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M.01:36 제72번 도시 외곽


주변의 경치가 빠른 속도로 뒷걸음치고 있다. 오랜만에 지상에 돌아와 72번 보육구역으로 가는 길이었다.


단말기에서 통신 접속 소리가 들려왔다.



루시아

지휘관님? 상황은 어떻습니까?


지휘관

(1)(모든 게 순조로워)

(2)(벌써 다 왔어)


루시아

그럼 다행이네요.


지휘관

너희쪽 상황은 어때?


루시아

C구역에서의 위협을 모두 배제하였고 현재 72번 도시 서쪽에는 감염체 반응이 없습니다.


루시아

저희는 지금 남은 물자의 보급 현황을 점검하고 있습니다.


지상 간 수송이 속속 재개돼 지난 수십 시간 동안 보육구역 10곳으로부터 지원 요청을 받았고, 자신도 이와 동일한 임무에 참가할 것을 제의하여 마침내 보육구역에 가서 재건축 지원에 협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72번 도시의 여과탑은 재가동에 성공했고, 부상이 심한 피난민이나 부랑자 상당수가 그곳의 의료지구로 옮겨져 치료를 기다리고 있어 물자 수요는 점점 늘어나는 실정이었지만, 위쪽과의 연락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히포크라테스의 날카로운 시선 아래에서 임무를 확인했지만 의외로 말리지 않았고, 결국 긴 한숨만 내쉬며 손을 내젓고 회복실을 빠져나왔다.


루시아는 기존의 임무대로 지원 소대에 배치돼 이합생명체의 습격을 받은 지역에 탐지장치를 설치해 연합소탕 방식으로 위협을 제거하고 육상 물자 수송의 안전을 도모했다.


루시아

지휘관님, 부디 몸조심하세요.


지휘관

(1)(응)

(2)(너희들도 안전에 주의해야 해)


통신 중인 루시아는 웃음을 터뜨렸고, 곧이어 그녀의 단말기에서 새로운 임무지시가 들려왔다.


루시아

다음 임무 장소로 이동할게요. 연결을 끊겠습니다, 지휘관님.


지휘관

(1)(알았어)

(2)(상황을 수시로 동기화해줘)


시스템

통화 종료


그 순간 갑자기 눈이 번쩍 뜨였다. 차량이 버려진 구역을 통과하자 햇빛은 고층 건물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우뚝 솟은 철제 여과탑이 눈에 보이게 만들었다.


구조체

거의 다 왔습니다.



동행한 수행부대원들과 함께 보육구역 입구로 향했다.


지휘관

좀 춥네...


최근 지표면의 온도가 많이 낮아져 비교적 맑은 오후에도 찬바람이 불어와 몸서리치게 만든다다.


입구 앞에서는 이미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은 앞으로 걸어가서 식별번호를 보여주었다.


시스템

방문자 신원이 확인되었습니다. 【지휘관 이름】, 072번 도시 보육구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빈약한 옷차림의 중년에게 이번 임무의 주요 내용을 확인한 뒤 보육구역의 중심지로 안내받았다.


생각보다 붐비는 이 보육구역에서 피난민 상당수가 임시 천막에서 생활하고 있다.



담당자

당신이 바로 그 유명한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이군요.


담당자

공중정원 지휘관이 온다는 것은 들었지만 당신이 올 줄은 몰랐습니다.


지휘관

(?)


담당자는 자신의 의혹을 알아차린 듯 하하 웃었다.


담당자

당신은 지금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으니, 모르는 사람을 찾는 게 더 어려울 걸요.


지휘관

(1)(쓴웃음을 짓다)

(2)(침묵하다)


담당자

본부에서 당신을 보냈으니, 아마...


담당자는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숙였고, 말끝은 거의 들을 수 없는 혼잣말로 변했다.


지휘관

(뭐죠?)


담당자

죄송합니다, 별거 아닙니다...다만 지난번 전투에서 크게 다쳤다고 들었는데, 아직 완전히 낫지 않으셨는데도 이렇게 빨리 지상에서 당신을 다시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지휘관

(1)(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거든요)

(2)(이미 거의 다 회복했습니다)


지휘관

(1)(더구나 지금 곳곳에서 일손이 빠듯하잖아요)

(2)(전력은 많을수록 좋습니다)


이제 몸에 별 무리가 오지 않는 이상, 더 이상 생명의 별 침상에서 안심하고 누워 대원들로부터 임무 브리핑을 받고만 있을 수 없다. 더구나 이전에도 여러 차례 같은 유형의 지원 임무를 수행한 바 있다.


담당자

역시 소문에서 들리는 것과...똑같군요.


담당자

처음엔 모든 게 엉망이었습니다…. 저희는 새로 들어온 피난민들을 둘 장소도 없었지요.


담당자

하지만 최근 공중 수송이 재개되고 물자 보급이 서서히 이뤄지면서 그나마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담당자는 다소 피곤한 미소를 지었고, 가늘게 뜬 눈에는 휴식 부족으로 인한 검푸른 빛이 온통 감돌고 있었다.


지휘관

엔지니어 부대 분들이 재건에 협조해주신다고 하더라고요.


담당자

아, 네.....서쪽 거점에서 오고 있다고 하는데 본래 1주일 전에 도착했어야 했는데 그쪽 에너지 발전소에 무슨 문제가 생겨서 지체된 것 같습니다.


담당자

여기저기서 인력은 부족하고...물자 조달도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지금 어딜 가든 제각기 어려움을 겪고 있겠죠...


담당자

그런데……다행히 며칠 전에 일부 엔지니어 부대원들이 미리 와있어서 이틀 동안은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습니다.


담당자가 지시하는 방향으로 바라보니 의외로 분주한 사람들 사이에서 낯익은 모습이 눈에 띄었다.


지휘관

카레니나....?


멀리서 마치 표지판처럼 세워진 역원 장치가 눈에 띄었고, 백발의 소녀는 사람보다 더 높은 보급함과 보육구역 근무자를 끌어당기며 말을 하고 있었고 상대방은 난처한 기색을 보이며 뭐라고 대답했다.


대답을 들은 카레니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목록을 상대의 손에 쥐어준 뒤 자리를 떠났다.


잠깐 사이에 소녀의 모습은 분주한 사람들 사이로 사라졌다.


지휘관

(1)(온 사람이 그녀였군요...)

(2)(무슨 일 있었나요?)


담당자

거점의 재건 작업이 잡혀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이곳에 왔다고 합니다.


담당자

임시의료지구의 건축보강, 수복 및 재건 평가, 그리고 재건에 필요한 물자명세서, 보급신청…. 이곳에 주둔하는 인원은 너무 적어 처음에는 부상자를 배치하는 것만으로도 부담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녀는 이곳에 와서 대부분의 복구사업을 자신이 도맡았고, 저희는…….


담당자

이봐, 라이트, 몇 번이나 말했니, 놀거면 공원에 가서 놀라니까!


멀지 않은 곳에서 아이들이 시끌벅적하게 뛰어가는 소리가 들렸고, 말을 이어가는 도중 담당자는 고개를 돌려 그 방향을 향해 소리쳤다.


아이들은 구르던 발을 탁 멈추고 고개를 숙여 꾸중을 들으면서 제어기를 조종했다. 공중에서 기계가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조그만 드론 한 대가 허공을 날렵하게 한 바퀴 돌더니 아이들 쪽으로 날아갔다.


담당자

그리고 조나단......또 어디가서 너희 둘이 이렇게 소란을 피우면 너네들 큰누나가 그거 다시 압수할 테니까 조심하렴.


아이들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고, 바닥에 내려앉은 드론을 안고 펄쩍펄쩍 뛰자 담당자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돌아섰다.




지휘관

(1)(큰누나요?)

(2)(드론?)


(1)

담당자

아이들이 카레니나를 부르는 말입니다. 장난감 드론을 고쳐준 이후로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습니다...


(2)

담당자

네…… 아이들이 폐기물 처리소에서 주워 가지고 노는 드론도 카레니나가 고쳐줬는데, 덕분에 겨우 아이들에게서 미소를 볼 수 있었습니다.




지휘관

그녀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지......


담당자

단지...그녀가 도착하자마자 이전 재건 계획을 뒤집었습니다. 진척도가 너무 느리다며 혼자 일에 몰두하고 있는데 한 번 몰입하면 누가 불러도 꿈쩍도 안합니다...


담당자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일부 관련 지식도 있는데, 막상 도와주려고 해도 의사소통이 잘 안 돼 늘 거절당하죠.


담당자

그녀의 업무 스타일은 또 매우…음… 비록 실질적인 위험을 가져오지는 않았지만, 항상 알 수 없는 기묘한 폭발을 수반합니다.


지휘관

(결국 카레니나는 카레니나네...)


담당자

모두가 받고 있는 압박이 큰데, 이대로 가다보면 마찰이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휘관

(1)(그녀는 단지 최대한 빨리 상황을 호전시키고 싶을 뿐입니다)

(2)(그냥 소통이 서툴러서 그래요)


(1)

담당자

휴우...물론 저도 알고 있습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도 모두 그것을 바라고 있죠. 하지만...


(2)

담당자

휴우...저야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매우 책임감있는 대장이죠. 그녀가 이곳에 온 후부터 저희가 느끼던 부담이 상당수 완화되었습니다. 다만...



담당자

더 이상 그녀 혼자 짊어지게 하는 것은 모두에게 좋지 않습니다.


담당자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담당자

당신은 지휘관이고, 그녀가 당신의 말을 듣고 싶어할지도 모르니, 그녀와 함께…. 많이 소통해 줄 것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지휘관

알겠습니다.



카레니나가 떠난 방향을 따라 걸어가 임시 수용소에 도착했다. 이 지역은 수복 당시 고전했고, 여과탑 주변 건물 대부분이 수복 중 파괴돼 겨우 비를 막을 수 있었던 곳이라는 게 관계자의 전언이다.


접이식 침대에 중상을 입은 일부 병사와 부랑자들의 고통스러운 신음이 그들의 잠자리에서 넘쳐났다.


???

그건 받아들일 수 없어...


???

우리를 내쫓을 셈이야!?


한차례의 억눌린 울부짖음이 구석에서 들려와 소동을 일어나 바라보니 자신이 찾고 있던 소녀가 있었다. 그녀는 몇 명의 주민들에 둘러싸여있었고, 저마다의 얼굴에는 비애와 분노의 표정이 가득했다.


지휘관

(1)(저기인가...)

(2)(무슨 일이지?)



카레니나는 어떤 일 때문에 앞의 주민과 다투는 듯 얼굴을 찌푸리며 무언가를 말하려다 문득 주민들을 넘어 포위망 바깥에 서 있는 자신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녀는 깜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카레니나

어떻게...


순간 카레니나는 무언가를 참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눈을 떼고 다시 앞에 있던 주민에게로 돌아섰다.


그녀는 심호흡을 하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카레니나

결정을 바꿀 생각 없어.


카레니나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반드시 여기를 폭파시켜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