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사람에게 작은 사람이 묻는다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입니까

어떻게 당신처럼 큰 존재가 될 수 있을까요


큰 사람이 나지막이 말하기를

그대가 여기는 인간이란 무엇입니까


사랑하는 존재, 욕망하는 존재, 생각하는 존재

그와같은 수식어들로 인간을 담을 수는 없습니다

적어도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는 한에서

그러한 시도란 자기규정적인 문제를 안고 있지요


작은 사람이 더듬거리며 전하기를

제가 여기는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수식어들로 인간을 대신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을 말할 수 없는 것이라면

인간을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인가요


큰 사람이 숙고하며 대답하기를

그대가 생각하기에 인간이란 어떠합니까

인간처럼 말하고 행동하면 인간이라고 할 것이냐

그럼 인간을 흉내내는 존재도 인간일 것입니다

매일 매순간 자신이 인간임을 확인하며 살고 있지 않느냐

그렇다면 고전이나 허구 속 인물들은 

어떻게도 인간답게 존재할 수 없겠지요

자신이 인간이라는 판명한 믿음을 갖고 있느냐

그렇게 되면 현명하지 못한 사람들이란

인간을 믿지도 알지도 못할 것입니다

나나 타인의 생각속에 나타난 모습으로 인간을 두루 알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 제각기 다른 모습들을 하나로 울타리

짓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요


작은 사람이 고개를 내젓는다

허면 표현할수도 연상할수도 없는 인간이란 것에는

누가 어떻게 다가갈 수나 있다는 것입니까

인간이란 오직 신비에 싸여 있는 것입니까


큰 사람이 눈을 감으며 자신의 감정을 헤아린다

나는 아직 인간을 알 수 없다 확답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대 조금 더 인고를 견뎌주세요


그대가 생각하기에 인간은 어떠해야 합니까

연합체를 이루고 도덕을 존중하며 종족을 보전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인가 그것은 진보적 미래라는 관념이자 이성적 주체라는 존재규정에 얽매인 채입니다 

인간은 꼭 사회를 이루지 않을 수도 있고 인간 개인은 그 자체로 한 명의 고고한 인간 존재이며 

우리의 도덕 자체가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지

않거나 종족 보전보다도 더 위중한 가치를 위해 삶을 기투하는 이들도 있으니 말이지요

인간과 삶의 의미를 꾸준히 궁구하고 실천하는 노력 속에

서 마땅히 자신이 인간임을 증명해보여야 하는가

이또한 인간이 얼마나 게으르고 어리석은 존재인지를 잊

고서 하는 말일 것입니다 

정녕 그렇게 쇄신하며 반성하는 삶이 가능한 것은 신화 속 영웅들에게나 기대할 수 있는 것이지 보통 사람들은 겨우 하루를 바삐 살아내는 것에 넌더리가 났을 것이지요

그렇다고 자신의 불완전함을 수용할 것인가 또 이성적이고 완결된 범우주적 존재에게 운명과 삶의 의미를 빌며 각성에 이르는 것인가

그것은 아무리 좋게 말해서 그 불완전한 자리를 다른 것으로 대신하여 메우는 것에 불과할 것이며 완전한 존재를 위경하면서 또 그 완전함을 착취하고 있는 것에 다름이 아니겠지요 사람이 큰 존재가 되려면 우선 그런 인지 밖의 존재들과 감히 나란히 서려고 하는 것이 먼저일 것입니다

하지만 관계적 의미, 실존적 의미, 형이상학적 의미에서 모두 그 존재의 뿌리가 부정된다면 

정녕 인간은 단지 상대적이거나 투철한 온갖 회의와 

무의미와 맞닿은 채 명멸하며 애처롭게, 어떤 구제도 없이 방황하고 말아야 하는가

그대여 의미를 찾지 못한 것이되 어찌 방황과 동문이 될 수 있겠습니까 적어도 의미가 인간 속에 있고 또 인간이 의미 속에 있는 것이라면 그것으로 인간과 의미 무엇을 제대로 알지 못해도 만족을 다할 것입니다


인간이 의미를 따라가면 의미가 없고

의미가 인간을 찾았다 하면 또 인간은 사라지니


그 눈먼 의존 상태란 다름 아닌 사랑이라고 불릴 것입니다

어떤식으로 사랑하거나 무엇을 사랑하거나

어째서 사랑하는지 이런 것은 중요하지 않으니

다만 사랑하십시오 의미와 인간과 또 무의미와 비인간을

운명과 유명을 혼돈과 질서를 모순과 정합을 몸과 마음을


그래서 


작거나 큰 존재를 분간하지 않고 마땅히 사랑하십시오

그래서 끝에는 자신의 사랑이 가장 큰 것이 되게 하십시오

그때서는 더는 무엇도 굳이 묻지 않아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자 작은 사람이 큰 사람에게 손을 청하였다

큰 사람은 작은 사람과 손을 맞잡고 손등에 입맞춤한다


... 키스는 물론 하나의 의식이면서도 부패하지 않는다. 그러나 의식은 키스처럼 진솔한 꼭 그만큼만 허용된다. 정신을 명확히하고자 함은 꼭 커다란 유혹이다.

- Culture and Value, MS 109 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