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호

대장에게 보고할게, 아무 이상없어.


21호는 나무에 다리를 걸어둔 채 매달려있었고. 얼굴에는 나뭇잎 몇 개를 붙이고 있었다.


베라

나무에 매달릴 필요는 없어. 녹티, 도대체 뭘 가르친 거야?


녹티

대장, 그건 고정관념이라고.


베라

내려와서, 다시 말해보지그래!


빨간 머리의 남성은 먹잇감을 발견한 야생동물처럼 눈에서 빛이 나며, 코를 들썩이며 나뭇가지에 웅크리고 있었다.


녹티

내려갈게.


이 좁은 지역을 지나, 멀지 않은 곳, 짙은 안갯속에 서 있는 하얀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녹티는 재빨리 나무에서 뛰어내렸고, 그 후 21호도 두 손과 발을 땅에 대고 녹티 옆에 착지했다.



베라

저 앞에....


갑자기,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흐려졌고, 앞에 있는 풍경이 어두워지면서 시야가 일그러졌다.


지휘관

- 무슨---


한꺼번에 청력을 빼앗기고, 다른 감각들도 상실했다.



시야에 보이는 건물은 땅 위에 솟아 일정 높이에 평평하게 돼있었고, 땅속 깊이 파묻힌 씨앗은, 

산뜻하게 싹을 틔우고 기형적으로 자랐고, 지면을 깨고 하늘을 뒤덮는 굵은 나무로 자라났다.


이곳에서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익숙함이 나를 사로잡았다.


이상한 목소리?

헤헤... 헤헤헤...


감미로움이 가득한 캐노피 안, 낯설고 먼 곳에서 키득거림이 재잘거리면서, 나뭇잎과 나뭇가지 사이를 빠르게 지나갔다.



그러나 이 환각은 그 순간에만 존재했으며, 눈앞의 장면은 우울하고 허무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고, 점차 청력이 회복되었다.


지휘관

-방금 그건....


베라

무슨 일인데?


지휘관

-봤어?!


베라

도대체 뭘 본 거야?


보통은, 지휘관과 구조체 사이에서 동기화된 연결은, 구조체와 지휘관의 인식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베라는 어떤 식으로도 영향을 받지 않은 듯 보였다.



지난번 루나와의 전투 이후 간헐적으로, 의식의 오염으로 인한 기억 재생 증상이 나타났다.

하지만 이러한 시각적 혼란은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데자뷔 같은 느낌은... 뭐였지?


그리고... 지금의 감정과 기억 재생 증상이 비슷해 보이지만, 완전히 똑같지는 않았다.

나는 그 순간에 강한 데자뷔에 의해 충격을 받았다. 마치 전에 이곳에 와본 적이 있었던 것 같았고,

이곳의 다른 모습도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오염 증상이 악화되었던 걸까? 아니면 너무 긴장해서 환각이 보였던 걸까?


베라

무슨 문제있어? (플레이어)?


지휘관

-아니야...

-여기... 뭔가 좀 익숙한거 같아.... (선택)


베라

익숙하다고? ....데자뷔?


베라는 기억의 환각이라는 생리현상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마치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경험하지 못한 사물이나 장면들에 대한 기시감(데자뷔)이다.


지휘관

-나도.... 확신을 못하겠어.



녹티

대장, 난 이 마을이 엄청 사악하다고 생각하는데, 심지어 21호도 의심스러워하고 있고,

다들 이렇게 마음을 휘둘리고 있잖아? 난 정말....


녹티

난 지금 정말 흥분된다고! 어서, 나도 뭔가 사악한걸 보고 싶다고!


녹티는 사냥개처럼 눈을 반짝이며, 의기양양하게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베라

뭔가 잘못됐어. 마을 내 퍼니싱 농도는 정상 범위 안에 있지만, 감염체가 있을 가능성이 없지는 않아.

하지만 너무 순조로워... 너무 이상해.


녹티

대장... 쉬이잇.... 진짜, 진짜로 무슨 소리가 들려!


21호

킁, 킁...


21호

대장... 감염체야.



지휘관

-케로베루스 소대는 무슨 동물원이야?

-탐지기에는 신호가 안 잡히는데. (선택)


녹티

이게 바로 재능이라는 거지. 동물적인 예리함, 인간 시대부터 이어져 온 재능이야.


녹티는 과장된 자세로, 땅바닥에 누워 귀를 바짝 댔다.


녹티

잠자는 폭풍을 감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동물들은 아직 각성하지 않았어... 하지만 기계가 못하는, 지각을 예견할 순 있잖아.


지휘관

-녹티가 말하는걸 이해 못 하겠어.

-정말... 케로베루스 스타일이네. (선택)



베라

그게 바로, 우릴 효율적이게 만든거지. 지휘관, 우릴 따라잡으려면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할거야, 낙오자를 위해 멈추진 않을테니깐.


21호

온다.


21호가 손을 벌리고, 발을 뒤로 빼는 모습은, 마치 철창 밖으로 나가려는 야생 늑대 같은 자세였다.


동시에, 단말기에 비친 화면에는, 메뚜기떼가 이동하는 것처럼, 차츰 빽빽하게 불이 들어왔다.



베라

감염체 신호의 원인이 이 방향에서 나오고 있어.


베라

신호가.... 갑자기 사라졌어.


베라

쫓아가!



21호

도로가... 막혔어.


녹티

그냥 부숴버려!


베라

녹티, 큰 일을 만들지 마. 다른 길이 있을 거야.



멀지 않은 공중전화박스에서 벨이 울린다.



알 수 없는 목소리

돌아가.... 목표에 도달하는건.... 불가능하다


알 수 없는 목소리

이게.... 너에게... 전하는... 전부다...


21호

차량이 움직였어...


베라

칫, 누가 장난치는게 분명해.



21호

대장, 임무 좌표 근처에 도착했어.



녹티

병원 문이 잠겨있는데.


녹티

아마도 오래전부터 버려진거 같아.


녹티

아무도 없어?



녹티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저 유령 자동차, 끝이 없잖아?!



21호

21호, 청소 완료했어.


(롤게이)



21호 로봇과 닮은 구형의 감염체가 여기저기 흩어져, 이따금씩 경련을 일으키며, 마구잡이로 주삿바늘이 튀어나왔다.


정말로 승격자가 이곳에서 활동하고 있었다면, 이렇게 큰 소동을 일으킬 순 없을 것이었다.

이건 단순히 인간들이 만든 엉터리 덫처럼 보였다.


이건 마치.... 이곳을 떠나라는 경고 같았다.


지휘관

-(상태 추론)


녹티

네 말이 맞아....


녹티

이게 우릴 쫓아내지는 못하겠지만,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는 생각나게 해주네.



녹티가 대답을 하고, 옆으로 비키자, 눈앞에 벽이 드러났다.


녹티

이걸 봐봐.


더러운 벽에는, 글 한 줄이 있었는데, 선홍색 페인트로 "이쪽으로 오세요"라고 적혀있었다.


지휘관

-음... 매우 "전통적"인 방법이잖아.


녹티

하하하하! 마치 황금시대의 공포 영화 같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