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았다.


롤랑이 이 감옥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었다.


그를 부추기는 것은 복잡한 연유나 신비한 임무도 아닌, 순전한 호기심이었다.


교도소 로봇은 여전히 출하 때부터 정해져 있던 직책을 반복하고 있었는데, 죄수들의 적개심을 덜어주기 위해 교도관들을 모두 생체공학기계로 채웠다고 한다.


인간이나 다름없는 외모의 생체공학기계는 오로지 명령만 지킬 뿐, 범인으로부터 뇌물을 받지 않고, 휴무도 고려하지 않아 당시 교도소에는 값싸고 유용한 노동력이었다.


그러나 이제 감염은 교도소 전체에서 근절하기 어려운 질병이 되었고, 감염된 기계가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여 더 이상 이전과 같이 정해진 작업을 수행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허나 이 감옥의 감염체는 마치 퍼니싱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처럼 자기 일을 계속하고 있었으며, 이미 수감자가 없는 상황에서 관객 없는 공연이나 다름없는 말세의 촌극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롤랑은 이런 종류의 코미디에 언제나 기꺼이 참여해 왔으며, 돈을 훔친 죄로 감옥에 갇힌 죄수인 척했다.


청소용 로봇은 같은 곳을 반복적으로 청소한다. 그 작은 바닥은 언제나 반짝반짝 빛난다. 교도관은 감방구역 복도를 순찰한다. 돌아서서도 한 치의 차이도 없이 바닥까지 분명한 코스를 밟는다. 하, 여기 항법장치가 작동하지 않는 미련한 놈이 있다. 계속 계단을 빙빙 돌기만 한다.


낡고 망가진 감염체들의 행렬 사이에 빙그레 웃고 있는 '죄수'가 우뚝 서 있는 것은 상당히 기괴한 장면이지만 롤랑은 즐거워 보였다.


기계의 작업흐름이 상당히 경직되고 고리타분하게 설정되어 인간의 정기적인 유지가 없으면 약간의 소동만으로도 가뜩이나 붕괴 직전의 질서를 깨뜨릴 수 있을 정도로 연이은 행동오차가 나비효과처럼 심해지고 있었다.


오류가 누적돼 교도관형 생체공학 기계 한 대가 탈옥 판단을 내리고 트리거 명령으로 교도소 전체의 경보 시스템이 작동했다.


ㅡㅡ이 모든 시작은 롤랑이 교대하려던 감염체 교도관으로부터 진압봉을 빼냈기 때문일 뿐이다.


이어 만화경이 회전하는 듯한 멋진 연쇄반응으로 휴면 중이던 경계로봇이 활성화되고 빨간 경고등이 깜박거리면서 교도소 출입구가 경보와 함께 폐쇄되어 롤랑은 탈옥에 실패한 죄인처럼 복잡한 구조의 교도소에 갇혔다.


물론 이런 구시대적인 문고리로는 당연히 그를 쓰러뜨릴 수 없었다. 한 차례 무차별 포격을 가한 후 롤랑은 변형된 감방을 유유히 뚫고 나왔다.


ㅡㅡ그 대가로 교도소 감염체들이 이 움직임 때문에 모두 소동에 빠졌지만, 롤랑에게는 큰 상처가 없어 정문이 봉쇄돼도 이 교도소를 빠져나가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다만 시간이 좀 더 걸릴 뿐이었다.


바로 이때 롤랑은 감염체보다 더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다.


ㅡㅡ자신 이외에 또 다른 불운아가 이 감옥에 갇혀 있었다.



롤랑

이거 정말 재미있는데…어떻게 할까?



롤랑?

더 말할 필요가 있어? 나의 친구.


롤랑?

당연히 두려움과 절망에 사로잡힌 인간을 지켜보다가 일면식도 없는 낯선 사람을 버리고 탈출하는 길을 택하는 것이지.


롤랑?

ㅡㅡ황금시대 지루한 영화에서 많이 보았던 것처럼.


롤랑?

불쌍한 꼬마 롤랑은 이렇게 또 한 사람을 위험에 빠뜨리는 거지.


롤랑?

하지만 지금은 옛날과 달리 넌 더 이상 힘없는 인간이 아니야.


롤랑?

넌 선택할 수 있어. 생사여탈은 모두 너의 손에 달려있는 거야.


롤랑?

그 사람이야말로 버림받은 쪽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일그러진 표정이 참 재밌겠는걸.


롤랑

내가 왜 이런 일을 하는 거지?


롤랑?

물론 네가 지금 너무 심심해서 그런 거겠지.


롤랑?

지루한 사람이 시시한 일을 하는 것은 아주 당연하지 않아?


마음속의 어두운 그림자가 이렇게 답하는 것 같았다.



ㅡㅡ그러나 롤랑의 예상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았다.


맞은편 사람은 두려움도 절망도 없이 두 사람의 탈출 계획을 여유롭게 짜고 있었다.


그 사람과의 교감에서 롤랑은 문자 그대로 익숙한 어떤 특질을 느꼈다.


상황이 아무리 열악해도 시종일관 냉정하게 버티며 탈출 방안을 계산하는가 하면, 여러 가지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대비하는가 하면 위기에 처했을 때 남의 안위부터 떠올리는 것은 마치 스캐빈저보다는 전쟁터를 오래 경험한 군인 같다.


낯선 사람을 향한 그 사람의 넘치는 상냥함은 더욱 소름돋았고, 롤랑은 아무 이유 없이 몇 차례 만났던 인간을 떠올렸다.


──그 인간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몇 번의 만남이었지만, 롤랑은 사실 오랫동안 조용히 사적으로 상대방을 지켜보고 있었다.


반은 호기심 때문이고 반은 자신의 '목적' 때문이다.


롤랑

...같은 사람일까?


다음 순간 롤랑은 그의 생각을 부정했고 근거 없는 추측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얼굴도 모르는 녀석에게 관심을 갖고 회유할 생각까지 들었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롤랑

정말 점점 더 궁금해졌어…. 말해줘, 네가 누군지.



협업으로 바깥쪽으로 통하는 문을 연 뒤 롤랑은 합류 예정이었던 식당을 찾았다.


식당 2층으로 올라가 난간을 넘어 A구역 입구를 바라보았는데, 그 사람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마침내 복도 끝에서 인간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그 모습을 똑똑히 보는 순간 롤랑은 자신의 내장이 보이지 않는 손에 잡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다소 두껍게 보이는 외골격과 보호장구 차림에도 롤랑은 한눈에 정체를 알아봤다.


【지휘관 이름】이다.


분명 근거 없는 추측이었을 텐데 그 결과가 롤랑의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이때 상상의 '동반자'는 자신의 반대편에 서 있었다.


걸음을 떼려던 발걸음은 그 사실을 깨닫고 거둬들였고, 롤랑은 무의식적으로 벽 뒤 그늘 속으로 물러났다.


그는 항상 단 하나의 결말을 가질 것이며, 그것은 내던져지는 것이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동반자'에게 버림받고, 실패작으로 버림받는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는 외톨이여야 한다.


롤랑?

자신의 '동류'를 찾았다고 생각하는 거야?


롤랑?

농담하지마, 넌 언제나 혼자였어.


롤랑?

모든 생각은 너의 착각에 불과해.


롤랑?

넌 다른 사람이 아니야. 다른 사람도 또한 네가 아니야.


롤랑?

너는 항상 자신의 발걸음으로 엮인 미신 속을 걸어나갈 뿐이지.


롤랑

...


롤랑?

그런 어리석은 생각 따위 버리고, 어서 고쳐먹어.


롤랑

하하하...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


롤랑

좋아, 좋아, 이것이야말로 내가 처한 현실이야.


모든 것이 최악의 시나리오로 흘러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