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뢰

'배에서 내려 북쪽으로 가면 대어가 있다.'


포뢰

북쪽에 있으면 위는 북쪽, 아래는 왼쪽은 서쪽, 오른쪽은 동쪽, 음, 위로 가야지.



출항 후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 포뢰는 배의 윤곽을 기억하지 못한 채 목적지에 도착했다.


포뢰는 배에서 내린 뒤 북쪽으로 가니, 그곳의 경치는 전구가 말한 것과 전혀 달랐다.


산이라기엔 계곡의 활기가 없고 바다라기엔 바다의 물결은 없다.


길가에 있는 산봉우리와 바다는 함구한 채 포뢰의 등에 매단 검과 주전자가 부딪치며 나는 낭랑한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포뢰

조용하네.


포뢰

이 길도 별 어려움 없이 어젯밤 꿈과 거의 똑같을 정도로 잘 풀렸어...




포뢰는 고개를 저으며 악몽을 떨쳐내려고 손을 들어 이마를 가로막고 해안선 끝을 바라본다.



포뢰

아니야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일단 해봐야겠어.


포뢰

대어선생님~ 어디있어요~


포뢰

대어선생님~


포뢰

설마...



축 처진 포뢰의 얼굴에 물 몇 방울이 튀어 오르자 그녀는 급히 고개를 들었는데, 앞에 어느새 물기둥이 보였다.


네온사인의 색채가 물기둥 주변에 보일 듯 말 듯했다. 포뢰는 얼굴의 물방울을 닦은 뒤 자욱한 구름 사이로 마침내 물기둥의 근원을 알아차렸는데, 그곳에는 파란 고래 한 마리가 나타났다.




???

안녕, 무슨 일로 찾았니?


포뢰

!!!


포뢰

대어선생님이십니까!


대어

응, 나야.


포뢰

그럼 눈...


대어

미안하지만 안된다.


포뢰

아, 근데 아직 뭐 하는 건지 얘기 안 했어요.


대어

극동지방에 와서 나를 찾는 사람들의 목적은 기본적으로 내 눈물을 찾기 위한 것이었고, 수천 년 동안은 늘 그랬다.


대어

눈물 같은 걸 남에게 주는 것 따위 개의치 않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걸핏하면 펑펑 울고 싶은 나이가 지나 100년 가까이 눈물을 흘린 적이 없다.


포뢰

아니, 그럼 애초에 전구씨가 가지고 간 건 뭐에요?


대어

그 근육이 건장한 남자가 말이냐, 그가 가져간 것은 내가 젊었을 때 보관했던 눈물이었어.


대어

몇 년 전, 마지막 방울에 저장된 눈물을 보내면서 나도 과거의 그 울보와 '작별을 고했다'.


포뢰

'작별을 고했다'?


대어

그래, 울고 싶으면 울고, 떠들면 떠드는 건 아이의 특권이다.


대어

눈물이라는 연약한 것은 어른이 된 나에게 필요하지 않아.


대어

나는 의기가 왕성하고 감정이 충만했던 어린 시절, 청년기와 작별했다.


대어

그러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라는 간단한 생리 동작조차 이룰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어

내가 도와주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울지를 못해.


포뢰

왜 이렇게 됐을까요...


대어

네가 이렇게 물어본다는 것은 지금의 네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대어

너는 아직 열정이 있기 때문에, 아마도 계속 그랬을 거야.


대어

생각한대로 행동하고, 화난대로 곧이 말하기. 


대어

이런 벅찬 감정이 있으면 울고 싶으면 울게 마련이다.


대어

하지만 메마른 내 마음은, 네가 지금 날 때려도 울 수가 없어.


대어

이를 악물고 묵묵히 견뎌낼 뿐이다.


대어

격정 끝에 남는 것은 무력감뿐이기 때문이다.


포뢰

뭐가 무력하고 메말라요? 저는 잘 몰라요.


포뢰

하지만 제가 느끼기에는 대어선생님은 울지 못하는 게 아니라 울지 말아야 하는 것 같네요.


대어

느낌? 그런건 허무맹랑한 것들이지.


포뢰

우......느낌이 꼭 맞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제 직관을 믿고 싶어요!




포뢰

대어 선생의 눈에서 강한 기(氣)를 느꼈기 때문이에요.


포뢰

제가 전에 만났던 모든 어른들처럼 어떤 곤경에 처해도 울면 안 되겠죠. 뒤로는 가족, 친구, 애인 등등에 의지해야 하니까...


대어

사람들이란 진정한 공감과 역지사지를 하지 못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주관적인 느낌일 뿐이다.


포뢰

눈은 마음의 창이고, 사람들의 정서도 눈을 통해 전달된다고 엄마는 말했어요.


포뢰

아무리 입으로 부정해도 눈빛은 속이지 않아요.


포뢰

그래서 여러분들의 눈을 보면 아는데… 다들 각자의 삶의 궤적에서 전진하고, 영원히 교차하지 않는 평행선에서 성장하고 있어요.


포뢰

결국 모두가 아는 결승 선상에서... 더 이상 상처 입지 않고 다른 여러 이유 때문에, 눈물과 연약한 나 자신마저 버리고... 흑흑...


대어

나한테 눈물 달라고 했잖아, 왜 자기가 먼저 울어.


포뢰

왜냐면, 왜냐면....저도 잘 모르겠어요, 말이 좀 두서 없을지도 몰라요.


포뢰

하지만 너무 슬퍼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어요.


대어

어휴… 너도 방금 평행선으로 설명했는데, 그런 비유도 틀리지 않아. 다들 각자의 평행선에서 살아가면서 이따금씩 소통으로 서로를 연결하지.


대어

그러나 이 일방적인 연락을 상대방이 실제로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 영원히 알 수 없다.


대어

상대방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답변하는지, 얼마나 분개하는지, 그들이 얼마나 자신을 잘 알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대어

이럴 때 감정이 너무 많이 들어가면 오히려 상처만 입을 수 있다.


대어

그런고로, 왜 마음을 닫지 않고 감정을 얼어붙이지 않는 건가?


대어

나도 막무가내일 것 같지만 결국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처신했다.


대어

이상, 온기, 사랑... 고려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눈물을 머뭇거릴 시간과 정력이 전혀 없다.


대어

그래서 내가 이렇게 하는 게 이성적이고 올바르게…. 취하고 버린 것이지.




포뢰

네…다들 이런 문제들을 하나씩 하나씩 쌓아 마음의 멍에를 씌우고…


포뢰

멍에에 묶인 채 터벅터벅 걸어가는 그 모습은 상처투성이가 돼도 눈물을 흘릴 수 없고, 그 정도 아픈게 뭐냐고 쓴웃음을 지으며 눈물을 닦고 씩씩한 모습으로 대중 앞에 나타나는 모습이죠.


포뢰

이러니까... 더욱 안타깝지 않아요?



대어는 앞에서 우는 포뢰를 보며 잠시 쩔쩔맸다.



대어

아니면... 내가 눈물 좀 줄 수 있는지 한번 볼까?


포뢰

죄송합니다...


포뢰

더 이상 대어 선생님이 저에게 눈물을 주도록 강요하지 않을 게요.



포뢰는 손을 뻗어 눈물을 닦고, 몇 번 숨을 몰아쉬고 나서야 마음을 추스렸다.




포뢰

대어 선생님이든 다른 어른이든 성장하는 고민과 삶의 스트레스는 이미 끊임없이 사람들을 괴롭히고 억누르고 있어요.


포뢰

그러니 제가 고집스럽게 요구한다고 해서 억지로 강요할 순 없겠죠.


포뢰

세상이 이토록 넓으니 대어 선생님의 눈물 말고도 선생을 구할 다른 수단이 있을 거에요.


포뢰

파니니를 치료할 두 번째 대안은 이 세상에 없다고 믿지 않아요!



대어는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아이들을 봤고, 포뢰도 그 아이들처럼 일 초 뒤에 울지 웃을지 모를 정도로 정서가 풍부했었다.



포뢰

대어 선생님, 고생하셨습니다.


포뢰

고맙습니다.



지금처럼, 당장 바로 전만 해도 비를 부르는 배꽃마냥 울었는데 지금은 벌써 웃는다.



대어

....


대어

너도 억지로 하는 거 아니니?


대어

눈이 퉁퉁 부은데도 이렇게 웃으면서 격려해 주는구나.


대어

뭔 고생이래 참, 이게 뭐가 힘들다고...


대어

분명히 많은 사람들이 내게 그런 식으로 말했었다.


대어

그들이 아첨을 하는지, 아니면 비꼬고 중상하는 것인지 나로서도 잘 몰랐다.


대어

근데 너 고생했다는 게 도대체 무슨 뜻이냐.


대어

분명 단순한데... 왜 그렇게 다르게 들리는지.



불순물이 섞이지 않을 정도로 단순해서인지 두 글자가 무겁게 들린다.



포뢰

대어선생님은 여느 사람처럼 눈빛으로 절규했어요.


포뢰

마음속에서 고독과 쓸쓸함을 외쳤다구요.


포뢰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힘들다는 말을 하고 싶어지는데...




대어

아마 그럴지도.


대어

같이 놀았던 판다 형님이 어른이 된 뒤 연락이 뜸해진 것도 부탁할 일이 있어서였다. 그를 위한 만병통치약으로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를 도와 싼 가격에 사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대어

언제나 나에게 먹지도 못하는 죽순 더미를 보내준다고! 내가 그에게 눈물을 줘서 고맙다고 하면서 듣기 좋은 소리를 지껄이는데... 죽순에 '악성 재고'라는 딱지가 붙어 있는 걸 분명히 봤다.


대어

매일매일 똑같은 생활을 반복하지만, 어쩌다 누군가 찾아오게 되면 빨리 도망갈 생각만 하고 혼자 가만히 있는다.


대어

주변에 물고기 친구가 많이 붙어 있는 것처럼 보여도 상대방이 자신의 마음을 건드리고자 하면 이내 그들과의 사이가 멀어진다.


대어

이런 삶은…. 소리 없는 연옥 같다.



대어는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생활 속의 작은 기억을 더듬는다.



대어

연옥은 신이 없는 곳...


대어

신이 하늘에서 내려와 누군가를 연옥에서 구하는 것은 결국 아름다운 동화일 뿐이다.


대어

어쩌면...


대어

어?




머리 위로 전해지는 촉감에 대어의 추억이 끊어져 눈을 뜬 그는 앞에 있는 포뢰를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그렇게 미소 지으며 부드럽게 자신을 바라보았고, 손으로 자신의 머리 위를 끊임없이 스쳤다.


존재하지 않는 구원을 기대하기보다 무엇이든 옆에 있어주는 경청자가 더 큰 힘이 될지도 모른다.


따뜻한 기류가 포뢰의 손아귀에서 전해져 오자, 이 따스함이 온몸을 감돌더니, 마침내 큰 물고기의 가슴에 부딛혔다.


그 순수한 눈빛, 그 따뜻한 감촉이 대어의 먼지를 뒤집어쓴 기억을 되살리는데, 지난번에도 그런 대접을 받은 것은 어린 시절 상처받은 자신을 어루만져 주었던 어머니였다.



포뢰

이미 아주 잘 하셨어요.



마치 몇 년 전으로 돌아간 듯 대어는 세월의 갑옷을 벗고 연약한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눈앞의 사람은 아무 생각 없이 아무 걱정 없이 자신에게 온 마음을 쏟고, 아무런 계산과 계략 없이 자신의 슬픔을 털어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포뢰

요 몇 년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한 줄기 햇볕이 내면의 그늘을 뚫고 마음이라는 방에 미세한 빛 반점을 뿌리면서 공간의 차가움은 녹지 못하지만 오랜만에 따스함을 선사했다.



대어

고마워...



눈물 한 방울이 큰 물고기의 눈에서 미끄러져 떨어졌다.


지금 이 순간 흡사 그 때 그 시절처럼, 대어는 작별했던 과거와 짧은 재회를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