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세람호 12량 잔존
구조체
생존인류
35
587




오르세람호가 끊긴 뒤 인간형 생물체는 재공격하지 않고 이들 특유의 움직임으로 끊어진 객차 뒤를 쫓아왔다.


머리가 반쯤 잘려도 껑충껑충 뛰는 수탉을 살피듯, 절단면을 통해 객차 내부를 들여다봤다.


수많은 이합생명체와 유인들이 인간형 생명체 양쪽에 모여 열차를 관찰하는 괴물 대신 객차 안으로 기어 들어가려는 시도를 계속했다.


처음에 사람들은 부서진 단면을 막아 물밀듯이 이합생물을 방어하려 했다.


그러나 방어에 성공할 때마다 유인이 다시 공격해 간신히 단면을 봉하고 다시 떼어냈다.


끝없는 전투 속에서 많은 이들이 하룻밤을 꼬박 세웠다.


구조체도, 차에 탄 인간도 긴장의 장기전 속에서 점점 위축되고 있지만, 쫓아오는 이합생물은 훌륭한 선생님을 따라가듯 조금씩 추격의 속도를 높여가고 있었다.


석양의 잔조가 다시 지평선으로 내려앉자 객차 전선에서 싸우던 군중들은 어둠이 내리기 전 잠시 숨을 몰아쉬었다.



지금 손실 상황은?

    

소피아

단절 이후에도 12량이 남아있어.


소피아와 리가 언제 다시 쳐들어올지 모르는 적을 경계하면서 객차 안의 파손된 장비를 긴급 보수하고 있었다.


전투가 잠시 수그러들자 피난민들도 쭈뼛쭈뼛 고개를 내밀었다.


중년 난민

다들 괜찮습니까? 원래 이 칸에 있던 사람들은요?



자밀라

망각자들과 합류하기 전에 대부분의 사람들을 다른 도시의 보육구역에 배치했어요.


벤치에 우아하게 앉아 있는 자밀라는 마치 위험에 익숙해진 듯 두려움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자밀라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알면서도 여기에 머물렀고, 그들의 결말은 당신도 알겠죠.


중년 난민

...


피난민은 즉시 목을 움츠리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와타나베

이번 합류로 아딜레는 큰 피해를 입었다. 재난이 끝나면 망각자들은 원조의 은혜를 잊지 않을 것이다.


수장인 와타나베의 표정은 이미 피로를 감출 수 없었다.


잠시나마 망각자의 비호를 받는 사람들은 그와 다른 망각자들이 겪는 분주함과 괴롭힘을 지켜보았다.


그들에게 가해진 부하는 개체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은 지 오래였다. 그러나 그들은 폭풍우에 시달리는 등대처럼 그 누구도 잊지 않겠다는 맹세를 지킨 채 그대로 서 있었다.



자밀라

괜찮습니다. 구조에 동참하는 것은 제 나름의 타산과 계획이 있기 때문이랍니다.


자밀라

이런 환경 속에서 누구도 피할 수 없으니 우리는 마땅히 하나로 뭉쳐야죠.


자밀라

더구나 이번 사고는 공중정원의 보험으로 배상받을 수 있거든요.


이것도 합의된 내용입니까?


자밀라

잠정적으로 추가된 조항인데, 아딜레든 공중정원이든 우리의 목표는 하나입니다.


자밀라

그것은 바로 더 많은 사람을 살리고 새로운 반격의 기회를 찾는 것이죠.


와타나베

이 점은 망각자도 마찬가지다.


와타나베가 눈썹을 틀고 객차 안을 돌아보니 거점 안에 모여 있던 35개 구조체가 객차 안의 생존 인류 587명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었다.


망각자들의 구성원이 대부분이고 임시 수용된 부상자도 적지 않았다.


와타나베는 풀리아 숲 공원 유적의 재난 이후에도 망각자들을 거점으로 지속적으로 난민들을 수용하여 부상자들을 보호해왔다.


망각자들은 이 땅에서 평판이 좋았지만 보육구역보다 더 많은 인원을 거점에 수용했다.


갑자기 인간형 생명체가 들이닥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수많은 이합생명체들이 마치 부름을 받은 것처럼 그들의 거점으로 뛰어들었다.


와타나베는 참혹한 인명 피해 속에 남은 사람들을 데리고 거점을 탈출해야 했다.



창위

아무래도 좋지만, 너희도 나중에 열차 수리하는거 도와줘야 돼.


와타나베

당연하다.



슈렉

나중이 있을까요?


망각자들을 따라 열차에 오른 슈렉은 흔들리는 객차 좌석에 기대어 앞쪽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구조체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열차에 오르자 평소 말주변이 좋아 보이는 이 청년은 열차 뒤를 쫓는 괴물들뿐 아니라 열차 자체도 두려운 듯 걱정과 혐오 섞인 표정으로 주위를 돌아다녔다.


슈렉

이런 말을 해선 안된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 두 놈과 그 녀석들의 형제자매는 이미 끈질기게 쫓고 있어요. 분명 저희는 그들보다 빨리 도망칠 수 없고 지구전에서도 이길 수 없습니다.


슈렉

비록 민간인으로서 구출된 것은 고맙지만, 저나 그 뒤에 있는 민간인이나 아무도 당신들 중 누군가가 희생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요.


그 말에 자밀라의 입꼬리가 미묘하게 찡그려졌다.


슈렉

특히 와타나베는, 당신이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한달 동안 계속 뛰어다니고 있으니, 당신은 거의 한계에 다다랐겠죠.


와타나베

하지만 지금은 다른 선택이 없다.


자밀라

또 하나의 카드가 있지 않나요?


자밀라

잠정 협의를 체결할 때, 저는 부가적인 요구를 받았어요.



자밀라

당신들의 신형 무기 테스트를 도와야 한다고요.


루시아

Ω식 시제 무기말인가요?


와타나베

그것으로 인간형 생물체에 대항할 수 있다?


루시아

첫 테스트때는 아직 효과가 미미한 상태였어요. 지금은 좀 더 개량을 해놨겠지만...



크롬

네, 방금 연락을 받았고, 작전 지휘부가 2단계 시제형 무기를 준비하고 있어 내일 중 투하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크롬

이번 개량은 Ω식 무기가 소규모의 청정공간을 생성하고, 그 범위의 퍼니싱을 흡수할 수 있도록 개선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람들의 무거운 표정도 다소 누그러졌다.


크롬

그러나 실제 효과는 아직 확인돼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와타나베

정확한 장소와 시간은 정해졌나?


크롬

네, 내일 오후 4시까지 210번 도시 역에 도착해서, 그곳에서 시험용 무기를 입수해야 합니다.


창위

어이 이봐, 오후 4시까지 210번 도시에서라니 너무 빠르잖아.


크롬

열차에서 내려 지원부대와 합류할 시간을 남겨야 하는 만큼 속도를 높여 적과의 거리를 벌려야 합니다.


크롬

그리고…더 이상 선로를 따라가기는 것은 너무 위험하고, 210번 도시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차할 수 있는 거점이 따로 있습니다.


크롬

여기에는 소수의 작전요원만 남겨 인간형 생명체를 유도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크롬

그래서 오후 4시에 210번 도시 정거장에 도착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밀라

속도를 좀 높여야 될 것 같네요.


자밀라는 웃으며 계획을 상의 중인 사람들을 훑어보다가 마침내 뒤쪽의 슈렉에게 눈을 돌렸다.


군중들의 소란을 넘어 소리 없는 입모양으로 슈렉에게 한마디를 건넸다.



자밀라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슈렉

...


소피아

내가 가서 도와줄게.


현재의 전황은 여전히 좋지 않고, 전투에 여념이 없는 구조체들은 지금 두 인류의 태도와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조차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창위

그럼 난 여기 남아서 피래미들을 잡을 게.


소년의 주먹은 절단면 가장자리에 붙어 있는 감염체를 내리치며 목덜미를 부러뜨렸다.


ㅡㅡ그러나 그것은 뒤쪽의 대량의 감염체 무리 속으로 떨어졌고, 완전히 밖으로 뿌리치지 못했다.


창위

모였어? 이놈들이 우애를 맺어 서로 돕고 있단 말이야?


루시아

조심해요! 집단으로 공격하고 있어요!



전투개시




구조체A

그레이 레이븐 소대와 차징 팔콘 소대...!


루시아

전투에 협조하겠습니다.


구조체B

조심해요, 그들이 갑자기 나타나서 저희 부대 동료들을 습격했습니다.


구조체B

그런데 저희가 공격을 감행할 때 다시 사라져 버렸어요.



크롬

긴장의 끈을 놓지 말고… 차량 옆모습을 살펴보죠.



구조체A

이게 아까 그 괴물들입니다!


루시아

유인이다! 열차에 오르려고 해!



내가 요격할게, 오르기 전에 총으로 격추시킬 수 있어.



또 나타났군, 빨리 격추해야 돼!



구조체B

열차 반대편에서도 적을 발견한 것 같습니다!


루시아

확인했습니다!



루시아

열차에 올라탔어, 요격을 유지해! 저 녀석들한테 뚫리면 안돼!



구조체A

인간형 생명체 고속 접근! 열차의 후미 입니다!!


루시아

저것들을 열차에 태워선 안 됩니다! 그 전에 막아야 해요.



구조체A

또 왔습니다!


루시아

조심하세요!







전투 종료





시간의 흐름은 인간형 생명체의 시야에서 느려졌고, 이들은 오르세람에게 바짝 다가와 몸을 솟구쳐 남은 객차를 향해 다시 한 번 힘껏 일격을 가했다.


절망적인 비명 속에 수많은 살아 있는 몸뚱이가 바람에 나부끼는 종이조각처럼 열차에 떨어졌다.


절망이 가슴을 찢기도 전에 와타나베의 양날은 그와 함께 이합생명체의 바다로 뛰어들었다.


이 적홍색 홍수 속에서 피할 수 없는 인간과 구조체는 약속이나 한 듯 무기를 들었다.



청년 난민

우리 가족 돌려주세요!!!


난민A

살려줘!! 살려줘!!


구조체 대원1

내 뒤에 숨어!!


난민B

아파, 아파, 아아아아아아!!


소피아

창위, 자밀라...!


구조체 대원2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을 앗아가야 되는거냐고!!


난민C

아아아아아아악!!!!


난민D

신이시여!!!!


울부짖음과 기도, 고함과 맹세.


피와 적조의 즙이 궤도에 깔려 마치 대지의 부스럼처럼 느껴졌다. 하늘을 찢는 우레와 함께 군중의 절망이 모여 지옥의 교향곡을 이루었다.


이제 210번 도시까지 12시간이나 남았다.


그때 사람들은 여전히 앞에 서광이 있으리라 굳게 믿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