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경각흔 EX05-11H : 낚시꾼



케르베로스와 헤어진 롤랑은 곧장 작은 마을을 벗어나 산기슭의 폐허 부근으로 향했다.


롤랑

라미아 녀석...


도망칠 거라곤 예상했지만, 롤랑 역시 완벽한 타이밍이라고밖에 여길 수 없었다.


다행히도 케르베로스의 힘을 빌려 적당한 대미지로 부두를 못박아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롤랑

케르베로스의 어린 친구들이 진실을 발견했을 때 너무 놀라지 않았으면 좋겠군.


그는 웃었다.


롤랑

하지만 아무래도 너무 늦은 것 같아.


그는 이미 황무지로 다시 돌아갔지만, 이번만은 그에게 목표가 생겼다.


바로 이때, 그 검은 옷의 소녀가 다시 그의 앞에 나타났다.


회언

절 따라오세요.



회언

따라오세요.


롤랑

너는 누구지?


앞에 보이는 검은 옷의 소녀는 대답 대신 가만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는 아무런 감정도 요구도 없었다. 마치 옅은 안개 속의 깊은 호수처럼.


롤랑은 그런 눈을 싫어한다.


롤랑

어째서지?


회언

...


대답은 없었다.


그러자 롤랑은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며 검은 옷을 입은 소녀를 앞지르려 했다.


회언

이것은 당신이 기대했던 결말입니다.


그러자 롤랑은 멈추었다.


롤랑

...어떻게 알았지? 아니...


롤랑

집 안에만 있었던 게 아니라 훨씬 전부터 나를 추적 감시하고 있었던 거였어, 안 그래?


회언은 부인하지 않았다.


롤랑

값을 불러, 일이 이미 이렇게 되었으니, 우리 사이에는 더 이상 허례허식따위로 서로를 탐색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


회언

그것은 저의 임무가 아닙니다.


회색 옷의 소녀는 침묵하고 돌아서서 다시 출발했다.


롤랑

...쳇, 뭐 됐어.


그러나 롤랑은 아무 생각 없이 순순히 따라갔다.


그는 나름대로의 계획이 있다.



롤랑은 조용히 회언이라는 이름의 회색 옷의 소녀를 따라 주변 경치가 완전히 변할 때까지 한참을 걸었다.


롤랑은 침식체와 인간의 무기로 파괴된 건물과 요새, 버려진 마을의 울퉁불퉁한 길을 통과하며 소녀를 따라다녔다.


다만, 롤랑이 아무리 회언이라는 소녀에게 말을 걸어도 회언은 롤랑에게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롤랑이 먼 곳에서 성가신 침식체들을 이용해 회언을 습격하려 하거나, 길에서 함정을 만들려고 할 때,


회언

쓸데없는 짓 하지 마세요.


회색 옷을 입은 소녀는 이렇게 말했다.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하는 단순한 협박이라면 모를까, '요구사항'과 '제한사항'을 전혀 명시하지 않은 이런 묵묵한 협박은 롤랑 입장에서 더 위험하다.


상대의 진정한 강점은 아직까지도 안개 속에 있다. 회언의 행보로 볼 때 상대는 여전히 손패에 많은 카드를 쥐고 있다.


그렇다면ㅡㅡ잠시 따라갈 수밖에 없다.


이런 판단으로 롤랑은 소녀를 계속 따라다녔다.



회언

부탁해요.


얼마나 걸었는지는 모르지만, 롤랑은 이미 길 위의 경치가 어떤 묘한 법칙으로 순환하며 변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을 때쯤이었다.


드높은 폐허 앞에서 걸음을 멈춘 채, 그녀의 명령으로 몇 개의 침식체가 무거운 건물 잔해를 힘겹게 떠받쳤다.


바로 이곳이다. 롤랑은 생각했다.


도중에 특정 장소를 의식하지 못하도록 여러번 우회해서 돌아가든, 롤랑이 장소를 특정지을 만한 참조물을 잃도록 하기 위해 얼마나 걸어갔는지 간에,


여기에서 끝이다.


어쩌면 도중에 저격수에게 100번 이상 조준당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에서 끝이다.


적어도 상대방은 자기가 이 마지막 장소에 도착하길 바랐다고, 롤랑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회언을 따라 거대한 잔해 속으로 들어갔다



잔해 속의 길은 넓지만 들어오는 빛은 폐허에 완전히 가려져 있었다.


파편적으로 빛이 투사된 장소에서만 회언이 지나가는 실루엣이 보일 뿐이다.


롤랑

(아니, 회언뿐만이 아니야.)


누군가 지금 자신을 정탐하고 있다. 한 명은 아니고 두 자릿수도 채 안 된다.


롤랑

(시끌벅적한데...)


그러나 그것도 그냥 들여다보는 것뿐이다.


만약 그것이 '조준' 혹은 '공격 준비'라면 롤랑은 이미 대비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단순한 '관람'은 의도적 경향이 부족하므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는 게 당연하다.


자신을 들여다보는 눈 중에 익숙한 느낌이 든다. 하나는 '부두'라는 놈이다.


그녀라면 곧바로 공격을 가했을 텐데, 그런 기분은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억제된 것인가? 누군가 '공격 불허'명령을 내린 것일까?


롤랑

이 모든 일의 배후가 누구든, 적어도 개를 기르는 데는 일가견이 있나 보군.


이런 도발적이고 비아냥거리는 말은 당연히 롤랑이 의도적으로 한 말일 것이다.


격분하려나? 롤랑은 이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노려보는 눈길은 그대로였고, 회언은 말없이 여전히 롤랑을 데리고 걸어갔다.


롤랑

(...쳇.)



그 후, 롤랑과 회언의 눈앞에는 하늘이 비추는 구역이 나타났다.


대부분 캄캄한 폐허 공간 중에서, 그곳만이 하늘의 빛에 의해 하나의 거대한 광점이 되었다.


굳이 말하자면, 무대에서 내려오는 스포트라이트와 같았다.


그 거대한 광점 속에, 검은 형체가 서 있었다.


회언

본 네거트 선생님, 손님이 왔습니다.


???

그래.


검은 형체는 몸을 돌려, 회언과 롤랑을 향했다.



???

만나서 반갑군, 주인을 잃은 '기사', 롤랑.


본 네거트

본 네거트라고 한다.


본 네거트

네가 여기에 순순히 온 이상, 어떤 일이라면 나 또한 흔쾌히 약속할 수 있을 것이다.


본 네거트

내 수하가 되어라, 너의 소원은 내가 대신 이루어 줄 수 있다.


롤랑

그렇다면 너도 알고 있겠지, 난 이런 사회적 친분이라는 개념에 얽히고 싶지 않다고 말이야.


롤랑

바로 요점으로 들어가는 게 어떨까?


단도직입적으로 자신의 관점을 드러낸 롤랑은 상대와 지나치게 얽히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본 네거트

네가 원하는 것, 내가 너에게 줄 수 있다.









미경각흔 EX05-12H : 미완의 중반



본 네거트

네가 원하는 것, 내가 너에게 줄 수 있다.


또 다른 대행자는, 정말 흥미롭다.


다만 이 답은 롤랑에게 전혀 이변이 아닌 것 같다.


황금가면을 쓴 대행자가 눈앞에서 이 대국을 설계하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니, 당연히 커피 한 잔을 사주기 위해 자신을 초대할 리 없다.


물론 이런 호객 행위는 너무나 식상하지만 말이다. '저질 히어로 영화의 악당인가?', 롤랑은 이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눈앞에 본 네거트라는 이름의 이 남자가...자신을 보고 있다?


본 네거트

이것에 대해 별로 만족하지 않는 모양이군.


본 네거트

네가 나를 바보로 여기는 게 아니라면...아마도 넌 무언가를 얻기 위해 자신의 손을 사용하는 것을 선호할 테지.


롤랑

이 두 가지 변명에 무슨 차이가 있지?


본 네거트

차이는 없다. 혹은 양쪽 다 재미있다고 할 수 있겠지.


롤랑

만약 다음 다섯 글자 이내로 네가 나에게 충분한 가격을 제시할 수 있는 이유를 주지 못한다면, 너는 바로 전자에 해당될 거야.


본 네거트

'루나 아가씨', 이 정도면 충분한가?


Eureka, 롤랑은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 다음은 바로 눈앞에 있는 이 녀석의 입에 있는 정보를 꺼내는 방법 밖에 없다.


본 네거트

너는 지금 이렇게 생각하고 있겠지, 내 입에서 네가 원하는 걸 꺼내라고.


롤랑

그게 제대로 돌아가는 것 아니겠어?


본 네거트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 아닌지는 너 자신이 잘 알고 있다.


롤랑

너는 순순히 내가 원하는 것을 네 입에서 내뱉도록 내버려 둘 셈이야?


본 네거트

그것은 내가 부르는 값에 네가 수락하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본 네거트라는 이름의 남자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롤랑을 바라보았다.


비록 그의 얼굴에 '당장 내게 응답하라'는 뜻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지만, 롤랑은 확실한 응답을 하지 않으면 살아서 이곳을 떠날 수 없을 것이라는 예상을 배제할 수 없었다.


적어도 롤랑은 상대방이 정말로 자신을 여기에 두고 싶어 한다면 그들이 해낼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것은 롤랑조차 큰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만들었다. 회언이라는 이름의 소녀가 바로 그 증거다. 승격자의 힘을 그렇게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은 롤랑이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다.


본 네거트

생각해보기를, 나는 네가 무엇을 찾고 있는지 안다. 공감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찾아줄 수 있지.


본 네거트

찾아준다는 말은 그다지 적절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그러나 언젠가 네가 찾고자 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본 네거트

네가 적절한 인물이고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한. 물론 너의 재능을 잘 활용할 것을 약속하지.


롤랑

정말이야?


롤랑

이에 대해 나의 옛 '동료'는 좀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야.


롤랑

비록 지금은 자기 입으로 불만을 표현할 수 없지만 이전 동료로서 내가 대신 표현해 보도록 할게.


롤랑

너는 어떻게 생각하지? '본 네거트' 선생?


본 네거트

...


그가 침묵한 것은 좋은 징조이다.


만약...


본 네거트

그럼 너는 너의 옛 동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지?


제기랄, 뜻밖에도 반문했다.


가브리엘이라...취서체 사건이 일단락된 후부터 롤랑은 더 이상 그에 대해 평가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이 문제를 제기한 것은 눈앞의 놈을 난감하게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보기 위함이었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롤랑

쓰레기였지.


롤랑

그가 죽었다는 것을 알아,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의미있는 죽음이었다는 것뿐?


롤랑

그도 거기까지가 한계였던 거지.


본 네거트

음?


롤랑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면, 내가 말한 것을 이상하게 여겨서는 안 되겠지.


본 네거트

그런가?


본 네거트

그렇다면, 너도 이미 자기 나름대로의 답이 있었겠군.


롤랑

만약 그렇지 않다면?


회언

본 네거트 선생님에게 말하지 않을 셈인가요?


어느새 회언이라는 소녀가 롤랑의 뒤에 나타났다.


회언은 핵분열 원충을 가지고 놀고 있었는데, 그녀의 손이 핵분열 원충의 뒤집힌 배를 살살 긁었고, 핵분열 원충의 가느다란 더듬이를 계속 떨고 있었다.


롤랑

왜? 여기서는 아무도 저 사람에게 말하지 않을 권리가 없는 거야?


회언

그건 아닙니다.


회언

다만 그들은 결국 선생님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디딤돌이 되었을 뿐이죠.


본 네거트

그들은 단지 자신이 응당 받아야 할 미래를 선택했을 뿐이다.


본 네거트

그리고 나는 다른 사람이 미래를 선택하는 것을 막을 권리가 없다.


본 네거트

너도 마찬가지다, 롤랑.


롤랑은 대답하지 않고, 다만 본 네거트를 바라보며 그가 계속 말을 이어가길 유도했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그의 행위의 동기에 신경 쓸 필요도 없고, 자신의 진실한 목적을 드러낼 필요도 없다.


본 네거트라는 이름의 이 대행자가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다면 그도 해왔던 일을 하면 된다.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 거지?', 롤랑은 본 네거트가 롤랑에게서 얻고 싶은 것만 말하길 기다리고 있었다.


본 네거트

나는 너희들이 미래를 좇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본 네거트

이를 위해 너희들이 원하는 미래는 등가교환의 전제하에, 나는 그것을 실현시킬 것이다.


본 네거트

그리고 '나의 미래'와 '너희들의 미래' 중 하나만 선택하면 된다.


본 네거트

수지가 맞는 거래지, 안 그런가?


그래, 수지맞는 거래다. 아주 무시무시한 거래다.


말을 이 정도 했지만, 눈앞의 이 남자는 롤랑의 가장 궁금한 것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니, 욕심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설령 승격자라 할지라도.


눈앞의 이 녀석은 루나 아가씨처럼 공기를 억누를 정도로 강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


롤랑은 아직 본 네거트가 밝히지 않은 요구에 약간의 두려움을 느꼈다는 사실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본 네거트가 롤랑이 느꼈길 바라는 감정일 수 있다.


그런 건가? 비장의 카드를 계속 감추고 있으면 나를 두렵게 할 수 있으니까?


롤랑

수지는 맞다만, 원하는 게 뭐지?


롤랑

이렇게 무서운 사람을 기르고 있는데 네가 무슨 대단한 자선가라고는 생각하지 않거든.


롤랑은 뒤에 있는 회언을 향해 고개를 갸우뚱했다.



회언

선생님은 결코 자선가가 아닙니다.


회언

우리 사이의 거래는 매우 평등하죠.


롤랑

그래서? 그가 너에게 무엇을 요구했니?


회언

저는 지식이 필요했어요.


회언

그리고 선생님은 저의 검증를 거친 부산물을 가지고 가실 겁니다.


본 네거트

매우 합리적인 거래였지.


회언

맞습니다.


롤랑

비즈니스라는 게 다 거기서 거기지.


롤랑

나는 지금 사제 간의 정을 지켜볼 기분이 아니라고.


본 네거트

유감이군.


본 네거트

허나 그렇다면, 너의 결정을 나에게 알릴 때다.


본 네거트

네가 부두에게 그런 말을 했기에 나는 너를 데리러 회언을 보낸 것이다.


본 네거트

그리고 지금, 너는 이미 충분히 보았다.


롤랑

...


본 네거트

선택해.


본 네거트

그리고, 네가 마땅히 받아야 할 모든 것을 받아들여라.


롤랑

...


어떻게 해야 하지?


두려움과 막막함이 아니다. 파도에 휩쓸리거나 종말을 고하는 몸부림을 보고 싶은 것도 아니다.


앞에 있는 남자가 내민 손은 의심할 여지없이 기회이다.


하지만 초콜릿 상자를 열었을 때 초콜릿 상자가 빛을 낼지, 구더기가 기어 나올지 모르는 일이다.


운명의 선물이 바로 눈앞에 있다는 것만 알 뿐이다.


롤랑

난...


무엇일까? 선물 뒤에 숨어 있는 것은?


중요한 것일까? 중요하지 않은 것일까?


계시를 내려 줘, hermano(형제), 이미 사라진 지 꽤 됐잖아.


왜 이제서야 네가 보이지 않는 거지? 내가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거야, 아니면 나를 포기한거야?


롤랑은 환상의 신경과 눈가가 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구조체의 몸은 느낄 수 없어야 하지만, 그는 목 뒤에서 가느다란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롤랑?

생각해 봐...넌 도대체 누구일까?


롤랑?

배우? 기사? 들개? 승격자? 루나의 충신?


롤랑?

자신을 속이지 마.


롤랑?

너는 너야.


롤랑?

다른 사람도, 물건도 아닌... 너는 너, 세상의 유일한 너야.


롤랑?

더 나아가서, 나중에 너는 언젠가 나에게 대답할 수 있어ㅡㅡ너는 누구인지 말야.


롤랑?

너의 이상, 너의 인정, 너의 포악함, 너의 교활함...


롤랑?

의지할 사람이 필요할 수도 있고, 신념에 따를 수도 있고, 삶을 이어갈 임무를 계속해야 할 수도 있어.


롤랑?

하지만 너는 너야, 세상의 유일한 너라고.


롤랑?

어서 가, 훌륭한 사냥개. 그들을 이용하고, 그들을 착취하고, 그들을 찢어발기는 거야.



롤랑

흥, 그런 건가.


롤랑

애초에...그랬던 건가.



본 네거트

음?


롤랑

그렇다면 거침없이 값을 부르도록 하지.


롤랑

틀림없이 너는 거절할 수 없겠지?


롤랑은 지금 웃음을 드러내는 나 자신을 느꼈다.


본 네거트

물론이다.


이 세상에는 본래 타고난 운명이 없었고, 더욱이 천당과 지옥도 없다.


운명이란 자신의 선택, 자신의 길, 자신의 손등에 피를 뿌린 자신의 살생, 자신이 공감하는 말이다.



롤랑

그럼, 산타클로스의 초콜릿 박스에 뭐가 들어있는지 한번 볼까나...


롤랑은 눈앞에 있는 이 황금가면을 쓴 남자를 보면서, 더 이상 그 압박감이 어떤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러든 저러든, 지금부터 이 모든 것이 그의 토큰, 체스말, 제물이다.


본 네거트

그럼,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하도록.


토큰, 체스말, 제물이라면 강할수록 좋다.


바로 지금 이것들은 훌륭하고 완벽하며 나무랄 데 없이, 망설임 없이 지옥에 떨어뜨릴 수 있다.


'루나 아가씨'가 돌아온다면, 어떤 세상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까...


롤랑

나는 힘을 원해, 너의 것이든, 나의 것이든.


본 네거트

너의 몫은 당연히 내려줄 것이다. 나의 것이라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뭐지?


무슨 말일까?


낯익고 낯선 세계는 곁에서 사라지고, 롤랑과 운명 사이에 한 가닥의 와이어가 가로놓여 있다.


너무 쉽잖아, 이 선택지는 너무 쉽다고.


롤랑

물론 내가 필요할 때, 네가 나를 도와주길 바란다는 뜻이지.


롤랑

너에게 있어 그런건 손해도 아닐테니까.


롤랑의 이런 요구를 예상하지 못한 듯, 롤랑은 본 네거트의 눈에서 일말의 놀라움을 읽어냈다.


롤랑의 옆에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듯 회언이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본 네거트는 손을 흔들며 먼저 입을 다물라고 표시했다.


본 네거트

재미있는 부탁이군. 반드시 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지만 기대는 해도 좋을 것이다.



롤랑

루나 아가씨의 첫 소원은 '언니와 함께 살아가는 낙원'을 만드는 것이었어.


롤랑

하지만 승격 네트워크에 끈질기게 얽매여 있는 한, 루나 아가씨는 그 소원을 영원히 이루지 못할 거야.



롤랑

승낙한 것으로 받아들일게.


너무 쉽다, 너무 쉽다, 너무 쉽다. 앞으로도 칼끝에서 줄타기를 해야겠지만, 롤랑은 절대 그것을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


운명의 대가는? 내버려 둬.


이제 롤랑의 사고는 명령과 요구의 범위를 넘어섰고, 그는 마침내 '결과'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자신이 부른 값이 이미 자신이 인정한 가치보다 현저히 높다면, 그것은 '결과'의 가능성과 비교하여 보면 자신의 생명은 대수롭지 않게 된다.


본 네거트

그럼, 환영하지.


본 네거트라는 이름의 남자는 그의 눈가에서 영원히 맴돌 것 같은 종잡을 수 없는 눈빛을 보며 롤랑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깨달음에서 비롯된 가벼운 미소를 머금으며 롤랑은 자신의 알 수 없는 운명을 향해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