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 기계는 '창조'가 무엇인지 모른 채, 단지 사람을 쫓아 발자취를 따라가는 갓난아기와 같다.

빛이 가득한 긴 복도를 걸으며 하카마는 '어머니'가 했던 말을 생각했다.

ㅡㅡ이와 같은 각성 기계들은 많든 적든 선현의 계몽을 받았다.

처음에 그녀가 나나미에게 인도받았듯이, 그녀도 본의 아니게 다른 기계체를 인도하고 있었다.

그러자 각성 기계들은 정체불명한 자로부터 메시지를 받았고, 이를 위해 이 거대한 우주선을 건조했다.

ㅡㅡ그들은 틀림없이 그 메시지가 진실이라고 확신하고 있을 것이다.

하카마

이들에게 확신을 심어준 이유는 사건의 내용 때문일까. 아니면 발신자의 신분 때문일까?

그러나 한 가지, 그녀가 매우 확신하는 것이 있다.

아르카나

'선현은 결국 교회로 돌아와 이 허물어진 대지를 떠나 별의 끝에 이르도록 인도할 것이다.'

하카마

...별의 끝에 이르다...

나나미

참, 나나미는 앞으로 널 '하카마'라고 불러도 될까?

나나미

나나미는 친구들을 많이 사귀고 싶어!

각성 기계와 함께 외로운 여행길에 오르는 것, 그것이 과연 나나미가 바라는 것일까.

그녀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 기나긴 여행길에서 하카마는 여러 차례 나나미와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 해맑게 웃는 얼굴과 주위의 친구들을 바라보며, 하카마는 인사조차 건넬 수 없었다.

나나미

나나미는 너희 모두가 너무 좋아! 너희들은 영원히 나나미를 기억해야 해, 나나미도 너희들을 영원히 기억할 테니까!

환희가 넘쳐흐르는 모습은 친구들과 함께 사라졌고, 구석에 잊혀진 그림자는 그저 응시할 권리밖에 없었다.

하카마

...다음에 뵙겠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녀의 직책은 관측자이기 때문이다.

마음에 비정상적인 명령이 발생해도 기껏해야 기쁨이 나나미에게 영원히 이어지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기계교회에서 그녀를 찾게 됐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이대로 그녀를 찾지 못하면 각성 기계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하카마

...

전차

하카마, 답을 내릴 시간이다.

하카마

아니오, 아직 해명되지 않은 것들이 많습니다.

하카마

기계 교회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전차

'어머니'는 이미 이 질문에 답을 내려주셨다.

하카마

교회의 형성에 대해서 이야기 하셨지만, 왜 '교회'인지는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전차

어리석군.

전차

신앙은 힘을 준다. 우리가 교회같은 조직을 만드는 것은 물론 더 강한 신앙의 힘을 모으기 위함이다.

하카마

기계에게 신앙은 필요 없습니다.

전차

뭐라고? 신앙조차 이해 못하는 저열한 기계같으니!

하카마

자료의 보완을 요청합니다.

전차

빌어먹을, 신앙이 불러온 헌신과 기적에 관한 사건은 이미 역사적으로 충분히 입증되었다.

하카마

그러나 그 주체는 모두 인간이었습니다.

전차

나는 이미 오래 전 인류를 초월하여 그들의 현상을 재현할 수 있다!

하카마

...

앞에 있는 이 덩치 큰 기계체는 신앙에 대한 인간의 정의를 이해하지 못한 채 단지 그로 인한 특수한 사건에 집착하고 있었다.

기계는 무수한 연산 속에서 탄생하지만, 오히려 이런 피상적인 데이터에 의해 망가질 수 있던 것일까?

전차

앞으로 선현님에 대한 믿음을 더 의심한다면...

전차는 분노한 어조를 흉내내며 싸울 채비를 마쳤다.

아르카나

멈추세요, 전차.

아르카나

우리의 미래의 가족에게 이런 거친 행위를 하면 안됩니다.

전차

그녀는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아르카나

그런가요?

아르카나

무엇이 당신을 이토록 망설이게 만드는 건가요?

하카마

...

하카마

…지구에서 그녀가 사랑했던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 별들의 끝에 도달하는 것이 정녕 선현의 선택입니까?

아르카나

저는 모릅니다.

아르카나

하지만, 우리가 그녀를 찾게 될 때 그녀에게 물어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카마

만일 그녀가 대답하려 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그녀가 떠나는 것을 허락할 수 있습니까?

아르카나

그것이 그녀가 선택한 결말이라면 '신자'로서 반발을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아르카나

이것이 바로 기계체들이 '교회'를 만든 의미입니다.

아르카나

모든 것은 선현님이 자진해서 돌아올 순간을 위해서였습니다.

아르카나

하하......설령 참을성 없는 아이들이 있다 하더라도, 저는 선현님이 자신의 능력으로 나타나기 싫을 때는 나타나지는 않으리라 믿고 있답니다?

아르카나

어때요, 이제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까?

하카마

...

그녀의 요청을 거절해도 하카마는 방랑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관측자인 그녀는 이 특별한 집단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관찰할 필요가 있었고, 무엇보다 '어머니'는 나나미를 해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결코 잊은 바 없는 이 두 가지 사명을 위해 하카마는 아르카나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르카나

동의하신 겁니까? 정말 기쁩니다.

아르카나

갑시다, 저는 당신을 우주선 안으로 데려가서 저희들의 회원들을 소개하겠습니다.

하카마

어머니.

아르카나

네?

아르카나는 몸을 돌려 하카마가 내민 손과 정면으로 맞닥뜨렸다.

하카마

당신 머리 위의 광휘가 비뚤어져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