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호는 거실에 들어갔다.


땅바닥은 검고 더러운 널빤지로 이루어져 있어 해묵은 곰팡이 냄새를 풍기고, 밟을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언제라도 퍼질 것 같았다.


거실의 더러운 구석 속에서, 거미줄 쳐진 온통 먼지투성이가 된 축하 채색봉이 기쁨의 불씨를 생기 없이 드러내고 있다.


시커먼 나방 한 마리가 날개를 퍼덕였다. 21호가 이 마을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봤던 것과 똑같이 생겼다.


부러진 의자를 넘어, 바닥에 쌓여 있는 감염체 시신을 넘어, 벽면에 묻은 시커먼 핏자국을 넘어, 천장에 매달려 있는 종이쪼가리의 가장자리에 머물렀다.



다시 두 날개를 파닥거리자 아름다운 색깔의 나비가 날아올랐다. 나비가 가는 곳마다 붉고 더럽게 뭉쳐진 거미줄은 점점 사라지고 뒤로 물러나더니 벽으로 사라졌다.


벽의 무늬가 선명하고 밝아졌다.


나비가 긴 식탁을 넘자 촛불이 하나둘 켜지고 앙상한 불꽃이 흔들리며 따뜻한 빛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TV에서 즐겁고 시끄럽지 않은 음악이 들려오고,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려 있던 뽀글이 장난감이 깨끗하고 부드러운 모습을 되찾고, 꽃병 속의 메마른 가지에 생기가 돌면서 부드럽고 귀여운 데이지꽃을 피운다.


나비는 그렇게 날아다니다가 계단 모퉁이의 그늘로 사라졌다.



???

루나, 청소 시작했어?


그늘에서 나온 여자는 어깨까지 내려오는 빨간색과 검정색 단발머리에 앳된 얼굴을 하고 있다. 머리에는 종이로 만든 생일모자를 비뚤비뚤하게 쓰고 있었고 어깨에도 여러 개의 채색 종이쪼가리가 걸려 있었다.


아직 어려보이는 나이에도 너무나 진지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지휘관

(...루시아?)

(루나?)


뒤돌아 보았다. 벽난로 가의 목마가 삐걱삐걱 흔들리고 있었고, 부엌에서는 주전자의 스팀 소리가 들렸고, TV에서도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 외에는 소리가 나는 물건도, 다른 사람도 없었다.


???

루나…거기 가만히 있지 마.


지휘관

...


???

못 들은 척해도 소용 없어.


지휘관

...나?


불쑥 튀어나온 것은 21호의 말이었고, 21호의 의식의 바다는 상황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데서 오는 혼란이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

여기에 다른 사람은 없잖아.


자신이 진실하게 반응하기 전에, 유래 없는 억울하고 기쁜 감정이 먼저 자신의 행동을 지배했다.


지휘관

하지만 진짜...진짜 정리하기 어렵다구!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대사에 덜덜 떨었는데, 다음 말은 마치 캡슐 뽑기 자판기에 돈을 넣어 하나 둘씩 토해내는 캡슐알처럼 자연스럽게 굴러나왔다.


지휘관

이것들을 어떻게 담아야 할지 모르겠어...


소파 위에 언덕처럼 쌓여 있는 빈 선물상자는 자신의 말을 알아들은 듯, 선물상자와 리본은 꼭대기의 중력을 지탱하지 못하고 우르르 옆으로 미끄러졌다.


???

네가 기다리지 못해서 그래, 굳이 자기가 먼저 선물을 다 뜯어버려서 그렇잖아.


지휘관

헤헤, 어차피 다 주는 거잖아!


???

...그럼 선물상자같은 건 신경쓰지 마. 내가 다 침실로 옮길게.


지휘관

응! 역시 언니가 최고야!


하찮은 일이지만 제멋대로 내버려둔 덕분에 평범한 행복감과 만족감이 몸에 배었다.


???

하지만 엄마 아빠 돌아오기 전에 바닥을 깨끗이 청소하고 식탁도 꾸려야 해.


지휘관

알고 있거든...


혀를 내밀고 돌아서서 청소도구들이 즐비한 창고를 향해 신나게 걸어갔다.



사물 사이의 문을 잡아당기려고 손을 내밀었을 때 손끝은 문짝을 지나갔고, 허황된 모습은 그 순간 퇴색되어 색깔이 어두워졌다.


눈앞의 사물칸은 벽에 걸린 텅 빈, 낡은 철판으로 변해 있었다. 그 위에는 빨간 크레파스로 삐뚤삐뚤한 어린이의 그림이 그려져있고, 옆에는 '지옥에 와서 Voooo를 만나봐'라고 써있어 코믹하면서도 섬뜩해 보인다.


자신에게 모든 것이 현실로 돌아왔음을 일깨워 주었다. 자신의 행동을 지배하던 감정도 사그라들었다.


21호 얼굴의 웃음은 이내 식어 버리고 무감정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21호

이거, 도대체 무슨 일이야?


지휘관

어...(생각하려고 노력중)


21호

네 머릿속에 있는 거, 나에게 영향을 끼쳤어.


21호

익숙하지 않아. 아주 이상한 말을 해야 돼. 그리고 웃어야 돼.


21호

난 웃는 게 싫어.


21호

하지만 통제할 수 없어.




(1)

지휘관

(나도 똑같아.) ← 선택

(그렇게 웃어보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


21호

같아?


(2)

지휘관

(나도 똑같아.) 

(그렇게 웃어보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 ← 선택


21호

?




21호

그런데 그건, 내가 아니야.


21호

너도 통제할 수 없는 거야?


지휘관

응, 말려들었어... 광경을 볼 때 나도 공감할 수 있었어.


지휘관

그리고 자신을 통제할 수 없었지.


21호

하지만...


21호

그녀들이 뭘 하려는지 모르겠어. 이런 방에서 그런 짓을 시도해 본 적이 없었어. 그런데 몸 속에 뭔가가 나를 편안하게 해주었어.


21호

그건...


21호의 표정은 점점 일그러져 그녀가 알고 있는 단어들을 찾아 그녀가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려고 애쓰는 듯했다.


21호

...




지휘관

???



21호

이렇게 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었어.


일그러진 웃음은 그녀의 얼굴에서 지워졌고 남은 것은 오직 풀리지 않는 의문과 상실뿐이었다.


21호

하지만 이건 그런게 아니야, 적에게 겁을 주는 거야. 적이 보면 겁먹어. 그럼 21호는 적들을 죽일 거야.


공백을 겪으며 '웃음'의 의미조차 이해하지 못했던 21호는 여기서 일어나는 모든 것이 너무나 낯설고, 행복, 즐거움, 안심도 이해하거나 그녀의 마음 속에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녀는 점차 이런 감정에 만족하게 되었고 이미 그런 경험 속에서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런 변동의 원인이…. 자신이기에, 그녀에게 설명하는 것이 옳다.



지휘관

미안해 21호.


21호

왜 사과해?


지휘관

억지스런 말은 하고 싶지 않지만.


지휘관

하지만 너에게 이런 체험은 특별한 거야.


지휘관

너의 당혹감을 해결하는 게 나의 책임이 될 거야.


21호

책임, 나를 책임지겠다는 거야?


지휘관

너에게 모든 게 잘 해결될 거라고 장담할게.


지휘관

너의 물음, 그리고 그 다음에도, 최선을 다해 대답해 줄게.


21호

...21호, 알았어.


그러나 지금이 아니라 먼지가 다 걷힌 뒤일지도 모른다.


그레이 레이븐의 그 녀석들은... 아직도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


지금, 더 중요한 수수께끼가 남아있다.



전투 개시


21호

이제 21호는 뭐 해야 돼?


21호

알았어, 단서를 따라 조사할게.



21호

감염체 출현.


21호

21호, 준비 완료.


21호

21호, 정리 완료.


21호

계속 조사할게.


21호

차창에 찍힌 손도장...


21호

'그녀'가 남긴 걸까?




21호

사진 한 장...


21호

여기에 있는 건...


21호

'그녀들'이 웃으며 기뻐하는 모습.



21호

으,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어.


21호

머릿속이...통제되지 않아...



루시아

루나, 식탁을 차리고 케이크를 부엌에 놓는 것을 잊지 마.


루시아

부엌에 있는 저녁 몰래 먹으면 안 돼.


21호(???)
안 훔쳐 먹을 거야.


루시아

루나, 거실 청소하기 전에 몰래 먹으면 안 돼.




루시아

루나! 엄마 아빠는 곧 돌아오시니까 거실을 깨끗이 청소하기로 했잖아.


루시아

더 이상 게으름 피우지 마. 안그러면 엄마 아빠 집에 와서 화 낼거야.


21호

...현실로 돌아왔어.


21호

의자, 식당으로 가는 길을 막고 있어.


21호

21호, 의자 치울까?



21호

그 사람은...


21호

21호, 케이크를 식탁 위에 올리래.


21호

이게, '케이크'야?


21호

...냄새 별로야.



21호

킁킁, 냄새 좋아졌어...


21호(???)

언니, 케익을 가지러 부엌에 갈게.


21호

제대로 뒀어!


21호(???)

언니! 생일파티 시작해도 돼?





전투 종료




21호는 현관 입구에 오랫동안 서 있었다.


지휘관

...21호?


지휘관

21호!



21호

...응?


21호

...인간의 어린 시절, 모두 이런 모습일까?


21호

난...그런 경험이 없는데.


21호

이해할 수 없어.


21호

이것이 필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아주 좋은 느낌이 들었어.


21호

손...발...그리고 여기...


21호는 자신의 가슴을 어루만지고 '꼬맹이'(치비코)도 만졌다.


21호

따뜻한....느낌...


21호

그리고 가벼워...날아갈 것 같아.


21호

마치...햇볕을 쬐는 것 같기도...



지휘관

그런 느낌을 행복이라고 해.


21호

행복?


21호

왜 행복하다고 느끼는 거야? 모든 사람들은 어린 시절을 행복하다고 느껴?


지휘관

...


21호

나는 그러고 싶지만, 그래도 싫어.


지휘관

왜?


21호

통제를 잃게 돼.


21호

...21호, 전투만 하면 돼.


무슨 말을 하려다 끝내 입을 열지 못했다. 어떤 말을 건네도 쓸모없고 생기없을 것 같았다.


21호의 의식의 바다에서 보았던 순백색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그것은 텅 비고 가진 것이 하나도 없는 과거였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겪어보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의 결정을 쉽게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

ㅡㅡ


잠시 휴식을 취하자 다시 미칠듯이 고통스러운 감각이 자리를 휘감았고, 집 밖에서 들려오는 당혹스러운 외침이 뒤따랐다.


21호

휴우.


21호는 귀를 옆으로 돌려 시공을 초월한 부름에 귀를 기울였다.


???

ㅡㅡ루시아!


이번에는 여자의 외침이 똑똑히 들리고 다급하게 들렸다.


???

루시아!! 나오지 마, 동생을 데리고 얼른 올라가!


모든 것이 뚝 그쳤다.



??

언...언니...



???

ㅡㅡ날 따라와!


무수한 비명 소리가 갑자기 울렸다. 발자국 소리가 바로 자신의 곁에서 울렸고, 한 힘이 자기 자신을 밀었다. 미약하지만 확고했다.


그것은...루시아였다.


그러자 발이 움직였고, 바람이 뺨 양옆으로 불었다. 겁에 질리고 죽기 일보 직전, 망연자실한 기분이 자신을 옭아맸다.


눈을 뜨자, 색깔있는 복도의 끝이었다. 자신은 작은 손을 잡았고, 곁에는 어린 시절의 루시아가 있었다.


???

따라와ㅡㅡ






21호 진짜 커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