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미래로 통하는 길에는 꺼진 생명의 불로 가득했다.



시간은 서서히 흘러 어느덧 2년이 지났다.


그가 13살이었을 때, 서민 칸에는 이미 발 디딜 곳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일벌 부대의 구성원 숫자는 무서운 속도로 불어났는데, 아딜레 상업 연맹이 설령 모든 외주 작업을 인수하더라도 여전히 그 중 일부에게만 분배할 수 있을 정도였다. 경쟁은 더욱 격렬해져 그들이 받을 수 있는 수당은 오히려 꾸준이 줄어들었다.


작업 도중 사망자가 발생하는 것은 이미 새로운 화제가 아니며, 사람들은 무감각해지기 시작했고, 어떤 이들은 병에 걸려 일을 이어나가지 못하는 사람더러 '뺑끼친다'고 비웃기도 하였다.


아직 정신이 깨어있는 사람은 이러한 혼란한 환경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각자 많은 방법을 생각하였는데, 어떤 사람은 시험을 통해 하층 객차의 정규 부대에 가입하여 자신의 기술이나 무력으로 생계를 꾸려나갔고, 어떤 사람은 귀족의 호의를 뇌물로 유도하여 상층 경비병의 일원이 되었다.


비록 이런 뇌물을 준 사람들의 능력은 다른 경비병들에게 있어 그리 좋게 보이지 않았지만, '그런' 커넥션이 있는 한, 그들을 진정으로 해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저당물을 되찾은 '생존자'외에도 많은 이들이 혼란을 견디지 못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아딜레 상업 연맹을 떠났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갈 곳이 없었다. 그들은 행운상자를 사기 위해 몇 안 되는 물자를 다 써버린 터라 다른 선택지는 더더욱 없었다.



아사

일어나, 바로 근무 뛰어야 하니까, 이따가 또 그 '거북 면상' 경비병들을 다시는 들이지 마.


아사는 상층 경비병을 '거북 면상'이라 부르기를 좋아했는데, 그들의 방독면 가면이 마치 '거북이'처럼 뾰족하고 가는 머리처럼 보인다고 얘기한 바 있었다.


아사

이번 임무는 역시 행운상자를 파는 것이다. 한 세트에 5천 개, 도합 10세트니까, 우리는 중간에 10곳이나 장소를 옮겨다니면서 전부 다 팔고 돌아와야 해.


수송대원 웨이란

뭐라고? 5000개를 10번이나? 이것도 너무 많잖아, 지난 번의 두배라고!


아사

위에서 내린 임무가지고 나한테 불평하지 마, 소용 없어.


수송대원 웨이란

이번에는 뭘로 바꿀거지?


아사

역시 약품을 위주로 해야지, 자, 교환 가격표를 컨테이너 위에 붙여놨어.


수송대원 웨이란

우리가 미안해. 지금 약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다른 물품으로 바꾸길 꺼려하는 것 같은데.


아사

저번에도 다 팔리지 않았어? 자신의 약에 귀신들린 것마냥 집착해서 남에게 '요구'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었어. 너무 신경쓰지 마.


아사

계속 말다툼을 하다가는 '거북 면상'이 와서 또 한바탕 소란을 피울 거야.


수송대 리더 신야

씨****, 그 난동부리는 몇몇 '거북 면상'은 원래 행운상자를 사서 섞여 들어간 '일벌'이었거늘, 지금은 하루아침에 상층에 기어가서 열 배로 되갚아 주는 꼴이라니.


수송대원 웨이란

이게 무슨 복수야, 꼴랑 '감독'이나 하는 거지.


수송대 리더 신야

하하하.


신야는 억지 웃음을 지으다가 정색하며 웨이란의 뺨을 한 대 때렸다.


수송대 리더 신야

웃기지도 않는군.


오래전 아사로부터 '거북 면상'이라 불리던 상층칸의 경비병들이 '업무의 능률'을 독촉한다는 명목으로 항상 하층칸을 순찰하기 시작했는데, 그때만 해도 이렇게 가혹하지는 않았다.


최근 몇 년 동안 그들은 판매와 회수를 관행적으로 점검하는 것은 물론, 폭력으로 사람들의 불만을 억누르고, 이로 인해 군중들이 종종 유혈충돌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레이첼은 별로 나서지 않았다.


그녀가 항상 말하길...



레이첼

위에서 우리가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이미 눈치챘어. 이 다음부터는 행동을 은폐해야 해. 지금 그들과 부딪치면 사서 고생만 할 뿐이야.


아사

지금 이런 꼬라지는 별 것도 아닌가 보구만. 모두들 주먹을 불끈 쥐었는데, 그런 사람들을 빤히 쳐다보면서 자신의 힘이나 과시하고 규정을 엉망진창으로 바꾸다니!


아사

원래는 공업칸에서 일을 할땐 작업량에 따라 결산하고 한 만큼 받을 물자를 분배하는 것이 원칙이고, 마지막에 하루의 성과가 기준치에 미달할때야 비로소 아무것도 주지 않았어.


아사

지금은 아예 1인이 성과 미달이면 모두가 무보수...근무환경도 이전보다 백배 나빠졌다고!



아사가 말한 바와 같이 매일 아침 무리를 지어 다니는 '거북 면상'은 무기를 들고 하층 객차 안을 지나다니며 한 무리의 사람들을 골라 공업 객차에 가서 일을 시킨다.


비록 12시간 연속 근무에도 고작 두 끼 식사에 더해 음식 교환권 한 장을 보수로 내걸었지만, 모두들 이 '안전한 일' 하나 때문에 발칵 뒤집혔다.


선발된 사람들은 다른 50여 명과 함께 '거북 면상'의 감시 아래 원자재와 부품이 가득 쌓여 있는 공업용 객차로 향해야 한다.


제조 시간을 빠르게 하기 위해 거의 모든 이들의 두 끼는 인스턴트 영양 수프 한 잔에 불과했고, 변기와 빗물 여과장치가 객차 구석진 곳에 설치돼 두 걸음만 걸어도 찾을 수 있었다.


변기에서는 계속 냄새가 나고 빗물여과장치는 고장이 잦아 소년은 퍼니싱 바이러스가 상당수 함유된 물을 마시고 사람이 죽는 것을 목격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 사람들은 여전히 음식 교환권을 위해ㅡ그것이 설령 후방 근무부서에서 작성된 차용증서로만 교환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ㅡ땀냄새와 배설물이 가득한 칸에서 12시간 동안 계속 일을 해야 했다.


조금만 태만해지면 '거북 면상'들은 그들 손에 있는 튼튼한 막대기와 기관단총을 휘둘렀다.



'거북 면상' 경비병

수송대를 따라잡지 못하면 모두 국물도 없을 줄 알아!


한 사람의 피로가 모든 이들의 이익에 영향을 미칠 때, 군중 속의 증오는 제멋대로 자라난다.


과거에는 노인과 아이들을 참여시켜 물자를 얻을 수 있도록 만들었던 것이 지금은 갈등을 일으키는 요인이 되어버렸고, 귀족들은 이를 눈여겨보고면서 지금도 그 방식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거북 면상' 경비병

이것은 더 많은 사람들을 돌보기 위해서인데 너희들이 노약자와 장애인들에게 기회를 좀 남겨줘야지,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물자를 얻을 수 있겠나?


정녕 약자를 돌보기 위해서라면, '1인 부족, 전원 무급'이라는 규칙은 왜 필요한가?


'거북 면상' 경비병

상층의 규정이 그렇다고 해서 나도 어쩔 수 없어. 나를 미워하지 마. 나는 다만 그들에게 목숨을 바쳐 일하는 것이니, 온 세상이 이해할 거야.


'거북 면상' 경비병

상층칸은 지금도 경비병을 모집하고 있는데 그렇게 눈에 거슬리면 가입하고 나서 변화시켜 보든가, 만약 상층칸에 가입할 능력이 없다면 더 노력이라도 하든가, 그게 아니라면 너보다 잘난 사람을 증오하는 것에 지나지 않아!


'거북 면상' 경비병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돼! 바꿀 수 없는 건 아무것도 없어! 자신을 믿어! 화이팅!


'거북 면상' 경비병

성공을 위한 방법을 찾아야지, 실패의 구실을 찾지 마! 인생이란 이런 거야. 언제나 순조롭게 지낼 수 없어. 고통은 경험이 될 수 있다. 밥에 바퀴벌레가 있는 것은 더욱 풍년의 선물이라는 뜻이야!


불만족스러운 사람들을 대하는 경비병의 화술은 이미 숙달되기에 이르렀다.



모든 것을 바쳐 차에 오를 기회를 얻은 사람들이 대처하지 못하는 광경을 조우할 때, 그들의 증오는 '행운상자'를 웃으며 선전하던 수송대원들에게로 옮겨간다.


수송대원1

입주 심사에 떨어지셨다고요? 그냥 열차에 오를 힘만 있으면 됩니다! 아딜레 상업 연맹이 행운의 파트너를 모집합니다! 승차권 한 장 얻는 게 독학으로 공부하는 것보다 더 쉽습니다!


수송대원들이 얼마 남지 않은 생존 공간을 빼앗겼을 때, 그들은 또한 자신을 증오하게 되었다.


수송대원2

내가 무슨 선택을 했다는 거야?! 그들이 나에게 일을 시키든 말든 내가 뭐 어떻게 할 수 있었겠냐고? 나에겐 어린 동생이 있는데 어디로 데리고 갈 수 있겠어??


군중들의 분노가 한데 모이고도 해소되지 않을 때 그것은 위험한 칼날이 된다.


레이첼

그들에겐 각자 자기만의 고충이 있기 때문에, 너는 사람들이 자율적으로 감정을 억제할 것을 요구할 수 없어.


이 한스러운 감정의 끝이 어디에 있든 간에, 여기에 몰려 있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조건에 얽매여 현상태를 바꾸기 어렵다.


'거북 면상' 경비병

자유롭게 오고 가는 형제들아, 누구도 너희들에게 굳이 여기서 일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집 없는 사람이 어디 갈 곳이 있단 말인가? 이 혼란스럽고 황폐한 세상은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렀고, 수많은 생명들은 유랑길에 내몰렸다.


수송대원 웨이란

얄미워 죽겠어! '어어 그래, 확인'이라고 말할 때마다 화가 치밀어서 확 나가버리고 싶다고!


수송대원 웨이란

하지만 짐을 꾸릴 때마다 수송대원으로서 나는 싸움과 경비 외에 다른 기술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 그 무슨 공중합체 적응성이라고 하는 것도 없어서 구조체로 변할 수도 없고, 여기 말고는 도대체 어디 갈 데 있는지 도통 모르겠어!


군중들은 분노하고, 공포에 떨고, 초조해 하면서도, 돌이킬 수 없는 생이별을 마주해야 했다.


그들은 무엇을 해서 바꿀 수 있는지, 어떤 무기를 들 수 있는지 알고 싶었지만 결국 크고 작은 항쟁은 모두 실패했다.


하루하루 연명하는 사람들은 상층을 증오하고 타인을 증오하며 자신의 무력함을 더욱 증오했다.


소년도 한때 증오했지만, 그 한이 뿌리내리기 전에 레이첼은 그 감정을 단단히 다스렸다.



레이첼

【ㅡㅡ】, 그들을 미워하지 마, 미워해야 할 것은 틈바구니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아니라 아딜레의 계층적 계급 구조와 규칙, 문명을 무너뜨리는 퍼니싱 바이러스야.


레이첼

이럴 때일수록 우리끼리 더욱 뭉쳐야 돼. 이것들만 타파할 수 있다면...



아사

좋아, 모두 표정 풀어!


???

...


아사

조금만 참아, 레이첼이 거의 다 준비했어.


아사

지금 우선 일어나서 정리 좀 하고, 행운상자를 박스 안에 넣자!


군중들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좁은 '우리'에서 뚫고 나와, 습한 냄새의 수건을 들고 돌아가며 얼굴을 닦고, 몸을 숙여 사방에서 아무렇게나 잃어버린 옷을 찾고 있었다.


【ㅡㅡ】, 네 옷을 전부 수선했단다.


???

고마워요, 힐 아주머니.


가운데 손가락과 약지가 없는 노부인의 손에서 꿰맨 옷을 받아 들고, 그는 힐을 부축해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천만에, 내가 오히려 고맙단다. 지난번에 나를 도와서 그런 상자를 많이 만들지 않았다면, 내가 모두에게 누를 끼쳤을 게다.


그녀는 자신의 두 손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는데, 이는 침식체의 손에서 도망쳐 나오다가 생긴 상처로, 그날 이후 힐은 피와 충돌에 다소 민감하게 반응했다.


나도 늙어서 앞으로 며칠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네가 원한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가르쳐 줄 수 있어...


힐이 자신의 당부를 이어가려고 하는데, 객차의 안내방송에서 갑자기 한바탕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수송대원 웨이란

*** 또 왔구만, 우리가 그놈들이 얼마나 잘 사는지 모를까 봐 걱정이라도 하는 건가.


군중들의 힘없는 불평불만이 커져가는 여자 목소리에 눌려갔다. 그녀는 지금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황금시대에 작사, 각색한 고전 명곡을 읊고 있다.


역시 오슬란의 작품인가?


수송대원 웨이란

젠장!! 상층의 귀족들은 다 똑같아!!


???

...


때로는 아래층 객차에서 지금처럼 라디오에서 노랫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아사는 그것이 상층 귀족들이 연회를 열고 있는 것이라면서 '음악이 희망과 즐거움을 준다'고 주장해 연회의 라이브 공연을 하층칸에 중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년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 이런 노래를 즐겼을지 상상하기 힘들었는데, 노래를 들을 때마다 하층의 사람들이 극도로 분노했기 때문이다.


오셀람 호의 상하층 객차가 언제나 이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 이 순간 귀족과 서민이 같은 노래를 듣고 있지만 그들의 처지는 영원히 동일하지 않다.


수송대원1

제기랄, 아직도 <레퀴엠>이라니, 도대체 뭘 할 속셈인 거야, 어? 어??


레이첼

그냥 윗층에서 귀족 나리 하나가 뒤졌다고 여겨.


수송대 리더 신야

그거 참 잘됐군.


아사

이제야 온 건가?


레이첼

올라가서 임무를 보고하는 데 시간이 지체됐어.


레이첼은 들고 있던 화물 목록을 내려놓고 분노한 사람들을 향해 돌아섰다.


레이첼

자, 우리도 이 노래를 따라 모든 상층칸의 귀족들에게 보내주자고!


그녀는 라디오 방송의 피아노와 여성의 목소리에 맞추어 읊조렸고, 리듬과 운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욕설로 큰 소리로 노래하기 시작했다.


열차 칸에서 곧 그녀의 노랫소리에 불이 붙어 즐거운 웃음과 욕설로 가득 찼으며, 모두들 한편으로 일에 착수하면서 한편으로는 이 혼란스러운 노래에 합류하였다.


수송대원 일동

[~구원을 얘기하지만~전부 *같은 개소리라네~조만간 이 **들~뒤집어 엎자~]


수송대원 일동

[~***같은 귀족~차라리 기생충이 불쌍해~]


수송대원 일동

[~수송대가 파업만하면~너희들은 쫄딱 망하지~허이야~전부~*같이 멸망한다네~허이야~]


수송대원 일동

[~이거야말로~우리만의 노래~ 우리만의 분노~ 우리는 살리라~ 내일을 향한 희망~ 우리는 살리라~ 희망찬 내일을 살으리라~! ]


'거북 면상' 경비병

뭐하는 짓이야?!!!


경비병이 갑자기 객차 앞에 나타났고, 우연히 문 앞에 서 있던 소년은 강한 펀치를 맞았다.



청년A

...아파!


추억에서 깨어나 청년은 자신이 여전히 의료 구역의 검사대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고, 방금 자신의 붕대를 교체한 어린 소년은 어느새 그의 등에 엎드려 흰 머리카락 한 떨기를 뒤지고 있었다.


남자아이

형아, 우리 엄마가 젊은 사람이 흰머리가 나면 반드시 뽑아야 한다고 얘기했었어.


소년은 정성껏 뽑은 일곱 여덟가닥의 머리카락을 두 손으로 건네주었다.


청년A

어...고마워...


남자아이

그리고 다른 흰머리도...


청년A

자자자잠깐만, 다른 흰머리는 흰색으로 보이지만 원래 자신의 색깔을 바랜 거야. 자라난 흰머리는 아니니까 제발 뽑지 말아줘.


남자아이

...어?


이 말은 아무리 들어도 우스갯소리지만 청년의 진지한 표정과 함께 소년은 반신반의하며 손을 놓았다.


청년A

그냥 조용히 머리에 남아 있었으면 좋겠어, 그러니까 뽑지 않아도 돼.


남자아이

...응, 알았어.


그가 다소 얌전히 제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서야 청년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아직도 얼얼한 자신의 정수리를 다시 한 번 어루만졌다.



야윈 기술자

검사하는 동안 넋을 놓고 있어서 그 아이에게 당신을 깨우라고 했었는데...괜찮나요?


기술자가 웃으면서 그의 앞에서 자신의 손을 흔들었다.


청년A

괜찮아요.


그는 아까 '행운상자'이야기를 꺼낸 난민들을 돌아보았다.


청년A

저 사람들은 원래 아딜레 상업 연맹의 구성원이었나요?


야윈 기술자

네, 과거 오셀람 호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구조에 동참했지만 완전히 무너져버렸죠.


야윈 기술자

열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도 모두 보육구역과 거점 또는 의료구역에 뿔뿔이 흩어져 있었고, 어디를 가나 흔히 볼 수 있어요.


청년A

...


청년A

참, 아까 의식의 바다 검사는 끝났나요?


야윈 기술자

네, 결론부터 말하면 당신의 의식의 바다가 인위적인 방해를 받았던 것 같아요.


청년A

인위?


야윈 기술자

틀림없어요. 전에 한 번 심각한 의식의 바다 이탈이 있었고, 인위적으로 교란된 흔적이 있었는데, 기억 데이터가 손상되지 않은 것은 정말 기적입니다.


기술자의 말을 들으면서 청년은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 그 사람을 다시금 떠올렸다.



ㅡㅡ그 사람인가?


야윈 기술자

손 댄 김에 간단한 치료도 했는데,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당신이 더욱 쉽게 기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 거예요.


청년A

고마워요, 방금 몇 가지 일들이 떠올랐어요.


야윈 기술자

효과가 바로 나타났다고요? 보니까 의식의 바다가 매우 안정적인가 보네요. 좀 더 치료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군요.


야윈 기술자

이런, 말 나온 김에 공교롭게도 오늘 아침에 기계가 갑자기 고장이 나버렸지 뭐예요? 그렇지만 않았다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수 있었을텐데 말이에요.


청년A

...


야윈 기술자

그럼 이제 또 사람을 찾으러 갈 건가요?


청년A

네, 나가서 그들을 한번 볼게요.



???

...가지 마...


이름을 알 수 없는 소녀가 그의 망토 한 귀퉁이에 비비며 주눅이 든 두 눈으로 애원하고 있었다.


마치 그가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면 그녀의 몸뚱이와 함께 땅바닥에 쓰러질 것만 같았다.


???

..제발 가지 마...


청년A

뭐?


???

나 혼자 여기에 두지 말아줘...


청년A

하지만 주위에 사람은 많이 있잖아.


청년은 어쩔 수 없이 사방을 가리켰다ㅡㅡ어디든 사람이 꽉 차 있어 앞에 있는 소녀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

...안 돼...그...그들은...


그녀는 청년의 두 눈을 주시하면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청년A

...어?


소녀는 눈물을 터트리며 상처난 손을 천천히 놓고 팔에 머리를 파묻고 어깨가 주체할 수 없이 떨렸다.


청년A

...


청년은 상대의 눈물에 약간 흔들렸다.


그런데 그녀는 왜 이렇게 다른 사람들을 무서워할까?


과거에 어떤 경험을 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방금 동료들을 잃고 완전히 낯선 환경에 남고 싶지 않은 걸까.


청년A

(하지만 나도 모르는 사람이잖아.)


청년A

(그런데 이 점은 탤벗에게도 마찬가지긴 하네. 내가 뒤쫓아가서 뭘 할 수 있겠어?)


그는 낮은 소리로 한숨을 쉬었다.


청년A

알았어...여기에 있을게.


???

...진짜?...고마워...


청년A

이름이 뭐니?


혹사

혹사...혹사라고 불러...


이번에 그녀는 더 이상 울먹이지 않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혹사

너는?


청년A

기억이 안 나.


혹사

...그렇구나...


그녀는 더 묻지 않고 두 눈만 축 늘어뜨린 채 자신의 슬픔에 빠져들었고, 청년은 이 침묵 속에서 군중 사이로 스며들었다.



09번 의료구역은 그 특유의 분주함을 유지하고 있다.


왼쪽 구조체는 부러진 다리를 보호할 궁리를 하고 있었고, 옆에 앉은 인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단말을 보고 있었다.


정비실에는 의식을 잃은 중상환자가 누워 있었고, 두 구조체는 그의 옆에 앉아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다.


복도 바깥쪽에 있던 사람들은 모여서 그들이 과거에 겪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난민4

...그 쪽의 거점도 없어져서 구조체가 꼬박 3일 밤낮을 지켰는데, 의료 장비와 인력을 모두 옮긴 후에도 실험장과 온실은 그대로 보존되지 않았지.


난민3

그 큰 누님은?


난민4

감염되서 죽었어. 그녀는 구조체를 도와 이합생명체를 공격했고, 몸에 입은 방호복이 찢어져도 갈아입지 않았었어...


난민4

그 두 살 연하의 연인...도 모두를 옮길 때까지 버틴 후에, 자살했어.


난민5

....아니...혼자라도 살아야지...왜 그런 짓을...


난민4

어떻게 살게? 이런 환경을 어떻게 지낼 건데? 어딜 가도 죽을 뿐이고, 큰 누님도 단지 그의 최후의 지푸라기를 부러뜨린 것이었을 뿐이야...


난민3

내가 예전에 묵었던 기지도 마찬가지로 거기에 있던 예전 생필품과 채소씨앗을 수경재배용으로 재활용하려다가 수송 도중에 2명이 죽었고 한 명은 손이 부러졌어.


난민3

몇 명이 죽었다는 통보를 보면서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았었는데 눈앞에서.....피와 순환액 냄새가 코를 찔렀었지.


난민5

정말 지금은 어떻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원래는 구조체가 훌륭하고, 전투력이 있다고 했지만, 지금은 그들도 어쩔 수 없어. 그 괴물들은 인해전술, 무궁무진 그 자체야.


난민3

어쩌면 정말 그 사람들이 평소 논의하던 대로 이 괴물들을 통제할 수 있는 누군가가 나타나야 해결될지도 몰라.


난민4

글쎄, 적응성이 부족한 게 아니라면, 나도 구조체가 되어 한번 싸워보는 것이 여기 있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아.


난민4

금방 또 부서질 건물을 복구하고, 금방 또 죽을 사람을 구하고, 끊임없이 재현되는 괴물 한 마리를 죽여서…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난민4

사람의 마음은 돌덩이가 아니야… 이런 처지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눈물을 흘리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어?


청년A

...


난민5

이틀 전만 해도 나는 보초를 서는 구조체가 뒤에서 숲속에서 우는 것을 보았어. 가서 그에게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방금 자신의 동료들을 직접 죽였다고 하더라고.


난민4

왜 그랬대?


난민5

배반하고 도망쳤다가 침식체가 되어 돌아왔대.


난민4

저런...


청년A

...이런 환경에 직면해선 우리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어...



릴리안

단지 평범하고 특별한 게 없다는 이유로… 무기력한 느낌에 떠밀려 더 나쁜 길로 가기 쉬울지도 몰라.


청년A

...


난민5

내가 볼 땐 이러면 안 돼. 역시나 어떤 승격자의 힘도 요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난민5

모든 희망을 한 사람에게 거는 것은 본래부터 믿을 수 없는 일이잖아. 그가 죽든지 아니면 잘못된 길을 간다면 남은 사람은 어떻게 될 건데?


난민5

그 당시 수송대 총대장이었던 레이첼을 생각해 봐...몸이 아파도, 먹을 것이 없어도, 입을 것이 없는 사람도 그녀에게 도움을 구할 수 있었지. 나중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 다 돌볼 수 없었지만... 모두들 그녀가 곧 우리를 혁명적으로 이끌 것이라고 믿었었지.


난민5

그 결과...에휴.



청년A

...레이첼...


혹사

...


난민3

설령 성공하지 못했어도 살아있었으면 좋았건만.


청년A

...이미 죽었다고?


난민5

그래! 그랬으면 설령 실패하더라도 내가 이렇게 괴로워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그녀가 뜻밖에 자기 사람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어!


청년A

...


난민3

그 빌어먹을 짐승같은 **, 그 녀석의 애비는 귀족새끼였고 애미인 줄리는 장부를 횡령해서 물자를 꿀꺽 삼켰잖아. 레이첼은 그 전모도 모르고 그 자식을 입양했지만 이런 꼴을 당하게 되었어!


청년A

...?


난민3

요 몇 년 동안 그 자식이 얼마나 많은 것을 꿀꺽 삼켰는지 하늘이 알겠지. 전부 그 애미에게서 배운 거야…! 최후에는 레이첼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난민3

나는 그 자식 이름도 몰라!


난민4

알아봐야 무슨 소용이야? 어차피 열차에서 튕겨져서 죽었을 텐데.


난민5

레이첼이 뭐라고 부르는지 들어봤는데, 아마도...노안이라고 불렀던가?


청년A

...노...안...?


주워 담기 싫었던 단편들이 끌어당겨져 수면 위로 떠올랐고, 그가 메우기를 거부했던 기억의 공허를 억지로 찔러 넣었다.



어머니

노안, 엄마는 네가 잘 자라서 종말의 '생존자'가 되어… 네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가길 바란단다.



레이첼

좋아, 노안, 소문내지 마.



노안, 그 사람들은 보지 마렴. 우리도 빨리 하자꾸나.



노안

...


???

방금 그 총소리, 저 아이가 쏜 거지? 진짜로 할 줄이야.


???

흥, 오슬란이 말한 대로 살기 위해 자신이 은사까지 죽일 수 있었군.


???

우리의 임무는 이미 끝났어. 그를 데리고 가자.


???

노안!! 무슨 짓을 한 거야??



???

그가 우리를 배신했어!! 저 녀석이야말로 열차 레일에 끌려다니면서 죽여야 돼!!!



눈앞의 광경이 산산이 부서지고 있다.



릴리안

기억을 잃기 전에 이름을 싫어했나 보네.


사방의 목소리가 점점 혼란스러워졌다.



???

과거를 잊으려 하는 사람만이 자신의 이름을 버릴 수 있어. 너도 그런 부류니?


누군가 큰소리로 외치고 있는 것 같다...


???

...의식의 바다...심각...


...그렇구나...마침내...알았어...


???

...그는...어느 소대...갑자기 어떻게...


내가 이름을 잊어버리려는...이유...



???

...미안해...나도...


내가 증오하는 이유...


???

...이러다간...



???

...노안...



???

부탁이야...그를....강제로 잠들게 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