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

'...등촉과 징북, 꽃잎이 바람에 휘날리네...'


가사

'...가인을 어디서 찾으랴, 지척이 하늘 끝이로구나...'



구룡야항선에는 매매와 공연 관람을 오가는 사람들로 혼잡할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시끌벅적하다.


구룡야항선은 아딜레 상업연맹에 의해 일시적으로 인수된 이후, 그 협조로 선상 여과장치를 갖추게 되면서 선박의 상업활동은 부흥했으며, 다만 불법거래에 대해서는 금지 명령을 내렸다.


이 번영하고 아름다운 분위기가 말세에서 더욱 진기하게 보인다.


한편, 그레이 레이븐 소대는 어떤 임무를 끝마친 뒤 다시 야항선에 올랐다.



남성 악사

괘씸하다... 내 음악이... 이렇게까지 폄하되다니... 우으으으...



한차례의 야유가 울리자, 한 남자가 고개를 떨구고 극장에서 내려왔다.



포뢰

아하하... 저, 정말 유감이에요!


지휘관

저건 포뢰잖아.



소피아

무대 위에서 어떤 여성 구조체가 '반려자'를 찾고 있는데, 사례금이 매우 많다고 해서 포뢰도 사회자로 스카우트 됐어.


지휘관

소피아 너 왜 여기 있어?


소피아

휴가 기간 동안 포뢰가 나를 초대했어... 그나마 돈은 좀 벌었지.


지휘관

너 방금 반려자라고 했어...? 그런데 저건 구조체인데...


소피아

그래서 신기해. 다들 구경만 하고 있어.


포뢰

그럼 다음 연인 나와보세요~!



거액의 상금에도 아무도 호응하지 않았는데…. 소피아가 손을 번쩍 들었다.



지휘관

소피아, '반려자'의 뜻이 뭔지 알고는 있는거야?


소피아

몰라. 하지만 돈 많이 준다잖아.


포뢰

아... 상관없어요. 사람을 구하지 못하면 내가 돈을 떼이게 될테니까... 어서 올라오세요!


지휘관

이게 정말로 괜찮은거냐고!



여성 구조체가 의자에서 일어나자 단상에 있던 관객들이 그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다.



여성 구조체

....


소피아

비즈니스 지식이든, 기계 조립이든, 천문계산이든, 총격전이든...


소피아

소피아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으니 시험해 봐도 돼.



여성 구조체는 소피아를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천천히 앉았다.



여성 구조체

너무 작아. 탈락.


소피아

끄... 소피아... 졌어...



소피아는 조금 어리둥절하게 무대에서 내려왔는데, 그녀는 여전히 조금 충격을 받은 것 같다.



지휘관

소피아, 너무 개의치 마...



이후 계속 많은 사람들이 무대에 올랐지만 체면을 차리면서 물러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수모를 겪으면서 아래 사람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방금까지 노래를 부르던 남성 구조체 악사가 무대에 뛰어들어 욕설을 퍼부었다.



남성 악사

너라는 여자는 전혀 반려자를 찾을 생각이 없잖아! 그냥 모두를 조롱하러 온거지!


여성 구조체

제가 당신들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습니다. 여러분의 실패는 단지 자신의 약소함에서 비롯된 것일 뿐입니다. 그리고 설령 진짜로 거짓말이라고 한들, 어쩌실 셈입니까?


남성 악사

더 이상은 못참아! 내가 모두를 대신해서 너를 혼내 주겠다!



무대 아래서 성난 사람들의 응원 속에 남성 악사가 여성 구조체를 향해 돌진했다.


여성 구조체는 올라가 막으려는 포뢰를 누르고 직접 맞섰다.



남성 악사

크음....



그 여성 구조체의 움직임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남자 악사는 이미 공중으로 차인 뒤였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녀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고, 남자 악사는 화려한 발길질에 눌려 숨 돌릴 틈도 없었다.



소피아

저 사람 이대로 가다가는 죽을거야.


지휘관

...


소피아

잠깐, 어디 가는거야?



맹렬한 공격에 남자악사는 이미 상처투성이가 된지 오래였고, 서 있기 조차 버거워보였다.



지휘관

그만 둬요, 이제 충분하잖아요!



여성 구조체

하아... 당신입니까. 이제는 모르는 구조체까지 보호할 셈입니까?


지휘관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여성 구조체

그럼 좋아요, 이 폐급이 저를 이기도록 당신이 지휘할 수 있다면, 당신이 저의 '반려자'가 되는 걸로 여기죠.


지휘관

저는 당신의 반려자가 되고 싶지도 않아요...


여성 구조체

그럼 어서 물러나세요. 이 자리는 저의 '반려자'를 고르는 무대이지 당신이 올 장소가 아니에요.


남성 악사

당신은... 그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


남성 악사

모두 다 이 여자에게 경멸당하는게 너무나 괘씸해 죽겠습니다... 저기, 지휘관님! 제발 저 좀 도와주세요. 반드시 저 여자를 물리치고 모두의 화풀이를 해야 합니다!


지휘관

좋아요, 약속할게요.



당장 그 악사와 의식을 연결할 수 없었지만, 상대의 약점을 파악한다면 약자가 강자를 이기지 못할 법도 없다.



소피아

자, 내가 너를 위해 잠시 수리를 했어. 하지만...


남성 악사

걱정하지 마! 이 정도면 돼, 이번에는 내가 지지 않을 거야.


소피아

지휘관은 방금 저 사람 귀에 대고 뭐라고 말했어? 어째서 갑자기 자신감을 되찾은거야?


지휘관

그건 비밀이야...


여성 구조체

패배할 운명인 줄 알면서도 물러설 줄 모르는 우둔함이란…



여성 구조체는 다시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다가왔지만 이번엔 허탕을 쳤다.



지휘관

발목을 노리세요!



남성 악사는 그 의미를 알아차리고, 큰 폭의 상단 발차기로 인해 노출된 발목을 겨냥해 하단차기를 시전했다.



여성 구조체

하...


지휘관

측면을 방어하세요!



남성 악사는 몸을 옆으로 돌려 오른팔로 발차기를 방어했고, 여성 구조체 역시 발로 찬 반작용으로 인해 뒤로 밀려나가 간격이 벌어졌다.



남성 악사

후우...



방어에 성공했지만 이 발차기에 남성 악사의 긴급한 정비만 거친 팔뚝에서 불꽃이 튀었다.



지휘관

(역시나 이 동작은...)


여성 구조체

흥, 쓰레기는 역시 쓰레기....



하지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여성 구조체가 무릎을 꿇었고, 그제서야 자신이 발로 찼던 다리가 심하게 손상된 것을 알게 됐다.



여성 구조체

아까 차면서 반격을 당한건가... 역시 당신답군요...


여성 구조체

그러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휘관

아니오, 이미 끝났습니다. 우리의 패배를 인정합니다.


남성 악사

왜! 아직 싸울 수 있어요!


소피아

더 이상 싸우면 손상이 한계치를 넘어가, 매우 번거로워져.


여성 구조체

이 자식의 몸을 생각해서 패배를 인정했다니... 정말 터무니없는 일이군요!


여성 구조체

이런 싸움에선 미적 감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의 '반려자'로서 모든 것을 저를 위해 쓰겠다는 각오가 필요합니다.


지휘관

안됩니다.


여성 구조체

아직도 이렇게 순진할 줄이야… 하지만 단순히 아까의 싸움으로만 말하자면 진 쪽은 바로 접니다.



여성 구조체가 손가락을 튕기자 그녀가 앉아 있던 의자 뒤편 큰 상자가 깨졌고 그 안에서 평생동안 보기 드문 금전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포뢰

추... 축하드립니다 【지휘관 이름】! 여기 있는 모든 재화를... 아니, 나에게 주기로 한건 빼야 돼...



모두의 시선이 쏠린 틈을 타 여성 구조체는 소리 없이 사라졌다.



포뢰

나, 난 여기서 5%만큼 가져갈 수 있는데... 5%가 도대체 얼마지!!?


지휘관

나머지는 부상자에게 줘.


포뢰

잠깐! 어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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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급히 무대 근처를 빠져나가자 과연 그 여성 구조체가 선창에 기대어 기다리고 있었다.



여성 구조체

역시 뒤쫓았군요...


지휘관

당신은 도대체 누구죠?


여성 구조체

하, 뻔히 알면서, 전투 중에 이미 제 신분을 알아차리지 않았습니까?


여성 구조체

그런데 저의 스타일을 용케도 정확하게 분석하셨더군요.



지휘관

(잊을 리가 없잖아요) ← 선택

(어쩌면 잊지 못하는 것일 수도?)


여성 구조체

만약 계속 끝까지 싸웠더라면, 이 몸도 아마 감당할 수 없었을겁니다. 제가 확실히 졌을 뿐만 아니라, 이 상처 입은 초라한 모습은 정말 추하기 그지없을 뿐입니다.



여성 구조체는 손상된 자신의 다리를 보며 상당한 불만을 갖고 있었지만, 지휘관의 목에 '칼'을 기반으로 한 원격 연결장치를 착용한 것을 보고 뭔가 생각한 것 같았다.



여성 구조체

당신은 아직도 이 물건을 가지고 있다니, 잘됐군요. 그 '칼' 좀 빌리겠습니다.



목이 따끔거리고 시야가 한순간에 초점을 잃었지만 이내 정상으로 돌아왔고, 눈을 다시 뜨자 여성 구조체의 모습이 바뀌었다.



당신의 시각 인식에 조금 영향을 미칠겁니다. 지금 당신의 눈에 보이는 것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지휘관

곡... 역시 당신이었군요.


같은 기술을 기반으로 했으니, 그 허점 또한 마찬가지죠. 저 또한 '칼'로 이 구조체를 통제하고 있습니다.


지휘관

도대체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 겁니까!



의외로 곡은 곤혹스러움을 드러냈다.



저 역시 '반려자'를 찾는 게 무슨 소용인지 모르겠지만, 제 가족 가훈에는 일정 연령이 되면 평생을 함께 할 '반려자'를 찾아야 한다는 규칙이 있습니다.


구조체가 된 저에겐 나이 개념은 없지만 가훈을 저버릴 수는 없습니다.


왕도를 걷는 것은 곧 고독을 의미하죠…. 그리고 전 다른 사람이 필요 없을 만큼 강했었구요.


다만 전통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그것 뿐입니다.


지휘관

당신도 '반려자'의 뜻을 모르나 보네요…



곡은 흥 하며 몸을 돌려 앞으로 나아갔다.



원래는 단지 찰나의 흥기일 뿐이었거늘, 잠깐의 모욕을 줄 생각이었는데, 뜻밖에도 당신이 이겨버릴 줄이야...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 나를 따라오세요. 전혀 생각치도 못했지만, 당신은 이제 나의 '반려자'입니다. 당신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