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백합

 

173호 도시·성십자교회 정문 밖, 11월 3일 10:29

 


???

어이, 래프트! 오늘은 네가 순찰 담당이냐? 교회 밖에서 뭘 보고있는거야?



래프트

토비냐. 그래, 네가 다쳐서 쉬게 된 이후로 이 근방의 순찰은 전부 내가 돌고있어.

 

토비

그렇구만, 수고해! 자, 이거 줄게. 선배가 주는 위로품이다.

 

그렇게 말하고는 토비는 주머니에서 전투식량을 한 팩 꺼내 래프트에게 건넸다.

 

래프트

누가 선배냐. 그 손에 들고 있는 건 전부 교회로 가는 보급품인가?

 

토비

들켰나, 헤헤

 

래프트

참나, 케이브 아저씨도 말이지… 평소 같으면 몰라도, 휴양중인 너를 부려먹을 줄이야…

 

토비

괜찮다니까. 재활운동 같은 거잖아?

그런 것보다, 오늘 예배일 아니지 않아? 왜 이렇게 소란스러워?

 

래프트

꽤 전부터 이랬어. 그 수녀가 온 후로는 쭉 이래.

 

토비

수녀?

 

래프트

어, 크자스 설원의 생존자야. 데려온 부대는 수녀만 여기에 남기고, 다른 생존자와 함께 남쪽으로 가버렸어.

 

토비

아아, 알아! 그 나이프 쓰는 대장, 세보였는데. 뭐, 내 활에는 못 당하겠지만. 헤헤

 

토비는 왼손의 보급 박스를 가슴 높이까지 들어 올리고 오른손으로 현을 당기는 포즈를 취한다. 그리고 먼 곳에 표적을 정하고는, 입으로 ‘슉슉’하고 활을 쏘는 소리를 연출한다.

 

래프트

너 진짜 얌전히 있지를 못하는구만…

 

토비

사람에게는 성장만이 있을 뿐, 이지. 그렇지 않으면 모두를 지킬 수 없잖아?

 

래프트

네 네. 그래서, 얘기를 계속하자면, 수녀는 분명… 비앙카, 랬던 것 같은데

 

토비

비앙카… 최근 자주 들리는 이름이네

 

토비는 손의 움직임을 멈추고 최근 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수녀A

들었어? 그 새로 온 수녀 얘기. 이런 저런 트러블을 일으킨 끝에 거의 추방당한 거나 다름없이 이 교회로 보내졌다는 듯하던데

 

수녀B

…키워 주신 신부님을 죽였다고도 들었어.

 

수녀C

오오, 하느님!

 

수녀A

설마, 교회에서 자란 수녀가 그렇게 되다니… 아니, 분명 ‘마녀’였던 거야…

 

수녀C

흥. 반론 한마디도 없다는 건, 틀림없이 짚이는 데가 있다는 거겠지

 

수녀B

잠깐, 누군가가 왔어

 

토비

……

 


시민A

어이, 최근 모습이 안 보이는 녀석이 많지 않아? 바로 요전까지 여기 있었던 노숙자도 사라져버렸어.

 

시민B

그러고보니 얼마 전에, 새로 온 수녀와 함께 있는 걸 봤었어. 설마…

 

시민A

확실히, 그 비앙카란 녀석이 오고 나서부터 행방불명이 늘어난 느낌이야.

 

시민B

그럼 그 자식의 짓이 틀림없어! 이 동네에서 쫓아 내자고! 안 그러면 발 뻗고 잘 수가 없겠어.

 

시민A

그렇지. 왜 군대는 그 수녀를 붙잡지 않는 거야? 세금 도둑들 같으니라고!

 

시민B

뭐, 사치 하나라도 부릴 수 없어서야 아무도 군대 같은 데는 안 들어가겠지. 아, 토비는 예외야.

 

시민A

맞아, 이런 세상에 그 녀석같이 선량한 놈은 진짜 드물지

 

시민B

쉿, 그 여자가 왔어. 자, 가자.

 

토비

……

 


래프트

…설원에서, 자신을 키워준 신부(Father)를 죽였다고 들었어.

 

래프트의 말이 토비를 현실로 되돌려왔다. 래프트의 시선 끝에는, 홀로 서성이는 금발의 소녀가 있다.

 

토비

으음… 무슨 오해가 있는 게 아닐까. 차가워 보이긴 하지만, 나쁜 사람으로는 안보이는데?

 

래프트

흥, 그렇게 생각하는 건 너뿐이야.

 

토비는 비앙카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교회에 있었던 사람들은 일제히 토비를 바라본다.

 

래프트

임무중이니 이제 가야 돼. 충고 한마디 해두겠는데, 쓸데없이 친절한 마음 품지마라. 저 수녀와는 엮이지 않는 게 좋아.

 

토비가 말을 받아치기 전에, 그를 알아차린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레온 신부

토비ㅡ! 와주었구나ㅡ!

 

토비

레온 신부님, 안녕하세요! 이번 주의 물자를 전달하러 왔습니다, 확인해주세요.

 

토비는 지면에 둔 보급 박스의 스크린을 왼손으로 가볍게 터치했다.

보급 박스의 사면이 펼쳐지며 그 속에 담겨 있던 생활물자가 드러났다.

 

레온 신부

수고했어. 케이브 녀석, 또 게으름 피우긴. 너희 대장한테 들었는데, 휴양중이었다면서. 괜찮은 거니?

 

토비

상처는 이제 거의 다 나았으니까요.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신부님.

 


시민B

오랜만이다, 토비. 요전번 방위전에서 다쳤었지? 모두 걱정했었다고.

 

토비

괜찮아 괜찮아, 큰 상처도 아니고. 자 봐봐, 벌써 원상 복귀했어!

 

토비는 왼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올리고 오른손으로 등에 맨 활을 꺼냈다. 그가 멋 부린 포즈를 취하자 웃음 소리가 퍼지고, 사람들의 어두웠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레온 신부

건강해보이니 우선은 안심했다! 자, 이 이상 토비를 방해하면 안 되지. 한 명씩 물자를 받아 주게나

 

신부가 손뼉을 치며 말하자 토비를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은 익숙한 동작으로 줄을 서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보급 박스 앞에서 기도를 하고 자기 몫의 물자를 들고 떠나간다. 물자 배부는 질서정연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토비는 줄 맨 끝에 서있는 비앙카를 알아차렸다. 물자를 받을 생각이 없어 보이는 그녀를 위해서 보급 박스에서 한 사람분의 물자를 꺼내, 줄을 돌아서 가까이 간다.

 

토비

안녕하세요. 몸 상태가 좋지 않으신가요? 자, 당신 몫의 물자입니다.

그리고, 이 꽃도 받으세요. 아주 잘 어울릴 것 같길래.

 

토비는 물자를 비앙카에게 내밀었다. 물자가 들어있는 케이스 위에는, 순백색 백합 꽃이 놓여있다.

 


비앙카

괜찮습니다. 후의에 감사드립니다.

 

토비

엇, 안돼요. 먹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요! 그…

 

토비가 이어나가려 했던 말은, 돌연 끼어든 여성에게 저지당했다.

 


수녀A

토비, 내버려 둬. 본인이 필요 없다고 하잖아.

 

레온 신부

너는… 최소한의 예의도 모르는 건가?

 

시민C

그래, 토비. 저쪽으로 가자

 

토비

아니, 기다려. 나는…

 

시민C

미안 토비, 저 수녀는 항상 이런 식이거든. 그다지 말 섞지 않는 편이 좋아. 그렇지, 최근 이 주변에서 실종자가 나왔다고 들었어.

 

시민B

나도 들었어. 걱정되네… 너도 조심해라.

 

자신을 걱정하는 사람들을 앞에 두고, 토비는 이 이상 비앙카에게 말을 걸 수 없게 되었다.

 

토비

걱정 마, 내가 모두를 지킬게. 그게 바로 우리 군인의 사명이니까!

 

 

 

#2 무리한 요구

 



173호 도시·성십자교회, 11월 13일 09:41

토비가 물자를 배송한 후로, 10일이 지났다. 교회에는 불온한 공기가 흐르고 있다.

 

수녀A

그 후로 한 번도 토비를 못봤어

 

수녀B

며칠 전에 래프트가 심각한 표정으로 신부님에게 뭔가를 물어보고 있는 것 같았어.

 

시민A

아무래도 이 10일 사이, 토비는 집에도 돌아가지 않은 듯하다.

 

수녀C

어? 설마 토비까지 실종된 거야? 요 사이엔 침식체와의 교전도 없었는데…

 

수녀B

역시… ‘마녀’랑 엮이려고 드니까…

 

비앙카

……

 

시민B

이런, 그 녀석이 왔어.

 

수녀B

가요, 갑시다. 안 그러면 다음 실종자는 우리가 될지도 모를 일이죠…

 


173호 도시·성십자교회 회랑, 12월 21일 23:47

밤의 정적 속으로, 회랑의 안쪽에서 울리는 발소리가 빨려 들어간다.

달빛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해 회랑에 쏟아진다. 그 희미한 빛에, 긴 금발과 울적한 얼굴이 어둠 속에서 떠올랐다.

 


비앙카

이 마을에는 불온한 감정이 넘치고 있어… 공포에 질린 나머지 사람들은 시기와 의심으로 뭉쳐있어…

행방불명된 사람들은 무사한 걸까…

신부님, 저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대체, 어디로 가면 좋은 걸까요… 신부님…

 

비앙카는 창문 옆에 서서, 작게 중얼거렸다.

‘쨍ㅡ’

교회의 홀에 소리가 울렸다. 넓은 교회 안이기에 소리가 한층 더 귀에 울린다.

 

비앙카

누구세요?

 

비앙카는 무심코 말소리를 냈지만, 돌아온 것은 긴 침묵뿐이다.

잠시 생각에 잠긴 비앙카는 이윽고 홀을 향해 몸을 틀었다.

 


비앙카

……

 

홀의 문은 조금 열려 있었다. 딱 사람 한 명 지나갈 정도의 틈이다. 한순간 망설인 뒤, 비앙카는 문을 가볍게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달빛이 은은하게 비치는 홀 중앙에, 검은 덩어리 같은 것이 보인다. 자세히 살펴보니, 누군가가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는 모습 같았다.

비앙카는 벽을 따라 조심히 나아가, 기도를 올리는 검은 옷을 입은 인물에게 조금 다가간다.

‘쨍ㅡ’

스테인드글라스 앞을 지나가려고 한 순간이었다. 비앙카는 자신의 발밑에서 예리한 소리가 난 탓에 숨을 삼킨다. 아무래도 유리 파편을 밟아버린 것 같다.

비앙카는 당황하며 발을 들어 올리고는 뒤쪽으로 물러섰다.

 

비앙카

……?

 

그러나, 검은 옷을 입은 인물이 비앙카를 돌아보는 기척은 없다. 장의자 너머로 모습을 살피니, 그 인물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기도를 계속하고 있다.

비앙카는 각오를 다지고, 재차 다가가기 시작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기도를 올리는 인물의 자세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썩어빠진 자켓에, 빛나는 듯한 금발. 그리고, 본 기억이 있는 장궁ㅡㅡ

 


비앙카

토비 씨…?

행방을 알 수 없다고 들었는데, 무사하셨군요… 분명 모두 기뻐할 거예요.

 

남자는 마침내 기도를 멈추고, 신체를 조금 흔들면서 입을 열었다.

 

???

이 목소리는… 비앙카 씨? …죄송합니다… 멋대로 들어와서…

헤헤, 역시, 소문 같은 건 믿을 수 없다니까… 생각했던 대로 상냥한 사람이야…

 

비앙카

아니요…

 

???

이런 시간에 온 건… 사실,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비앙카를 돌아본 그 얼굴은, 역시나 토비였다.

그러나, 동시에 비앙카는 알아차리고 말았다. 주홍빛의, 전류를……

비앙카는 한순간에 모든 것을 깨달았다. 이전에 눈 앞에서 보았던 것. 주홍빛의 그것은, 퍼니싱에 침식된 증거다. 비앙카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진다.

 

비앙카

…대체 왜, 이런 일이… …인간이 침식되어 버리면…

 

토비는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토비

인간이 침식되면, 순식간에 죽어버리죠.

근데, 저는… 아마… 인간이 아니게 된 듯, 합니다…

헤헤, 아무래도 행방불명된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겠죠… 그런데… 기억이 안나…

 

비앙카

…그럴 수가…

 

토비

헤헤… 그런 표정, 짓지 마요… 당신에게는 분명, 미소가 어울리니까…

 

비앙카

…미안해요

 

토비

사과하지 마세요… 그런 건, 거북해서요…

 

비앙카

미안해요… 그래도, 얼마나 괴롭고 고통스러울지…

 

토비

……

 

비앙카의 말에 토비는 순간 눈을 크게 떴지만, 곧바로 다시 행복한 듯한 미소를 띄웠다.

토비는 일어서서 비앙카를 달래려고 했으나, 자신의 체중을 지탱하는 것조차 할 수 없어 쓰러져 버렸다.

 

--------------------전투 진입--------------------

 


비앙카

토비 씨, 괜찮으신가요?

 

(토비와 대화하라)

 


토비

나한테 남은 시간은 얼마 없어… 부탁 좀 들어주실래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어요. 그래도, 비앙카 씨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 부디 저 활을… 받아 주시겠습니까…

 


(제단의 활을 들어라)

 


비앙카

토비 씨…

 

토비

실은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스스로도 모르겠어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여기에 있었습니다…

이건 주의 뜻하심에 틀림없습니다. 최후의 순간에… 당신과…… 윽…

윽… 으윽… 아아…

 

비앙카

토비 씨, 토비 씨!

 

토비

어…서… 늦기 전… 끄…윽…… 아아아아…!!!

 


(토비가 적이 되었다!)

 

비앙카

이럴 수가…

 

미쳐버린 토비

!

 

(토비가 덮쳐온다!)

 


비앙카

죄송해요…

 


(토비가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비앙카

무, 무슨 말을 하신 건가요?

 

(토비의 상태를 확인하라)

 


토비

내… 부탁을… 들어줘…

 

비앙카

저는…

 

토비

죽여줘…

 

비앙카

……

 

토비

고맙…습니다… 비앙카…씨…

 


(토비를 제단 앞까지 데려가라)

(쇠약해진 토비를 도와 일으켜 세웠다)

(쇠약해진 토비를 제단에 내려 놓았다)

 

--------------------전투 종료--------------------

 


짧은 전투가 끝나고, 교회는 정적에 감싸였다.

토비는 최후의 힘을 짜내 서있다. 끝없이 선혈이 흘러나오고 있지만, 의연하게 웃는 얼굴이었다.

 

비앙카

당신의 몸…

 

토비

이상하게 변한 것 같아... 보통 사람과 똑같이, 간단히 죽을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

내 의식이 있는 동안… 아직… ‘나’로 있는 동안에, 부디…

비앙카 씨, 미안해요… 폐… 폐를 끼쳐서…

 

비앙카

사과하지 마세요. 제 잘못입니다. 당신을 구할 수 없는 제가…

 

토비

아니… 구해줬어요… 분명, 저뿐만 아니라… 모두를… 구해주었어…

이대로라면… 나는… 사람을… 다치게 했을 겁니다…

 

비앙카

미안해요…

 


토비

마지막에, 당신을 만나서… 정말 다행이야…

…고마워

 

그것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다. 토비는 결국 힘을 다하여,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피바다 속에서 달빛에 비친 죽은 토비의 얼굴은, 한없이 평안했다.

토비가 쓰러지기 직전, 그 주머니에서 떨어진 한 송이 백합이 붉게 물들어간다.

 

비앙카

…흐윽…

 

선명하게 귀에 들러붙은 토비의 말. 그러나, 지금 눈 앞에 있는 것은 이미 생명을 잃은 토비의 빈 껍데기다.

 

비앙카

대체 왜… 왜, 이렇게까지 저를 믿어주신 건가요? 당신도, 신부님도…

구하겠다고 말했으면서, 결국 두 사람 다 살리지 못했어…!

어째서… 대체 뭐가 구원이란 건가요…

 

???

꺄아아아!

 

느닷없는 비명 소리에, 비앙카는 돌아보았다.

 

수녀A

오, 오지마!

 


공포로 핏기가 가신 수녀가, 큰 소리를 내며 달려 나간다. 그 직후,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3 다이달로스

 


밤의 교회는 아비규환의 대소동이 일었다. 소동의 중심에는 피범벅이 된 비앙카가 있다.

 

수녀A

‘마녀’야! 마녀가 토비를 죽였어!

 

수녀B

모두가 사라진 것도 네 짓이지! 사라진 사람들은, 분명 다들…

 

비앙카

아니에요...

 

레온 신부

닥쳐라, 이 살인자!

 

수녀C

흐윽… 토비…

 

시민A

토비는 어렸을 때부터 밝고 누구에게나 상냥했어. 그런 녀석을, 네 년은…!!

 

수녀D

대체 왜!? 이게 구해준 사람에게 향할 처사야!? 언젠가는 우리들도 이렇게 죽일 작정이었지!!

 

사람들은 토비의 시체를 둘러싸고, 그의 죽음을 한탄하고 있다.

 

비앙카

……

 

시민A

이쪽으로 오지마! 피를 뒤집어쓴 악마자식!

 

격노한 사람들은 어느새 욕을 퍼붓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서 손에 닿는 대로 비앙카에게 물건을 던지기 시작했다.

 

시민B

나가! 이 마을에서 나가! 두 번 다시 우리한테 접근하지마!

 

‘찰싹ㅡ’

 

분노가 가라앉지 않은 사람이, 비앙카를 있는 힘껏 때렸다. 그대로 계속해서 때리려고 했으나 주변에서 제지당한다.

 

시민C

방해하지 마! 토비의 원한을 풀 거다!

 

레온 신부

여기서 나가라, 성지를 더럽힌 피를 뒤집어쓴 수녀 년. 이 교회는 더 이상 너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사람들은 떼를 지어 비앙카를 교회 밖으로 쫓아냈다. 비앙카는 비틀거리면서도 교회의 정문 앞에서 자세를 가다듬는다.

그리고, 자신에게 던져지는 욕설이나 물건을 개의치 않고 교회를 돌아보고는 가슴 앞에 손을 모아 조용히 머리를 숙였다.

잠시 머리를 숙이고 있었던 비앙카는 이윽고 밤의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173호 도시·센트럴 애비뉴, 18:24

 


시민A

그 마녀가 사라지고 나서는 마을도 평화로워졌네

 

시민B

레온 신부는 너무 상냥하셔. 그 자식은 그 자리에서 죽여버렸어야 했는데. 지금도 어딘가에서 누군가를 죽이고 있을지도 몰라.

 

시민C

흥, 만약 또 이 마을에 온다면, 그 때는 때려 죽여주지.

 

욕을 퍼붓는 사람들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서 비앙카는 건물 그림자 속에서 살짝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몸에는 보기에도 처량한 누더기를 걸치고 있었다.

 


비앙카

……

 

쇠약해진 비앙카가 넓은 길을 건너려던 순간, 또다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비앙카는 발빠르게 반대편 골목을 향해 몸을 숨겼다.

 

골목 앞을 지나간 사람이 어느 정도의 거리까지 멀어지는 것을 기다리며 비앙카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벽에 기대어 땅바닥에 앉았다.

 

비앙카

제가 한 일은… 옳았던 걸까요? 

 

???

참으로 딱한 일입니다…

 

비앙카

누구시죠!?

 

비앙카는 경계하면서 좁은 골목 안을 바라본다. 상대는 모습을 감추지 않고 천천히 다가왔다.

 


이거 실례했습니다, 저는 다이달로스 사의 대표이사 벤이라고 합니다.

 

왼손에 지팡이를 짚고 화려한 검은 양복을 입은 신사는, 비앙카의 앞에서 멈춰 서서 살며시 오른손을 내밀었다.

 

저는 극히 평범한 장사꾼입니다. 그렇게 경계하지 마시길. 당신에게 위해를 가할 의도는 조금도 없습니다.

 

비앙카는 경계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벤이 내민 손도 무시했다. 벤은 그것을 개의치 않고 미소를 띄우며 멀리 있는 교회로 시선을 두었다.

 

민중은 우매하여 성인의 행위를 이해할 수 없는 법. 민중은 성인을 배신하고, 살해했지만… 성인은 의연하게 민중을 사랑한다.

비앙카. 대의에 희생은 따르는 법입니다.

 

비앙카

당신…!?

 

후후, 놀라실 것 없습니다. 저는, 이 마을… 아니, 이 구역에서 일어나는 온갖 일들을 알 수 있습니다.

받아주시길, 제 명함입니다. 본사가 취급하는 상품은 단 하나 ㅡㅡ ‘안전’입니다.

 

벤은 그렇게 말하고는 윗주머니에서 꺼낸 은색 카드를 내밀었다. 비앙카가 받아 든 명함에는 다이달로스 사의 정보가 기재되어 있다.

 

본사는 주로 침식된 분들의 ‘정리’를 행하고 대다수 시민의 안전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 마을뿐만 아니라 크자스 설원부터 남부 도시까지, 그 전역이 본사의 보호 범위입니다.

 

비앙카

설원…

 

스노우 신부 건은, 당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비앙카

!

 

마을 밖에 출현하는 침식체가 현저한 리스크임에 비해, 토비나 스노우는 잠재적 리스크, 즉 눈에 보이지 않는 적입니다.

이건 세상에 대한 의료적 구제와도 같습니다. 자력으론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언제 위협이 될 지도 모르는 피침식자를 찾아서 ‘구제’하는 겁니다. 다른 대다수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요.

지극히 정당한 행위이자 사회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정의이기도 합니다.

당신이 여태까지 해온 일과 똑같습니다.

 


비앙카

제가 여태까지 해온 선택은… 정말 모두 옳았던 걸까요?

 

물론입니다

 

벤은 다시 한번 비앙카에게 손을 내밀었다.

 

당신은 천부적 재능을 갖고 있습니다. 본사에 와 주신다면, 그에 걸맞은 힘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그 힘으로, 함께 이 빈사상태의 세계를 구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우리 같은 인간이 완수해야 할 의무, 안 그렇습니까?

 


173호 도시·다이달로스 사, 17:47

 

한 발 앞으로 와주십시오.

 

‘댕그랑ㅡ’

 

뒤돌아 주십시오.

……

좋습니다, 잘 적응됐군요.

 


비앙카

…감사합니다.

 

그럼, 앉으세요

 

벤은 의자를 꺼내 비앙카에게 앉도록 권유했다.

 

비앙카

 

앉으려 했던 비앙카는 등에 벤의 지팡이가 닿은 것을 알아차렸다.

 

자세를 유지하세요.

 

비앙카

네, 네…

 

비앙카는 바로 등 근육을 폈다.

 

좋아, 이해가 빠르군요.

 

비앙카

그런데, 벤 씨… 이런 매너를 배우는 게 업무 상에 도움이 되는 건가요?

 

힘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예의는 습관이며 규율이며 자신에 대한 금제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사명으로 삼는지를 항상 자각시키는 것이기도 합니다.

곧 알게 되실 겁니다.

그럼, 오늘의 트레이닝은 여기까지.

 

비앙카

감사합니다, 벤 씨. 내일 뵙겠습니다.

 

비앙카는 인사를 하고 방을 나갔다. 벤은 그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말없이 지팡이를 문지르고 있다.

 


 

#4 몽상

 

171호 도시·프라하 장원, 23:50

호화로운 차림의 남녀가 홀에 모여 향 좋은 술과 아름다운 음악 소리에 도취해있다.

비앙카는 글라스잔을 든 채, 홀로 창가에 서서 창문 너머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

이런, 레이디. 왜 홀로 떨어져 계신지요?

 

비앙카

미스터 벨이 아니신가요, 안녕하십니까.

 

비앙카는 드레스 자락을 가볍게 집어 올리고 몸을 굽혀 인사를 한다.

 

딱딱한 인사치레는 생략하지. 무례하게 말을 걸어 실례했네. 그런데 나를 알고 있을 줄이야, 이거 놀랐군.

 

비앙카

이 거리에서 전력국(電力局)의 미스터 벨을 모르는 사람은 전무하겠지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영광입니다, 비앙카라고 합니다.

 

비앙카… 너에게 어울리는, 아름다운 이름이다.

 

비앙카

황송할 따름입니다.

 

후후, 밤은 지금부터가 시작인데 글라스잔이 비어 있지 않은가.

 

벨이 손가락으로 소리를 울리자, 곧 기계집사가 나타났다. 손에 든 트레이에는 금빛의 술이 채워진 와인잔이 두 개 올려져 있었다.

 


집사

주인님, 1790년산 줄입니다.

 

벨은 만족한 듯 끄덕이며 집사의 손으로부터 글라스잔을 건네받았다. 그리고 돌아본 순간에 비앙카를 슬쩍 보았으나 기대했던 뜨거운 눈빛은 향하고 있지 않았다.

 

…흥

레이디 비앙카, 받으시게.

 

내심 불만을 내색하지 않으면서 벨은 미소지으며 글라스잔을 내밀었다.

‘삐빗’

그러나, 갑작스러운 통신음이 벨의 의도를 방해했다

 

미안하군, 잠깐 실례하지

 

비앙카

아닙니다, 신경쓰지 마시길

 

발신원 불명…?

 

벨이 귀찮다는 듯이 통신에 접속하는 것을 지켜보고는, 비앙카는 미소를 띠며 목례를 하고 그 장소를 떠났다. 뒤에 남은 것은 통신기에 호통을 치고 있는 벨뿐이었다.

 


171호 도시·프라하 장원 저택 옥상, 23:57

비앙카는 홀을 벗어나 저택의 옥상으로 나왔다. 그리고 걸음을 멈추지 않으면서 귀에서 소형 통신기를 떼낸다. 통신기의 액정에는 ‘비통지설정’의 다섯 글자가ㅡㅡ

 


비앙카

벨의 신분인증 데이터, 카피 완료. 현재 171호 전력 네트워크에 침입중입니다.

 

비앙카는 조그마한 장치를 꺼내서 스크린을 가볍게 터치했다.

 

비앙카

완료

 

그 순간, 휘황찬란하게 빛을 뿜고 있던 프라하 종탑구역이 어둠에 삼켜졌다.

 

비앙카는 옥상 끝까지 걸어간 후 그늘 속에서 무기 수납 케이스를 끌어 냈다. 패스워드를 입력해서 활을 꺼내고는 어둠에 잠긴 프라하 종탑구역을 바라보았다.

비앙카의 시야가 종탑 아래의 광장을 서성이는 구조체 병사를 포착했다.

광장에 있는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정전에 술렁대면서, 누구 하나 그의 일그러진 표정이나 신체에 감긴 주홍빛의 전류를 알아채지 못한 듯하다.

병사는 천천히 무기를 꺼내서, 그 무기로 지켜야 할 무고한 사람들을 향해 겨누었다.

병사는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으나, 예리한 화살이 그 다음의 행동을 저지한다.

화살은 병사의 척추를 관통하여, 무거운 기체는 그 충격으로 튕겨 날아갔다.

‘댕 ㅡ 댕 ㅡ 댕 ㅡ 댕 ㅡ 댕 ㅡ 댕 ㅡ 댕 ㅡ 댕 ㅡ 댕 ㅡ 댕 ㅡ 댕 ㅡ 댕 ㅡ’

사신의 조각상이 천천히 종을 울리자, 거대한 종의 옆에 열두 사도가 한 기씩 모습을 드러냈다.

비앙카는 활을 거둔다. 시야에 포착한 구조체 병사가 사람을 해치는 일은 두 번 다신 없겠지.

 

시스템

통신 접속중ㅡㅡ

 


요 몇 번의 임무를 통해 드디어 배짱이 좋아진 모양이군요.

 

비앙카

지도해주신 덕분입니다

 

이대로만 계속 부탁드립니다

 

비앙카

 

그러는 사이 다이달로스 사의 수송기가 옥상에 도착했다. 해치가 천천히 올라간다.

 

자, 다음 작업입니다.

 

비앙카

맡겨 주세요

 

비앙카는 수송기에 뛰어올랐다.

 


178호 도시·임시 부두, 16:35

‘쾅ㅡㅡ 탕ㅡㅡ’

 


병사A

망할 새끼가! 침식구조체 자식, 진짜 괴물 아니냐고! 조이, 탄 보충 부탁해! 조이!

 


구조체 병사A

그만둬! 조이는 아까 전 폭발로 죽었잖아!

 

병사A

…젠장, 젠장!!

 

구조체 병사B

엄마, 아직 죽기 싫어… 죽기 싫다고…

 

병사A

어이, 보스의 지원 부대는 아직이냐! 이대로는 전멸하겠어!

 

구조체 병사B

어이, 저길 봐라! 우리 쪽 수송기다!

 

병사A

아아, 보여! 어이, 갑자기 서지 마…!

 

‘콰아아앙ㅡㅡ’ ‘슈우웅......’

 

병사A

젠장…!

 

구조체 병사A

고작 1기…? 설마…

 

수송기는 병사들의 머리 위를 지나 침식당한 구조체의 거점을 향해 간다.

거점의 상공 부근에 도달하자 수송기의 해치가 열리고, 그 직후 몇 갈래의 번개가 쏘아졌다…

수 분이 지났음에도 주변은 쥐 죽은 듯 조용한 그대로이다. 이윽고 거점에서 비앙카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옷을 입은 후방지원팀이, 그 장소에 굳어 있는 병사를 아랑곳하지 않고 지나쳤다.

 


후방지원대원A

누님, 수고하셨습니다.

 


비앙카

뒤는 잘 부탁합니다.

 

비앙카는 경직된 두 병사를 알아챈 듯, 말을 걸어온다.

 

비앙카

늦어서 죄송합니다…

 

구조체 병사A

당치도 않습니다! 당신이 오지 않았더라면 죽었을 겁니다!

 

병사A

켁, 이번에는 ‘상품’이 안좋았어… 아니었으면 우리만으로도 여유롭게 어떻게든 할 수 있었을 거다…

 

병사의 목소리는 한없이 작았지만, 비앙카는 놓치지 않고 들었다.

무슨 말인지를 알 수 없었다ㅡㅡ 비앙카는 잠시 생각에 잠겼으나 금방 얼음장 같은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또닥 또닥ㅡㅡ’

그 때, 지팡이로 지면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전원

!?

 

비앙카와 두 병사는 놀라서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세 사람 모두 배후에서 벤이 나타난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 사람은 허둥대며 벤에게 목례하고, 각자가 해야 할 일을 재개한다.

비앙카는 수송기를 향해서 걸어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비틀거리며 그대로 쓰러져버렸다.

 

비앙카

으… 이 기체는 역시, 연속 전투에는 맞지 않아…

후우, 잠시 쉴까…

 

비앙카는 폭발 잔해의 그늘로 들어가, 기체의 조정을 시작했다.

그러자 갑자기, 분주한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비앙카는 그늘에서 소리가 나는 방향을 살핀다. 복수의 인영이 콘크리트 기둥 같은 것을 질질 끌며 바다로 향하고 있는 것 같다.

그 뒤쪽을 지팡이를 쥔 벤이 느긋하게 따르고 있다. 벤이 오른손을 살짝 들어올리자 검은 인영이 곧바로 무릎을 꿇고 불을 붙인 궐련을 정중하게 그 손가락에 끼워 넣었다.

벤은 멈춰 서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콘크리트 기둥을 끄는 인영을 지켜보면서 궐련을 빨아들이고는 연기와 함께 말을 내뱉었다.

 

‘수다스러운’ 무리는 지긋지긋하네요.

 

검은 인영

예, 지시하신 대로 처리했습니다.

 

음, 아무쪼록 그녀에게는 들키지 않도록.

 

검은 인영

명심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끝낸 벤은 몸을 돌려 다시 걸어 나간다.

비앙카는 놀란 나머지 지면에 주저 앉았다.

 

비앙카

저건, 정말 벤 씨인가…? 대체 어떻게 된 거지…?

게다가 저 콘크리트… 잘못본 게 아니라면 아까 전 병사의 인식표가 보였어…

 


173호 도시·다이달로스 사 보안 창고 바깥, 03:10

 


검은 인영A

어이, 슬슬 올라가서 한잔하자고. 좋은 걸 손에 넣었어.

 

검은 인영B

다음에 해, 아직 근무 시간중이다.

 

검은 인영A

괜찮다니까. 이 창고의 존재를 아는 사람도 거의 없잖아.

지금, 조금 갖고 있거든. 저기서 잠깐 마시자고.

 

검은 인영B

우와, 이 냄새… 알았다, 알았어. 한 잔만 마실 거다?

 

검은 인영A

오케이, 빨리 가자.

 

골목 안으로 향하는 두 인영과 교대하듯, 그 장소에 또 다른 인영이 나타났다.

 

???

어… 마스터 컨트롤 시스템은 분명히 이 주변에…

찾았다.

 


인영은 소형 장치를 꺼내서 케이블을 창고 벽에 접속시키고는 무언가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곧 창고의 벽이 움직여 사람 한 명이 지나다닐 만한 비밀문이 나타났다. 인영은 재빠르게 케이블을 뽑아서 비밀문을 통해 창고 내부로 들어갔다.

 

???

이건…!?

 

그 순간, 창고 안의 불빛이 일제히 점등되어 침입자의 정체를 남김없이 비추어 밝혔다.

 

비앙카

!

 

창고 속에서 울려온 목소리가 침입자에게 말을 건다.

 

이곳은 당신이 올 곳이 아닙니다.

 

 

 

#5 진상

 

173호 도시·다이달로스 사 보안 창고 내부, 03:16

밝아짐에 따라 창고의 전모가 드러난다. 비앙카의 눈에 비친 것은 장치로 구속당한 수많은 구조체…

 


이곳은 당신이 올 곳이 아닙니다.

 


비앙카

설마, 모두… 실종된 사람들!?

이럴 수가… 어째서…! 론 씨, 필 씨… 정신 차리세요!

 

소용없습니다.

 

비앙카

이런 개조를… 벤 씨, 당신이 한 짓인가요!?

 

보자마자 모든 걸 깨닫지 않았습니까?

 

비앙카

……

 

이러니 ‘수다스러운 사람’은 변변찮다는 겁니다. 낮에 그 어리석은 놈만 없었다면 일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요…

 

비앙카

요컨대, 그 병사가 말했던 ‘상품’이란, 다이달로스의 인원이자… 내가 처리한, 침식당한 구조체였다…

 

그 말대로입니다. 우리 회사가 개조한 훌륭한 ‘상품’입니다.

 

결정적인 대답이었다. 비앙카는 현기증을 느끼며 휘청거렸으나 그 자리에서 버텼다.

 

우리들이 판매하는 것은 안전. 그리고, 안전은 무기와 힘으로 확보하는 것. 요즘 시대에 가장 강력한 무기는 무엇인가? 말하지 않아도 아시겠지요.

헌데, 무기를 완전한 무기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성을 유지시키고 싶다는 위선적인 망상을 품은 멍청이도 있습니다.

실로 바보 같은 일입니다. 

어차피 무기는 무기. 개조된 인간은 이미 인간도 뭣도 아닌 ‘상품’인 겁니다. 피도 살도 감정도 가지지 않은, 인간에게 사용되어야 할 도구이니까요.

 

비앙카

즉, 나도…

 

유감스럽게도 ‘신앙’이라는 중대한 결점으로 인해 당신에게는 인간성이 남아버렸습니다. 허나, 그렇더라도 당신은 지극히 우수합니다.

그렇다 해도, 다른 상품과 똑같이 내용연한의 벽은 넘을 수 없습니다만. 무기에도 사용의 한계… 즉, 수명이 있습니다.

 

비앙카

읏…

 

포기하십시오. 당신도 머지않아, 당신에게 ‘처리’당했던 구조체와 같은 운명을 걷게 될 겁니다.

 

비앙카

닥쳐! 그, 그럼, 내가 여태껏 해 온 일은… ‘구제’는, ‘안전을 지킨다’는 건, 전, 전부…

 

불쌍하게도… 모르는 채로 있었다면, 부서져서 회수될 때까지 계속 꿈을 꾸고 있을 수 있었을 텐데요…

 

비앙카는 분노에 몸을 맡겨서 활을 쏘았다.

‘지지지지직ㅡㅡ’

전기가 흐르는 소리. 벤은 입을 닫고, 비앙카의 거친 호흡 소리만이 이어지고 있다.

 

비앙카

하앗… 하앗… 하아…

 

진정하십시오. 당신 같은 우수한 무기를 놓치는 건 애석하지만, 여기까지입니다.

 

느닷없이 퍼진 벤의 목소리는, 어째서인지 창고의 사방팔방에서 들려온다.

 

비앙카

벤!!!

 

…매너가 틀려먹었네요.

저는 그런 식으로 가르친 기억은 없습니다.

 

비앙카

하앗… 하앗…

 

후후. 작별 선물로 ‘구제받은’ 구조체의 진상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벤의 말을 신호로, 창고 안에 있는 구조체의 구속 장치가 해제되었다. 주홍빛 전류를 휘감은 구조체는 무리를 지어 비앙카를 덮쳐왔다.

 

--------------------전투 시작--------------------

 


비앙카

죄송합니다… 당신들을 이런 꼴로 만들어 버려서…

저도 곧 뒤를 따르겠습니다. 누군가의 무기로서가 아닌, 한 때 살아있었던 인간으로서.

 

유감이다.

잘 가라. 

 


(나아가라! 다이달로스 사를 파괴하라)

 


(에너지를 충전하라 / 장치가 기동)

 


(미쳐버린 구조체가 덮쳐왔다!)

 


(장치가 과부하 상태다! / 장치가 불안정해졌다)



(장치가 과부하로 인해 폭발 / 기체 에너지의 충전에 성공)

 

위 과정을 세 번 반복 후

 


(전 장치가 과부하 상태! / 기체 에너지 충전 완료, 화력 리미터를 해제)

 

--------------------전투 종료--------------------

 

 

#6 종국

 

173호 도시·다이달로스 사, 04:44

전신에 전류를 휘감은 비앙카는 마침내 벤의 앞에 도달했다. 지나온 자리에는 무수한 시체가 굴러다니고 있다.

 


비앙카

이걸로 끝입니다, 벤…

 

처음 오피스에 온 날을 기억합니까?

 

벤은 비앙카를 개의치 않고 지팡이를 짚으면서 창가를 향한다.

 

당신은, 꽤 성장했습니다.

 

비앙카

무슨 말이 하고 싶으신 거죠?

 

후후

 

벤은 가볍게 웃고 몸을 돌려, 비앙카의 눈을 바라보았다.

다음 순간, 주머니에서 구식 총을 꺼내, 총구를 비앙카에게 겨눈다.

비앙카는 재빨리 의자에 발을 걸어 벤을 노리고 있는 힘껏 걷어 차올렸다. 의자를 피하려던 벤의 가슴을 비앙카의 화살이 꿰뚫었다.

 

훗…

 

벤은 힘없이 뒷걸음질 치면서 왼손에 쥔 지팡이로 필사적으로 몸을 지탱한다. 그리고 숨을 헐떡이면서, 오른손으로 의자를 일으켜 세웠다.

벤은 일으켜 세운 의자에 천천히 앉고는 지팡이를 양손으로 쥐고 기대었다.

비앙카는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이윽고 벤은 고개를 들어올리고, 말했다.

 

…나의 무기여, 나의 가장 아름다운 무기여. 이걸로… 만족했나?

 

벤은 조용히 고개를 떨어뜨렸다. 더는 숨을 쉬고 있지 않았다.

 



173호 도시·다이달로스 사 옥상, 04:55

비앙카가 옥상으로 나온 그 순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앙카

전부, 끝났어…

어쩐지 잠이 오는데… 잠깐만 쉴까…

 

‘쏴아아아ㅡㅡ’

 

비앙카

…무슨 소리지?

아아, 비구나… 이, 하얀 빛은 대체…?

그치만 더 이상, 뭐가 되었든, 아무래도 좋아…

 


???

어이! 자면 안된다, 정신 차려!

스타 오브 라이프! 어서 이쪽으로! 수송기를 좀 더 접근시켜줘!

 

비앙카

……

 

???

어이, ■■■■! ■■■■■…

 

 

 

#히든

 

173호 도시·스타 오브 라이프 임시 병원, 11:50

 


의사

하산 의장. 발견 시, 그녀는 피웅덩이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기체의 감각 모듈의 대부분이 절단되어 있고, 손상의 자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혹은… 자각이 있어도 개의치 않았거나.

 


하산

그런가. 상태는?

 

의사

기체의 긴급수복은 완료했고, 지금은 의식도 돌아왔습니다.

 

하산

그거 다행이군.

 

의사

기체를 교환하는 쪽이 좋겠지요. 이대로라면 인격에 대한 영향이 커지기만 할 뿐입니다.

 

하산

…알았다. 그녀에게 안내해주게.

 

의사

네, 그럼 이쪽으로.

 

의사를 따라 몇 겹의 인증을 거친 하산은, 중상자 병실 앞에 도착했다. 문을 가볍게 3회 노크하고, 병실에 들어간다.

 


하산

보호한 이래로 꼬박 나흘이 지났다. 자네의 의식이 돌아온 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있네.

 


비앙카

저에게는… 기뻐하실 만한 가치가 없습니다… 그곳에서 죽는 편이 좋았을 터입니다…

 

하산

…자네의 처지는… 정말 딱하지만, 결코 그 모든 게 무의미했던 것이 아니다. 자네는 자신을 부정해서는 안 돼.

 

비앙카

……

 

하산

자기소개가 아직이었군. 나는 지구탈환전선의 지도자, 하산이다.

우선은 전 인류를 대표해서, 다이달로스 사를 파멸시킨 자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전한다.

 

비앙카

저는… 아무것도 한 게 없습니다. 그저, 죽였을 뿐…

 

하산

아니. 자네는 쿠로노(黑野)*의 반역자ㅡㅡ 벤을 숙청해주었다.

자네가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도 벤의 행방을 잡지 못했을 것이고, 다이달로스의 어둠도 근절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네 덕분에, 암약하는 독사에게 상응하는 벌이 떨어진 것이네.

자네의 선택은 무엇 하나 틀리지 않았다. 설원이나 교회, 벤의 아래에 있었을 때도, 자네의 행동은 많은 사람들을 구했지. 단지, 자네의 순수한 신앙심이 악한 자에 의해 이용당했을 뿐.

*리와 베라가 과거 소속되어 있었던 조직


비앙카

……

 

하산은 병상에 설치된 스크린을 끌어냈다. 여러 번 터치하자, 여러 도시와, 그 뒤에 숫자가 떠올랐다.

 

하산

보게, 이건 자네가 방문했던 거리일세. 만약 자네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이들 거리의 인구는 급격히 감소하고 침식체의 손에 떨어졌을 것이네.

 

하산의 말과 동시에, 스크린에 비친 도시의 모델링이 점점 변형되더니, 점차 파괴되어 갔다.

 

비앙카

정말, 로…?

 

하산

그래. 저들을 구한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자네다.

 

비앙카

……

 

하산

따뜻한 볕이 닿는 장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로부터 오해나 비난을 받으면서도, 차가운 암야에서 소리없는 화살을 계속해서 쏘아나가는 자ㅡㅡ때마침 시대는, 자네와 같은 존재를 필요로 한다.

그런 존재 덕분에, 태양은 다시 떠오르고, 세계는 계속해서 평화로울 수 있는 것이네.

 

비앙카

……

 

하산

이 장소를 알고 있나?

 

하산이 다시 스크린을 터치하자, 평평한 공터가 떠올랐다.

 

비앙카

여기는…!

 

하산

그래, 예전에 다이달로스 사의 빌딩이 있었던 곳이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졌지.

사람들을 향한 위협은 완전히 배제되어, 그들은 이제까지와 같은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비앙카

이건… 당신들이?

 

하산

그래. 정확히 말하면, 우리 지구탈환전선의 청소부대에 의한 것이네.

이번 건에서 자네와 청소부대는 직접 협력하지만 않았을 뿐, 그 동기와 목적은 완전히 일치했다.

자네들이, 다이달로스를 파멸시킨 것이네.

 

비앙카

……

 

하산

비앙카, 나는 지구탈환전선의 대표로서 자네를 공중정원으로, 그리고 가능하다면 청소부대에 초빙하고 싶네. 자네에게는 그 자격이 있어.

 

비앙카

저는……

 

하산

대답은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네.

 

비앙카

……

 

하산

나도 자네 정도의 나이였을 땐 여러가지로 먼 길로 돌아서 가곤 했었지. 그러나 언제까지고 과거에 붙잡혀 있어서는 안 돼.

우선은 푹 쉬게나. 뭐, 곧 다시 만날 수 있을 걸세.

 

 

 

 


유튜브 에디션으로 본 거라 각 장 타이틀은 중문 걸로 번역했음

다 하고 난 뒤에 제목 다시보니까 이상해서 바꿈 망설이는 -> 방황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