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이 넘치는 열차칸에서 그의 그림자를 찾을 수 없다.



필드

노안, 돌아왔어.


노안

아저씨는 가셨어?


필드

응.


노안

실은...


필드

응?


노안은 방금 들은 이야기를 필드에게 전하려고 했지만, 망설이다가 그는 화제를 바꾸기로 결정했다.


노안

의사 선생님은 뭐라고 하셔?


필드

내 면역력이 약해서 하층의 습한 환경에서 더 쉽게 병이 날 수 있다고 하셨어.


필드

빨리 여름이 왔으면 좋곘다.


필드

더 따뜻하고, 아프지도 않을 테니까... 아빠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게 될 거야.


그는 무심코 손에 라벨 없는 약병을 쓰다듬었다.


필드

이 약은...아직도 너무 비싸...


노안

...아저씨는 약 때문에 오슬란과 연락한 거야?


필드

모르겠어...유독 그 일만큼은 항상 말하지 않으셨거든.


필드

노안, 너는 여름을 좋아하니?


노안

객차 안은 모두 비슷비슷해서 특별히 좋아하는 계절은 없어.


노안

하루빨리 수송부대와 함께하게 된다면 아마 좋아할지도.


필드

응, 그럼 여름이 되면 우리 같이 숲에서 반딧불이 찾아볼래?


노안

왜 반딧불이를 찾아?


필드

왜냐하면...너무 예쁘니까? 너는 반딧불이를 본 적이 있니?


노안

책에서 본 적 있고 그려보기도 했어.


노안은 펜을 들어 깜지로 만든 연습장에 세로로 줄을 지어 원을 그렸다. 민들레 같기도 하고 만화에 나오는 빛나는 둥근 공 같기도 하다.


필드

진짜 반딧불이는 그렇게 생기지 않았어.


그는 날아다니는 곤충의 모습을 조심스럽게 몸짓으로 표현했다.


필드

날개가 있고 배만 빛나.


필드

단말기에서 사진으로 봐봤자 직접 보는 것만큼 예쁘지 않을 거야.


노안

아직도 반딧불이를 직접 볼 수 있을까?


필드

응, 엄마가 예전에 반딧불이를 보러 같이 데리고 갔었지만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우리도 한번 가볼래?


노안

좋아, 내 훈련이 끝나면 수송부대를 따라 이곳을 떠날 수 있을 거야.


소년은 고개를 들어 객차 꼭대기의 먼지 낀 등불을 올려다보았다.


노안

반딧불이...


노안

전에 반딧불이와 관련된 자장가를 한 곡 들은 적이 있었어.


필드

자장가? 설마 그 노래...


노안의 어리둥절한 눈빛을 본 필드는 잠시 선율을 흥얼거렸다.


노안

아니야, 그 노래가 아니야.


필드

음...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잠시 생각하다가, 또 새로운 선율을 흥얼흥얼 노래했다.


노안

그래, 바로 그거야.


필드

원래 이거였구나...


두 사람은 한참 동안 각자의 상념을 가지고 침묵했다.



필드

너는 '썩은 풀은 반딧불이가 된다'(腐草为萤)*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니? 썩은 풀은 빛이 나지 않는데, 여름이 되면 반딧불이가 되어 빛을 낸대.


*고대 중국에서는 대서(大暑) 15일을 5일씩 끊어서 3후(候)로 하고 초후(初候)에는 썩은 풀이 화하여 '반딧불'이 되고, 차후(次候)에는 '흙이 습하고 무더워'지며, 말후(末候)에는 '큰 비'가 내린다(腐草为萤, 土润溽暑, 大雨时行)고 했다.


노안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것 같은데 옛날 사람들은 썩은 들풀에 반딧불이 난다는 미신을 믿었나 봐.


필드

그런가...


필드

우리 엄마는 우리가 땅 위에서 자란 들풀(야초)이라고 항상 말씀하셨는데, 왜 그런지 나에게 알려주지 않으시더라...


필드

요즘에서야 나는...알게 된 것 같아.


그는 손에 든 책을 들고 책장의 글을 반복해서 보았다.



필드

...우리의 인생은 매우 평범해. 마치 들풀처럼, '뿌리깊지 않고, 꽃잎이 아름답지 않다. 그러나 이슬로 말미암아 물을 마시고, 썩은 송장의 피와 고기를 빨아들여, 저마다 그것의 생존을 취한다.'


필드

'살았을 때는 짓밟히고, 잘려나가, 마침내 죽어서 썩어버린다.'*


*루쉰 - 『야초』 머리말 中


필드

...하지만, 들풀이 전혀 쓸모없다는 뜻은 아니야.


필드

죽음은 우리가 살아있음을 의미하고, 부패는 우리가 공허한 것이 아님을 증명해. 들풀에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하늘이 어두워도 타오르는 들풀의 불꽃이 하늘을 밝힐 거야.


필드

그러고 보니 '썩은 풀은 반딧불이가 된다'는 말은 평범한 생명도 죽은 뒤에 그리움을 남기는 것처럼 일리가 있는 것 같아.


필드는 진지한 얼굴로 노안을 바라보았다.


어린 소년은 독서의 내용을 이해하고, 어린 나이 특유의 단편적인 면과 연상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의 이해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부분을 찾을 수 있다면, 이러한 단편도 충분히 소중한 '등불'이 되어 막막한 앞길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노안

...갑자기 왜 그 얘기를 꺼낸 거야?


필드

음, 이 책도 그렇고 네가 그 노래를 꺼냈기 때문이야…'안녕'이란 말을 계속 반복하면서….


필드

우리 엄마도 반딧불이가 되어 어느 숲에서 '안녕'이라고 말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노안

...


필드

이런 말들이 마치 자기 위안의 환상처럼 들리니?


노안

아니, 절대 아니야.


노안

네 말대로...반딧불이가 죽은 자들이 남긴 그리움이라면, 이대로 곁에 남아서 안녕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되겠지.


필드

...


필드

어쩌면 추억에 잠기고 어둠에 잠긴 내 자신과 작별인사를 해야 할지도 몰라.


노안

어째서야?


필드

...나때문에 우리 엄마가 죽었기 때문이야...


필드

엄마는 항상 나에게 책을 많이 읽으라고 격려했지만, 집안의 책은 매우 적었고, 다만 제약 공장의 단말기에 약간의 전자 문서만 남아 있을 뿐이라서, 엄마는 때때로 밤에 아무도 없을 때를 틈타 나를 데리고 공장에 갔었어.


필드

그날 밤에 하필 공장에 문제가 생겨서...


필드는 두 눈을 내리깔고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뒤적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필드

엄마가 돌아가신 후...나는 줄곧 후회하고 슬퍼했어...


필드

아빠도 약을 사주시느라 아주 위험한 처지에 놓이셨는데…. 나는 옛날 추억에 젖어 아무것도 도와드릴 수 없었어.


필드

엄마가 죽은 숲속에서 엄마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그 일을 잊을 수 있다면 미래를 볼 용기가 생기지 않을까.


노안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노안

어머니가 널 지키기 위해 이런 선택을 한 것은 분명 네가 어머니와 관련된 추억을 잊거나 양심의 가책에 짓눌리는 것을 원해서가 아니었을 거야.


필드

...네 말이 맞아, 하지만 난 아직 직면할 용기가 없어, 난 할 수 없어.


필드

나는 너처럼 할 수 없어, 노안, 너는 많은 것을 잃었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잖아.


노안

...어? 뭘 포기하지 않았다는 거야?


그는 굳게 믿었던 모든 목표를 일찌감치 포기하고, 그것이 이야기 속의 환상이라고 생각하고 현실을 직시했었다.


필드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겠지. 지나간 추억도 좋고, 자신의 신념이라도 좋아.


필드

포기했었더라면 그날이 내 앞을 가로막지도, 나에게 손을 내밀지도 않았을 텐데.


필드는 자신의 차가운 손을 노안의 어깨에 얹었다.


필드

사실 너는 영웅담을 그리워하는 사람이잖아?


노안

...그 이야기는 모두 비현실적이야.


필드

비현실적인 것은 영웅만큼 힘이 없기 때문이지 영웅의 결심이 사라진 건 아니야.


노안

그게 무슨 차이야?


필드

의지가 없는 사람은 힘을 가져도 영웅이 아니라 큰 악당이 돼.


필드

하지만 너는 달라, 힘이 없지만, 나를 도와주려고 했어… 그것이 바로 결심의 중요성이라는 거야.


노안

...결심...


노안

하지만 그때 나는 모두를 해칠 뻔했고 레이첼 대장은 나에게…. 다시는 그렇게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않겠다고 맹세하라고 말했어.


필드

노안...


필드는 그에게 한 걸음 다가와 그의 굳은 얼굴을 가볍게 두드렸다.


노안

...왜?


필드

그렇게 생각하지 마...


필드

후회하고 있든 말든, 아니면 다음에 또 이렇게 하든지 간에, 내가 너에게 구원을 받은 것은 사실이야…. 그러니 자신의 무력함에 대한 두려움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들면 안 돼.


필드

이 일은 영원히 내 마음속에 기억될 거야. 언젠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만나면 나도 너처럼 도울게.


필드

영웅처럼 모든 사람을 돕지는 못하더라도 너를 도와준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도와줄 거라고 여긴다면 괜찮지 않을까?


노안

...


노안

만약 도와주러 간다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의미한다면, 너는 그래도 할 수 있어?


필드

그래, 가서 도와주는 게 옳은 일이고, 옳은 일이 허락되지 않는 환경이야말로 나쁜 거니까.


필드

그날도 네가 내 앞을 가로막으면서 비슷한 말을 했었잖아. 예를 들면 '당신의 눈에 차라리 미치광이처럼 보이겠다'는 말처럼….


노안

...잠깐만, 그 말은 잊어버려.


필드

응? 어째서야?


필드

...혹시 지금 부끄러워 하는 거야?


노안

...


필드

맞췄어?


노안

그냥 잊으라니까...!


필드

후우...


필드

그래, 다시는 이 말을 꺼내지 않을게. 하지만 네가 도와준 일은 절대 잊을 수 없어.


필드

사실 요 며칠 나는 줄곧 다리가 좀 나아지면, 너처럼 모든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도와야겠다고 생각했었어.


노안

...너는 이미 나를 도와줬어.


필드

정말?


노안

응, 그...그게...


필드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을 떠올리고, 또 그 날의 격려를 떠올리며 노안은 뭔가 무거운 거리감을 느꼈다.


그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망설이다가도 아주 가뿐한 목소리로 필드에게 감사의 말을 했다.


노안

이런 얘기 해줘서 고마워…


그 말을 들은 뒤, 금발 소년은 이유도 모른 채 고개를 숙이고 웃음을 터뜨렸다.


필드

노안, 장래에 무엇을 하고 싶어?


노안

...장래?


필드

응, 미래의 꿈이나 비전, 그리고 자신에 대한 바람 같은 거 있잖아.


노안은 조용히 두 눈을 감았다.


노안

...나는...


그는 마치 무슨 말을 할 것 같으면서도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왜 이런 일상적인 대화도 자꾸 까먹게 되는 걸까?


노안

너는? 장래에 어떤 계획이라도 있어?


필드

나는 다리가 나으면 스스로의 힘으로 열차를 떠나고 싶어. 그리고 숲속의 반딧불이를 보러 갈 거야. 아빠와 함께 갈 수 있다면 그게 최선이겠지.


필드

하지만 너무 머나먼 일이라 여름이 빨리 오기만을 바라고 있어.


노안

...너 정말 여름을 좋아하는구나.


필드

물론이지, 여름이 되어야 나도 괜찮아질 거야.


객차 안이 춥지 않더라도 필드는 여름의 따뜻함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기후와 온도뿐 아니라 그의 걱정과 추억도 많았을 것이라고 노안은 생각했다.


노안

그럼 내가 너에게 축복의 힘을 가진 이름을 지어줄까?


필드

예를 들면?


노안

필드, 불과 하지(夏至)의 군주 헤파이스토스.


필드

하, 하지 마.


필드는 자신을 꼭 껴안고 부들부들 떨었다.


노안

그럼 뇨르드와 축융의 아들, 적염의 천사 필드. 이건 어때?


필드

너무 뒤죽박죽이잖아!


필드는 보기 드물게 언성을 높였다.


필드

정 그렇다면 날 하지라고 불러. 축복의 힘은 여기까지면 충분해.


노안

그래, 하지라고 부를게.


하지

부탁이야!


노안

진짜 더 안 넣어도 돼?


하지

진짜 필요 없다고!!



시간은 또 그렇게 흘러 두 달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밴크로프트는 잃어버린 실책을 만회하기 위해 밤낮없이 일을 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그가 맡은 그 수송부대는 실수를 반복하고 있었다.


상층과의 관계를 이용해 레이첼로부터 수송부대에서 쫓겨나지 않았지만, 계속 머물러도 아무것도 개선하지 못해 그의 처지가 더욱 난처해질 수밖에 없었다.


노안은 레이첼이 군중 속에서 그에게 소리치는 것을 자주 보았다.


필드의 약은 이미 동이 났고, 하층칸이 붐비고 더러운 환경이 그의 몸을 쥐어뜯으며 반복되는 미열에 시달렸지만, 그는 자신의 몸 상태를 알려주지 않고 바쁜 아버지에게 거짓말을 했다.


노안은 훈련 시간 이외에는 대부분 도서창고에 남아 혼자 책을 읽거나 구석에 웅크리고 잠을 지새우는데 보냈다.



노안

하지, 돌아왔어.


하지

응, 저녁에 우리 아빠 만났어? 오늘 한 번쯤 돌아오실 때가 되었는데...


노안

만나서 네 사정을 물어보고 다시 돌아가셨어.


하지

...


하지

잃어버린 물건은 찾으셨대?


노안

아직.


하지

레이첼 대장이 뭐라고 하셨어?


노안

...그게...



레이첼

이전에도 몇 명의 목숨을 걸고 화물에 손을 대려고 했지만, 모두 나에게 붙잡혔어! 목숨이 아깝지 않으면 다시 해보던가 네 마음대로 해!!


밴크로프트

부디 저를 믿어주십시오!


레이첼

귀족의 앞잡이를 믿으라고?


밴크로프트

그때는 제 아들이 중상을 입어서 그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레이첼

그땐 어쩔 수 없었겠지, 그래서 지금도 어쩔 수 없는 거야?



노안

...아직도 그런 식이야.


하지

다른 사람들은? 누가 훔쳤는지 발견하지 못 했어?


노안

...그 사람들도...



일벌부대원

밴크로프트? 쳇, 도둑놈, 쁘락치, 나쁜 놈...진작에 감염병에 걸려 뒤졌으면 좋았으련만!


수송대원

너도 그 녀석이랑 그 집 아들내미랑 멀리 떨어져 있어! 굶주려서 돌아버리면 널 구워먹어도 남을 놈이야!



노안

어쩌면 도와주고 싶어하지 않는 것일지도 몰라.


하지

...


노안

이제 두 달 후면 내 훈련 기간이 끝나니까 그때 꼭 밴크로프트 아저씨를 도와줄게.


하지

아니야, 노안...아빠가 뭘 하고 계시는지 어느정도 알지만 나는 말릴 수가 없어.


하지

수송부대 대장의 심사에 통과하지 못한 아빠는 수송대원이 될 수 있었지만 아마도 대장이 될 수 있는 자격은...


하지

내가 다쳤기 때문에 아빠는 도움을 구해야 했고...과거의 관계를 통해 여기까지 오게 된 거야. 귀족과 거래한 것도 물자가 아니라 '정보'였지.


하지

만약 아직 쓸 수 있는 물자가 있다면 아빠는 그 길을 택하지 않았을 텐데... 미안, 또 나 때문이야. 그때 구출되지 않았다면, 이런 불편은 없었겠지?


노안

네가 맞고 싶어서 맞은 것도 아니고 구조되지 않았다면 나도 너에게 영향을...



수송대장 세나

사람은 모두 변해. 특히 어린아이는 앞으로 모두와 함께 오래 있으면 점점 온화하게 변하지.


수송대장 신야

흥, 근묵자흑이다.



노안

...영향을 받을 일도 없었어, 그 덕에 많이 바뀌었거든.


노안

게다가, 아무리 작은 반딧불이라도 자신의 역할이 있다고 분명히 너가 말했잖아.


하지

내가 전에도 얘기했지만, 아버지께 '정보'를 유출당한 사람들이 어떤 꼴을 당했는지 알고 난 후…. '사소한'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


하지

열차에 온 지 벌써 6개월, 그 6개월 동안… 내 약은 아버지가 물건을 잃어버려서 변상하는 데 써야될 물건들을 모두 교환해서 얻은 거야.


하지

이러다간 다음 피해자는 너와 가장 가까운 사람, 심지어 너까지 될지도 몰라...



수송대원 웨이란

쯧, 이 자식아...이 다음에 무슨 일이 생기면 네가 연루될까 봐 겁이 나 죽겠는데, 지금 넌 레이첼과 가까이 있지만 그 녀석의 아버지가는 굶주리다 미쳐버리면 아무나 물어뜯을 수 있는 개라고.


수송대원 웨이란

엄마처럼 되고 싶지 않으면...말 좀 똑바로 들어!



노안

...


하지

이것이 우리 자신이 타인을 다치게 하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겠어?


노안

정당하게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수단만 있다면 괜찮을 거야. 배상금도 지불하고 앞으로 물건을 잃어버리지만 않는다면 이런 짓을 다시는 할 필요가 없을 거야.


하지

하지만 아빠는 계속 물건을 잃어버리셨고, 지불해야 할 배상금이랑 외상값 때문에 보수를 받을 수가 없었어.


하지

화물을 누가 가져갔는지 알 수 있으면 좋겠는데.


노안

이제 곧 훈련기간이 끝나거든, 레이첼에게 부탁해 아저씨를 따라 운송을 요청해서 조금이라도 지켜봐 줄 수 있을 것 같아.


하지

아니야, 노안...


하지

호의는 정말 고마워, 하지만 이 일 때문에 너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그런 말을 한 다음 날 밤, 필드는 돌아오지 않았다.


텅 빈 도서창고에는 반딧불이와 그의 공책 외에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공책에는 반딧불이의 그림이 끼워져 있고, 다른 페이지에는 그가 책에서 베낀 문장과 단락, 그리고 수필과 감상문이 대부분이었다.


앞부분은 글씨가 깔끔하고 필사된 내용도 대부분 사계절이나 자연과 관련이 있어 그때까지만 해도 상태가 좋은 것으로 보였다.


후반부로 갈수록 글자와 내용이 어수선해지고 일부 페이지에는 핏자국이 드문드문 남아 있었다.


마지막 두 페이지에 이르자 글씨를 거의 알아볼 수 없게 되었고, 노안은 세 번을 반복해 보고 나서야 그가 무엇을 썼는지 알아냈다.



'친구여, 때가 다가왔다.

나는 몸둘 곳 없는 어둠 속에서 방황할 것이다.

그대는 아직 나의 선물을 생각할 것이다. 내가 그대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없다, 있다고 해도 어둠과 공허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어둠만을 원하고, 아니면 그대의 낮 속에서 사라질 것이다. 나는 공허만을 원하고, 그대의 마음에 결코 자리잡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리 하기를 원한다, 친구여ㅡㅡ

나는 홀로 먼 길을 갈 것이니, 그대도 없고 물론 다른 그림자 또한 어둠 속에 없을 것이다.

내가 어둠 속에 가라앉을 때, 비로소 그 세계는 오롯이 나 자신의 것이다.'*


*루쉰 - 『그림자의 고별』(影的告别)


노안

...


노트를 내려놓고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평소 붐비고 좁아 보였던 하층칸은 이 순간 이토록 넓어보였다.


시선이 닿을 수 있는 곳은 한정돼 있었고, 막다른 골목에 몰린 소년은 휴식을 앞둔 사람들 속에서 작은 소리로 상대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노안

하지...! 필드...!


하층 주민1

웬 소란이야, 지금 몇 시인지 알고 소리지리는 거야??


그가 예상한 바와 같이 이 외침은 곧 노여움을 불러일으켰다.


노안

미안해, 하지만 제 친구가 없어져서 지금 찾고 있어!


하층 주민1

없어졌다고? 단거리 수송부대와 따라 간 거 아니었나? 그 사람들 오늘 저녁에 074번 도시에서 물건을 나르고 새벽에 돌아올 텐데.


상대방이 하품을 하며 더러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노안

걔는 저랑 비슷한 나이고 몸도 안 좋아서 수송부대를 따라갈 수 없어요.


일벌부대원1

몸이 많이 안 좋다라...설마 밴크로프트 집 필드얘기는 아니겠지.


노안

맞아, 그 친구야. 한번 찾아줄 수 있...


수송대원1

내가 그 녀석을 봤더라도 얘기하지 않을 거야. 밴크로프트는 차라리 진작에 열차에서 내렸으면 좋았으련만, 수송할 때마다 그 녀석 소대가 항상 사고를 당하잖아.


수송대원2

그래, 왜 매번 그의 소대에서 사고가 났을까?


수송대원3

그 녀석은 도무지 대장 노릇할 자격이 없다니까. 그 밑에 거느린 대원도 그 녀석을 설득할 인물이 없으니, 물건을 나르러 나갔다가 물건을 잃어버리지 않으면 그게 오히려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고.


수송대원3

하루빨리 쫓겨났으면 좋겠어. 그럼 하루종일 미심쩍어할 필요도 없잖아.


노안

그럼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거야?


수송대원3

뭐?


노안

상층 경비병이 오셀람 호에서 이런 규정을 계속 적용하기만 한다면, 밴크로프트 아저씨가 떠난 뒤에도 그 다음 희생자가 있을 거라고!


노안

지금은 필드의 아빠니까 그래도 싸다고 여기면서 수수방관하고 있지. 그래서 다음은 누구차례일까?


수송대원2

그 녀석의 죄는 물어 마땅해.


노안

하지만 처음에 아저씨는 단지 다음 사람을 구하고 싶었을 뿐이었어!


노안

지금은 정보가 새어나가고, 물건을 잃어버리는 이런 큰일을 잘못이라고 쳐, 그래서 그 다음은? 그러면 규정이 바뀌기라고 해??

.

노안

마치 공업칸에서 새로 시행하고 있는 '1인 부족, 전원 무급'규정과 다를 바 없잖아.


노안

레이첼 대장은 모두가 그 '부족한' 사람을 여전히 밀쳐내려고 한다면, 위층의 귀족이 기뻐하면서 다음 '부족한' 사람을 데려온다고 말하곤 했어.


노안

모두가 괴로워하는 이유는 아직 세상에 '부족한' 사람이 있기 때문일까?


노안

'정보'가 물자를 교환할 수 있는 한, 밴크로프트 아저씨가 사라져도 영원히 다음 차례의 희생양이 있을 거야.


노안

분명 이런 규정이 불합리한 것인데 우리는 이런 규정을 내세워 주변 사람들을 공격하고 있잖아!


노안

나도 이런 실수를 저지르는 사람이 싫지만 이런 규정과 환경에 무고한 사람들이 엮이는 게 더 싫어.


노안

필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걔는 계속 바뀌고 싶어했다고!! 어째서 그 친구도 엮는거야?! 우리는 상층 귀족의 서민 차별에 대해 증오해 왔지만, 우리 자신 또한 다른 사람을 차별하고 았잖아!


일벌부대원2

이 애송이 같은 녀석이 여기 와서 무슨 강연이라도 하는 거냐?



수송대장 세나

강의 내용이 따분해? 내가 가르쳤어.


수송대원2

세나 대장?!


수송대장 세나

너희들 구경만 하고 있지 말고 어서 들어 봐. 신경 쓰지 마. 오늘 레이첼이 없으니까 난 그녀에게 아무 말도 안 할 거야.


노안

세나 누나, 필드가 실종됐어.


수송대장 세나

확실해? 여기저기 다 찾아봤어?


노안

응, 그가 자주 가는 곳을 내가 다 찾아보았지만, 그 녀석의 노트 외에는 아무것도 찾지 못했어.


노안은 세나에게 필드의 노트를 건네주었고 그녀는 재빨리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수송대장 세나

...


수송대장 세나

다들 좀 찾아봐, 그가 아직 어딘가 있을지도 몰라.


수송대원2

하지만 밴크로프트는 여기에 있으면 안 돼!


수송대장 세나

여기 있지 말아야 할 사람이 많아졌어. 너의 그 병든 마누라, 큰바위집 두 아이, 황 씨 엄마, 하나 둘 일일이 열거하라면 난 내일까지 이어갈 수 있어.


수송대장 세나

그들이 몰래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나도 어느 정도 알고 있지.


수송대원2

...!!


수송대장 세나

너희들이 밴크로프트를 미워하는 것은 바로 그가 너희들이 하는 일을 구실로 더러운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니었어?


수송대장 세나

그런데 너희는 왜 이런 일을 하는 거야? 누가 다그친 것도 아닌데 말이야.


수송대장 세나

그는 더러운 짓을 많이 했고 그에 못지 않는 벌을 받아야 하겠지, 너희들은 어때? 왜 너희들은 또 다시 하수인이 되려고 하는 거지?


수송대원3

무슨소리야?


수송대장 세나

정말 결백해? 그 녀석 혼자서는 물건을 잃어버릴 줄 뻔히 알면서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잖아!


수송대원3

...


수송대장 세나

내가 오늘서에야 이 일을 들은 게 아니었다면 진작에 레이첼에게 보고했을 텐데.


수송대원3

레이첼이 그걸 모를 리가 있나?


수송대장 세나

알 리가 없잖아!


수송대장 세나

이런 환경에서 고통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여기까지 왔는데, 우리는 여기서 시기와 증오를 품고 상층을 도와 자기 사람을 때리고 있어.


수송대장 세나

그가 물건을 잃어버리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도대체 너희들에게 무슨 좋은 점이 있니? 너희들의 처지를 좋게 해줄까 봐?


수송대장 세나

그가 매번 물건을 분실해서 '정보누설'을 하러 갈 때마다, 네가 원하는 대로 마침 네 눈에 거슬리는 사람을 한 명 죽여주기라도 한대?


세나는 미소를 잃지 않고 열차 벽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수송대장 세나

딱 한 마디만 묻는다. 너희들 그의 아들을 찾아 줄 수 있어?


쥐죽은 듯 조용하던 군중들의 침묵이 흐르자 한 정비부대원이 나섰다.


정비대원1

내가 화물창고 쪽을 감시하고, 몇 사람을 보내서 통풍관 쪽을 살펴보라고 하지. 어떤 때는 아이가 쉽게 기어들어가다가 길을 잃고 나오지 못할 때가 있기 마련이거든.


노안

고마워...!


정비대원1

너도 빈둥거리지 말고 우리와 함께 통풍관을 뚫고 찾아봐.


노안

응!


노안은 빠른 걸음으로 정비대원들에게 다가가 함께 객차를 빠져나갔다.


수송대장 세나

나머지는?


일벌부대원1

나도 근처에서 찾아볼게.


일벌부대원2

...나도 가 볼게.


수송대원4

혹시나 단거리 수송부대랑 나갔을 수도 있으니까 레이첼한테 연락을 해 볼까?


수송대장 세나

자, 여기 단말기로 물어봐.


수송대원3

쳇...!


수송대원5

가기 싫으면 그냥 있어. 기꺼이 갈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갈테니까.


수송대원2

...


수송대원6

루루, 너랑 같이 놀던 얘들 대리고 평소에 숨바꼭질하는 장소 좀 찾아보렴.


여자 아이

응!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임시 인명구조대를 만들었는데, 여전히 움직이기 싫어하거나 신체 등의 이유로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이것만으로도 노안이 혼자 찾는 것보다 훨씬 빨랐다.


편견과 벽이 이번 행동으로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소년은 무거운 얼음덩어리에 약간의 균열이 생겼음을 느낄 수 있었다.


노안

...빨리 돌아와줘, 필드.


그는 새벽으로 향하는 길에서 어둠 속으로 가라앉은 그림자를 불렀다.