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카마

호위함 무사히 성층권 돌파… 고도에 도달, 공중정원을 향해 잠행을 준비합니다.


하카마가 호위함의 상황을 보고했다. 지구를 배경으로 한 캄캄한 밤하늘의 먼 곳에서 함선의 불빛으로 반짝이는 외로운 별 ㅡㅡ 공중정원은 그들의 이번 목적지였다.


(통신)

여기는 네빌, 제가 이 오래된 골동품을 위해 추가한 광학 카무플라쥬와 흡수 배리어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하카마

상태 양호, 고도 상승 과정에서 손실된 비율은 5% 이하이며, 은폐에 이상은 없습니다.


(통신)

좋습니다, 광휘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하카마는 손을 내민 채 함선의 앞머리에 서서 공중정원을 응시하고 있는 광휘의 행진자를 보았다. 보기에 그는 차분해 보였다.



광휘의 행진자

걱정할 필요 없다. 나는 '전차'로서 반드시 이 몸으로 동포들의 미래를 개척해 나갈 것이다.


(통신)

물론입니다. 저는 당신을 믿습니다. 당신은 제가 개조한 두 번째 걸작입니다, 왜냐하면 저의 첫 걸작은 언제나 차기작이기 때문이거든요!


(통신)

참, 모델 번호 BPMAX-965인 장난감을 보시면 저에게 말해 주는 것을 잊지 마세요. 비록 낡았지만 좋은 물건입니다......


광휘의 행진자

공중정원에 호적수가 있었으면 좋겠군, 그들을 정면으로 짓뭉개버릴 가치가 있길 바란다.


(통신)

하하, 그럼 잠행에 들어가면 통신도 끊길테니까... 부디 상대방한테 당해서 스크래지 내지 마시길, 결국 당신을 아껴줄 수 있는 건 저뿐이랍니다~


하카마와 광휘의 행진자가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기계교회로부터의 통신이 끊겼다.


광휘의 행진자

하카마...두려운가?


하카마는 그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알 수 없었고, 그녀의 기억으로는 그동안 이 기계체와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



하카마

자체 검사 결과, 두려움이나 그와 유사한 감정이 발생한 것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광휘의 행진자

이번 작전의 성공률은 89.7%에 달하지만 우리가 살아날 확률은 50%도 안 된다….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당신은 다르다.


광휘의 행진자

나는 기계 각성을 탐구해 더 강해지고 싶었기에 선현님을 찾기를 갈구했고, 결국 내가 생환하지 못한다면 그건 내가 아직 강하지 못했을 뿐이다. 우리 모두에게 있어 선현님은 유일한 진리이다.


광휘의 행진자

그런데 그대는 나와 달리 선현님을 언급할 때 너의 얼굴에서 막막함과 망설임을 보았다.


하카마

저의 충성을 의심하는 겁니까?


상대방이 그런 의심을 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았다. 하카마는 교회의 미래추론의 정확성에 공감하지만, 그녀는 확실히 그런 미래에 막막함을 느꼈다…


이런 '막막함'이 기계에게는 배신의 전조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광휘의 행진자

'전차'는 동료를 위해 길을 개척할 뿐, 동료를 영원히 의심하지 않는다.


광휘의 행진자가 단호히 말했다.


광휘의 행진자

그대와 선현님이 어떤 인연이 있었는지, 혹은 그대가 선현님에게 어떤 의혹을 가지고 있을지 나는 모른다.


광휘의 행진자

하지만 선현님을 직접 뵐 수 있다면, 그대의 의혹은 반드시 해결되리라 믿는다!


수면 위에 돌멩이를 던진 듯한 이 말이 하카마의 가슴에 잔잔히 피어올랐다.


이제 그녀는 기존처럼 나나미의 행동을 예측할 수 없게 됐고, 나나미는 그녀에게 더 이상 '익숙함'이 아닌 '낯설음'이었다. 나나미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왜 그래야 하는지...


모든 의문, 모든 망설임은 최후의 만남의 순간까지 남겨두도록 하자.


광휘의 행진자

'때로는 두려움이 잃어버린 고통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얻을 수 없는 아쉬움에서 오는 경우가 있다'. 네빌에게서 들은 말이다.


하카마

그 말은 그가 2184시간 46분 25초 전에 한 말이며, '어머니' 등 뒤에 있는 '광휘'에 12연발 열융화포를 넣으려다 거절당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광휘의 행진자

그것을 통해 전투 능력이 대폭 상승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르카나님은 선현님에 버금가는 교회의 대리인답게 내가 감히 생각할 수 없는 깊은 뜻에 따라 거절하셨을 것이다.


하카마

...


하카마

당신 말이 맞습니다.


광휘의 행진자

또한 이런 말도 있다: '전쟁터에서 살아남는 자들은 흔히 두려워하는 자다.' 그대는 나의 두려움 또한 가져 가라, '전차'는 주눅이 들고 물러서선 안 된다.


하카마

...감사합니다.



호위함이 운항하면서 공중정원까지 침입할 수 있는 범위에 빠르게 도달했다.



광휘의 행진자

계획대로 임무를 수행하라… 이 기간동안 나는 당신을 호위하는 역할을 수행하겠지만, 침입 실패가 판명되는 순간 호위함의 위장을 바로 풀고 공중정원을 급습한다.


하카마는 고개를 끄덕이고 두 눈을 감은 채 시야 정보를 분석하는 연산력 모두 공중정원 네트워크 해킹에 동원했다.


>>>>>>미등록 외부 전송 요청, 경고>>>>>>

>>>>>>연결 거부, 잠시 후 신호 차단>>>>>>



하카마

방비가 너무 견고합니다. 단순한 논리 침입, 즉 기계교회 회원 전체의 연산력을 가용한다면 추산에 따라 153249시간 이상이 소요될 것입니다....


공중정원의 관리 시스템ㅡㅡ게슈탈트를 해킹하는 것은 동등한 수준의 슈퍼 AI의 연산력이 아니라면 기본적으로 불가능한 사안이다.


뚫을 수 없는 견고한 문이다…. 하지만 열쇠가 있다면 얘기가 달라지는데, 이 공중정원 출신 호위함은 당연히 도킹을 위한 프로그램 키가 있다.


하카마

식별번호 입력 요청.


>>>>>>식별번호 검출 중>>>>>>

>>>>>>식별번호 검출 중... 성공 >>>>>>

>>>>>>접근 권한 부여받음, 레벨: 높음>>>>>>


아무리 고도의 프로세스라도 기계에게 부여된 논리는 이처럼 단순하다.


적인 그녀라도 조건에 맞는다면 그것은 그대로 받아들여지지만... 반대로 선의를 갖고 있어도 무자비하게 거절당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카마

과연 내가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까…. 이 물음은 '그녀'만이 대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을 부여한 자…. 그것은 '나나미'라는 이름을 가진 존재이며, 그녀는 '나나미'를 찾길 바란다.


그러나 그녀는 나나미를 찾은 후 무엇을 할지 가늠할 수 없었고, 어쩌면 그녀는 시간이 끝날 때까지 나나미와 일문일답을 반복하는 퀴즈 게임을 원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언젠가 나나미를 만나기 위해, 또 보호가 필요한 동포들을 위해 기계교회 회원으로서의 임무를 완수해야 했다.


ㅡㅡ설령 한때 기계가 지켜주었던 인간들에게 상처를 주는 한이 있더라도.


>>>>>>진입 완료, 통신 전송 시작>>>>>>



하카마의 의식은 점점 데이터로 바뀌어 게슈탈트의 내부로 들어갔다.


하카마

침입 시작, 임무 목표 설정, 우주선 설계의 핵심 자료 찾기, 기계체의...미래 찾기.




전투 개시




하카마

게슈탈트가 연산력으로 구축한 영상화 가상공간…공중정원 내부 구조?


하카마

관리AI 데이터베이스에는 공중정원 내부에 대한 자료가 없는데, 어째서 나는 그걸 볼 수 있는 거지?


하카마

...아니,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다.



하카마

디렉터리 해독 완료... 핵심 자재의 보관 섹터 위치 확인.


하카마

14,950개의 위장 노드 제거.


하카마

경로 계획, 실패... 방해로 인해 해당 구역으로부터 직접 연결을 해야 할 것으로 보임.



하카마

저 다리는... 유일한 연결 키다. 반드시 이곳을 통과해야 한다.



하카마

이 방화벽은 외부 프로그램의 접근을 차단해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링크할 수 없음.


하카마

위장 프로그램 생성, 프로그램 패키지 완성… '데이터 요정' 침입 시작.





하카마

예정된 목적지에 도달하는 중…침입대상이 발각되었다.



하카마

이건...마지막 전투다.




전투 종료





하카마는 쏟아지는 데이터의 중심에 조용히 서 있었다. 비록 게슈탈트 내부 중 하나의 데이터 허브에 불과하나 그녀가 본 모든 책 자료를 겹쳐 놓은 것보다 훨씬 더 번잡했다.


가능하다면 기꺼이 이곳에 머물며 기록된 데이터들을 모두 훑어보려 했지만, 이 순간 그녀는 더 막중한 임무가 있어 바로 검색을 시작했다.


끊임없이 넘쳐나는 방대한 데이터 흐름을 보면서 하카마는 그 '게슈탈트'라는 슈퍼 AI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가를 새삼 느끼게 되었지만, 게슈탈트라고 하더라도 기계교회로부터 존재 가치를 잃은 지 오래됐다는 판정을 받은 인간들로부터 창조된 것이다.



하카마

우리는 정말로 더 고등한 존재일까...?


기계체는 거의 완전한 이성으로 영원히 썩지 않는 신체를 지녔고, 연산 능력은 더욱 인간을 압도한다.


허나 그렇다면 왜 우리가 '각성'을 구해야 되는 것일까? 기계는 도대체 무엇으로 각성해야 하는 것인가...


그녀는 기계 각성을 완전히 실현한 기계체는 더 이상 퍼니싱 바이러스의 침식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하카마는 기계 각성이 그 이상의 어떤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카마는 수없이 많은 자료를 뒤졌지만, 그 누구도 이 질문에 답을 내려주지 않았다ㅡㅡ인간에게도 어쩌면 기계의 사상은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하카마

검색 완료, 목표 자료... 여기 있다.



푸른 빛으로 반짝이는 패킷 하나를 추출했다. 이것이 바로 기계교회가 원하는 우주선 설계 자료다.



하지만 그녀가 손을 뻗어 받아내려 할 때 패킷은 갑자기 사라지고, 주위에 연산력으로 구축된 가상공간도 순식간에 무너져 시커먼 허공만 남는다.


하카마는 곧 행동이 탄로났다는 것을 깨닫고 전투 준비 태세에 돌입했지만, 연산력으로 구축된 이 세계에서 자신은 그 '게슈탈트'라는 슈퍼 AI를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게슈탈트로부터의 공격은 예상과 달리 다가오지 않았고, 귓속에는 사방에서 쏟아지는 잡다한 전자음만 번뜩이고 있었다.


???

안녕하세요...MPA-01, 정정, 지금쯤 당신을 '하카마'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전자음은 마지막 부분에서 차가운 여성성으로 어우러졌지만, 하카마는 그 소리의 근원이 바로 게슈탈트임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하카마

네...그럼 전 당신을 어떻게 불러야 합니까?


하카마는 전술 회로의 조언에 따라 말하면서 주변을 사방으로 둘러보며 시간을 벌려고 하는데, 이 상황에서 탈출 수단을 찾거나 한 발 물러서서서 목표였던 우주선 자료를 전송할 방법을 찾기만 한다면 하카마는 자신의 의식이 여기서 파멸돼도 상관 없을 것이다.


???

저에게 호칭은 의미가 없습니다. 인류처럼 저를 '게슈탈트'라고 부르거나 당신이 좋아하는 코드네임을 지어줄 수도 있습니다ㅡㅡ 나나미라는 기계체처럼 말입니다.


하카마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찾아 헤매던 이름이 뜻밖에도 이곳에 불쑥 나타난 것이다.


하카마

당신은 '나나미'를 알고 있었군요...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

감정 이상파동이 감지되었습니다. 당신의 프로그램은 상당히 불안정합니다…. 처음 설계된 것과 많이 달라졌군요.


하카마는 비로소 이 슈퍼 AI가 나나미의 이름뿐 아니라 그 이전에 자신의 모델 번호까지 알고 있었음을 알아차렸다. 그녀의 탄생에 대한 진실은 모두 이 세상에서 사라졌을텐데…. 그렇다면 단 한 가지 가능성만이 존재한다.


하카마

당신이 저를 최초로 디자인한 존재입니까?


???

합리적인 추론이나 정확하진 않습니다. 당신의 설계자는 여전히 인간입니다... 하지만 기계 의식에 기반한 실험은 제가 주도한 것이 맞습니다.


하카마

기계의식... 그렇다면 나나미 역시 당신들의 실험 대상인데, 당신의 목적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

정정, 나나미는 그 실험의 유일한 실험 대상이 아닙니다… 하카마 당신도 기계 의식의 존재를 증명하는 또 하나의 실험 대상이었습니다.


분명 데이터 양이 극히 낮은 정보임에도 하카마의 사고를 잠시 침체에 빠트렸다.


하카마

나도 실험 대상이었다니...?


???

황금시대 인류가 생각하는 가장 큰 위협은 갈수록 지능화되는 기계에서 비롯되었으며, 언젠가 인간 위에 군림해 대처할 수 없는 전쟁을 일으킬까 두려워했습니다.


???

그래서 기계가 자의식을 갖게 되면 기계는 어떻게 사고하고, 기계와 기계와의 관계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 그리고 기계와 인간의 관계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 의미 있는 사례를 통해 증명해야 했습니다.



하카마의 눈앞에 나나미의 현재 모습이 투영되었다. 나나미의 현재 모습을 처음 보는 것으로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음에도 하카마는 이 소녀가 확실히 나나미임을 분간할 수 있었다.


하카마

나나미...


???

나나미가 바로 이 실험에서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했던 답입니다ㅡㅡ기계의 사랑은 마침내 프로그램의 족쇄에서 벗어나 인간으로부터의 사랑과 선의를 통해 그들에게 미래의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하카마의 앞에는 자신의 기체를 부여한 그 여성 연구원을 비롯하여 수많은 데이터와 인적 자료가 펼쳐져 있었다.


???

퍼니싱의 폭발로 실험이 중단됐지만, 나나미는 여전히 기계 각성의 기점이 될 수 있었습니다…그녀가 자신의 역할을 명백하게 밝힌 지금, 곧 수많은 기계체들의 각성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하카마

그렇다면 인류는...그들은 어떻게 됩니까?


???

아무리 많은 추론 연역을 수행하더라도 인류 멸망의 미래는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인류가 하나의 종족으로서 인간이 안고 있는 결핍을 대변합니다.


기계체로서 하카마는 게슈탈트급의 연산력으로 도출된 미래의 신뢰성을 잘 알고 있다.


???

그러나...


게슈탈트가 한참 망설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무궁무진한 성능의 슈퍼 AI에겐 이례적인 일이다.



???

개체명 나나미는 여전히 그 존재하지 않는 미래를 찾기를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카마는 약간 놀랐지만 이내 자신도 눈치채지 못한 미소를 지으며 홀로그램으로 투영 중인 나나미를 향해 손을 내밀었고, 그녀가 과거 수없이 상상했던 것처럼 나나미의 얼굴을 만졌다.


하카마

확실히… 나나미만이 내릴 수 있는 자의적인 선택인 것 같습니다.


???

그렇다면 MPA-01 하카마,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내렸을 것입니까? 이것이 아마도 그 실험의 마지막 단계일 것입니다.



햐캬먀

내가 내리는...선택?


그녀는 한 번도 이런 의문을 생각해 본 적이 없고, 그녀는 자신이 인간과 미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하나의 변수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기계의 사랑은 마침내 프로그램의 족쇄에서 벗어나 사랑과 선의로 서로에게 미래의 길을 열어주었다.


나나미는 이미 그녀가 원하는 미래로 향하는 모험의 여정을 펼쳤고…. 그렇다면 나나미를 찾아 헤매던 자신은 무엇을 해야 할까?


퍼니싱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기계와 인간의 미래는 어땠을까.


미래를 내다볼 수 없는 사람은 어떻게 램프를 들고 미지 속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흉내만 내는 기계로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




'인간의 모든 것을 느끼고... 너만의 선택을 하거라.'



인간

나는 줄곧 방관하고 있었어. 그렇다면 너는 어떤 선택을 할 거니?


인간

기계선현만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네가 내린 선택 역시 무언가를 변화시킬 수 있어.


인간

너는 변화를 바라니?


인간이 사라진 후, 기계 존재의 의미는 누가 부여할 수 있을까?


인간이건 기계건 모두 공허로부터 풍요을 이루었다.


기계는 줄곧 인류의 발자취를 쫓았다.


'방주 계획'이든, 다른 어떤 행동이든.



하카마

마침내...깨달았어.


하카마

인류의 경험은 선택으로 이루어져 있었어.


하카마

과거의 경험이 인간의 독창성을 만들어냈듯이, 기계도 다른 경험에 영향을 받을 수 있을까?


이것은 하카마 자신의 질문이 아닌 오래 전 그녀가 메모리에 기록했던 데이터인데, 이 순간 예고 없이 그녀의 생각에 난입했다.


인간

생각하고 있었어... 이걸 너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인내심 넘치는 인간의 음성은 그녀에게 친숙하게 느껴졌다.


부모는 옹알이를 하며 언어를 배우는 아기를 대할 때도 이렇게 부드럽고 애정 어린 말투로 아이가 주변의 모든 것을 인지하도록 이끈다.


어린아이들은 요람 속에서 손을 뻗어 시야에 흔들리는 걸개 장식을 만진다. 나비처럼 공중을 날아다니며 결박을 벗어나 더 높은 곳으로 날아가는 것처럼.


인간

예를 들어... 나비를 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분류학적 정보뿐만 아니라 나비도 일종의 생명체라는 인식이야.


인간

그것들은 아름답고 너희들은 이 별의 수많은 생명만큼이나 아름답고 특별해.


하카마

저는 미에 대한 인류의 정의를 종합할 수 있었습니다.


하카마

저는...'미'를 분간할 수 없었습니다.


인간

언젠가 넌 이런 능력을 가질 수 있을 거야.


하카마

'저'는 특별합니다…. 마찬가지로 기계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생명이 있고 독특한 '미'를 품고 있습니다.


하카마

인간은 우리를 사랑하고, 또한 기계에서도 사랑이 싹틉니다… 인간을 사랑하고, 서로를 사랑합니다.




그러자 회색빛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가진 그 소녀가 하카마의 기억 속에서 번뜩였고, 그녀는 나나미가 곧 해답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 나나미를 만나 자신이 느낀 모든 것을 그녀와 나누고 싶어한 적이 없었다.


그것은 논리 연산과 데이터 분석보다 더 우선하는 것으로, 어쩌면 '마음'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푸른 빛으로 반짝이던 패킷이 허무한 공간에 다시 나타났다. 하카마가 손을 뻗으면 닿는 거리였다.



???

당신의 선택이 미래를 결정할 것입니다.


하카마는 고개를 들고 그 푸른 빛과 마주하며 미소지었다.



하카마

아니...저뿐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선택 또한 미래를 좌우합니다. 그러므로...


하카마는 손을 내밀어 자신의 선택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