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체

ㅡㅡ!


지휘관

저놈들을 포위해! 3시 방향에 입구를 열어놓고...


명령을 들은 구조체 병사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3인 1조로 이뤄진 화력 단위를 전개하여 흩어져 있던 감염체를 에워쌌다.


병사들의 화력은 한계가 있어 다수의 감염체에게 절대적인 피해를 입히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집중 사격으로 인해 감염체들은 한 발 한 발 물러나며 사전에 정해진 위치에 점점 가까워졌다.


지휘관

좋아, 이제 사격 중지.


구조체 병사들은 손에 쥔 방아쇠를 당기는 것을 멈추었다. 감염체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지만 전투는 이미 끝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감염체

ㅡㅡ!!!


총탄으로부터의 압박이 갑자기 사라지자 감염체들은 공격자세를 되찾아 눈앞의 적을 갈기갈기 찢으려 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내 발 밑에서 지지대를 잃은 땅 한 쪽 바닥이 갑자기 무너져 내려 생긴 구멍이 모든 감염체를 집어삼킨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구조체 병사

정말 말씀하신 대로...이곳의 바닥이 정말 이렇게 많은 감염체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습니다.


이곳은 과거 상업시설의 최상층인 듯 했지만, 방치된 건축물의 하중이 한계에 다다르자 곧바로 무너져 그 위에 서 있는 놈들은 지옥에 떨어졌다.


지휘관

결국 카레니나가 조사해서 내린 결론 덕분이었어.


그녀의 정확한 판단이 있었기에 힘들이지 않고 이 부근의 감염체를 해결할 수 있었다. 요즘 시기에는 총알 하나하나가 소중하다.


구조체 병사

이 정도면 이 부근의 감염체들은 모두 깨끗이 청소한 셈입니다.


지휘관

모두 수고했어.


구조체 병사

저희는 이미 익숙해졌습니다. 현재 가장 힘든 쪽은 엔지니어 부대일 것입니다. 복구용 보급품은 아직 수송중이지만, 아직 수많은 사람들이 안정적인 숙소에 머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위태로운 건물을 철거한 뒤부터 카레니나는 보육구역 곳곳을 발도 땅에 대지 않고 뛰어다니는 모습을 자주 보았고, 돌아와서 쉬는 일은 거의 없었다.


마침 공중정원에 제출해야 할 건축자재 수요 명세서가 있어 카레니나가 확인해야 하니까 임무가 끝내고 먼저 그녀를 찾아가볼까.


지휘관

위협은 이미 제거되었으니 다들 철수해도 좋아.


단말기를 켜고 카레니나의 위치를 확인한 뒤 예상치 못한 곳에서 그녀의 신호를 찾아냈다.



쓰레기도 인류 문명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라고 한다면 지금 이 순간에 거의 '언덕'이라고 할 수 있는 쓰레기 더미만으로도 황금 시대의 발전 속도의 편린을 엿볼 수 있을 정도였다.


쥐죽은 듯 고요한 더미 속에서 갑자기 활기찬 소녀가 눈에 띄었다.


카레니나는 시커먼 판자를 조심스럽게 쓰레기더미 밑에서 빼냈다.



카레니나

갈게!


순식간에 카레니나는 거대한 판자를 힘차게 빼내 그 위에 쌓인 오물만 살짝 털어냈다.


카레니나

흥흥, 완벽해...


하지만 2초도 채 되기 전에 정지해 있던 쓰레기 산이 갑자기 눈사태처럼 몰려와 거의 잠길 지경이었다ㅡㅡ그러나 마지막 순간 그녀의 머리 위로 치켜든 판자는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지휘관

(1)(카레니나!?)

(2)(너 괜찮아!!)


외치는 소리에 카레니나의 머리에 묻힌 역원 장치가 갑자기 그녀가 깊숙히 파묻힌 더미 속에서 우뚝 솟았다.


거의 동시에, 그녀는 재빠르게 폐기물 더미에서 뛰쳐 나왔다.



카레니나

너, 너 왜 여기 있어!?


지휘관

다행이야. 안 다친 것 같은데...


카레니나

흥, 당연하지, 이런 것들이 나를 다치게 할 리가 있나...내가 조금 놀랐을 뿐이야.


카레니나는 서너 번이나 자신 앞에서 뛰어올랐고, 가까이 가서야 어디서 묻었는지 모를 먼지가 얼굴에 묻어있던 것을 보았다.


하지만 카레니나는 개의치 않는 듯했다. 잿빛 머리와 흙빛 얼굴을 한 그녀의 눈동자는 햇살 아래서 눈이 유난히 맑고 환하다.


그러나 카레니나보다 더 빛나는 것은 손에 들고 있는 판자였다… 너무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지휘관

손에 든 거 뭐야?


카레니나

어? 이거? 이것은 예전에 태양열을 모으는 데 사용되었던 집열판인데 태양열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수집하여 저장할 수 있어.


카레니나

요즘 저녁 날씨가 쌀쌀해서…. 이동했던 부랑자들을 위한 임시 수용소는 생겼지만 난방기구가 없어서 이 집열판과 기타 쓸만한 것들을 모아서 간단한 난방장치를 만들어 주려고.


카레니나는 구레나룻을 손가락으로 돌돌 말며 어찌할 바 모르는 시선을 하고 있었다.


카레니나

왜냐면 그 안에서 그냥 불을 피워 따뜻하게 하면 너무 위험하니까... 화재가 나면 또 엔지니어 부대가 가서 수습을 해야 되는데...


지휘관

나도 도와줄게.


카레니나는 눈을 깜박이며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카레니나

너가? 이건 지휘 작전과 달라. 안목과 통찰력이 머리보다 중요하거든.


카레니나

손에 쥔 것이 가치가 있는지 분간하려면… '보물'인지 '쓰레기'인지 경험과 상상력에 의존해야 해.


지휘관

(1)(여긴 쓰레기밖에 안보이는데...)

(2)(이렇게나 뜻깊은 학문이었구나!)


카레니나는 발 아래 쓰레기 더미에서 볼품없는 작은 장치를 집어 던졌다.


지휘관

이게 뭐야?


카레니나

에너지 변환 접합부. 좀 망가졌지만 고칠 수 있을 것 같아.


카레니나

예전에 빈민굴에 있을 때 할아버지와 함께 쓰레기더미 속에서 보물을 찾곤 했었고, 온갖 부품을 찾아 나 자신도 모르는 기계장치를 짜맞춰 보곤 했었어.


에너지 변환 접합부를 넘겨받은 카레니나는 손쉽게 태양광 집열판에 설치했다.


카레니나

보잘것없는 폐기물이라도...기술자들의 수리와 개조에 힘입어 모두에게 보물이 될지도 몰라.


지휘관

정말 대단해...


지휘관

나도 '보물'을 찾아볼래.


몸을 굽혀 찾던 중 햇빛에 반짝이는 물체를 발견했고, 주워보니 미세한 무늬가 있는 어떤 칩인 것 같았다.


지휘관

카레니나, 이거 봐봐!


카레니나는 그것을 집어들고 햇빛에 비추어 반투명한 유리 껍질을 통과시키자 일곱색 빛깔로 변했지만 그녀는 그저 손을 뻗을 뿐이었다.



카레니나

참 아쉽지만 이건 별로 쓸모있는게 아니라 작은 장식용 전구 하나에 불과해. 기껏해야 조금씩 빛을 발하는 것밖에...그리고 이미 망가져서 '쓰레기'임에는 틀림없어.


지휘관

(1)(아쉽네...)

(2)(아무래도 여기가 고향인 것 같네)


다소 실망스러워 하면서 카레니나에게서 작은 장식용 램프를 가져다가 쓰레기통에 다시 버리려고 했다.


카레니나

잠깐...버릴 필요는 없어!


카레니나는 장식용 램프를 빼앗아 앞에 놓고 찬찬히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카레니나

음, 모처럼 주워들었으니 이것도 하나의 인연인 셈이잖아. 내게 맡겨봐. 칙칙한 작은 전구 알에서 눈이 멀 정도로 강한 조명기로 개조할 거야!


카레니나

어쩌면 될지도...맞아, 저기야!


카레니나의 시선을 따라가다가 건물 그늘 속에 낯익은 시설물이 보였다.


지휘관

관람차?


카레니나

맞아, 관람차에 화려한 조명이 많잖아? 저기 위에 끼우면 더욱 빛나지 않을까.


지휘관

영화의 샛별에 있던 것보다 훨씬 작아보여.


카레니나

그래. 그런데 이 관람차는 안정적인 구조라 그냥 두어도 떨어지지 않을 거야.


카레니나

동력 시스템만 아직 쓸수있다면 다시 가동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때가 되면...씁, 지금은 그런것들을 생각할때가 아니야!


카레니나는 눈을 돌려 방금 더미에서 얻은 '전리품'을 치웠다.


지휘관

관람차 타는 거 좋아해?


카레니나

하? 아니, 그냥 영화의 샛별에서의 별일없던 밤이 생각나서...


갑자기 카레니나는 어째서인지 갑자기 몸이 굳었고 얼굴을 붉혔다.


지휘관

카레니나?



카레니나

어, 어째서 내 얼굴이 이렇게 더러워졌지!?!?


카레니나는 집열판에 반사된 얼굴의 비참함을 본 것처럼 서둘러 손으로 얼굴을 닦았다.


카레니나

왜 진작에 안 알려줬어!


지휘관

알고 있는 줄 알았지...


지휘관

(1)(괜찮아, 여긴 어차피 아무도 못 보잖아)

(2)(괜찮아, 나 혼자잖아)


카레니나

그런게 아니야!!! 이 바보야!!!


뭔가 더 말하려는 순간 갑자기 보육구역 담당자가 통신을 보내왔다. 그는 초조한 어조로 안정적으로 작동하던 여과탑이 갑자기 고장났다고 말했다.


카레니나

...갑자기 여과탑 출력이 이유도 없이 뚝 떨어졌다고?? 어떻게 이럴 수가...알았어, 금방 갈게!


지휘관

나도 같이 가!


두 사람은 곧바로 수거한 재료를 운반차에 잠시 쌓아두고 여과탑 쪽으로 달려갔다.







진짜 여친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