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관객의 천진난만한 부름을 들었고, 배우가 부드럽게 화답하는 것을 들었다.




셀레나, 이 편지를 받았을 쯤엔 넌 무엇을 하고 있을까?

편지로 너에게 소식을 보내는 건 처음인데... 그래, 편지로 뭔가를 전하는 건 나도 처음 해보는 거야.

내 생각엔 지금 이런 식으로만 내 생각을 너에게 전할 수 있을 것 같았어.

요즘에 나는 마침 이야기 한 편, 연극 한 편을 집필할 준비를 하고 있었어.

혹시 이 연극의 대본을 본다면 놀라거나 웃기기도 할 거야. 연극 분야에선 아직 풋내기이고, 스토리텔링도 미숙하거든.

그리고 웃고나서 선배로서 적극적으로 동참해서 나에게 조언할 수도 있겠지.

그렇게 해준다면, 나로선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거야.

이 편지를 쓸 때 마침 내 손 옆에 그림이 하나 있었는데, 지구상의 어느 오페라 하우스의 자료 사진이었어.

어린 시절 이 오페라하우스의 모습을 보았을 때, 지구로 가서 그 오페라하우스를 구경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었지.

오페라 하우스도 그렇지만 그곳의 위치가 184번 퇴각 지점과 가까웠기 때문이야.

그곳에는 네가 직접 보고 싶은 수많은 예술유적이 남아있었어.

지금와서 생각하면 유지보수 자원과 인력이 부족해서, 그 오페라하우스는 어쩌면 더 이상 이미지처럼 웅장하고 아름답지 않을 수도 있어.

하지만 지금 너의 여행길이 그곳을 지나갈 수 있다면, 지금 그곳에 있다면, 넌 그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

말해줘, 셀레나.




지금도 만신전이 존재한다면 아마도 이와 같을 것이다.


드넓은 돔 위에는 화려하고 거대한 수정등이 드리워져 있었고, 빛은 여러 번 굴절되어 그 위에 그려진 그 명화를 비추고 있었다.


그것이 원본의 모습과 다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으며, 여기에서 그 세부 사항이 문헌의 내용과 일치하는지 여부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특출난 화려함과 웅장함에 기여하는 복잡한 그림이 새겨진 기둥처럼, 단지 그곳에 존재해야 할 뿐이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부화(浮華)함이 곳곳에 널려 있는 이곳은 아마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마지막이자 가장 환상적인 오페라극장일 것이다.



???

이 오페라하우스가 위치한 장소는 바로 이 '아카디아 대퇴각'의 철수지점에 있었습니다.


???

맞아요, 틀림없어요!


천장의 갈라진 틈 사이로 산들바람이 불자 대들보 위에 드리워진 장막을 헤쳤다.


막의 틈 사이로 햇빛이 새어나오고, 빛의 반점이 마치 스포트라이트처럼 무대의 갈라진 틈을 헤매다가, 무대 위에 오래도록 서 있던 그 소녀에게로 떨어졌다.


???

ㅡㅡ제가 감히 당신을 어떻게 여름에 비할 수 있을까요?


???

ㅡㅡ당신은 그보다 더욱 사랑스럽고, 더욱 온화합니다.


그녀는 햇빛을 받으며 무대 위 빈 공간을 가볍게 넘어 무대의 선두에서 발끝을 멈추고 반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녀가 부드럽게 눈을 감았을 때 하늘에서 새어 나오는 빛이 그녀의 치마에 작은 수 놓은 단어를 비추었다.


: 플로라



플로라

여름은 짧고, 하늘의 눈은 이토록 강렬합니다. 자연은 변화무쌍하고, 시들음이 없으면 아름다움도 없지요.


플로라

그러나 당신의 기나긴 여름은 결코 시들지 않으며, 청명한 향기를 잃지 않습니다. 당신은 이 불멸의 시편 속에서 함께할 것입니다.


플로라

인간이 존재하는 한, 그리고 눈으로 볼 수 있는 한, 이 시는 영원히 살아 숨쉬게 될 것입니다.


플로라

ㅡㅡ내빈 여러분, 연극을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도 없는 극장을 향해 소녀가 말했다.


잠시 몸을 기울인 그녀는 얼굴을 찡그리고 한 걸음 물러났다.



플로라

으...아니야, 아니야, 좀 더 진심을 담아.


플로라

ㅡㅡ사랑하는 내빈 여러분, 이 연극을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플로라

그래, 맞아. 이래야지.


소녀는 한 바퀴 돌아 다시 망가진 객석을 향해 손에 소책자를 들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플로라

막이 오르기 전에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세요.


플로라

이것은 제가 아는 한 분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스캐빈저이고 군인이었습니다.


플로라

그는 에덴 승선권이 없는 주민으로서 하늘의 사람들보다 훨씬 불행한 삶을 살았었습니다.


플로라

보육구역의 비호를 받는 스캐빈저로서 그는 다른 사람보다 훨씬 운이 좋았었습니다.


플로라

에덴 위에서 내리는 감로(甘露)가 메마른 대지에 피어나 보호소가 되어 이 대지를 떠도는 그를 보호해 주었지요.


플로라

음...음...사실 그이 자신의 삶을 요약한 것이기에 저는 그것의 의미를 잘 모르겠지만, 어찌됐든 그는 운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중얼거림이 표정을 망쳤다는 것을 깨닫고 뺨을 비비며 다시 대본을 집어 들었다.


플로라

오랜 방랑생활은 그에게 연민 섞인 말을 듣게 했고, 이 말들은 세상에 빚을 진 것으로 스스로 여겼습니다. 이 빚은 응당 하늘의 사람들에게도 갚아야 했으나, 자신 혼자 받았을 뿐이었지요. 마치 다른 사람에게 나누면 더욱 부자가 되는 것처럼요.


플로라

그러나 이 말들이 그의 마음을 덮을 수는 없었습니다.


플로라

그는 예술이라는 이름의 태양을 만났습니다. 그 태양 아래 작물이 가득 자라는 들판이 있고, 푸른 풀이 가득 깔린 평야가 있고, 꽃으로 테두리를 두른 둑이 있었습니다.


플로라

그 태양은 미워하는 구름을 몰아내어 그의 온 몸을 따뜻하게 비추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태양 아래 활짝 핀 꽃 한 송이가 매우 눈부셨습니다.


플로라

그 꽃은 그에게 한 영웅의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영웅은 파트너를 위해 희생했고, 그의 마음속에는 아무런 그늘도 없었습니다. 멀어져 가는 파트너를 향해 그는 진실된 축복을 내렸습니다.


플로라

꽃과 태양은 그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었고, 그의 가슴에 불을 지펴 또 다른 태양이 될 결심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플로라

그는 한 명의 영광스러운 구조체 군인이 되었습니다.


플로라

하지만 그것은 단지 태양을 향해 나아가는 첫걸음일 뿐, 그는 앞으로 나아갔고, 수많은 꽃송이를 흩뿌리며ㅡㅡ그는 그 꽃 같은 이야기를 만드는 법을 배웠습니다.


플로라

그리고 이 전진하는 군인은 그간의 치열한 전장에서 몸을 바쳤습니다.


플로라

그는 비록 죽었지만, 그가 지나온 이야기들은 여전히 우리를 인도하며, 예술로 가는 길로 나아갔습니다. 그 한복판에…… 바로 제가 있었습니다.


플로라

아니...나는 분명...그와 함께 나아간 첫 번째 사람이었어.


여자의 목소리가 살짝 흐느껴 울리더니 다시 대본을 들었다.


플로라

그러나 이 길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그가 떠나자 슬픔에 빠진 사람도 있었습니다.


플로라

그를 깊이 사랑한 것은 그의 아내였으며 한때 그들은 태양과 같은 예술을 자녀들만큼이나 사랑했습니다. 그의 아내는 그에 못지 않은 재능과 목청을 가지고 있었는데, 참으로 아름다운 노래였고, 특히 남편과 듀엣을 할 때 그녀의 얼굴은 그토록 즐거울 수 없었습니다...


플로라

그러나 그 불쌍한 아내는 그가 죽은 뒤 그의 시나리오들을 볼 때마다 슬픔과 고통이 눈밑에 배었습니다.


플로라

그녀는 전쟁터에서의 그의 임종이 비극적이고 고통스러웠다고 말했습니다. 이야기 속의 고귀한 정신은 죽음 앞에서 이렇게 보잘것없었습니다.


플로라

그녀가 이 말을 건넸을 때, 그녀의 눈에 서려있던 것은...비통함이었습니다.


플로라

저는...엄마의 그런 눈빛을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건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제 마음을 너무 아프게 만들었습니다.


플로라는 그녀의 말을 멈추었고, 그녀의 육친이 죽었다는 사실이 그녀의 어린 마음에 전류처럼 번쩍였다. 부드럽고 힘찬, 그녀를 가볍게 추스를 수 있는 그 팔은 이미 총성 속으로 사라졌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시각으로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 자신이 이렇게 슬퍼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결말을 이야기할 때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 팔을 잃은 그녀는 보살핌을 갈망하고 또 다른 사람의 따뜻한 품을 갈망한다. 그러나 그 품은 이제 눈물에 젖어 있다.


플로라

엄마...엄마...아버지가 가시는 날 밤부터 밤마다 우는 소리가 들리지만…그건 내 울음소리였어.


플로라

매일 밤마다 엄마는 나를 인내심 있게 위로해주고 안아주고, 난…정말 고마웠어.


플로라

하지만, 내가 아빠를 그리워할 수 있는 것을 찾아냈을 때, 나도 내가 다른 사람들을 위로해 볼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밤에 울음소리를 들었어.


플로라

엄마…그건 당신의 울음소리야. 내가 잠든 후에야 당신이 내던 울음소리였어.


플로라

난... 아빠를 되찾고 엄마가 너무... 괴로워하지 않게 해주고 싶었어.


플로라

아니...아니야, 이미 되찾았어. 아버지는 사실 항상 우리곁에 있어주셨어...아빠가 써준 대본에서... 


플로라의 손가락은 손에 있던 시나리오를 꽉 쥐었다.


플로라

그래서...그래서 난 이곳에 왔어. 예술의 도시로 온 거야.


플로라는 떨면서 두 손을 들어 이 무너진 극장을 눈앞의 어둠에 보여줬다.


플로라

이곳은 아카디아 대퇴각 당시 수많은 철수 지점 중 하나였어. 당시의 찬란한 문명의 흔적도 남아 있어.


플로라

이렇게 수많은 예술이 빛나는 한 가운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아버지의 흔적을 보여 줄 거야.


플로라

그 이야기 속 아빠를 감동시킨 영웅담들, 우리가 이웃들과 함께 부른 노래들, 우리가 직접 만든 소도구들... 모두 아빠의 영혼의 일부분이야...


플로라

희생 뒤에는 고통만 있는 게 아니라 비바람을 직시하는 용기가 찾아오고, 비바람이 지나고 나면 평화…. 희망이 찾아온다고 말해주셨어.


플로라

내가 그 희망을 잘 알고, 이 시나리오의 정신을 이해한다면…. 엄마…. 어쩌면 아빠는 우리 곁을 떠난 적이 없을지도 몰라. 우리는 그의 희망을 가지고 함께 나아갈 수 있을 거야.


말을 마치자 플로라는 다시 한 번 인사를 했다.


플로라

그럼, 이번 공연을 시작할게… 물론, 리허설이야.


그녀에게 온 화답은 밖에서 자갈이 바람에 살랑이는 소리였다.


또 한줄기 바람이 그녀의 옷자락을 스쳤다. 소매 커버에서 드러난 팔뚝에는 퍼니싱 감염 흔적이 역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