샤오미와의 공동 개발작들이 다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결국 시선은 그 놈을 꺼낼 수 밖에 없었다.


<신검협정연M, 2016>

국내엔 <클랜즈 : 달의 그림자>라는 이름으로 출시됐다.



당연하다는 듯 검연M은 존나게 흥했고 시선은 모바일 시장에서의 부진을 씻는다.




그리고 같은 시기 텐센트는 시선과의 협력을 강화한다. 중국 퍼블리셔 양대산맥인 텐센트와 넷이즈. 지금이야 <리그 오브 레전드>, <왕자영요>, <배틀그라운드 모바일>의 흥행으로 텐센트가 많이 앞서 있지만 이 게임들의 인기가 영원할 순 없고 예전부터 모바일 RPG에선 넷이즈가 강세였기에 이 방면에서 넷이즈를 견제할 수단이 필요한 텐센트는 시선을 택하는데 사실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텐센트는 예전부터 킹소프트에 꾸준히 투자해왔고 2011년부터 대주주로 있었기에 추가로 시선에 투자한 것 역시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검연M의 흥행과 더불어 아빠는 킹소프트, 큰아빠는 샤오미, 삼촌은 텐센트가 되어 거칠 것 없어진 시선에겐 신작을 쏟아낼 일만 남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일련의 과정은 시선에게 독이 됐는데, 그동안 많은 시도를 했지만 다 실패했고 이젠 투자받은 만큼 성과를 내야 한다는 사실은 하나의 결과를 초래하게 되고...


검연1M


검연2M


검연3M


검협 오리진


검협세계1


검협세계2


검협세계3



시선은 개고기 8호점까지 오픈하며 엔씨소프트는 명함도 못 내밀 민초로제마라개고기탕후루를 찍어내는 악질 회사로 전락하고 만다.

근데 그래도 먹고 살 만은 했다. 검연이니까. 중국 근본 게임이니까.




하지만 역수한M의 데모 영상이 공개됐을 떄, 시선을 포함한 중국의 모든 개고기집은 폐업 준비를 해야만 했다.


<역수한M, 2023>





넷이즈 사상 최다 개발인력이 투입된 역수한M은 압도적이었다. 출시 첫 달 넷이즈의 기존 기록을 전부 갈아치웠고 꾸준히 최상위권에 자리하고 있다. 예상대로 다른 개고기집들이 살아남긴 힘들어 보였고 시선은 뭔가 방법이 필요했다.



현재의 시선


현재 시선은 크게 3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첫째로 패키지 게임 개발.



2012년 왜 이제 패키지 게임을 만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한 레이쥔의 대답


<홍예의 발라드, 2022>


<던랜드, 2023>


천왕의 폭망 이후 패키지 게임을 만들지 않던 시선은 2019년 즈음부터 다시 패키지 게임 개발에 박차를 가해 20년만에 홍예의 발라드와 던랜드를 출시하고 메카브레이크까지 출시를 앞두고 있다. 물론 홍예의 발라드와 던랜드 모두 스팀 평가 복합적으로 반응은 그리 좋지 않으나 CEO 인터뷰에 따르면 성적에 관계 없이 패키지 게임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 하니 앞으로 기대해봐도 좋을 듯 하다.


둘째로 다들 잘 아는 씹덕 모바일 게임.



걸카페건 프로듀서인 위안 레이. 현재 다른 게임을 기획중이라 알려져 있다.


소녀가배창 때 개발인력이 30명에 불과하던 씹덕팀은 소녀가배창2(걸카페건) 떄 90명까지 늘어났고 현재는 더 커져 어느 정도는 규모 있는 팀이 되었다. 걸카페건이 실패하긴 했지만 버리기엔 너무 큰 시장이고 시선 역시 20년 전 게임에 미연시 요소와 하렘 루트를 넣던 의외의 근본 씹덕이라 포기하진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전망은 그리 좋지 않다.


시선이 개발 도중 엎어버린 <The other shore>


전 시선 프로듀서였던 푸 타오가 만든 <코드명 STS>


꽤 기대를 모았던 <에코녹스 24/36>


최근 이런 씹덕겜들 개발이 연달아 취소되며 이제 시장이 포화상태 아니냐, 돈 떄려박은 A급 씹덕겜이 아니면 살아남기 힘들다 등 서브컬쳐 게임 시장에 대해 비관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시선의 씹덕팀도 처음보다야 커졌다만 전체 직원이 3천명이 넘는 점을 감안하면 여전히 아웃사이더라 앞으로 어떻게 게임 퀄리티를 끌어올리고 다른 대형 씹덕겜과 경쟁할 것인지 두고 봐야 할 것이다.





<GENE RAIN, 2018>


재미있게도 스노우브레이크는 완전 씹덕쪽이 아니라 첫째와 둘째 사이에 낀 1.5같은 느낌이다. 대부분 스노우브레이크 개발팀인 '이화묘공작실’의 첫 작이 스노우브레이크라 알고 있으나 실은 이전에 딜리 네트워크의 투자를 받아 GENE RAIN이라는 TPS게임을 만든 적이 있다. 인력과 노하우 부족으로 게임 자체는 혹평을 받았으나 이를 눈여겨 본 시선이 얘네를 사와 걸카페건 팀과 스까서 탄생한 게임이 스노우브레이크이고 이러니 디비전 냄새에 PC 게임도 모바일 게임도 아니라는 어중간한 평가를 받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마지막으로 2019년부터 진행중인 현재 시선의 가장 큰 프로젝트 검연 3.0. 정식명칭은 <검망 : 언리미티드>

역수한을 포함해 2020년부터 쏟아진 다른 개발사들의 흥행작에 좆됨을 느낀 시선은 검연3를 다시 한 번 업그레이드해 이 위기를 극복하기로 마음먹는다.

검연 3.0의 주요 변경점은 두 가지. 하나는 엔진 변경으로 유저들 사이에선 불과 5년만에 또 엔진을 바꾸냐는 비난도 있었으나 2.0의 그래픽도 최신 게임에 비하면 부족했고 구형 엔진에 텍스쳐를 덕지덕지 붙이다 보니 게임이 계속 무거워져 칼을 꺼내들 수 밖에 없었다.


예전에는 천애명월도에 사용된 텐센트의 퀵실버 엔진, 구음진경 온라인에 사용된 스네일게임즈의 비선엔진 등 중국 게임사들이 자체 엔진 개발에 노력을 기울였으나 시대가 변함에 따라 점점 언리얼과 유니티로 넘어가 현재는 거의 모든 게임이 이들 엔진을 사용하며 라이센스를 지불하는 실정이 중국 게임계의 문제로 대두된 상황. 시선 역시 검연3는 자체 엔진을 사용하나 최근 게임들은 다 언리얼을 쓰던 터라 어떤 엔진을 쓸 지 결단을 내려야 했다.



허나 이놈이 누구인가. 씹덕겜은 좀 못만들어도 산전수전 다 겪은 중국 굴지의 개발사. 아빠 돈줘 응애 하면 돈이 나오는 놈 아니겠는가? 향후 언리얼을 대체하겠다는 포부로 10억 위안(약 1800억 원) 이상을 투자해 시선영경엔진을 만들어 검연3에 탑재한다.



검연3에 시선영경엔진이 적용된 모습.



작년 10월 업데이트 후 유저들의 자캐딸

그래픽, 최적화 등 여러 부분에서 유저들 평은 나쁘지 않다.


근데 시선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얼마 전에 언리얼5를 이용한 개발 모습을 봤는데 진짜 택도 없음. 그냥 언리얼 쓰자…




“시발 PC 검연 그대로 모바일 게임 만드는 게 그렇게 어렵냐?”




수 년간 양산형 게임만 쏟아내자 유저들의 실망과 분노는 극에 달했는데, 이를 타개하기 위한 시선의 한 수는 굉장히 파격적이었다. 급하게 신작을 개발해봐야 다른 게임들을 따라잡기 힘드니 신작을 만들지 않고 검연3를 모바일에 이식해 크로스플랫폼으로 운영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운 것이다.




전례 없는 이 프로젝트는 많은 관심을 모았고 지난 1월 모바일 버전 테스트가 진행됐다. 그래픽이 당연히 PC 풀옵엔 미치진 못하지만 역수한M을 포함한 다른 게임들보단 좋고, PC에 맞춰진 복잡한 MMORPG를 모바일에서 어떻게 플레이하느냐가 관건이었는데 이 부분이 상당히 잘 이식되었다.


모바일에서 20인 레이드를 진행하는 모습. 거의 최저옵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정식 오픈까지 해결해야 할 숙제는 많다. 당장 80GB에 점점 커질 어플 용량을 유저들이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너무 높은 사양으로 전투시에 프레임 드랍과 발열이 심해 옵션 타협이 불가피한데 이 부분을 어떻게 최적화할 것인가. 최대한 궁리해서 모바일 플레이 환경을 만들긴 했으나 PC 환경과의 밸런스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특히 PVP에서)

만약 이것들을 해결하고 모바일에서 원활한 플레이가 가능해진다면 중국 모바일 RPG계에 큰 지각변동이 올 지도 모른다.


많은 게 걸린 검연 3.0이 망하면 이번에야말로 시선이 위험할까? 다행히도 그렇진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유인즉 시진핑의 반미 정책으로 MS, 구글 등 거대 기업들이 중국에서 애를 먹는 상황에 킹소프트가 반사이익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잊고있던 킹소프트의 WPS의 최근 동향을 살펴보자.

요즘 WPS가 개인에게 점점 불친절해지고 문서를 검열해서(WPS는 모든 제품 이용에 로그인을 요구함) 유저들의 불만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향후 중국 내 점유율은 점점 높아질 것이라 예측되는데 이는 킹소프트가 잘나서라기보다는 다음과 같은 요인이 있기에 그러하다.


1. 어찌됐건 개인에게 무료라는 점. 다른 무료 사무용 소프트웨어도 있기는 하지만 현재로선 사용하기 쉽지 않다고 한다.

2. 개인 사용자에겐 역겨워지지만 기업용 맞춤형 제품은 점점 발전하고 있고 정부 구매량이 많다는 점.

3. 정부의 반미 노선으로 기존에 MS오피스를 사용하던 기업들도 WPS로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는 점.


결국 개인은 울며 겨자먹기로, 기업은 정부 주도하에 WPS를 사용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어가고 있다.


중국 초, 중학교 컴퓨터 교과서


무엇보다 근래에 중국 초, 중학교 컴퓨터 교과서가 개정됐는데 WPS를 기본으로 가르쳐서 신세대가 MS오피스에 대해 모르게 되어간다고 한다. 이미 많은 청소년들이 WPS만을 알고 있고 개인 컴퓨터에서 MS오피스를 사용하는 일은 드물어서 향후 이들이 사회인이 됐을 때 MS오피스가 아닌 WPS를 주로 사용할 것이란 전망이다.

이러한 요인들로 킹소프트의 미래는 상당히 밝다. 아마 시선이 게임 20개 더 말아먹어도 끄떡 없올 것이다.


시선 아트센터를 총괄했던 쩡후이쥐안


문제는 개발인력의 퀄리티. 사실 확인은 되지 않았지만 개고기 체인점을 돌리던 지난 몇 년간 젊고 유망한 개발자들이 시선을 떠났다는 얘기가 있다. 십수년간 시선 아트팀을 이끌며 스노우브레이크, 걸카페건, 검연M 시리즈 등 많은 게임에 참여한 쩡후이쥐안도 최근 완미세계쪽으로 갔다고 한다. 우리로 치면 엔씨소프트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시선이 앞으로 뛰어난 인재와 혼모노 씹덕을 얼마나 수급할 수 있을지가 관건일 것이다.




아무튼 몇 년간 시선이 혈안이었던 검연 3.0 프로젝트가 올해 4월에 마무리될 예정이다. 그리고 나면 좀 여유 생겨서 다른 게임들에 인력 투입되지 않을까 기대해보는 바이다.

스…걸카페건3는 온다!!




마지막으로 번역은 포기하셈 10년 넘게 나아지질 않는 한결같은 녀석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