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새하얀 모래 사장과 약간 짭짤한 내음의 바닷바람이 야경을 이룬다.


모래 위에서 몸을 일으키자 입에서 모래가 조금 들어간 것 같았다.


지휘관

...퉤.


여기는... 영화 샛별 리조트다.


지난번 들렀을 때와는 달리 모래사장 쪽에서 바라보니 유원지 전체가 환히 빛나고, 황금시대를 풍미한 흥겨운 아코디언 댄스곡이 희미하게 들려온다.


유원지 쪽으로 걸어가니 샛별의 서비스용 로봇들과 자주 마주쳤다.


케이시?

여기보세요 여기보세요! 손님 노래 듣고 싶으세요?


마티니?

손님, 마티니 한 잔 드시겠습니까?


로봇팔 밑바닥의 도르래를 돌리며 쏜살같이 앞으로 미끄러져 내려온 서빙용 로봇은 두 로봇팔로 접시를 들고 나머지 두 로봇팔로 우아하게 이쪽을 향해 신사다운 절을 했다.


지휘관

(아니요.)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다.)


마티니?

아, 미성년자는 술 마시면 안 돼요.


앞에 있던 마티니는 기계음으로 단호하게 선언하고는 홱 돌아서며 '술 달라고 하는 손님 있어요?'라고 중얼거리면서 재빨리 미끄러졌고, 손에 들고 있던 '마티니'는 스스럼없이 자신의 몸을 내팽겨쳤다.


지휘관

(...)

(미성년?)


케이시?

손님! 손님 오셨다! 손님 오셨다! 손님이 또 한 분 오셨다!


지휘관

(또?)

(여기에 다른 사람이 또 있어?)


케이시?

손님, 따라오세요! 따라오세요!


앞에 있는 작은 체구의 로봇은 전력량 과잉으로 깡충깡충 뛰는 것처럼 보였다.


지휘관

(따라간다)



케이시?

영화 샛별의 최고의 히트 연극, 절찬 상영중입니다!


로봇에 이끌려 한 건물 앞에 이르자 입구에 아이스크림과 기념품을 파는 수박 아무가 서 있었다. 그 로봇들은 즐거운 소리를 내며 간식과 장난감을 허공에 끊임없이 건네고 있다.


케이시?

꼬마 친구, 이거 받으세요.


지휘관

됐어요... ← 선택

어, 고마워요.


거절하는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로봇은 다짜고짜 컬러 천으로 포장된 선물을 자신의 품에 넣었다.


지휘관

...그래.


아무?

좋아! 좋아! 좋아!


앞에 있던 아무는 선물을 받은 뒤 신나게 울부짖으며 먼 곳을 향해 굴러갔다.


지휘관

...



작은 로봇의 안내로 극장 같은 로비에 도착했다. 무대 꼭대기에는 크레파스로 '쇼메의 죽음'이라는 글씨가 삐뚤삐뚤하게 그려져 있었다.


지휘관

...이건 뭐 컬트영화인가.


어두컴컴한 객석에서 루나를 찾을 생각이었지만 모든 로봇들이 이쪽을 열정적으로 응시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눈은 비정상적인 섬광을 뿜고 있었으며 어둠 속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지휘관

...일단 경거망동하지 말자.



샥스빌?

좋은 연극이 상연된다! 좋은 연극이 상연된다!


무대 한가운데에 스포트라이트가 켜지고 어느새 무대에 나타난 샥스빌은 눈부시게 빛을 내며 비명을 질렀다.


샥스빌?

좋은 연극이 상연된다! 좋은 연극이 상연된다!


머리가 벗겨지기 시작하자 소명의 얼굴이 드러나며 달갑지 않게 눈을 부릅떴다.



쇼메?

루나, 정말로 자신이 모든 것을 장악했다고 생각했나?


쇼메?

아무도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거라고 생각했어?


쇼메?

실망했나? 나에게서 진실을 깨닫기 전에도 승격자의 신분을 떼어내는 망상 해 본 적 있지 않아?


쇼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은 소감은 어때? 네가 다른 사람에게 가한 고통에 비하면, 이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쇼메?

너는 이 생애에도, 다음 생애에도, 그 다음 생애에도, 영원히, 행복 할 수 없다!


쇼메?

너는 천 배 만 배의 고통을 갚아야 해! 이건 네가 할 일이다! 네 언니도 네가 빚을 갚는 희생양이 될 뿐이야...


루나

...입 다물어!


어둠 속에서 루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격노하였으나, 주위의 로봇들이 점점 더 많아져서 눈빛들이 모여 마치 횃불처럼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루나

왜...다 나를 이렇게 쳐다보는데...


루나

아니…이거 놔!


지휘관

루나!


극장은 불과 몇 분 만에 어디서 왔는지 모를 기계체로 가득 찬 듯 했다. 밀치고 끌어당기는 와중에 자신 또한 자리를 떴다. 손을 뻗으면 끝없는 강철만 만져질 뿐 어둠 속에서는 상대방을 볼 수 없다.


지휘관

그래... 무대로 올라가자.


어둠 속을 더듬으며 최선을 다해 무대로 다가갔다. 두꺼운 커튼을 열자 순식간에 무대 전체의 스포트라이트가 자신에게 꽂혔다.


지휘관

(여길 봐!)

(그녀를 놔줘!)


동시에 기계들의 주의도 이쪽으로 끌려 불나방처럼 모여들었다.


광원을 빌려 바라보니 출구가 가까이 있었고, 기계체들이 흩어진 곳에 루나가 있었다.



루나

...


그녀도 여기의 시선을 의식해 이쪽을 주시했다. 그녀는 매우 망연해 보였다. 촘촘한 기계체로 채워진 객석을 넘어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고, 그녀의 시선은 마치 고정되어 있는 것 같았다.


지휘관

가만히 서 있어.


그쪽을 향해 입짓을 하며 상대가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자신이 말한 대로 그대로 서 있었다.


이어 무대 위쪽에 매달려 있는 풍선이 가득 걸려있는 끈, 리본과 같은 장식을 겨냥했다.


선물용으로 포장된 헝겊을 쭉 빼고 힘차게 위로 뛰어올라 끈을 걸어 두 번 힘껏 잡아당긴 뒤 견고함을 확인하고 두 발의 페달력을 빌려 아래로 내려갔다.


맞은편 벽이 가까워지는 것을 보고 때를 맞춰 손을 떼고 착지를 준비했다. 굉음과 함께 구조체의 발끝에 나동그라졌다.



루나

...


지휘관

(난 괜찮아!)

(이건 예상하지 못했는데.)


기계체들은 탈출이 진행 중인 것을 재빨리 알아차렸다. 미처 말할 겨를도 없이 몸을 일으켜 루나의 손을 잡아당기며 밖으로 달려나갔다.


...다시 한 번.



루나

어디로 갈 거야?


이전과 달리 루나는 헤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놀이공원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것처럼 물었다.



지휘관

그들이 올 수 없는 곳으로. ← 선택

가장 높은 곳으로!


루나

...그게 어디야?


지휘관

가장 높은 곳!


루나

가장 높은 곳...?


극장을 빠져나온 두 사람은 등불과 음악, 떼지어 있는 기계체를 뒤로 했고 그저 귓가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소리만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힘만 들이면 부러질 것 같은 루나의 가녀린 팔목에 무서운 에너지가 깃들어 있다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상대방을 잡아당기는 느낌은 마치 연날리기를 하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이리하여 놀이공원의 가장 높은 건물로 향하는 좁은 길을 따라 달려가서... '대관람차'에 도착했다.


지휘관

...


루나

가장 높은 곳... 바로 여기야?


지휘관

(여기가 틀림없는데...)

(하지만...)


눈 앞의 대관람차는 보통의 대관람차와 같이 둥근 유리방이 동그란 축에 매달린 형태가 아니었다. 유리방이어야 할 곳들은 모두 둘 씩 둘러붙은 목마로 바뀌었다.


오렌지색 따뜻한 빛을 발하는 회전목마는 관람차의 원형 축에 매달려 자전하면서 관람차를 따라 공중으로 올라갔다. 이것은 마치... 회전목마와 관람차를 합친 목마관람차였다.


지휘관

(언제라도 떨어질 것 같지만...)

(...별 상관은 없겠지.)


목마 한 마리가 앞을 지나갈 때 바로 손을 뻗어 목마를 낚아채고는 훌쩍 뛰어올라 고개를 돌려 루나를 바라보았다.


지휘관

(어서 타!)

(손을 내밀다)



루나

...


루나의 뒤로 무리를 지어 있던 기계체가 무서운 휙휙 소리를 내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세상은 둘로 나뉘어 한쪽에는 공포의 악몽이, 다른 한쪽에는 환상적인 놀이공원이 펼쳐져 있는 가운데 루나가 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루나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이쪽을 향해 손을 내밀었고, 그러자 세상이 뒤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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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루나가 두 손으로 목마의 머리를 짚고 내려다보니 기계체들이 바닥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지휘관

휴...


순백의 소녀가 돌아서서 이쪽을 바라본다. 그녀의 표정은 짐작하기 어려워 보인다.


따뜻한 색의 불꽃이 비치는 빛이 그녀의 옆면에 떨어졌고, 옥외의 회전목마 위로 거센 바람이 느껴졌다.


이 기묘한 관람차는 온 경치를 동화 속처럼 몽환적이고 비현실적으로 만든다.


루나는 바로 맞은편에 앉아있었다. 순백의 양갈래 끝이 바람에 떠돌고 부드러운 머릿결이 그녀의 눈을 스쳐가는 걸 자세히 보니 속눈썹도 깨끗한 하얀색이었다.


속눈썹 아래 그녀의 눈동자는 연한 금빛으로 희로함도, 파란도 없지만 마치 늦봄처럼 따뜻했고, 어느 촉촉한 구름에 싸인 아침처럼 휑하고 고요했다.


지휘관

...(좀 웃고 싶은데)

(피식.)



루나

...왜 웃어?


지휘관

그냥 좀 갑작스러워서.


루나

뭐가 갑자기야?


지휘관

지금 일어난 일.


지휘관

카무이가 하는 모 게임에서나 있을 법한 줄거리잖아...


루나

난 이게 뭐가 웃긴지 모르겠어.


지휘관

이 관람차 말이야...


루나

...?


루나는 분명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지휘관

(관람차는 이렇게 생기지 않았어.)

(네가 지금 앉아 있는 건 회전목마잖아.)


지휘관

일반적으로 회전목마와 관람차는 서로 다른 거야.


루나

그랬어...?


루나의 얼굴에는 의심스러운 듯 붉은 빛이 떠올랐다.


지휘관

...


...충만했던 분위기가 마치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갑자기 심상치 않아졌다.


루나

난 한 번도 관람차를 타본 적이 없으니까 실수하는게 정상인데.



루나

내 기억엔... 언니와 놀이공원에 숨어 있던 적이 있었거든.


루나

난 놀이공원의 시설들을 꼭 체험해보고 싶어서 언니가 힘겹게 놀이공원의 전기를 가동시켜줬었어.


루나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가동을 재개한 놀이공원에 감염체가 몰려들어왔었어.


루나

과연 그 놀이공원의 관람차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이미 기억이 잘 나지 않아.



지휘관

(이것도 괜찮은데!)

(나도 이런 관람차는 처음 타봐.)


지휘관

여기가 아니면...


지휘관

아마 평생 이런 특별한 관람차는 탈 수 없었을 거야.


루나

...


루나

너는 어떤 상황에서든 웃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야?


지휘관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인지는 따지지.)

(고생 속에 즐거움을 찾는 게 내 비결 중 하나야.)


루나

만약 네가 방금 나를 막지 않았더라도 나는 그 기계체들을 죽일 수 있었어. 그것들은 그다지 강하지 않았을 거야.


지휘관

(이제 걔네들한테도 벗어났잖아?)

(여기 놀이공원 꽤 좋던데, 그냥 내버려 두고 여기서 있자.)


루나

...왜 이런 일을 하는거야?


...왜냐하면 '깨어난' 후의 너는 의식의 바다 깊은 곳에서 일어난 이 모든 일을 기억하지 못할 테니까.


루나

왜 날 돕는거야?


...왜냐하면 너의 감정이 안정되어야만 스스로 여기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일까?


루나

이제, 나에게 너의 목적이 뭔지 이야기 해 줘.


지휘관

혹시 틴들현상(Tyndall phenomenon, 틴들효과)이 뭔지 알고 있니?


루나

...물론이야.


루나

빛이 콜로이드(교질)를 통과할 때, 입사광의 수직 방향에서 콜로이드 안에 나타나는 빛의 '통로'를 관찰할 수 있는 현상이잖아.*


지휘관

막막함 속에는 반드시 통로가 있다고도 볼 수 있어.


루나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 거야?



지휘관

아마도 넌 이 꿈에서의 틴들효과일거야.


루나

만일 효과가 없다면?


지휘관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버틸 수만 있다면 구원까지 기다릴 수 있을 거야.)


루나

너는... 도대체 어디서 오는 자신감이지?


루나

나를 함부로 믿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것까지 믿어버리는거야?


지휘관

(나에게 맡겨 줬음 좋겠어.)

(이런 처지에서 자신감을 갖는 게 내 역할이지.)


루나

...


지휘관

참, 이거 줄게.


루나

뭐야?



품에서 꺼낸 선물은 포장용 헝겊이 없어져 그 정체가 바로 드러났는데…. 미니 무드등이다.


루나

램프...?


지휘관

방금 전 입구에서 아무가 준 거야.


루나

언니 이외의 사람에게서 선물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야.


지휘관

(그냥 버리고 싶지 않아서.)

(그냥 너랑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루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손을 내밀었다. 이 모든 것은 그녀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루나의 손끝이 무드등과 닿을 즈음,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지휘관

(...경치에 안어울리게 이러지 좀 마.)

(...언제쯤 끝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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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들 효과의 예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