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https://arca.live/b/punigray/43395243


1화 : https://arca.live/b/punigray/43080025


전 소대 개편 작업 이후 많은 지휘관들은 강해진 전력을 이용해서 지상에 내려가 침식체를 소탕했다는 실적을 내길 원했다. 

그리고 성미 급한 지휘관들이 손발도 맞지 않는 소대원들을 데리고 지상에 나아가 장렬히 산화했다. 


그들의 몸을 던진 희생으로 인해 나머지 지휘관들은 소대원들 간에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는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반면 교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 자도 있었는데…

"우리의 전투력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시험이 필요해! 지금 당장 지상으로 가자!"

그녀는 '피닉스'라는 소대명이 부여 된 소대의 '카레니나'였다.


"멈춰 주세요. 카레니나 씨! 이미 많은 소대들이 급하게 출전했다가 돌아오지 못했잖아요. 우리는 좀 더 연계훈련이 필요해요."


지휘관의 간절한 요청을 그녀는 단칼에 거절했다.


"그건 얼굴도 모르는 녀석들끼리 모인 소대나 그렇게 된 거잖아! 얼마 전에 지상에 거점을 만드는데 성공한 비앙카의 소대처럼 우리 소대도 평소에 알고 있는 녀석들끼리 뭉친 거니까. 그런 훈련 따위는 않아도 완벽하게 합을 맞출 수 있다고!"


그런 지휘관에게 구원이 도착했다. 

리브가 카레니나의 말에 반박을 하며 지휘관의 의견에 힘을 실어 줬다.


"지휘관님의 말이 맞아요. 비앙카 씨의 소대도 그 전투 이후 연계훈련을 위해 임무를 모두 미루었다고 해요. 분명 성과는 냈지만 문제점이 있었을 거에요."


"그게 뭐! 어쨌든 거기는 한번은 내려갔잖아! 우리도 일단 싸워봐야 문제가 뭔지 알 수 있지!"


한참을 실랑이를 하던 셋의 목소리를 듣고 나나미가 다가와 활기찬 목소리로 지휘관의 속을 태우는 발언을 했다. 


"나나미도 지상에 내려가고 싶어! 이렇게 쭉 기지에만 있는 것은 지루한걸."


결국 그 둘의 강한 주장을 꺾지 못하고 피닉스 소대는 지상으로의 강하를 결정했다. 


첫 임무의 목표는 심플했다. 

'지상의 기지로 사용할 부지의 침식체를 소탕할 것!'


그저 보이는 적을 분쇄하면 되는 단순한 임무였다. 그리고 동시에 강해진 전투력을 시험해보기 딱 좋은 임무이기도 했다. 


지상에 내려와 거점에 도착하자 지휘관은 리브를 불러세웠다. 


"아 리브 씨 이거 받아주세요. 이번 임무에서 사용할 의식이랑 무기에요…  아까는 제 말을 들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레서… 이거… 좋아하신다고 들었어요."


지휘관은 리브에게 쭈뼛쭈뼛하면서 한 상자를 내밀었다. 

그녀는 별것도 아닌 이유로 선물을 받는 것이 죄송해서 그것을 정중하게 거절하려고 했다. 


"감사합니다. 지휘관님, 하지만 좀 더 필요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 좋을 것..."


그녀의 거절이 예상되는 말에 용기를 내 선물을 건냈던 지휘관의 얼굴이 붉어지고 눈가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하자 그녀는 말을 끝맺을 수 없었다. 

차마 그의 선물을 거절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작게 한숨을 쉬고는 지휘관이 건낸 상자를 잡았다. 


"소중하게 간직할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제법 많은 소대를 전전했던 그녀이지만 지휘관에게 선물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그가 준 선물 상자를 열자 그곳에는 사막, 바다, 숲, 평야 등 다양한 생태계를 하나씩 담은 구체가 잔뜩 들어있었다. 


그것을 보자 그녀의 가슴에 묘한 술렁임이 일었다. 

'뭔가 마음이 따스해지는 기분이야…'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해 본 적이 없었던 탓일까?

그녀는 스스로가 지휘관에게 작은 호감을 가지게 된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지휘관 또한 그녀의 변화를 알아채지 못하고 그저 그녀가 선물을 받아준 것에 대해 기뻐하며 다른 소대원들에게 의식과 무기를 전달해주기 위해 자리를 떴다.


전투가 시작되고 피닉스 소대는 순조롭게 침식체를 처리해 나갔다. 


'유광'이라는 기체로 작전을 수행하던 리브는 이온 구역이 끊기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며 카레니나와 나나미를 보조하였는데, 

이전의 소대, 즉 재까마귀 소대에서 작전을 수행하던 감각으로 적당히 적이 정리되고 나머지 주력기체들 또한 한곳에 모아져 처리하기 적절한 상황이 나오자 '이걸로 끝이 나겠구나.' 하는 생각에 그만 긴장을 놓아버렸다.


하지만 카레니나의 기체인 '신연'은 루시아의 기체였던 '아우'에 비해 결전기의 화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이거나 맞고 재가 되어 버려!"


그녀의 포신이 빨갛게 달아오르며 지면을 녹일 정도로 고열의 광선이 침식체들을 훑고 지나 갔지만 그들 중 일부는 그녀의 광선을 맞고도 간지럽다는 듯 신경쓰지 않고 천천히 전진했다. 

그렇게 그녀의 결전기에도 침식체 무리가 정리 되지 않자 리브의 안일한 태도는 소대의 모두를 위험하게 만들게 되었다. 


아찔한 사고의 시작은 전장을 날뛰던 나나미가 파괴된 침식체의 잔해 속에 숨어있던 핵분열 원충의 폭발을 맞고 침식체의 주력기체들의 한가운데로 날아가 버린 것이다. 


"꺄아! 이 이상은 못 버틸 것 같아!"


리브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인뢰를 터트려 재차 이온 구역을 소환하려고 했지만 마음이 조급해진 탓인지, 운이 따라주지 않았던 것인지 이온 구역은 쉽사리 다시 소환되지 않았다. 

그것을 보고 카레니나도 침식체 무리의 중앙으로 뛰쳐나가며 리브에게 소리쳤다. 


"침식체가 코앞에 있는데 뭘 멍하니 있는거야!"


그 말을 듣고 나서야 가까스로 이온 구역이 펼쳐졌다.


"나나미! 괜찮아요? 미안해요… 제가 잠시 한눈을 파는 바람에."


그녀의 이온 구역안에서 잠시나마 회복을 한 덕분인지 나나미는 여유를 되찾았다. 


"히히, 이제는 괜찮아. 옷이 조금 찢어졌지만 이 정도면 아직 움직일 수 있어!"


다행히 기능정지한 소대원이 발생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피닉스 소대의 누구도 계속해서 다음 전투를 이어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번 임무는 실패입니다. 우리 다음을 기약하도록 해요!"


당연하게도 지휘관의 퇴각 결정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침식체를 피해 안전한 구역으로 후퇴하고 나자, 지휘관은 사령부에 보고를 했다. 

이는 퇴각을 위한 수송기를 요청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절차였다.

하지만 그는 지상에 내려온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귀환 요청을 하는 것이 되어버려 연락을 취하는 것이 조금 껄끄럽게 느껴졌다. 


"그럴 거면 뭐 하러 강하 한 거냐! 이 수송기의 연료 값도 못하는 녀석들!"


그리고 예상대로 사령관의 질책이 이어졌다.

그는 힘든 시기에 자원을 낭비한다는 둥, 아직 어려서 근성이 없다는 둥, 이제 갓 부임한 신임 지휘관에게 온갖 모욕을 쏟아내었다. 

하지만 그 어린 지휘관은 모든 질책을 묵묵히 받아내면서도 소대원들이 보는 앞에서는 씩씩한 모습으로 이 정도는 별것도 아니라는 양 미소 지어 보였다. 


사령관은 이성을 잃고 잠시동안 속이 풀릴때까지 질책을 하고 나자, 스스로도 조금 과했다고 생각했는지 헛기침을 하고는 침착한 목소리로 귀환을 위한 수송기의 도착 위치와 시간을 알려주고 거칠게 연락을 끊었다.

 

연락이 끊어지자, 지휘관은 평소보다 높은 텐션으로 말했다. 


"다들 사령관 님의 질책은 신경 쓰지 말아요. 우리에겐 이게 첫 출전이었잖아요. 실수할 수도 있죠! 분명 다음엔 더 잘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어딘가 떨림이 느껴지고 눈꼬리에 눈물방울이 맺히는 것을 보아, 애써 밝은 분위기를 내려고 노력하는 것이 뻔히 보였다. 


분명 아직 어린 그에게 사령관의 노기서린 질책은 마음에 큰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아픈 만큼 성숙한다.' 분명히 옳은 말이고 이런 과정들을 겪어가면서 점차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지만 상처입은 지금만큼은 솔직하게 아파해도 괜찮을 텐데…

이제 갓 얻어낸 지휘관이라는 직책이 그에게 허세를 가득 불어넣은 것인지, 원래 본인의 성격이 남들 앞에서 자신의 상처를 보이는 것을 꺼리는 것인지 알 도리는 없었다.

하지만 이 자리의 누구나 알 수 있었던 사실은 그는 부하들 앞에서는 약해진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는 다는 것이다.


"수송기는 금방 도착한다고 하니까. 그동안 다들 조금 쉴까요? 저는 조

금 피곤해서 혼자 잠깐 눈을 붙이고 올게요. 다들 편히 있어요."


그가 자리를 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임시 거점의 방음이 전혀 되지 않는 가벽을 넘어 소년 특유의 살짝 높은 음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사랑을 받아본 사람만이 사랑을 주는 방법을 안다고 했던가? 리브는 지금 그에게 다가가 그를 위로해 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대체 슬퍼하는 사람은 어떻게 위로해 주면 되는 거지?'


이전의 소대에서도 지휘관의 정신적인 케어를 담당하던 것은 언제나 루시아였다. 

심지어 지휘관을 잃은 루시아를 위로해 준다는 것이 오히려 그녀를 망가트리는 계기가 되어버렸다고 믿고있던 그녀는 감히 그에게 다가갈 용기가 나질 않았다.


아파서, 울음소리조차 내기 힘들 정도로 아파서 혼자 끙끙거리던 날에도, 사람의 온기가 그리워 외로움에 사무치는 날에도, 아무리 슬퍼해도 가족들 중 누구 하나 그녀를 위로해 준 적 없는 외톨이…

그런 그녀가 전장을 통해 육체의 상처를 치료하는 일에는 익숙해 졌더라도 다친 마음을 치료해주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했다.


그래서 그녀가 육체의 건강을 챙겨주는 것에 대해 편집증에 걸린 환자처럼 집착했던 것이리라… 

리브가 지휘관에게 '가야하나? 내가 가도 괜찮을까?'하고 내적갈등을 하고 있는 사이 나나미가 일어나 통신실을 나섰다.


"내가 지휘관한테 가볼게!"  


밖에서는 나나미의 등장에 놀라 울음을 그친 지휘관과 나나미가 도란도란이야기를 나누는 목소리가 들렸다. 


둘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명확하게 들리지는 않았지만 지휘관의 목소리를 듣고 짐작하건데 그는 조금 기운을 차린 것 같았다. 


그렇게 그녀가 조금 안심하자 그간 침통한 표정을 짓고있던 카레니나가 침묵을 깨고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야! 왜 거기서 멈춘거야? 그때 넌 '이걸로 임무는 끝이다.'라는 얼굴을 하고 있었어. 그건 대체 무슨 의미야?"


평소 그녀가 루시아에게 대항심을 불태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있던 리브는 '루시아였다면, 그걸로 침식체를 전부 정리했을 거야!'라고 솔직하게 답할 수 없었다.

아니 그걸 몰랐다고 하더라도 그런 말은 절대 해서는 안되는 종류의 답변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만큼은 그냥 솔직하게 말했어야 했다. 


말을 고르며 잠시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스스로도 리브가 그런 행동을 취한 이유를 알고 있었는지 그 잠시의 침묵을 참지 못하고 짜증 섞인 말투로 외쳤다.


"왜 말이 없어? '루시아라면 그 타이밍에 침식체를 전부 처리 했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끝날 줄 알았다.' 하고 시원하게 말하면 되잖아!"


리브가 아무 말없이 듣고 있기만 하자 그녀는 더욱 짜증이 났는지 점점 말투가 거칠어 졌다. 


"왜 그냥 입을 다물고 있는 건데? 뭐라도 말해 보라고!"


프라이드가 높았던 그녀는 그간 라이벌이라고 생각했던 존재보다 사실 자신은 한참이나 약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너무나도 분했다. 

그런데 심지어 그것을 판단해 줄 눈앞의 인물이 자신을 배려해 준답시고 상처주지 않을 말을 고르고 있자 스스로가 너무나 비참하게 느껴졌다.   

  

"나를 배려라도 해주겠다 이거야? 하! 진짜 사람 비참하게 만드네, 네가! ..."


그녀가 느낀 수치심과 열등감, 그리고 미안함 등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을 분노라는 표현으로 토해내려는 순간 내부의 소란을 들은 지휘관이 다급하게 통신실에 들어왔다.


지휘관의 앞에서 소란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았는지 그가 들어오자 그녀는 하던 말을 삼키고 돌아섰다.


그는 통신실에 들어오자마자 분명히 싸움이라도 일어날 듯한 분위기를 보았음에도 아무것도 보지 못한 척, 지금이 무슨 상황인지 전혀 모르는 척을 하고 태연하게 말했다. 


"이곳 거점은 다음에 올 소대에서 사용한다고 하니까 다들 개인 물품만 가볍게 정리해서 떠날까요?"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카레니나는 밖으로 나갔다.


그녀가 나가고 나서 그는 방에 혼자남은 리브에게 다가와 말했다. 


"괜찮아요. 이번에 돌아가면 리브 씨의 새로운 기체를 요청해 두었어요. 분명 더욱 강해질 거예요!" 


그는 아마 이번 사건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지 못한 것이리라... 

루시아의 존재를 모르는 그는 이번의 일이 그저 리브의 실수로만 보였고 둘의 언쟁이 그 실수로 인해 벌어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게 아닌데…'


리브는 조금 억울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가 안다고 해서 달라질 일도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에게 자세한 사정을 설명하지 않았다.


"네, 감사합니다. 지휘관님, 그럼 저도 이만 퇴각 준비를 하러 가볼게요."


그는 방을 나서는 리브를 보면서 떨떠름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대체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하지만 지휘관의 의문은 알아주는 이도 답해주는 이도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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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정원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 누구도 먼저 입을 열려 하지 않았다. 


그 원인은 비롯해 말을 섞기는 커녕 얼굴조차 마주 하지 않으려는 그녀들이다. 리브와 카레니나의 사이에는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에 눌려 지휘관이 소대원들에게 피드백을 주는 것 조차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나미는 이런 분위기에 답답함을 느꼈다. 그 탓인지 공중정원에서 내려오는 것에 비해서 올라가는 동안에 걸리는 시간이 몇 배는 길게 느껴졌다.

그녀는 특유의 활기찬 목소리로 '이런 분위기는 싫어!'라며 큰 소리로 외쳤다.


갑자기 그녀가 왜 그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마도 소대 안의 무거운 분위기를 털어내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그녀의 행동을 매우 성공적이 였으리라, 그런 그녀의 돌발 발언에 모두가 웃기 시작하면서 전보다는 조금 부드러운 분위기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리브와 카레니나는 서로를 마주보지 못했다.  


잠시 후 공중정원에 올라가자마자 리브는 지휘관이 요청했다던 새로운 기체를 받았다. 

기체의 이름은 '백야' 무려 퍼니싱을 정화할 수 있는 기체라고 한다.


어째서 이런 기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퍼니싱에 패배해 이 차디찬 우주까지 쫒겨난 것일까?

지휘관은 그런 간단한 의문조차 가지지 않고 그저 리브의 성능향상을 기뻐하기만 했다. 


그 모습을 보면 아직은 그가 나이에 걸맞는 철없는 어린아이의 순수함을 간직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그를 뒤로하고 리브는 백야에 의식을 옮기기 위해 정비실로 향했다. 


정비실에 도착하자마자 기술자들 중 대표로 보이는 인물이 나와 그녀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이 새로운 기체에 대한 설명을 할 텐데, 이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발설 해서는 안됩니다."


리브는 그의 설명에 의아함을 느꼈는지 고개를 살짝 갸웃하며 물었다.


"같은 소대원들에게도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소대원들은 물론이고 당신의 지휘관에게도 비밀입니다. 만약 제대로 제어만 되었다면, 인류의 희망이 될지도 모르는 이 귀중한 기체를 당신의 초짜 지휘관이 사용 허가를 받았을 리가 없죠, 제법 위험을 동반하는 기체입니다."


그는 긴장했는지 잠시 침을 삼키고는 이어서 말했다.


"기체의 상세한 설명을 듣고나면 의식의 전송을 거절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비밀 유지 서약 또한 지켜야 하죠. 포기하려면 지금 뿐입니다."


그녀는 마치 자신이 '백야'를 사용하지 않기를 바라는 듯한 그의 태도를 보고 잠시 두려움이 그녀를 스치고 지나갔지만,

이번 전투를 통해 '피닉스' 소대가 '재까마귀' 소대처럼 강해지기 위해선 그 동안의 기체로는 힘들다는 것을 떠올렸다.


거기에 무엇보다 자신이 더욱 강해진 다는 사실에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던 지휘관을 떠올리자 차마 이 제안을 거절 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지휘관님을 실망시켜 드리고 싶지 않아!'


결국 그녀는 독이 든 성배를 받아 들고 말았다. 


"비밀을 유지하는 것에 동의 합니다. 저는 반드시 '백야'를 사용해야 해요. 그래서 이 기체는 대체 무엇이죠?"


리브는 비밀 유지 서약서에 음성인식과 사인을 하고 난 후 '백야'에 대한 설명을 요구했다. 


그에 대한 기술부의 남자의 대답은 간단했다. 

특수한 기체인 '백야'는 퍼니싱을 끌어모으는 성질을 지녔으며 동시에 내장된 Ω무기를 이용해 끌어모은 퍼니싱을 제거하는 것으로 퍼니싱을 '정화' 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기체라는 것이다. 


"지상의 퍼니싱 농도를 생각해 볼 때, 만약 당신이 이 기체를 능숙하게 제어하지 못한다면 지상에 내려가 퍼니싱을 접하는 순간, 감염체가 되어버리겠죠. 그러니 모쪼록 행운을 빕니다."


그의 말을 듣자 리브는 자신이 '백야'를 사용한다고 약속한 것에 대해 지나치게 경솔했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기체일 줄은 몰랐어… 기껏해야 부상을 없이는 다루기 어려운 정도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제어에 실패하면 감염체가 될 각오를 해야 한다니 이건 너무해!'  


그런 그녀의 불만을 눈치 챈 것일까? 기술부의 모두는 그녀가 뭐라 말할 틈도 주지 않고 신속하게 '유광'에 실려 있던 리브의 의식을 꺼트렸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휘관은 소대의 기지로 돌아와 그녀의 새로운 기체에 대한 상상을 하며 그녀가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고 있었다. 


한편 사령부에서는 귀중한 기체인 '백야'를 정말 이제 갓 부임한 지휘관에게 맡기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 갑론을박을 펼치고 있었다. 


"이런 수상한 조건 이미 닳고 닳은 경험 많은 지휘관들은 반드시 거절할 것입니다. 어차피 이런 조건을 받아들일 녀석은 저런 어리버리한 놈들 뿐입니다. 이것저것 따지다간 이 기체를 시험할 수 없어요!"


"아무리 그래도 지금껏 지상을 겪어보지 못한 어린애가 아닙니까? 거기에 첫 전투에선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돌아왔다지요? 다양한 전투 데이터를 회수해야 하는 순간인데 이런 자가 과연 몇 번이나 임무를 수행하려 하겠습니까?"


"진짜로 멍청한 놈들은 살아 돌아오지도 못했죠, 하루만에 자신의 역량 부족을 느끼고 돌아온 것이라면 그래도 생각은 있는 것 아니겠어요?" 


"맞습니다. 그리고 당장 수많은 데이터를 뽑아 내야 한다고 하셨는데 저게 제어 불가능한 기체라는 것은 알고 말하는 거겠죠? 오히려 지금 당장 전력이 되는 소대에 넘겼다가 폭주라도 하는 날에는 전멸입니다. 전멸! 그럴 바엔 도움도 안되는 소대에게 넘기는 것이 나아요!"


"아니죠 오히려 베테랑에게 넘기는 편이 제어에 성공할 확률이 높지 않을까요? 그들에게 '백야'를 넘기는 것은 그냥 희생양을 만드는 것이 될 수도 있어요!"


"'리브'도 긴 시간을 전장에서 뛰어온 베태랑 구조체 입니다. 그녀는 전 '재까마귀' 소대의 일원이었습니다! 오히려 그녀가 실패한다면 그 누가 제어해 낼 수 있다는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만?"  


한참 동안이나 격한 토론이 이어졌다. 그래도 '백야'를 피닉스 소대에 넘기겠다는 결과가 바뀌지는 않았고 덕분에 리브의 의식이 옮겨지는 동안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을 수 있었다.


그 덕분인지 리브의 의식은 '백야'에 잘 정착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기적과도 같이 모두의 불안과는 달리 리브는 깨어나자 마자 마치 몇 번이고 다루어 본 것처럼 이 기체를 잘 제어해냈다. 


원하는 순간 원하는 만큼의 퍼니싱만을 흡수해 제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건 정말 기적이야! 기적이 일어났어! 그녀가 '백야'를 완벽하게 제어해냈다!"


리브가 기체를 움직이는 것을 본 기술부의 모두는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그들은 이제 그녀를 중심으로 펼쳐질 인류의 지상을 향한 쾌진격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기적에는 항상 대가가 따르는 법, 단지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이 순간이 아닐 뿐이다. 

그들이 치루게 될 대가는 착실히 그들의 운명안에서 마치 사채 빛이 늘어 나듯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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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새로운 기체를 타고 돌아온 리브와 나머지 소대원의 합을 맞추기 위한 훈련 시간을 가지고 난 후, 피닉스 소대는 자신들에게 치욕을 주었던 침식체 무리와의 복수전을 위해 지상으로 내려갔다. 


결과는 당연하게도 연전연승! '백야'의 가공할 위력 덕분에 소대 전체의 전투력은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그 결과 다음 임무에서도 또 그 다음 임무에서도 번번이 승리를 거머 쥐면서 모두의 희망대로 피닉스 소대는 인류의 지상 탈환을 위한 선봉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하지만 수없이 많은 실적을 내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그들의 내부사정은 썩 좋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소대원 모두가 '백야'처럼 강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화력의 부족과 저지력의 부족, 나나미가 밀고 들어오는 적을 저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카레니나가 강력한 침식체를 단숨에 처리하지도 못했다.


리브가 아무리 나나미와 카레니나를 지원해 주어도 그들은 전선을 유지 할 수 있을 뿐, 그 이상의 무언가는 할 수 없었다. 

결국 그녀는 그들을 지원하는 동시에 혼자 밀려들어오는 적의 발을 묶어야 했고, 카레니나가 처리하지 못하는 강력한 적도 그녀가 처리해야 했다.


카레니나의 '큭! 두고보자.' 라는 열등감에 가득 찬 외침은 이제 임무를 나갔다 돌아오기만 하면 들리는 연례행사처럼 되었다.


그렇게 소대원 개개인의 역량 부족이라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피닉스 소대는 앞으로도 고전하게 될 것이다. 아니! 리브, 그녀 혼자 고전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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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화 : https://arca.live/b/punigray/44226405


P.s 텍스트 양 적당함? 아니면 이거에 절반정도로 끊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