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산의 눈보라가 햇빛을 가리고 주변의 빛이 어두워지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로제타는 전진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방향.

 

----어디로 가야하는가.

 

어둠, 공포, 적막.

 

----과거의 무수한 세월과 같다.


 

로제타

하지만 나는 동료를 지키는 기사.

 

----지키는 것이 사명.

 

----그렇다면 어떻게 지켜야 하지?

 

----누군가가 기사에게 할 일을 알려주는 건?

 

로제타

어떻게 해야할까?

 

----나는 생각한다. 내가 모든 것을 지킬 수 있을 만큼 강해지는 길밖에 없다고.

 

히힝--

 

누군가 부는 호루라기 소리가 아니라, 눈 숲속에서 들리는 익숙한 울음소리였다.

 

로제타

너 여기 있었구나.

어서 돌아가야 해. 이런 날씨에 설산에 있는 것은 너무 위험해.

 

로제타는 빠른 걸음으로 보조기를 향해 걸어가, 보조기를 끌고 왔던 방향으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로제타

어? 이만큼이나....

 

폭설은 이미 모든 것을 묻어버렸고, 이정표가 될 만한 모든 단서는 사라졌다. 눈 앞에는 사나운 눈보라가 남긴 끝없이 펼쳐진 어둠만이 남아있었다.

 

로제타

어쨌든, 우린 일단 산에서 내려가야 해.

 

그러나 몇 걸음 가지 못한 로제타는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이런 악천후는 구조체라도 지대한 제한을 받았다.

 

로제타는 자신의 장총으로 지탱해 간신히 다시 일어서려 했지만, 눈보라가 일어나며 다시 압도당했다.

 

그러나 로제타가 넘어지려 할 때, 로제타의 몸 아래에서 단단한 힘이 전해져 왔다.

 

로제타

너......


 

아무런 명령도 받지 않은 보조기는 로제타가 넘어지기 전에 한발 앞서 그녀의 몸 아래로 와서 로제타를 등에 태웠다.

 

그러나 이 갑작스러운 행동으로 로제타가 들고 있던 장총과 보조기의 기체가 부딪혔다.

 

보조기의 기체에 긁힌 자국이 적지 않게 생겼지만, 보조기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대로 로제타를 싣고 걸음을 옮겼다.

 

로제타는 피곤한 자신을 등에 업은 탓에 보조기가 빨리 걷지 못함을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로제타

그만해. 이러다 우리 둘 다 여기 갇혀버릴 거야.

제멋대로 행동할 때가 아니야. 이대로 가면, 너는...

 

----폐기돼.

 

그러나 로제타는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보조기는 로제타의 명령에도 그녀를 꿋꿋이 태우고 눈보라 속을 걸어갔다.

 

로제타

왜 이러는 거야......

왜 위험한 줄 알면서도, 내 곁에 서 있는 거야.

 

어둠이 로제타를 향해 밀려와서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에도, 눈보라 속에서 자신의 곁을 지키는 보조기의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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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의 작은 빛들이 어둠 속 길을 겨우 비췄지만, 결국 모든 빛은 어두워졌고, 로제타는 어둠 속을 혼자 더듬거리며 갈 수밖에 없었다.

 

로제타는 자신의 운이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동료는 자신의 악운에 영향을 받고, 함께 가는 동료는 결국 자신의 옆에 서 있는 것 때문에 상처를 입는다.

 

그래서 그때 혼자 알파에게 맞서 독자적으로 침식체의 위기를 해결하는 선택을 한 것이다.

 

어쩌면 동료가 자신의 옆에, 자신과 같은 위험한 곳에 서 있지 않는 한, 자신의 상처로 인해 동료가 사라지는 날은 또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는 앞장서서 동료를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런 보호가 과보호이든 아니든 로제타의 생각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이런 것뿐이었다.

 

하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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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타

!

 

갑자기 잠에서 깬 로제타는 자신이 여전히 보조기의 등에 있는 것을 깨달았고, 주변의 눈보라는 예전처럼 거세지 않았다.

 

주변에는 방향을 알아볼 수 있는 단서들이 조금씩 등장했고, 로제타는 자신이 보조기와 야영지 쪽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보조기는 몸으로 눈보라를 막아 등에 있는 로제타에게 가지 않도록 했다.

 

로제타

너 아직 있네.

 

로제타는 앞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차가운 몸체지만 손가락 사이 닿은 위치에서 로제타는 다소 따뜻함을 느꼈다.

 

로제타는 갑자기 몸이 가볍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추위에 떨리는 것이 아니었다. 더 심한 진동이 설산 전체에 퍼졌다.

 

돌아보니 산봉우리 위로 솟구친 하얀 눈덩이에서 눈의 홍수가 일어나고 있었다.

 

길가의 수목과 돌들이 모두 순식간에 눈에 잠겼다.

 

눈사태.

 

로제타는 힘껏 몸을 일으켜, 결국 보조기의 등에 걸터앉았다. 보조기도 등 뒤의 움직임을 감지한 듯 속도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달려도 천재지변과의 거리는 눈에 보일 정도로 가까워졌다.

 

로제타

적어도....

 

로제타는 보조기 등에서 뛰어올라 지상으로 떨어지려 했다. 보조기는 무게중심을 낮춰 로제타의 동작을 끊었다.

 

로제타

너 뭐하는 거야. 이러다간 우리 둘 다 눈사태에 매몰될 거야.

 

로제타는 다시 땅으로 뛰어내리려 했지만, 보조기에 의해 또 한번 중단되었고, 계속해서 보조기의 등에 머물렀다.

 

로제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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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편에서 다가오는 천재지변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로제타는 갑자기 정체를 느꼈다.

 

빠르게 사방을 둘러보니, 지금 이곳은 자신이 보조기를 추적하느라 힘겹게 넘어온 절벽이었다.

 

보조기의 도움이 있어, 이렇게 머나먼 거리도 거뜬히 넘을 수 있었다. 절벽 건너편 기슭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보조기와 로제타가 맞은편 절벽에 도착하기도 전에, 눈사태는 그들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로제타

정말... 끈질긴 놈이군.

 

눈사태가 세차게 내려왔지만, 로제타와 보조기에 닿기 직전에 짧은 정지 상태에 빠졌다.

 

공중에 떠 있는 보조기와 소녀기가 파멸적인 천재지변,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몰고 왔지만, 모든 것이 순간 잠잠해졌다.

 

고요함의 극치였던 짧은 순간은 다음 순간 전자기포의 밝은 빔에 의해 깨졌다.

 

빔은 로제타와 보조기 머리 위의 눈사태들을 반으로 갈랐고, 눈사태는 두 사람의 몸을 스치며 밑도 끝도 없는 절벽 깊숙한 곳으로 떨어졌다.

 

멈췄던 시간이 다시 흘렀고, 귓가에 눈보라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로제타와 보조기의 숨소리가.

 

보조기는 맞은편 절벽 기슭에 안착했고, 로제타는 등 뒤로 몸을 곧게 뻗은 채 절벽 위를 돌아 봤다. 무너진 눈사태는 계속 절벽 아래로 흘렀다. 보조기는 앞발을 살짝 들어 산 밖으로 빠져나갔다.

 

로제타

네 덕분이야. 우리가 벗어날 수 있었던 건.

 

보조기는 로제타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로제타

네 덕분...만은 아니라고?

우리 둘이.... 함께?

 

보조기가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자 로제타는 그의 목에 손을 얹었다. 보조기는 예전처럼 격렬하게 저항하지 않았다.

 

로제타

그렇구나.....

----그런 거구나.

 

----지킨다는 것은 일방적인 게 아니라. 양쪽에서 서로 돕는 거였어.

 

----모든 도움을 거절하고 단독으로 수호 깃발을 드는 것이 아니었어.

 

----서로의 생각을 알고 받아들이는 거야.

 

----서로 뒤에서 도움을 받고, 바람을 막아주고, 비를 막아주고, 서로의 오늘을 지켜준다.

 

----수호자도, 지켜져야 한다.

 

로제타

네가 없었거나, 내가 없었으면, 아까 천재지변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거야.

우리 둘의 협력 덕에 지금처럼 동료가 사라지지 않은 상황이 됐어.....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고,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로제타

과거의 난... 생각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남의 도움을 받는 것을 거부해 왔어.

고마워. 끝까지 버텨줘서. 내가 이것을 깨닫게 해줘서.

 

보조기

히힝.

 

눈보라가 잦아들자 로제타는 보조기의 머리를 만지고, 야영지로 천천히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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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음 내용은 상서랑 로제타가 폭풍 야스하는 내용일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